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신문에서 오려내 책상 위에다 버려두었던 기사들을 정리했습니다. 인상적인 기사들에는 짧게 덧글을 썼는데 그 중에 한 편 적어보렵니다.
작년에 어떤 친구와 EBS의 한 영어 강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서로 감정이 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그 강사에게 굉장히 유감이 많았던(발음이나 강의 스타일 등 모든 게 마음에 안 들더군요.) 저로서는 도저히 그 강사를 칭찬하는 제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옆에 있던 다른 친구에게 제 의견에 동의를 구하고 같이 험담을 했는데 그것이 그 친구를 화나게 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야 생각한 거지만 고3이라 가뜩이나 서로 예민한 시기였는데 제가 친구의 말을 완전히 묵살하고 제 생각만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으며 그 생각을 친구에게 설득하고 주입시키려 했으니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지요.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사람이 그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고,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인격체와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만남과 관계를 지속시키는 데에는 타인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독불장군식으로 자라온 저는 그걸 몰랐던 거죠.
제가 스크랩한 기사는 명동성당 박동호 신부님의 설교문입니다. 그 중에서 몇 줄 적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눈에 띄는 것을 근거로 전체를 짐작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짐작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습니다. … 내 판단과 관찰은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내가 관찰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고 의외의 구석에 결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내가 보고 느낀 것만을 근거로 세상 사물을 판단하고 있다면 이면에 있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못 본 그곳에 정말 소중하고 결정적인 가치가 숨어 있을 수도 있기에 늘 내 판단에는 여백을 남겨놓아야합니다."
╇ 이런 것들을 알고 난 뒤에도 워낙 그 버릇이 몸에 밴 지라 똑같은 실수를 매번 하는 걸 보면 아직은 '여백'의 내공이 부족한가봅니다. 누군가가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이나 사물 또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들에 이견을 제시하면 저는 항상 "왜?"라고 묻습니다. 이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보다는 제 생각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 고집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부터는 따지는 듯한 "왜?"가 아니라 "어떤면이 그렇니?" 내지는 "그렇구나, 그런 생각이 있을 수도 있구나"라며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줄 아는 시각을 배우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