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늦게까지 자지 않을 때 보게 되는 것이 OCN에서 해주고 있는 '섹스 & 시티 시즌 4'이다. '과학수사대 CSI'나 '특수수사대 SVU'에 비하면 그리 좋아하는 시리즈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고 있다.

볼 때마다 4명의 주인공 중 누구에게 가장 공감이 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매 회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르므로 회마다 공감가는 인물이 달라지기도 한다. 요즘은 이 시리즈물을 본 주위의 여성들에게 이 주제로 투표라도 시켜보고 싶다. 우리나라에선 누가 가장 공감가는 인물일까? 캐리? 미란다? 아니 샬롯인가? (사만다일 리는 없겠지 설마 -_-; )

이 드라마에 대한 50%의 공감은 가령 이런 에피소드에서 비롯된다. 한밤중에 무심코 냉장고의 케잌을 꺼내 맨손으로 파먹다가, 자신의 행동에 흠칫 놀라 폭력적으로 케잌을 쓰레기통에 쳐넣고, 혹시라도 자신이 그걸 꺼내어서 먹을까봐(설마인가? 진짜 설마인가?) 그 위에 기름을 엉망진창으로 뿌려버리는 미란다의 에피소드.

쫙 빼입고 거리를 지나는데, 저 앞 카페에 앉아있는 전 남자친구를 보았을 때, 허둥지둥 뒤돌아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반경 10미터 내의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바보처럼 전 남자친구에게 예쁘장한 인사를 던져야 하는 캐리의 에피소드.

또는 자신과 지금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서 결혼을 하지 않으면, 평생 자신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겠다는 남자친구의 일부일처제에 대한 반협박 앞에 이별을 결심하는 캐리의 또 다른 에피소드 (혹은 그런 상황에 "앞으로 고장난 변기를 뚫어줄 사람이 없구나"를 슬퍼하는 솔직한 심정).

또한 섹스만 밝히던 사만다가 어느날 진짜 '선수'를 만났는데, 어처구니없이 그에게 사랑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껴버려 머리털을 쥐어뜯고 자신의 유치함을 책망하는 에피소드(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사랑해'라고 먼저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

마지막으로 아이를 갖기 싫다는 남편과 이혼한 후 차마 티파니 다이아먼드 반지를 처분하지 못하고 전남편이 주던 명예가 껌처럼 들러붙은 그 반지를 혼자 집에 있을 때에만 끼고 돌아다니는 샬롯의 에피소드.

이 드라마에 대한 50%의 혐오는 그런가하면 이런 에피소드에서 온다.

성공적인 변호사 커리어를 이어가자면 상식적으로 자신의 육체적 매력에 대해서 갈고 닦을 시간이 없어야 마땅한 미란다가 한번도 그런 고민에 시달리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백수-나 다름없는- 친구들과 맨날 점심먹고 쇼핑하고 나이트라이프를 즐길 시간이 있는 모습.

사만다와 동침한 수많은 멋진 남성들은 아무도 뒤에서 사만다를 욕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것이 사만다의 커리어에 장애가 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

보그지로부터 단어당 4.5달러를 받는다는 캐리의 칼럼은 죄다 나이트클럽과 마놀로 블라닉 샵과 옐로우캡과 샐러드를 파는 가게에서 얻은 '순간적인' 영감에 의해 마법의 노트북을 통해 흘러나오듯 씌어지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이 드라마는 꽤 재미있다는 얘기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50%는 미란다에, 30%는 캐리에, 20%는 사만다에 자신을 투사하며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샬롯은 0%라는 건 뭐 다들 알겠지 -_-;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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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2003-12-02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괜한 물음 때문에 약 5분간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저로 말하자면, 이상은 사만다에 있고, 현실은 대략 캐리 수준이며 실제로는 확실히 미란다 같은.. 말하고 나니 명남 씨와 같은 수치가 되나(;) 샬럿은 내 검지 끝에 가 있는 인물(무슨 뜻인지는 알아서...-_-;;). 어떤 인물이 되고 싶냐고 한다면 90%의 사만다와 10%의 샬럿. 가장 공감하기 싫은 인물은 역시 캐리.

도넛 2003-12-02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치 캔을 딸 때마다 ''결혼''을 고려해 보는 저로서는 역시 "앞으로 고장난 변기를 뚫어줄 사람이 없구나"를 슬퍼하는 캐리의 에피소드류가 가장 공감이 가지만서도, 아무튼 더.페이퍼 님의 답변은 대략 충격 ;;; Y 선배도 더.페이퍼 님의 이상을 알고 계실지 ;;; (헤헤, 역시 나도 이상형은 사만다!)

digitalwave 2003-12-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만다에 공감가진 않겠지라고 하셨지만 저도 생각해보면 가장 정상적인(?) 혹은 가장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 적은 인물은 역시 사만다네요. 현실적으로 가장 비슷한 일반적인 인물형은 미란다일 것 같구요... 싫은 인물은 으외로 캐리입니다. -.-;;; 뭐 샬롯같은 친구는 있으면 의외로 재밌을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