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를 읽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추론구조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이 책은 그리 깊이있는 편은 아니다. 주로 여러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수행한 실험들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몇 가지 가설이랄까, 일반화를 시도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물론 재미는 있다. ^^ 가령, 동양인은 본질을 보고 서양인은 형식을 본다거나, 동양인은 타협을 추구하고 서양인은 규명을 요구한다는 등의 극단적 주장들이 있는데 어찌 재미가 없을쏘냐.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동양인은 슬픔 와중에 기쁨이 있고 기쁨 와중에 슬픔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이었다. 책은 이 이야기를 '새옹지마'의 교훈과 연계하여 말한다. 지금의 횡재가 언제 악재가 될지, 지금의 고통이 언제 축복이 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새옹지마'의 초인적 덤덤함은 동양인의 '순환론'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서양인과 일체의 접촉없는 동양적;;;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그런가' 할 뿐이다. 그리고 사실, 서양인에게라고 '삶이란 돌고 도는 것, 맨 몸으로 왔다가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식의 덤덤한 관조가 없겠는가? 없다기보다 알더라도 추구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요, 오히려 그 순환의 동그라미를 응차응차 일직선으로 펴는 것이 진정한 인간 삶의 승리라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방향성이 있다고 설명함이 옳지 않겠나 싶다.

좌우간, 인생은 돌고 돌며(이 돌고 돈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적 개념은 아니다), 높다란 기쁨은 불안한 슬픔이고 지극한 슬픔은 우아한 기쁨이라는 사실을 적은 책장 앞에서 읽기를 멈추었다.

실로 그렇다. 산다는 것은 그렇다. 어디 산다는 것만 그러하던가? 비즈니스도, 인간관계도, 일도, 사랑도 (아아 상투적이군) 모두 그러하다. 지극한 것들은 통하며, 지극하게 간 것은 최초로 돌아온다. 이 사실을 이토록 담담하게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서른살인 나는 스무살의 내가 부럽지 않다. 이 사실을 몰랐던 - 혹은 알지만 인정할 수 없었던 - 스무살에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변화라는 것이 어째서 인생의 금과옥조가 될 수 있으리오, 라고 눈을 흘겼다. 쭉쭉 나아가야 했으니까.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내 우울과 무력감이 하등의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벗어나지를 못했었다.

지금은? 지금은 언제나 하이퍼다 -_-;;; (아닌가...) 나는 변한다. 나도 변하고 주위도 변하고 비즈니스도 변하고 인생도 변한다. 기쁘면서 동시에 슬프고, 슬프면서 동시에 희망적이고, 바쁘면서 지루하고, 한가하면서 치열하다. 돌고 돌며, 동시에 여러가지이고, 병행하는 모순들을 양 팔에 힘차게 안고 끌고 간다. 그러니까 그리 기분나쁠 일도 없다. 반나절만 웅크리고 기다리면 희망의 순서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아, 나이드는 것이 좋을 때는 이런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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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4-23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하지 않는 건 스탈라님의 글솜씨 입니다 ! 제가 스탈라님을 첨 알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죽~ ^^ (부럽습니당)

zooey 2004-04-2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돌고돌고. 우리는 계속해서 스텝을 밟을 수밖에 없는 처지. 있는 힘을 다해 나아갈 수밖에요. ^^ (sunnyside님 말에 동감)

starla 2004-04-2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오랜만에 쓴 페이퍼에 영광스런 두 분의 코멘트입니다. -_-;;;

to sunnyside / 그때부터 지금까지 -> 요게 꽤 됐습니다 그려... 헐헐...
to zooey / 아앗, 저의 favorite haruki 역시 <댄스 댄스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