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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3년동안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과목은 국사와 세계사, 역사과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교과 선생님들보다 역사과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1학년 때 국사 선생님은 한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 선생님이었다. 슈퍼마리오를 닮은 굉장히 재미있게 생긴 선생님이었지만 수업은 지루함 그 자체였다. 교과서에 있는 구절만 계속 반복하고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외진 구석의 내용들만 강조했기 때문에 우리반에서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은 단 한 명이었다. 그것도 순수한 학문의 목적이 아니라 그저 예의상 건성으로. 1학년이라 공부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다들 국사책 밑에서 다른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공부에 그나마 의욕을 가진 애들은 다른 공부를, 나머지는 마니또 언니들한테 편지를 쓰거나 짝끼리 인생상담을 하며.

  2학년 때 세계사 선생님은 타이틀 부터가 삐까번쩍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계속 1등, 2등을 다퉈왔고(운전면허시험에서도..),  대학은 서울대학교 출신이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다 보니 항상 경외의 눈으로 그 선생님을 대했고, 그 경력만큼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수업도 재미있었다. 선생님만의 수업방식이 있었는데 그게 나하고 잘 맞았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그 방법에 재미가 들려 모든 과목을 그런 식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으니. 하지만 우리 세계사 선생님은 화려한 타이틀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3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노.처.녀"였던 데다 그 때문인지 매사에 쉽게 화내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불만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대학 졸업후 몇 년간 고시를 준비했었는데 낙방을 거듭할수록 해가 가면서 직장이 있는 친구들은 선생님과의 연락을 피했고, 선생님도 매일 얻어먹기만 하는 처지가 미안해서 주변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되다시피했다고 한다. 혼자만의 자격지심만으로 괜히 그렇게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친척들은 "서울대"를 나왔으면서 취직하나 못하냐는 식으로 무시했고, 몇몇 신문사에 원서도 내봤지만 연줄에 밀리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떨어졌다고 한다. 또 그냥 시집이나 갈까하니 선을 보는 남자들이 하나 같이 다 선생님의 학력을 부담스러워하며 괜한 자격지심에 학력말고 다른 걸로 선생님을 이기려하다보니 선생님은 그게 또 못마땅해서 똑같이 속된 말로 싸가지 없게 대하다 보니 결혼도 실패. 그러다 결국 선택하게 된 게 교사였다고. 이런 선생님의 인생담도 슬프지만 어느 날 내가 선생님께 물어봤던 것이 하나 생각난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셨어요?' 서울대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무심코 한 질문이었지만 그 질문에 돌아온 선생님의 대답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때부터 1등을 못하면, 1등의 자리를 놓치게 되면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깔볼 것 같아서 기를 쓰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뭔가 대단한 대답을 기대하고 한 질문은 아니였지만 돌아온 대답이 왠지 슬펐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이 가슴 찡했다. 몇 년전 우연히 학교 도서실에서 봤던 선생님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에서 선생님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세워 무언가를 비웃고 것처럼 보였었다. 그전에 선생님한테 들었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에다 평소 선생님의 짜증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말로는 자기 입이 비뚤어져서 그렇다고 하시는데 다시 찾아뵐 때는 그 웃음이 조금은 밝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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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5-02-0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귀절에 맘이 찡하네요..학력이 높아도 남녀차별은 있는듯..
그래서 서울대 나온 여자는 시집 가기 힘들다고 그랬었죠..연대나 고대 나온 남자들이 서울대 출신 여자에게 열등감을 갖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습니다..에전에는요..
 

그동안 신문에서 오려내 책상 위에다 버려두었던 기사들을 정리했습니다. 인상적인 기사들에는 짧게 덧글을 썼는데 그 중에 한 편 적어보렵니다.

  작년에 어떤 친구와 EBS의 한 영어 강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서로 감정이 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그 강사에게 굉장히 유감이 많았던(발음이나 강의 스타일 등 모든 게 마음에 안 들더군요.) 저로서는 도저히 그 강사를 칭찬하는 제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옆에 있던 다른 친구에게 제 의견에 동의를 구하고 같이 험담을 했는데 그것이 그 친구를 화나게 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야 생각한 거지만 고3이라 가뜩이나 서로 예민한 시기였는데 제가 친구의 말을 완전히 묵살하고 제 생각만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으며 그 생각을 친구에게 설득하고 주입시키려 했으니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지요.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사람이 그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고,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인격체와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만남과 관계를 지속시키는 데에는 타인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독불장군식으로 자라온 저는 그걸 몰랐던 거죠. 

  제가 스크랩한 기사는 명동성당 박동호 신부님의 설교문입니다. 그 중에서 몇 줄 적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눈에 띄는 것을 근거로 전체를 짐작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짐작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습니다. … 내 판단과 관찰은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내가 관찰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고 의외의 구석에 결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내가 보고 느낀 것만을 근거로 세상 사물을 판단하고 있다면 이면에 있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못 본 그곳에 정말 소중하고 결정적인 가치가 숨어 있을 수도 있기에 늘 내 판단에는 여백을 남겨놓아야합니다."

  ╇ 이런 것들을 알고 난 뒤에도 워낙 그 버릇이 몸에 밴 지라 똑같은 실수를 매번 하는 걸 보면 아직은 '여백'의 내공이 부족한가봅니다.  누군가가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이나 사물 또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들에 이견을 제시하면 저는 항상 "왜?"라고 묻습니다. 이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보다는 제 생각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 고집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부터는 따지는 듯한 "왜?"가 아니라 "어떤면이 그렇니?" 내지는 "그렇구나, 그런 생각이 있을 수도 있구나"라며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줄 아는 시각을 배우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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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리뷰에 관한 15문답

1. 리뷰쓰기의 원칙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첫째, 책의 대중적인 요소가 강한 부분을 간략하게 소개 한다.(지은이, 출판사)
둘째, 저자의 간단한 소개와 책과의 연관 관계를 해석한다.
셋째, 책이나 저자와의 인연같은 것을 맛보기로 보인다.
넷째, 내용 중에서 느낌이 강했던 부분을 반드시 소개하며 그것에 약간의 주관적인 감상을 덧붙인다.
다섯째, 책의 인쇄 상태나, 번역, 제본상태까지 소개할 정도면 이미 그 책에 애정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섯째, 별 다섯개가 아니더라도 리뷰를 쓰지만 가능하면 높은 점수대를 소개한다.

2. 어떤 장르의 책을 리뷰로 소개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가?
당연히 고전읽기다. 그 다음이 사회학 관련 서적이거나 평전인데, 동화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3. 리뷰를 쓰는데 가장 힘들다고 여기는 책은 어떤 장르인가?
시집이다. 짧은 문장일수록 그 속에 함축 되어 있는 깊고 넓은 의미는 여전히 어렵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성격이 강한 문학작품들은 높고 험난한 산맥이다.

4. 이제까지 가장 쓰기 힘들었던 리뷰의 책은 어느 것인가?
신화와 관련된 책들. 아무래도 신화 이야기에 취약한 정서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편의 엮임과 그 엮임의 연결은 매듭 푸는 일에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5. 리뷰를 쓰면서 독후감의 양식이라는 것을 짧게 정의 내린다면 무엇인가?
일정한 원칙을 정해 놓고 쓰는 리뷰와 무작정 쓰는 리뷰가 주는 감동의 차이는 크다고 본다. 내 경우에는 대부분 일정한 원칙하에 진행되어진 리뷰를 읽으면 감동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정돈된 느낌을 전달 받아서 그런것이 아닐까 한다. 질서는 아름답고 편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6. 우리나라 출판사 중에서 리뷰 쓰는데 선호하는 출판사가 있다면?
단연코 고전을 소개하는 '태학사'와 사회학 서적을 재미나게 출간하는 '아웃 사이더'이다. 이 두 출판사는 솔직히 편애하는 편이다.

7. 화장품 리뷰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가?
화장품도 하나의 개체로 볼 경우 상품에 해당하므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나름대로의 양식을 갖춘 리뷰라면 즐겁고 유쾌한 품평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내가 접한 대부분의 화장품 리뷰는 나의 까다로운 만족도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런고로 화장품 리뷰에 추천을 하는 일은 한번도 없음을 고백한다. 도전하고 싶은 분야이기도 하다.

8. 알라딘의 리뷰와 타 인터넷 서점과의 보편적인 리뷰성격을 비교해 본다면?
일단, 알라딘의 리뷰가 더 우수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알라딘에는 프로 작가들이 제법 참여하고 있는게 사실이며, 또 하나 서재지인들간의 끈끈한 인연이 맺어 있어서 그것에 위로를 삼아 훌륭한 리뷰라는 생각을 품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알라딘의 고수들 중에는 엄청나게 놀라운 내공을 지닌 아마추어들이 있지만 그들의 글을 다른 포털 싸이트에서도 발견한 바 있어 이러한 현상은 알라딘만의 고유한 현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알라딘의 우수성은 타사의 리뷰어와는 다른 정성과 다독의 흔적이 여실히 보여 이 점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9. 타인의 리뷰를 읽고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는가? 있다면 어느정도 인가?
타인의 멋진 리뷰는 곧 책 구입과 직결된다. 나의 경우에는 40%정도.

10. 리뷰가 서재질에 끼치는 최대의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즐겨찾기 숫자가 상승하는 것이며, 책구입이다. 책에 대한 정보와 상식과 흥미를 유발하지만 가장 큰 영향은 인간 관계의 형성이 아닐까 싶다. 책으로 연결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11. 우리나라 작가 중 리뷰 쓰는데 가장 어렵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면?
김훈이다. 이 작가의 글은 명료한 맛도 있고, 문장력도 있지만 너무 끊고 맺음이 강렬하며 확연해서 그 다음의 연결을 만들어 가는 일에 자칫하면 따라하기가 쉽다. 한마디로 딱딱한 문장이 주는 고딕체의 구성이라고 여긴다.

12. 우리나라 작가 중 리뷰 쓰는데 나름대로 편하다고 여기는 작가가 있다면?
리뷰 쓰는 일에 쉬운 작가는 거의 없다. 하지만 대화체의 유홍준 교수나, 독설가 장정일의 글은 읽기가 편해서 그런지 이 사람들의 리뷰도 비교적 편하게 쓰는 편이다.

13. 외국 작가 중 리뷰 쓰는데 어려운 작가가 있다면?
알랭 드 보통이나 움베르토 에코는 엄청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거대한 박식함 앞에서 숨이 막혀 올뿐이다. 작가가 너무 현학적이라면 독자는 그를 흠모하면서도 흉내를 내는 일에 망설여 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멋지면서도 그저 말문이 막히기 때문이다.

14. 외국 작가 중 리뷰 쓰는데 별 반 매력없는 작가가 있었다면?
'11분'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 책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별 반 매력없는 결론뿐이었다. 미안해요 코엘료씨!!

15. 앞으로 어떤 식의 리뷰를 쓰고 싶은가?
큰 변화가 없다면 이제까지의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다. 나름대로 편하며 적응한 원칙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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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반지의 제왕>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호빗> 또한 유쾌한 모험을 글자 그대로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빗>은 <반지의 제왕>에서 표면적 서술로만 지나쳤던 부분의 자세한 속사정까지 알아가는 재미외에도 <반지의 제왕>과는 또다른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빗>의 배경이 되는 시점은 아직 사우론이 부활하기 전으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악한 존재는 없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결코 얕볼 수는 없지만 어찌보면 약하다고 볼 수 있는 여러 대립자들이 등장합니다. 트롤, 고블린, 거미, 용, 늑대 와르그 같이 말입니다.(사우론에 비해서 약하다는 거에요.) 그리고 레골라스나 엘론드의 요정들 같이 보통 사람들이 친절하고 신비스럽게 생각하는 요정들도 탐욕스러운 요정왕 같이 약간은 부정적 존재로 묘사됩니다.(물론 이 때도 난쟁이와 요정은 철천지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반지의 제왕>에 비해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하다 보니 오절판을 먹는 것 같이 다채로웠습니다. 또한 칭찬을 하면 할 수록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빌보를 유능한 도둑으로 아는 난쟁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렇게 하다가 실제로 훌륭한 도둑이 되어버린 빌보의 변신 또한 유쾌합니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 이르면 등장인물 중 몇 명이 죽게 되는데 역자는 보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에 대한 대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각각의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다릅니다. 어떤 이는 끝까지 정신적 파멸에 빠진채 처량한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숭고하게 싸우다 전사하죠.

    제가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유쾌하다'는 말을 반복했는데요, 정말 읽는 내내 유쾌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표면적으로만 보여진 호빗과 난쟁이들의 참모습을 깊게 느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골목쟁이네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웃음도 절대 빠지지 않는 유쾌한 모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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