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 사라진 바미얀 대불을 위한 헌사
이주형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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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이란 별로 익숙한 나라가 아니다. 대개는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등과 같은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 가운데 어느 한 나라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는 이 정도가 끝일 것이다.

하긴 최근 들어 아프가니스탄은 국제 뉴스의 무대로 자주 등장 한 바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하고 있다고 해서, 미군이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정권을 새웠다고 해서, 잘랄라바드에서 펼쳐졌던 미군의 대대적인 탈레반 잔당 소탕 작전 등으로 해서 말이다. 국제 뉴스에 대해 오래 전부터 관심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프가니스탄의 공산 혁명과 소련군의 침공, 무자헤딘의 저항과 이슬람 정권의 수립, 그리고 내전과 미군의 침공 등 수십년 내지 수년 정도 이전의 아프가니스탄 관련 뉴스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지식을 끌어 모아 생각해 보면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변변한 경작지도 충분치 않은 사막 비스무름한 산악 지역에서 먹고 살 궁리만 착실히 해도 부족하겠건만, 이들의 현대사는 정변과 침공과 내란과 학살로 엉망이 되어 있다. 이 와중에 아프가니스탄의 힘없는 백성들은 군벌의 총에 맞아 죽고 이슬람 근본주의의 광풍에 휘말려 죽고 미군의 오폭으로 죽고 눈 먼 지뢰를 밟아 죽는다. 덕분에 ‘아프가니스탄 사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에게도 ‘아프가니스탄 사람’의 모습은 고작 빵떡모자를 쓴 초췌하고 음울한 표정을 한 사내의 형상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은 매우 흥미로운 나라이며, 탈레반과 미군의 침공 정도만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책의 등장을 혜성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도 여기에 있다. 나는 이 책이 아프가니스탄의 속살을 까발려 보고 싶은 나름대로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이 책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나의 무지를 밝혀줄 빛나는 혜성이 되어주길 바랬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책은 나의 혜성이 되어주었다. 그 결과 적어도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호기심은 이 책을 통해 충족되었다.


목차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을 지역과 역사라는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 소개한다.


먼저 지역적인 접근(1부)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명멸한 여러 문화들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화적 지리지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민족들의 존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적 지리지에도 여러 민족과 여러 문화들이 날줄과 씨줄로 촘촘히 얽혀 있다. 이 문화적 지리지에는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을 따라왔던 그리이스인들 및 그들의 문자와 문화까지 끼어들고 있으니, (옥수스 강변의 아이 하눔에는 그리이스인들의 원형 극장까지 있다. 놀랍지 않은가, 중앙아시아 한 구석에 그리이스 원형 극장이 짱박혀 있는 황당무개한 사태라니!)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적 다양성은 이것만으로도 익히 상상이 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저 밖에서 보기에는 접근 불가능한 난마와 같이 보일 이 대상을 독자의 흥미를 유지시키면서 한올 한올 풀어나간다는 데에 있다.


다음으로 역사적인 접근(2부)은 하미드 카르자이의 과도 정부가 이끌어 가고 있는 오늘의 아프가니스탄을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 준다. 책의 분량 상 본격적인 역사적인 접근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주어진 한계 안에서는 눈부신 선방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적으로 나태한 나와 같은 사람마저 하미드 카르자이를 반 탈레반 북부 동맹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게 하였으니, 이 책의 교수법은 놀랍다고 밖에 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또 하나 꼭 언급해야 할 것은 공들여 장만한 것이 분명한 사진과 도판의 물량공세(?)이다. 이 사진과 도판의 존재가 아프가니스탄의 이해를 위한 여정을 걷는 독자들을 더할 나위 없이 축복해준다. 나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발굴 지도를 역시 이 책에 소개된 그 지역에 대한 사진과 유심히 비교해 보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예전에 미처 몰랐던 스스로의 지적인 열정과 부지런함 내지 꼼꼼함까지 발견하는 쾌거(!)를 이룩한 바 있다. 이 또한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랴!

 

송구스럽긴 하지만 놀라운 일이 하나 더 있다. (이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장황한 글을 끝마치려 하니 조금만 더 참아주시기를...)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읽고 ‘삘’을 받은 나머지 마눌님에게 “아프가니스탄 케밥”을 요리해 주겠노라고 공언해 버린 일이다. 아프가니스탄 케밥? 뉴욕에 아프가니스탄 요리 전문점이 있어서 케밥을 판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요리? 난 라면도 겨우 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프가니스탄 케밥을 요리해 주겠다고 큰 소리를 쳐 버린 것은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먹은 나머지 어떻게든 아프가니스탄을 몸소 체험(?)해 보고 싶었던 가련한 소시민의 발버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듯 하다. 비록 벅찬 가슴으로 저지른 일이긴 하나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케밥을 요리할 길은 막막하기만 하니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남아일언중천금을 우습게 만들어 버릴 지도 모를 아프가니스탄 케밥 사태의 원흉(?)인 저자에게 편지를 보내 나 대신 아프가니스탄 케밥을 만들어서 택배로 부쳐줄 생각은 없는지 물어볼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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