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 황석영 중단편전집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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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거대한 봉우리-그것도 손꼽히는 큰 봉우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황석영입니다. 황석영은 사실, 문학적으로는 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사상계에서 황석영의 데뷔작 [입석 부근]을 읽었습니다. 그때 황석영은 고등학생이었는데, 고등학생이 그 정도 수준의 글을 쓴다는 것은 ‘천재’가 아닌 다음에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사상계 편집부 쪽에서도, 당선작의 작가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두고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누가 대필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죠. 물론, 이런 오해는 모두 풀려서 심사위원이나 사상계 편집부 모두 하나같이 고등학생의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놀랍다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그런 황석영이 발표하는 소설은 하나같이 문제작들이고, 하나같이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데, 특히 그의 단편들은 정말 보석처럼 반짝거립니다. 짧고 힘있는 문장, 군더더기 없는 수식,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진행 등 최고의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죠.

일찍부터 사회 의식에 눈을 뜬 황석영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전전하면서 자신이 직접 몸으로 부닥치며 세상을 이해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문학의 놀라운 성과인 [객지]가 탄생합니다.

[객지] 이전의 단편들도 하나같이 뛰어났지만, [객지]는 시대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작가의 실천 노력이 담겨 있는 사회성 짙은 작품입니다. 전태일 선배-열사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는 전태일 선배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가 산화한 것이 70년이고, 그의 죽음으로 노동 문제가 물 위로 급격하게 떠오르고, 이른바 지식인과 학생들의 조직적, 의식적 노력이 노동 현장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바로 그때, [객지]는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의 투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노동 계급이 꿈틀거린다는 것을 이미 본능적으로 느낀 황석영은 자신이 써야 할 작품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시대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쓴 작품이 바로 [객지]였습니다.

이 놀라운 작품은, 해방 전과 해방 후, 이른바 카프 문학이나 좌파 문인들이 그리려고 했던 ‘노동자의 자생적 투쟁’의 전범과 같습니다. 이데올로기를 내재한 목적의식적인 작품들이 대체로 경직되고 일정한 틀을 갖는다면, [객지]는 ‘노동자의 자생적 투쟁’을 자연스럽게 필연으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이 작가의 의식적 노력에 의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만,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작가가 얼마나 잘 형상화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하여간, 황석영은 우리 시대의 보물입니다. 황석영의 작품이 있기에 우리 문학이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저는 분명하게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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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
막심 고리끼 지음 / 이론과실천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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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고리끼. 저에게는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을 표시하고 싶은 몇 명의 인물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막심 고리끼입니다.

고리끼의 [어머니]는 이미 세계적인 걸작이고, 베르톨드 브레히트가 연극으로도 만들어 더욱 유명해진 작품입니다만, [어머니] 외에도 고리끼의 자전 삼부작은 참으로 눈부신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자전 소설일 뿐 아니라, 러시아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은 진정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인 고리끼의 자전은 실제의 삶이 소설보다 더 극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성장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한 사람의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가난과 무지에서 어떻게 눈부시게 벗어나는가를 눈물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심 고리끼는 현대 러시아의 혁명 속에서 ‘노동 계급’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써, 노동자를 의식화하고 노동자를 결집하게 만드는 역할로써 노동 계급의 문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계급 투쟁’의 이론서가 아니라, 미학적 관점에서 ‘문학의 아름다움’을 통해, 언어와 계급적 의식을 통해 노동자를 깨우치고 무지에서 눈뜨게 하고 계급 모순을 자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노동 계급’이니 ‘혁명’이나 하는 단어들을 헌신짝 보듯 하지만, 바로 그 모순은 여전히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리끼의 문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올바른 인간형, 진화하는 인간형,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사회에 관한 고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고리끼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고스란히 살아나야 할 ‘진실한 인간’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노신 선생님처럼 창문도, 문도 없는 쇠감방 속에서 질식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인 것이죠.

그들을 깨워야 할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그래서 그들이 두드리는 소리는 아주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많은 고리끼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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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세트 - 전10권 - 개정판 홍명희의 임꺽정 1
홍명희 지음, 박재동 그림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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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3대 천재 가운데서도 으뜸이었던 홍벽초.

그가 쓴 ‘임꺽정’은 글로 씌여진 조선 문학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합니다. 날고 긴다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었지만, 홍벽초의 ‘임꺽정’을 능가하는 작품이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홍벽초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처음 ‘임꺽정’이 나왔을 때, 불문곡직하고 샀던 초판본이 사진 아래쪽에 있는 것이고, 그후 시간이 좀 지나서 내용이 더 보완된 개정판이 나온 것을 또 사서 읽었습니다. 임꺽정은 장편 소설이지만 벌써 여러 번 읽었고, 읽을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남한에서는 홍벽초가 분단되면서 북한으로 올라가 부수상까지 하는 통에 ‘빨갱이’로 매도를 해서 그의 작품들이 하나도 출판되지 못했는데, 그나마 80년대 말에서야-그것도 처음에는 불법으로-출판을 강행해서 여러 복잡다다한 사건이 얽히고 시간이 지나서 북한으로 납북되었거나 스스로 올라간 대부분의 작가들이 ‘해금’되었습니다.

흑백논리이긴 합니다만, 해방 후에 북한으로 올라간 작가들과 이곳 남한에 남은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김학철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이런 너절한 글도 작품이라고 쓰고 자빠졌다’는 것이 남한의 작가들이고, 북한의 작가들은 작가들대로 ‘영명하신 수령님의 령도’어쩌구하는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글을 써댄 것을 보면 그게 다 시대의 아픔이라 하겠습니다.

그래도, 남한 작가들의 ‘너절한’ 글보다는 김학철 선생이라든가, 박태원, 이기영, 김사량, 이태준, 한설야 등과 같은 쟁쟁한 작가들이 쓴 작품이 더 빛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뒤늦게 남한에서도 황석영, 조정래, 현기영, 송기숙, 신경림, 신동엽 등 빛나는 작가들이 등장해서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여하간에, 우리 말과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책장에 꽂혀서 늘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임꺽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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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1 - 개정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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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세계 최고의 지성인으로 노엄 촘스키가 뽑혔습니다. 2위는 움베르토 에코였는데, 점수 차이가 무려 두 배나 앞섰다는군요. 역시 노엄 촘스키의 이론과 실천이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움베르토 에코를 만난 것은, 90년대 저의 ‘지적 생활’에 일대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80년대에 마르크스를 만난 것에 버금갈 정도로 대단히 신선한 충격이었죠. 처음 읽은 책이 바로 이 [푸코의 추]였습니다. 위 사진에서 아래쪽에 있는 것이 초판본, 위에 있는 것이 개정본입니다.

그 뒤로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이라면 무조건 구입해서 다 읽었습니다. 아, [바우돌리노]는 예외입니다. 이건 읽다가 중간에서 멈춘 상태입니다. 도저히 계속 읽기가 안되는군요.

하여간, 움베르토 에코의 그 박학다식-박학다식일 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세계관까지도 갖춘-의 미로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느라 한동안 정신을 못차린 것이 사실입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서양의 언더그라운드 히스토리를 몽땅 그러모아 놓은, 말하자면 잡탕 섞어찌개같은 것이긴 한데, 그것을 요리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비교를 시작으로 온갖 비밀과 암호와 신비가 뒤섞인 역사의 뒷면을 이리저리 꿰맞춰 이야기를 만드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을 가르치는 교수여서 특히나 이런 말장난에 도가 튼 것 같습니다.

[푸코의 추]와 [장미의 이름]으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멋쟁이 교수님은 서양에서도 군계일학의 존재인 듯 합니다. 그를 흉내낸 많은 아류작들이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옵니다만, 읽어보면 전부 ‘조족지혈’입니다. 감히 움베르토 에코를 팔아서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애처로움이 묻어납니다.

움베르토 에코를 뛰어 넘는 작가가 나오는 날이 오기를 바라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을 듯 합니다. 하여간, 책을 좀 읽는다 싶은 사람은 [푸코의 진자]를 필독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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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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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에 저녁마다 잠자기 전에 읽어서 아직도 기억에 선한 책입니다.

예전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일본어 중역에, 축약본으로 나와 있어서 읽고 나서 내용이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던 책이었습니다. 이렇게 번듯하게 완역본으로 나온 것을 읽고나니 그 대하 드라마가 감동의 물결로 마음을 적십니다. ^^

에드몽 당테스의 기이한 삶의 궤적은, 역시 당시 프랑스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권력이 출현한 이래, 민중은 늘 권력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게 되고,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을 응징한다는 이야기는 민중들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그런 이야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고 말입니다. 소설에서 많은 우연이 등장하는 것이 좀 극적 긴장을 약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권선징악, 힘없는 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안성맞춤입니다.

또한, 평범한 항해사였던 개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고난의 과정을 통해 완벽한 한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아주 특별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결국, 외부의 환경이 개인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할 때, 개인은 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원작 소설이 워낙 훌륭하다보니 영화로도 몇 번씩 만들어졌는데, 사실 원작보다 더 나은 영화나 연극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줄거리지만, 실제 읽으면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대하 드라마, 소설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 광고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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