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평전
윌리엄 J. 듀이커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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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호치민 평전]을 다 읽었습니다. 무려 4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게으름 때문이긴 하지만, 1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어서 진도가 더디게 나갔습니다.

이 평전을 쓴 사람은 베트남의 적이었던 미국인입니다. 그것도 베트남의 미국대사관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죠. 그는 베트남이 미국을 상대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싸우는 원인이 무엇일까 찾다가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후 거의 평새을 바쳐서 호치민과 관련된 자료를 찾았고, 그 결과물이 [호치민 평전]으로 출판된 것입니다.

이 책은 우선, 방대한 자료와 팩트에 입각한 기술이 돋보입니다. 호치민의 행적을 좇아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싱가폴 등 거의 전세계를 다 돌아다니면서 호치민과 관련된 사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냉정한 시각으로 베트남 공산당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호치민이 베트남 최초로 공산당 조직을 건설하고 소비에트와 정치적 관계를 지속하는 과정, 호치민이 중국과 소비에트를 오가며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평전의 덕목이랄수 있는 ‘객관적 시각’에서는 상당히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미국인의 시각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베트남 공산당 조직과 호치민과 그의 동지들이 독립을 위해 투쟁한 역사를 상당히 많이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거의 기술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베트남을 침공한 통킹만 사건에 대해서도 왜곡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미국과의 전쟁-에서 베트남인은 군인, 민간이 포함해서 1백만명이 죽었고 약 5백만명이 다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은 5만 5천명이 죽었습니다. 한국군도 5만명 가까이 죽었죠. 베트남은 소비에트와 중국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치를 수 있었고 마침내 조국을 통일했습니다.

호치민은 지금도 베트남 독립과 통일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인물이고, 그의 헌신, 겸손, 검소함 등은 베트남 지도자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지금 도이모이(혁신, 개혁) 과정에 있고, 다른 권력들처럼 부패 현상이 나타나지만, 그래도 상당히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는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베트남에 용병으로 참가한 것에 대한 용서와 사죄를 구하는 행사가 있었고, 이런 행동이 베트남 국민들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봅니다. 가해자가 먼저 솔직하게 반성하고 용서를 구할 때, 진정한 화해가 있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국가를 외세의 침략에서 구하고 독립과 통일을 이룬 호치민은 충분히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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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0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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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움베르토 에코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의외로 오래되었습니다.

대부분 [열린책들]에서 나온 [장미의 이름] 이후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전에

전 외무부장관이었던 이동진 씨가 번역한 [장미의 이름]이 있었고, 기호학자로써 그의 저작 가운데 일부가

국내에 소개되었죠.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에코 교수의 책은 처음에 이윤기 씨가 번역을 한 것 때문에 좀 더 유명세를 탔다고 봅니다.

번역도 역시 수준급이었고, 그래서 문장도 잘 읽혔고요.

저 역시 에코 교수와 첫 만남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장미의 이름] 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나서 내내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1980년대의 지적 스승이 헤겔, 마르크스를 비롯한 변증법, 사적 유물론이었다면

1990년대의 지적 스승은 움베르토 에코였습니다.

[장미의 이름] 이후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은 무조건(!) 구입을 했고 다 읽었습니다.

단, 최근에 나온 [바우돌리노]는 아직 완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도했을 때 느낌이 좀 지루했기 때문에 보류한 상태입니다.

[장미의 이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푸코의 진자]가 역시 백미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의 촌철살인같은 짧은 글들도 아주 좋구요.

움베르토 에코 교수님 같은 분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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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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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리영희 선생을 잘 알고 있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리영희 선생님을 잘 아는 분은 80년대를 청년으로 보냈거나, 진보적인 영역에 관심이 많은 분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고,

리영희 선생님을 잘 모르는 분은 70년대 이후에 출생했거나, 진보적인 사회 활동에 관심이 적은 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조선시대의 양반, 또는 선비 가운데 유명한 인물을 기억하는 기준은 그의 저작물 때문입니다.

그가 쓴 글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이퇴계, 이율곡, 기고봉, 정송강, 정다산 등이 모두 그러한 인물들입니다.

결국, 지식인은 그가 쓴 글로 평가를 받게 된다는 건데, 물론, 글은 곧 자기 세계관의 반영이자 실천의 이론적 토대인 만큼

그들이 말한 논리와 행동(실천)이 다르다면 그에 대한 비판도 혹독하게 받아야 했겠죠.

‘언행일치’가 지식인의 가장 큰 덕목이었던만큼, 글을 쓴다는 것은 엄격한 도덕률을 스스로에게 부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글을 써서 감옥에 몇 번씩 들어가야 했다면, 그 지식인은 당대의 역사를 가장 비판적이고 진보적으로 기록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저작들을 읽으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지성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그 답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지식인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지성인은 극히 드물죠.

지식인과 지성인의 개념 차이는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내리는 정의는 좀 다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대체적으로 ‘자신의 전문 학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의 학문적 성과를 이룬 사람’을 지식인으로 보고, 그러한 바탕을 가지고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지식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흔하고 널린 게 석사, 박사, 대학교수들입니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너도 나도 전문가연 하면서 언론을 통해 글을 쓰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작 군부 쿠데타나 군사 독재 시절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식인들은 그들의 속성-부르주아, 또는 쁘띠 브르주아, 룸펜-상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갖기가 매우 쉽습니다.

권력에는 한 없이 약하고, 돈(물질)과 명예 따위에 쉽게 현혹되며 자신의 관심분야 외에는 무책임한 태도를 갖기 쉽지요.

진정한 지성인의 표상이 된 리영희 선생은 자신을 중도 좌파라고 했습니다.

즉,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진보적인 역사에 기여하고자 했던 것이죠.

세월이 흘러, 리영희 선생이 쓴 글들이 오늘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 빛은 바래지 않을 것입니다.

70년대부터 쓴 글들이 오늘날에도 상당히 많이 유효하며,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역사의 진실에 눈 뜨는 경험은 소경이 눈을 뜨는 것과 같은 말로 표헌하기 힘든 감동과 환희입니다.

리영희 선생의 글을 통해 우리들은 그런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80년대를 살아왔습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도 리영희 선생님의 삶과 저작은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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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 개정판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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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철씨가 쓴 ‘아홉살 인생’을 읽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미 저 멀리 아득한 추억의 숲으로 사라진 나의 아홉살 때 기억을 되살렸다. 나는 아홉살이 되어 그 책을 읽었고 마음에 잔잔한 슬픔이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아홉살은 슬픈 나이일까.

아니다. 아홉살이 슬퍼서가 아니라 힘겨운 나날을 살아온 우리의 아홉살은 모두 슬펐을 것이며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민이는 – 주인공의 이름이 백여민이라는 사실이 더욱 나의 이야기같기도 했지만 – 건강하고 밝게 자란다. 나의 아홉살은 어떠했던가. 수줍음과 부끄러움으로 맞은 2학년 시절, 내 짝은 여자아이였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앉은 여자아이. 그 여자아이의 이름을 나는 지금도 잊지않고 있다. 아주 가끔씩 졸업앨범을 펼치면 거기에는 그 시절의 나와 그 아이가 들어있다. 비록 반은 달랐지만 그 아이는 아주 예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나는 뭐가 못마땅한지 잔뜩 인상을 쓴 얼굴로 들어있다. 여민이가 장우림과 사귀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내 짝과 사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수줍을을 너무탔고 열등감이 심했다. 나는 자라면서 서른이 되어서도 부끄러움과 수줍음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를 못했다. 나의 국민학교 2학년 짝이었던 여자아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우습지 않은가. 이미 많은 것이 변한 세월을 살면서 이제 그런 과거의 추억을 들쳐내어 아파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때는 꿈이 있었다. 나는 조금도 허황된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가장 큰 꿈이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선생님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홉살 인생’에서도 나오지만 바로 그 선생님때문이었다. 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을 얻지 못했다. 왜 우리의 스승들은 제자들 보기를 돌이나 돈으로 생각했을까.

내가 성적이 나쁘고 공부를 점점 못하게 된 이유를 겨우 선생님을 잘못 만났다는 핑계로 대신할려고 그러는 것이나 아닐까. 어쨌거나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신기종이 처럼 발이 까마귀 발처럼 새까매도, 공부를 지지리 못해도, 가난때문에 육성회비를 제 때에 못내도 매를 들거나 욕을 하거나 인간적으로 무시하거나 경멸하거나 부자집 아이들과 차별하지 않는 그런 선생님이고 싶었고 그런 선생님을 정말이지 만나고 싶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공납금이 밀렸으니 집에 가서 가지고 오라며 나를 되돌려 보냈다.

나는 집으로 향하면서 매우 우울했거나 어쩌면 조금은 울었을 것이다. 무엇이 나를 우울하게 했는지, 나를 울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홉살의 나이에 무엇을 알겠는가. 하지만 나는 열 네 살이 되어 같은 경험을 했다. 비록 학교는 아니었지만 가난때문에 울어야 했던 그 기억들……

아홉살 인생은 나를 아홉살에만 묶어두지는 않았다. 산꼭대기 동네, 가난한 이웃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삶들은 지금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음을 본다. 그리고 내가 세 번의 아홉살을 겪는 동안 그런 막연한 슬픔의 정체를 알았다는 것이 시간의 변화라면 변화일까.

위기철씨의 ‘아홉살 인생’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실은 나도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조금 시작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은 중단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도 나의 어릴적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나의 살아온 삶을 한번쯤은 뒤돌아 보고싶은 생각에=서 이다.

위기철씨는 ‘아홉살 인생’을 아마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나 ‘어린왕자’ 등을 염두에 두고 쓴 듯한 생각이 든다. 특히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까. 그리고 이건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문체가 마치 번역된 외국 소설을 읽는 듯 했다. 이것도 내가 뭘 모르기 때문일까. 과장된 표현과 말투들에서 그런 것을 느꼈는데, 이것은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아주 조금 위기철씨를 알고 또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야기 작가로 나선 위기철씨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어디있을까.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아직은 먹는 것보다 굶는 것이 더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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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업튼 싱클레어 지음, 채광석 옮김 / 페이퍼로드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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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입니다만, 그의 작품은 미국내에서 대단히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정글]은 미국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인데, 시카고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수준높게 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소설로 인해 지금의 ‘식품의약품안정청(FDA)’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벌써 15년 전후의 일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 책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번역한 사람이 ‘채광석’ 씨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책의 일부분을 의도적으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정글]의 주인공인 노동자가 나중에 사회주의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서였는데, 얼마 전에 다시 나온 완역본에는 그 내용이 다 들어 있다고 하는군요.

완역본은 사 놓고 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이제는 낡은 이데올로기라고 말하지만–는 반드시 사라져야 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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