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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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물을 믿지 마
김이정 지음 / 강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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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물을 믿지 마

김이정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3, 4년 전쯤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김이정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때 만난 작가들 가운데 박정애, 권지예, 정길연, 이경혜, 해이수, 이지 작가들이 있었고, 나는 운 좋게 그곳에서 얼마간 머무를 수 있었다. 작가를 만났다고 해서 그 작가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개의 작가들은 진짜 자기 모습은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자기 모습은 드러내되, 자기 창작의 내면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에게 내밀한 지하공간이며, 무수히 많은 창조의 단어들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기에 섣불리 보여줄 수도, 드러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세 끼의 밥을 맛있게 먹고, 저녁 때는 가끔 내가 만든 간식들을 나눠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밥 먹는 시간이나, 가끔 산책하는 시간 외에는 모두 창작실에서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아마 스님의 하안거, 동안거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품들은 2014년 이후 1년에 한 편 정도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다르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인도, 포르투칼, 스페인, 베트남, 영국에서 떠나온 한국을 생각하고, '나'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한다.
인물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는 동기는 무언가에 떠밀리듯 한 비자발적이고 충동적인 행위 때문인데, 이때 이런 비자발성은 '나'의 내면에서 발생한 충격 또는 갈등이 원인이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인들에 의한 학살 사건을 조명한 작품 외에는 모두 '나'의 충동적 여행이고, '나'는 여행을 통해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의지와 함께, 현실을 객관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무의식적 행동을 한다.

퍽 오랜만에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베트남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이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범죄라면, '나'가 외국에서 겪는 에피소드는 바깥에서 나를 보는 객관의 시선이다. '나'는 늘 온전하지 않은 삶으로 고통스러운 인물이다. '나'는 사업이 파산한 남편과 이혼하거나, 위암에 걸리는 등 자기 의지와 상관 없는 고통을 겪는다. 이때 '나'가 할 수 있는 건 현실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 뿐이다. 그때 현실(한국)은 더욱 엉망진창이 되거나, 알아서 수습이 되거나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운명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나'는 그저 폭포처럼 쏟아지는 운명을 감당할 뿐이다.

프리페이드 라이프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떠밀리듯 한국을 떠나 인도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 큰 이유라고 말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존재로 버티고 있었다. 마치 좀비처럼.
'나'는 한국에서도, 인도에서도 음식을 먹지 않는다. 마치 좀비처럼. 그가 유일하게 음식에 관해 언급한 것은 인도의 중국음식점에서 주문한 '한국 수제비'이야기였다. 그것도 음식을 먹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에게 음식은 절실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에게 음식보다 더 절실한 것은 존재에 대한 확신이다. 그는 집안의 빚 때문에 이혼을 했고, 가족을 부양하면서 빚을 갚아야 했던 오랜 시간이 있었다. 그는 빚에 짓눌리고, 찌든 삶을 살아가느라 자기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버스의 룸미러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기겁한 것이다. 그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나'이면서 '나'는 아니다. '나'는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글을 쓰지만, 그는 왼손을 쓴다. '나'는 오른손잡이지만 거울 속의 '그'는 왼손잡이다.
'나'는 빚에 짓눌러 질식해 가고 있지만, 거울 속의 '그'는 빚을 지지 않았으면서도 서서히 말라죽어 가고 있다. '나'는 오랜 동안 빚을 갚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이미 오래 전에 끝났음에도 이승을 떠나지 못한 것이 빚으로 남아,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도의 갠지스강가 화장터를 오가며, 화장터에서 불살라 잿더미로 사라지는 육신을 보며,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히 바라보며, 마치 자기 자신이 그렇게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 갠지강에 뿌려지는 듯한 환상 체험을 하는 듯 보인다. 어쩌면 '나'는 정말 그렇게 고요히, 가볍게 장작 위에 놓인 시신이 되어 화염 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에게 인도는 '저승'이다. 그는 이승(서울)을 떠나 비현실의 세계, 실재하지 않는 세계, 빚독촉과 고통스러운 가족의 인연과 비루한 삶이 있던 서울을 떠나 저승 같은 인도로 온 것이다. 저승에서는 의식주가 중요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도 하찮아진다. '나'는 저승에서 지난 삶을 돌아본다. 그 삶은 과연 살만했던 삶이었을까. 삶의 의미는 있는 걸까, 비루와 오욕으로 더럽혀진 삶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닐까. 한때 미워했던 사람들 마져도, 나의 탐욕과 욕망과 이기의 투사는 아니었을까.
'나'는 이승(한국)에서 견딜 수 없어 자발적으로 저승(인도)으로 온 사람이다.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돌아갈 의무도, 책임도 없다. 하지만 이승(한국)에는 여전히 가족들이 있고, 그가 돌봐야 할 식구들이 절망과 슬픔의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혼자 이승(한국)을 떠난 것조차 죄스럽기만 하다. '나'는 망자들의 영혼이 건너는 갠지스강 위에서 '자신을 잃은 삶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한지도 몰라. 어떻게든 나를 회복하기 위해 애쓸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어쩌면 살아서 이승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미 연꽃
호아, 서 하사, 광희. 1968년, 1998년. 2010년. 베트남 하미 마을에서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집단 학살 사건을 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 한국군은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받았다. 이것은 마치 '한국전쟁'으로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에서 극적으로 부활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군사독재정권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한국군대를 베트남에 파병했고, 병사들의 죽음과 돈을 맞바꿨다.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의 자식들이었던 '한국군인'들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동료를 위해 싸웠고, 동료의 죽음을 보며 괴물이 되어갔다.
베트남 민중은 죄 없이 학살당했으며, 이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수많은 주민학살과 똑같은 내용과 의미를 갖는다. '한국군'은 '한국전쟁' 때 자기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고, 베트남에서도 주민들을 '빨갱이'라고 덮어씌워 학살했다. 
학살을 명령한 주범들은 영웅이 되어 돌아왔고, 그들은 거들먹 거렸으며, 훈장을 받았고, 부자가 되었으며, 권력을 누렸다. 병사들 가운데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자랑스럽게 떠드는 사람이 있었고, 서 하사처럼 평생 정신병원에 갇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삶을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
오로지 제국주의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으킨 사악한 전쟁에서 총알받이로 나갔던 한국군은 미군보다 더 잔혹한 살인귀가 되어 베트남 주민들을 학살한 것이다. 이것은 씻을 수 없는 전쟁범죄이며,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를 지금도 비난하듯,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베트남 국민에게 우리는 비난당해도 마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가해자의 시각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가능한 객관의 시선으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작품이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여전히 베트남 전쟁에서의 (일부) 한국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가해자로서 저지른 범죄에 관해 가르치지 않고 있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에서, 우리는 제국주의 일본의 강점기에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관해서는 꾸준히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학살 범죄에 관해서는 가능한 침묵하려 한다. 이것은 명백히 범죄를 은폐하는 또 다른 범죄다. 독일처럼 기회가 될 때마다 대통령과 총리가 공식 사죄를 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역사적 처벌을 함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죄 없는 사람들의 도시
'나'는 엄마의 장례와 삼우재를 지내고 도망치듯 리스본으로 온다. 호스텔에서 머물며 리스본의 거리를 배회하면서 '나'는 엄마가 죽어가는 과정을 돌아본다. 갑작스러운 죽음. 죄 없는 사람의 불행. 그것은 리스본에 닥쳤던 18세기 지진과 해일로 리스본에 살던 사람 약 25%가 죽은 사건과 중첩하면서, 삶과 죽음에 관해 내면으로 침잠하는 '나'의 생각을 좇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최근 나에게 닥쳤던 두 가지 사건과 30년 전에 있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죽음'을 이해하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가 아닌, 다른 사람일 때만 그렇다. 죽음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나'의 엄마는 아직 젊은 나이에 급성 백혈병(혈액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한다. 엄마를 바라보는 '나'는 많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죽음을 느끼지는 않는다. 죽음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이 딜레마는 단순한 안타까움이나 슬픔을 넘어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엄마는 고통으로 죽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건강하게 살며, 먹고, 마시고, 웃고, 섹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 죄의식으로 남는 것이다.
'나'가 도망치듯 외국으로 떠나온 것은,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와, 자기 혐오를 달래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이다. 그리고 하필 포르투갈에 도착했고, 포르투갈의 18세기에 있었던 지진과 해일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때 죽은 사람들은 마침 휴일이었던 그 날, 신을 찬양하기 위해 성당에 모였고, 신의 공간이었던 성당이 붕괴하고 불이 나면서 비참하게 죽었다.
'나'의 엄마는 평생 육식을 하지 않았고, 바닥에 사는 작은 생물조차 죽이지 않으려 조심하며 살았지만,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괴로운 시간을 보낸 끝에 죽게 된다. 포르투갈 사람들도 선량한 시민들이었을테고, 모두들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병으로, 사고로 죽어간다.
'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앞으로도 영원히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조리한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던지는 것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 뿐이다.

믿지 마, 네 눈물은 누군가의 투신일지도 몰라
파산한 남자 이야기. 아내와도 위장 이혼하고-위장 이혼이라는 건 없다. 그냥 이혼을 했을 뿐-혼자 고시원을 떠돌며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당을 버는 남자는 오랜만에 집을 찾아오지만, 현관키가 바뀌어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한때 잘 나가던 사업가였으나 지금은 채권자들에게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으며,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은 남자다. 아내는 보험영업을 하며 먹고 살고, 아들은 아버지인 자신을 더 이상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친어머니처럼 생각했던 장모님도 파산 이후에는 딸의 눈치를 보는 것과 동시에, 사위에 대한 애정도 거두었다.
사내는 연락할 친구도, 도움을 받을 가까운 사람도 없다. 과거에 가까웠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돈을 보고 만났던 사람들이고, 사회와 현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냉정하고 삭막하다는 걸 사내는 깨닫는다.
사내는 배낭에 몇 가지 물건을 지니고 다닌다. 그것은 그의 삶을 끝내는 도구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사내가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파산 이후,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내는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약이 떨어져도 선뜻 약을 구입하지 못한다. 약보다 아내의 카드로 약값을 결재해야 하는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파산, 금치산자가 된 사내는 채권자에게 쫓기면서 정상의 삶을 살지 못한다. 그는 고시원의 관짝 같은 방에서 낮을 보내고, 야간 경비를 서며, 일당을 떼이고,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되어 간다. 가족들은 전화를 받지 않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문자로 묻고 답한다. 사내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는 이미 죽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퐁니
믿고 싶지 않겠지만, 베트남에서 벌어진 베트남-미국의 전쟁 때, 한국군은 미국의 괴뢰군으로, 여러 번의 학살을 저질렀다. 이 작품 역시 1968년 2월 12일, 퐁니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면이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들어오면서, 어린 탄이 한국군에게 초콜릿을 받아 먹은 것처럼, 한국의 어린이들은 미군에게 초콜릿을 받아 먹었다.
한국전쟁 때, 군대의 전투를 통한 군인의 사망이 아닌, 군대에 의한 주민 학살 사건만 해도 보도연맹, 거창 주민, 노근리 피난민, 경산 코발트탄광, 국민방위군, 고양 금정굴, 강화주민, 산청,함양주민, 남양주 주민, 함평 주민, 문경 주민, 죽산 주민, 나주 주민, 서울 홍제리 집단총살, 형무소 재소자 학살 사건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학살 사건이 있었다.
이런 학살 사건은 이념 전쟁이자 냉전의 대리 전쟁이었던 한국에서 벌어진 가장 끔찍하고 비극적 사건이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한을 안고 살아가는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어린이였거나 전쟁이 끝나서 태어난 청년들이 베트남에서 다시 이런 참혹한 학살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인류의 비극은 결코 멈춰지지 않을 거라는 암울한 예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생명의 존엄성을 말해도,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무차별 학살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고, 지금도 지구의 몇몇 나라에서는 내전 또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예외없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한국)는 오랜 역사에서 늘 피해자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고조선 이후 지금까지 이웃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고도 말한다. 우리는 평균 몇 년에 한번씩 적의 침략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지금까지 끝가지 살아남았고,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베트남 전쟁에서만큼은 우리는 가해자였으며, 전쟁범죄에 앞장 선 나라였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에 의한 한국인 주민 학살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한국인끼리도 남북한 군인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이 많았다. 이때 남북한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노인, 여성, 어린이까지 무차별 학살했다.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노인, 여성, 어린이를 학살했다.
이념을 앞세워 자신들의 학살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는,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이같은 행위는 1980년 5월 18일 이후, 광주에서 똑같이 벌어졌다. 즉, 총을 든 악마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늘 우리 주변에 있다는 뜻이다.
베트남 학살 피해자 가운데 극히 일부가 살아남았고, 그들은 그날의 상황을 증언한다. 그때 학살에 참여했던 한국군들을 찾아내 전쟁범죄자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정의다.

노 파사란
갑자기 한국을 떠나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한 '나'는 바깥에도 나가지 않고 거의 호스텔 안에서 잠과 잠을 반복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겨우 바깥으로 나온 '나'는 거리를 걷다 우연히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게르니카'를 보게 된다. 그 거대한 그림을 보는 순간, '나'의 내면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나'는 짐을 꾸려 '게르니카'로 향한다.
무작정 도착한 게르니카에서의 첫 인상은 즐겁지 않았다. 비가 내리고, 아이들이 강아지를 강매하려 하고, 호스텔 주인은 신경질을 부리고, 호스텔 입구의 체크인 카드기계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것이 엉망인 상태로 시작한 게르니카였지만, 다음 날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나'는 시내를 걷다 우연히 호스텔 주인 여자를 발견하고, 그 여자가 웃는 모습을 보면서, 어제 마귀 같았던 여자와 같은 인물인지 놀란다. 그때 아이들이 폭죽놀이를 하고, 주인여자와 함께 있던 노인이 탁자 아래로 기어들어가면서 올리브오일 병이 깨지는 등 가벼운 사고가 벌어진다. 
'나'는 다시 거리를 걷다 배가 고파 들어간 식당에서 우연히 다시 호스텔 여주인을 만난다. 첫 인상을 나빴지만, 대화를 하면서 여주인은 치매인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호스텔을 하면서 병원 조무사로도 일을 하는 등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치매 어머니가 낮에 한 행동은 1937년 4월 26일, 게르니카에 있었던 폭격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 폭격으로 어머니의 가족 모두 사망했고, 오직 어머니 혼자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 후유증으로 어머니는 치매 이후 여덟 살의 그때 나이로 돌아갔고, 큰 소리만 들리면 폭격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1937년, 게르니카에 쏟아진 폭격은 독일 나찌의 비행기에서 떨어진 폭탄이었다. 당시 스페인 내전이 벌어졌고, 프랑코는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 좌파 세력과 내전을 시작한다. 그때 독일은 프랑코를 지원했고, 공화파는 소련의 지원을 받긴 하지만 화력에서 열세였고, 결국 프랑코에게 패한다.
왜 이곳에 왔느냐는 주인 여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는 사업에 실패하고 파산한 남편이 위장 이혼을 하고, 혼자 고시원을 떠돌다가 6개월이 지났을 때, 갑자기 사망한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무작정 떠난 외국, 스페인, 게르니카, 폭격, 고아가 된 주인여자의 어머니와 남편을 잃은 '나'. 게르니카에 떨어진 폭탄처럼, '나'에게도 삶을 공격하는 고통과 채무의 폭탄이 떨어지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오열한다.

압생트를 좋아하는 여자
'나'는 영국에 사는 친구를 찾아간다. 14년만의 만남.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이지만, 친구의 남편은 몇년 전 심장마비로 죽었고, 아들은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그녀와 얽힌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고, 가난했으며, 딸이 무려 일곱이나 되는 집안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랐다. '나'는 대학을 다니고, 교사가 되었지만, 친구는 대학 진학을 못했고, 어렵게 돈을 모아 영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두 사람의 운명은 갈렸지만, '나'는 결혼하고 남편의 사업이 파산한 이후 이혼을 당하고,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 잘 살고, 학교 선생으로 만족하며 살던 삶도 위암 판정을 받는 순간 부서져 내리는 걸 느낀다.
'나'는 위암 수술을 앞두고 영국에 있는 친구를 찾은 것이다. 두 사람은 과거의 추억과 기억에서 상처받은 시간과 숨겨두었던 슬픔을 꺼낸다. '나'는 친구에게 부채감과 죄의식을 갖고 있었고, 삶의 변곡점에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피카소가 그린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은 검은 머리에 붉은 목도리를 두른 여인이 녹색의 압생트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다. 진한 화장을 하고, 몸이 마른 여인은 왼쪽 손을 귀 근처에 대고 있는데, 마치 누군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들으려는 듯한 자세다. 오른손은 잔 위에 가볍게 다가갔다. 이 여인은 어쩌면 '창부'일 가능성이 높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피에르 오디넬이 치료용으로 만든 술인 압생트는 주류업자 페르노 리카르에게 넘어가서 대중에게 팔리게 되는데, 당시 프랑스 부르주아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이들과 함께 했던 고급창부(드 미 몽드)들이 특히 이 술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18세기 이후 유럽의 화가들 가운데 '압생트'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화가만 해도 피카소, 고흐, 드가, 마네, 로트렉 등 유명 작가들이 많다.

붉은 길
'그'를 찾아 인도에 온 '나'는 정작 그가 있는 '마이소르'에 가지 않고, '벵갈루루'의 한 숙소에 머문다. '나'는 산책을 나왔다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고, 낯선 길, 붉은 황토길을 걸으며 불안한 마음으로 '그'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이혼을 했고, 남편이었던 남자는 남미로 떠났다. 영어학원에서 처음 본 '그'와 가까워지지만 어느날 '그'는 인도 '마이소르'로 떠난다고 했다.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떠난 인도행이지만, 막상 '그'가 살고 있는 도시로는 가지 못하고, 2시간 거리의 벵갈루루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나'는 현실에서도 길을 잃었고, 삶의 길에서도 길을 잃은 상태다. 그를 만나야 하는 건지, 만나서 어쩌자는 건지, 결혼 생활은 끝이 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낯선 길 위에서 초조한 모습으로 떨고 있는 것이 '나'의 모습이다.
인도에서 여성, 그것도 외국 여성 혼자 밤거리를 걷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얼마전에도 인도여성이 여러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결국 병원에서 죽은 사건도 일어났다. '나'는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제복을 입은 남성들에게 다가가 '스와미 아쉬람'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스스로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 극도의 긴장 속에서 여러 명의 남자들과 함께 차를 타고 어느 장소에 도착한다. '나'의 약간의 오해 끝에 경찰이 데려다 준 곳은 '스와미 아쉬람'이었다.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그'를 찾으려는 마음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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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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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첫번째 작품 '어느 시인의 죽음'을 읽으면서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SF 작품을 쓰는 작가인가?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에게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뻔하고 식상한 이야기인데, 이걸 소재로 쓰는 작가라면, SF문학의 트랜드를 잘 모르는 작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두번째 작품 '라하이나의 눈'을 읽으면서, SF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잘 '동기화'했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가난한 노동자는 자본가, 부르주아의 욕망에 깔려-여기서는 살이 쪄-죽는다는 풍자다. 그러고 보니 첫번째 작품에서도 주인공 용천은 가난하고 평범한 학생이고, 그는 돈을 받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때문에 외계인의 제물이 된다. 그렇게 제물로 선택되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제물로 바쳐지는 동안,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떵떵거리고 살아간다. 자신의 몸에 붙은 지방을 대신 운동하면서 빼주는 노동자들이 있는 것처럼.
세번째 작품 '기린의 심장'을 읽으면서 작가의 실력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음을 느꼈다. 경찰관 K가 소설가인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한편의 꿈과 같은 이야기면서, 거대한 환타지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러브 크래프트의 상상 세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네번째 작품 '마왕의 변'에서는 환타지와 무협,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와 스토리들이 뒤섞인 세계관이 등장한다. 마왕의 탄생과 그에 맞서는 용사, 탱커, 힐러 등은 명백히 게임 캐릭터들이고, 마왕의 전복적 태도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마왕은 스스로의 지위를 내려 놓고, 용사는 마왕이 된다. 이것은 아버지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면서 저주를 받는 '워크래프트'의 주인공 아서스가 떠오른다.
다섯번째 작품 '허물'을 읽으면서, 앞에서 읽었던 작품들은 그저 습작에 불과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뒤로 가면서 나오는 '하얀 바다', '경계', '연극의 시작', '25분' 모두에서 똑같이 느꼈으며, 이 작가가 이미 작가로 데뷔해 실력 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인터넷을 검색해도 '이성욱'이라는 작가(소설가)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이 작품집이 이성욱 작가의 데뷔작이라면, 심상치 않은 작가라고 생각했다.
작가에 관해 알 수 없는 이유는, 이 책을 출간한 '교유서가'에서 정식 출간한 책이 아닌, '가제본'을 보내주었기 때문이고, 이 가제본에는 작가에 관한 어떤 정보도 없었다. 작가에 관해 아무런 정보 없이 '블라인드' 독서를 한 것인데, 작품집 앞의 네 편과 뒤의 다섯 편은 장르가 확연히 다르게 보인다. 작가에게는 모든 작품이 자신의 상상에서 나오기 때문에 구분할 이유가 없지만, 한 권의 작품집에서 작품의 장르와 세계관이 이렇게 확실하게 구분되는 현상을 보면서 독자는 조금 어리둥절할 수 있을 듯하다.

작품집의 뒷부분에 있는 작품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는다. 아들이 갑자기 사고(또는 병)로 죽고(허물), 6년만에 어렵게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고(하얀 바다), 암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경계), 딸을 사고로 잃고(연극의 시작), 고양이 새끼들이 죽는다(25분).
즉,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또는 그것을 상징하는 동물을 잃게 되면서 오는 공허함과 외로움, 고독, 절망 등을 느낀다. 작가는 이들 인물들의 감정을 건조하게 드러내며, 별다른 설명 없이 인물의 상황만으로 그가 겪는 고통을 보여준다. 
'허물'에서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뱀으로 변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랑하고 결혼한다. 그리고 아들이 사고로 죽는다. 작품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지만, 아들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즉 단원고 학생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장면은 두 사람(부부)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아들을 잃은 고통으로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이미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아내는 자살하고, 자살한 아내 앞에서 주인공은 놀라운 발견을 한다.

아내를 내리기 위해 안아든 순간 묘한 위화감이 찾아왔습니다. 너무 가벼웠습니다. 땅에 내려놓자 시신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기묘한 형태로 구겨졌습니다. 선생님, 그것은 허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내는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처와 슬픔으로 채워진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육신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때 제가 본 것은 아내의 껍질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30년 전 그 숲을 떠올렸습니다. 슬픔과 행복이 없는, 경이와 생명으로 넘쳐나던 그 세계를 말입니다. 제 가슴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충만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아이가 죽은 뒤 처음으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사고로 아들을 잃고, 절망과 슬픔을 견디지 못한 엄마도 세상을 버리고, 뒤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그 공허와 절대 고독이 느껴지면서 나도 주인공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유가족의 슬픔과 동기화되는 이 느낌이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 개개인의 삶은 행복, 즐거움, 아름다움보다는 고통, 절망, 고독 등의 힘든 감정과 힘든 나날의 연속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인생에서 어느 쪽을 더 많이 경험하는가에 따라 그 삶이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하겠지만, 삶은 그것을 견디는 힘에 있지 않을까. 이 작품집은 과거의 전통적 작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한 상상력과 작가의 세계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준다.


어느 시인의 죽음
외계종족 '가브'의 먹이가 되는 '인간' 이야기
대수는 먹이감을 고르는 사람, 용천은 평범한 학생으로 가브의 제물이 된다.

라하이나의 눈
다른 사람과 물리적 동기화-달리는 사람-다른 사람의 칼로리를 대신 빼주는 인물

기린의 심장
경찰관 K가 들려준 이야기. 마음이 지워진 사람들이 작은 언덕에 묻히는 이야기.

마왕의 변
환타지와 게임, 무협지가 뒤섞인 단편. 마왕의 죽음과 용사가 마왕이 되는 이야기.

허물
편지 형식. 유서. 한 남자의 삶, 아내, 아들. 아들의 죽음과 아내의 자살. 자살한 아내의 몸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드러내는 뱀의 허물 같은 것.

하얀 바다
6년만에 임신한 아이를 유산한 아내. 아내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나. 나의 불륜. 

경계
아내를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수학선생 재인. 딸은 배우가 되겠다며 반대하는 아버지의 곁을 떠나고, 옛날 제자에게서 편지가 온다. 동성애자였다는. 딸을 데리러 간 촬영장에서 더러운 물을 뿌리는 현장을 보고 참지 못한 재인은 그 물을 마시고, 딸을 데리고 온다.

연극의 시작
불법 물건을 배달하는 영준. 어느 날 누군가에게 잡히고, 왜 잡혔는지 이유를 말하라는 노인을 본다. 지하철에 불을 지른 노숙자, 피해자 가운데 노인의 딸이 있었다.

25분
이시훈 중사는 장기복무 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나일을 사랑하지만 군대에서 행보관에게 밉보이고, 우연히 눈에 띈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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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혁명의 주체들
오제연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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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혁명의 주체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우연히 4월 19일이다. 4월 혁명이 일어나고 61년이 지났으며, 한국은 '4.19혁명'을 헌법에 새겨 넣었다. 3.1만세운동이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민중의 독립운동이었다면, 4.19혁명은 같은 해 치러진 3.15 선거 -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 - 에서 자유당이 부정선거를 획책하면서 촉발했다.
부산,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자유당 정부는 폭력으로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사진이 부산일보에 보도되면서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이승만과 자유당은 시민들의 규탄 시위를 폭력으로 저지하는 한편, 계엄령을 선포해 국민의 자유를 속박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한편, 깡패를 동원해 시위하는 국민에게 테러를 하는 악랄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경찰 역시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했고, 시민들은 경찰서를 습격해 총기를 탈취하고,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전쟁이 끝나고 불과 7년이 지난 상황에서, 내전에 가까운 혁명이 발발한 것은 오로지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범죄가 원인이었으며, 일본 앞잡이였던 매국노를 정부 관리로 기용하고, 독립군과 애국지사를 홀대한 이승만 정권의 반민주적, 독재적 태도가 4.19혁명의 직접 원인이 되었다.

이 책은 4.19혁명 당시, 혁명에 참여한 여러 주체들을 분류하고, 그들의 참여와 역할, 혁명에 기여한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4.19혁명을 말할 때 가장 널리 알려진 주체는 '학생'이다. 혁명 초기였던 3.15일 의거는 마산의 민주당 당원들이 앞장서 부정선거를 밝혀내면서 시작되었고, 여기에 시민, 학생이 동참했다. 이 시위에서 경찰이 총을 쐈고 7명의 시민, 학생이 사망했으며, 870명이 부상당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승만은 마산의 시위가 공산당이 사주한 것이라는 거짓말을 했다.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군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마산시민은 다시 시위를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서울에서도 고려대학교 학생을 시작으로 주요 대학의 학생들이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시작했고, 이승만 정권은 시민을 향해 폭력으로 맞서다 정권이 붕괴된 것이다.

01 4월혁명과 학생 / 오제연(성균관대학교)
1. 머리말 2. 4월혁명 당시 학생들의 존재 양태 3. 학생시위의 전개 과정과 시기별 양상
4. 학생시위의 조직적 특징 5. 맺음말

해방이 되고, 미군정 시기를 거쳐 1948년 정부를 수립한 이후, 정부는 교육 예산을 연평균 10.5% 사용하고 있었다. 즉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초등학생 취학률은 100%에 가까웠고, 중학생, 고등학생의 수도 15년 사이(1945-1960년)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4.19혁명의 주체는 '학생'이면서 특히 '고등학생'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서울에서 고려대학생이 시위를 시작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2월 28일 대구의 경북고, 대구고, 경북사대부고, 경북여고, 대구여고, 대구공고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하면서 실질적인 4.19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4월 16까지도 전국의 도시에서 고등학생들이 시위의 주체가 되었고, 혁명의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다 4월 18일 서울에서 최초로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하고, 이후 이승만이 하야 선언을 한 4월 26일까지도 대학생보다는 고등학생이 숫자에서도, 시위의 참여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학생들의 시위 양태는 2월 말에서 선거가 있던 3월 중순까지, 선거 이후, 그리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로 나뉘는데, 처음에는 학생을 정치도구로 활용하지 말라는 주장에서, 공명선거, 선거부정 규탄으로 이어졌고, 이후 본격 혁명의 주체로 등장한다.

02 4월혁명과 도시빈민 / 하금철(한국학중앙연구원)
1. 머리말 2. ‘폐허의 도시’ 속에서 등장한 도시빈민 시위 3. 학교별 시위 본격화 이후―‘불량행위’로 해석되는 도시빈민 시위 4. 도시빈민의 범죄화 5. 맺음말

4.19혁명에서 도시빈민의 존재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위에 참여한 대중의 비율에서 도시빈민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연구다. 상식으로만 봐도 '도시빈민'은 당시 특정한 계층이 아니라, 보편적 민중의 삶을 규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불과 7년이 지났을 뿐이고, 국토가 완전히 파괴된 상황에서 경제활동의 근거가 거의 없었던 민중은 당연히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도시빈민'의 형성은 전쟁 이후 예전부터 도시에서 살던 사람과 지방,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도시빈민은 지방,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고학생' 즉 스스로 돈을 벌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도시빈민'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가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통상적 기준으로 도시빈민은 경제적으로 하층민이며,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규정할 수 있다. '도시빈민'에 관한 논의는 이후 80년대까지 중요한 주제로 논의되지만, 이 책의 연구에서 '도시빈민'의 혁명 참여가 나중에 어떻게 배신당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4.19혁명에 적극 참여한 도시빈민들이 상대적으로 엘리트이자 기득권 집단인 '학생 집단'과 분리되는 과정, 도시빈민의 혁명성이 범죄로 낙인 찍히면서 혁명의 동력이 차단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4.19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민중의 국가'가 되지 못한 것을 두고 '미완의 혁명'으로 부를 수 있는지도 논의의 대상이다.

03 4월혁명과 여성 / 홍석률(성신여자대학교)
1. 머리말 2. 기록에서 배제되는 여성들 3. 여학생의 민주항쟁 참여와 활동 4. 일반 여성들의 민주항쟁 참여 5. 맺음말

4.19혁명에서 여성의 참여를 기록한 내용이 적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혁명 과정에서 여성 - 중학생, 고등학생, 20대, 중년, 노인 여성 등 - 의 참여는 고르게 발견되고 있음에도 기존의 연구와 언론에서 여성이 혁명에 적극 참여했다는 기록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그 근저에 가부장제 사회, 남성우월주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의 사회활동은 남성에 비해 부차적으로 인식되어왔으며,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거나 돋보이는 역할에 대해서는 사회적 압력이 가해졌다. 즉, 여성은 남성에 종속적 역할로 머물러야 한다는 가부장제 사회적 인식이 보편성을 띄던 사회상황이었고, 이 시기 대중의 성 인식은 매우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어, 봉건적 수준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진보적 엘리트, 좌익 정당에서는 여성의 참정권, 남녀평등에 관한 정책을 내놓기도 하는 등 여성의 불리한 사회적 위치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중의 인식 수준은 진보적 여성관을 수용할 정도로 높지 않았다.
여성은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도시빈민과 비슷하지만, 젠더로 구분하는 순간, 도시빈민보다 더 열악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물론 도시빈민 내부에서도 젠더의 구분이 가능하고, 도시빈민 여성은 최하위 존재로 규정되어 있다는 건 이미 연구결과로 드러난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4.19혁명에 적극 참여한 것은, 사회의 억압구조를 타파하려는 여성 일반의 집단의식이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04 4월혁명과 근대화 주체론의 변화 / 홍정완(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1. 머리말 2. 1950년대 한국사회의 근대화 담론과 주체 3. 4월혁명과 근대화 주체론의 변화 4. 맺음말

05 4월혁명의 담론과 주체 / 황병주(역사문제연구소)
1. 머리말 2. 혁명 담론의 추이 3. 혁명 주체론 4. 맺음말

06 4월혁명의 자유주의적 전유―『동아일보』와 『사상계』 비교를 중심으로 / 윤상현(경남대학교)
1. 머리말 2. 혁명의 과정과 주체―『동아일보』의 4월혁명 서사구조 3. 혁명의 성격 짓기―『사상계』 지식인혁명/정신혁명 4. 맺음말
4월 혁명을 두고 한국의 여러 계층과 이해 집단에서는 혁명의 성격을 다르게 해석, 규정하고 있다. 4월 혁명을 민중이 주도한 '민중 혁명'으로 볼 것인지, 학생이 주도한 엘리트 계층의 혁명인지, 혁명의 성격을 두고도 민주주의 혁명인지, 민권 혁명인지 등 당시 혁명 세력 내부에서도 이런 논의는 정리되지 않은 채 무수한 담론만 남기고 시간이 흘렀다.
4.19혁명을 통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이후 부르주아, 엘리트 계층과 민중은 분리되고, 민주주의보다 파시즘에 경도하는 일부 지식인들이 등장하면서 곧바로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군부독재의 등장과 함께, 세계적으로는 제3세계에서 발생한 수많은 군부쿠데타의 연속선에 있었다는 세계사의 흐름이기도 하다.
2차 세계전쟁이 끝나고,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약소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개입으로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한국 역시 그런 제3세계 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부르주아,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이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고 있었고, 이들의 스피커인 언론과 잡지도 4.19혁명을 학생이 주도한 엘리트 혁명으로 교묘히 구성하고 있었다. 이는 분단 상황으로 남북이 긴장 상태에 있고, 미국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던 점, 세계적으로는 미국과 쏘련의 냉전이 고조되고, 민중의 역량이 성장하지 못하던 시점이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 세계사의 흐름에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시민민주주의의 확대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고, 국민 개개인의 의식, 지적 수준이 함양되지 못한 60년대 초반의 한국상황에서도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이루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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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의 기원
필립 샌즈 지음, 정철승.황문주 옮김 / 더봄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수 많은 인연과 우연이 겹치면서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기적같은 우연이 과연 어느 정도 확률로 일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은 뉘른베르크 법원의 현재 상황에서 그곳에 모인 세 사람 - 한스 프랑크, 허쉬 라우터파하트, 라파엘 렘킨 - 의 운명적 만남과 이 세 사람과 연결된 작가, 작가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펼치면, 저자가 당부하는 말이 나온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리비우(Lviv)라는 걸 강조한다. 왜 중요한가는 이 책을 다 읽으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되면서 이해한다. '리비우'는 현재 우크라이나 도시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지만, '리비우', 렘베르크, 리보프, 로보프 등으로 바뀌는데, 무려 여덟 번이나 도시 이름이 바뀐다. 이것은 이 도시가 현대사에서 그만큼 격렬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매우 '개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저자 필립 샌즈는 영국에 살며 국제인권법 교수이면서 1990년대 이후 발생한 국제형사재판에 참여하고 있는 법정 변호사기이도 하다. 즉, 그는 변호사이면서도 조금 특수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그가 변호사가 된 계기는 그의 외할아버지 '레온'의 권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립 샌즈는 어려서부터 파리에 살고 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댁에 가끔 놀러가곤 했는데, 소박하고 검소하면서도 절제 있는 생활을 하는 두 분을 보면서 조금은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안에는 가족 사진이나 앨범이 전혀 없고, 유일하게 두 분의 결혼사진만 한 장 있었다. 유럽인들이 가족 사진을 자랑스럽게 벽에 많이 붙여놓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두 노인 부부의 집에는 그런 사진이 전혀 없었다는 것, 또한 자식을 비롯해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는 마치 금기처럼 여겨져 절대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는 것을 어린 필립 샌즈는 의아하게 여긴다.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고도 필립 샌즈는 자신의 가족 역사에 관해 일부러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연한 계기가 찾아오는데, 그건 국제인권법 변호사라는 직업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인연의 연결고리가 걸린 거라고 봐야한다.
2010년, '리비우대학'에서 필립 샌즈를 초청한다. 그가 전공한 국제인권법에서 '인도에 반한 죄'와 '제노사이드'에 관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필립 샌즈는 '리비우대학'이 있는 '리비우'를 떠올리면서 문득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고향이 그곳인데? 라고 생각한다. '리비우대학'에서 강의를 하려면 리비우와 연결고리가 있는 이야기를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외할아버지의 고향이 '리비우'였고, 그때부터 외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외가의 집안 역사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레온(저자의 외할아버지)은 과거에 관해 일절 말하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딸(저자의 엄마)에게 평생 가지고 있었던 자료를 맡겨 놓았다. 레온이 죽고, 필립 샌즈는 외할아버지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가족의 역사를 추적한다. 
이때, 유럽의 장점이 드러난다. 유럽은 두 번의 세계 전쟁으로 많은 것이 파괴되었지만, 기록과 자료를 꼼꼼하게 남긴 덕분에 개인사를 복원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저자는 고인이 남긴 기본 자료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자료를 찾아나서며, 이 자료를 찾는 과정이 스릴러처럼 손에 땀을 쥐면서 흥미롭다.
사진 한 장, 서명, 주소 한 줄로 시작하는 자료 찾기는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자랐으며, 유럽의 어느 지역으로 이동하고, 언제, 어떻게 지역에서 지역으로 옮겨다녔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마치 지금의 '구글 경로'처럼 흔적을 연결하면 한 사람의 궤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레온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레온의 부모는 핀카스, 말케였고, 장남 에밀, 둘째딸 구스타, 셋째딸 로라 그리고 에밀이다. 장남 에밀은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고, 구스타는 막스 그루버와 결혼해 세 명의 자식과 손자까지 본다. 셋째 로라도 베른하르트 로젠블룸과 결혼하고 아들을 낳지만 이 가족 모두가 레온을 제외하고 유대인수용소에서 사망한다.
1933년 1월, 당시 독일대통령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한다. 레온은 1937년 리타와 결혼하고, 1938년 3월 독일군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한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이후, 오스트리아에 살던 유대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유대인을 학살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레온과 가족들은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이나 다른 유럽지역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지만, 비엔나를 탈출한 것은 레온 혼자였다. 레온은 홀몸으로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다. 몇 달 뒤 어린 딸 루스가 파리에 도착하지만, 레온의 아내는 여전히 비엔나에 남았다가 3년 뒤에 기적같이 파리로 탈출한다. 아기였던 루스를 비엔나에서 파리까지 데리고 온 사람은 '미스 틸니'였는데, 이 미국인 선교사의 역할이 드러나면서 수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살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뉘른베르크 법원에서 핵심 이론인 '정의에 반한 죄' 개념을 주장한 라우터파하트는 레온의 어머니 말케가 태어난 주키에프에서 1897년에 태어났다. '제노사이드' 개념을 주장한 렘킨은 1900년 태어났고, 두 사람은 우연히 로보프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다.
라우터파하트는 1923년 영국에 도착해 런던경치경제대학에 등록하고 빠르게 영어를 배웠다. 1933년에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이후, 라우터파하트는 곧바로 '독일에서의 유대인 학대'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1937년 라우터파하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법 담당 교수가 되고, 1939년 독일이 폴란드는 침략할 때, 라우터파하트는 미국을 방문해 2개월 동안 미국 전역의 15개 로스쿨과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한다. 1941년, 다시 케임브리지대학으로 돌아와 국제법 관련 책을 집필하는데, 1941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웰슬리대학에서 가을 학기를 보내는데, 마침 뉴욕의 '유대인위원회'가 원고료를 넉넉히 줄테니 국제인권법에 관한 책을 집필해 달라고 요청한다. 라우터파하트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개인의 국제법적 권리장전에 관하여'를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약속한다.
우연한 상황이었지만 1944년, 라파엘 렘킨이 쓴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가 미국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책을 라우터파하트가 읽는다. 렘킨은 이 책에서 '제노사이드' 개념을 처음 주장하는데, 정작 라우터파하트는 이 개념을 지지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 정부는 패전국인 추축국을 상대로 전범 재판을 위한 준비를 하는데, 이때 라우터파하트가 제안하는 '인도에 반하는 죄'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뉘른베르크 법원의 최고 판사는 쏘련이었으며, 미국과 영국에서 제안한 '인도에 반하는 죄'에 관한 개념을 쏘련이 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다.

전쟁 전과 전쟁 동안 민간인에게 자행된 살인, 말살, 노예화, 추방 및 기타 비인도적인 행위 : 또는 행위가 자행된 국가의 법 위반과는 관련 없이 재판소의 관할권 내에서 범죄의 실행 또는 범죄와 관련되어 정치, 민족 또는 종교적 이유로 자행된 학대 행위

렘킨은 1900년에 태어났고, 라우터파하트가 졸업한 로보프대학의 법학부를 라우터파하트보다 2년 늦게 들어갔으니 같은 과 후배였다. 이 사실을 두 사람은 알지 못했는데, 매우 신기한 우연으로 뉘른베르크 법원에서 두 사람의 국제법 논리가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1926년 렘킨은 대학을 졸업하고 로보프에서 60마일 떨어진 브르제자니에서 법원 서기와 공판담당 검사로 근무한 다음, 바르샤바의 항소법원에서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을 때인 1933년 무렵에 렘킨은 검사로 6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렘킨은 집단학살, 반달리즘을 예방할 수 있는 보편적 사법권에 관한 리플렛을 썼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공격당한다.
렘킨은 검사를 그만두고 상법 분야 변호사로 전직해 평온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곧바로 폴란드를 침공하자 바르샤바를 떠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미국으로 탈출한다. 독일에 점령당한 폴란드에 독일 총독이 부임하는데, 그가 바로 이 책에서 중요한 인물인 한스 프랑크다.

렘킨은 미국으로 가기 전, 1940년, 스톡홀름에 머물렀는데, 이곳에서 칼 슐리터의 권유로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는 스웨덴어를 배웠고, 책을 쓸 수준이 되었다. 그는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해 스톡홀름 도서관에서 많은 자료를 모으고 히틀러와 그의 정당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문서를 통해 분석하기 시작한다. 당시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서 발행된 공문서들 상당수가 스톡홀름 중앙도서관으로 모이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우연이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계획은 아주 작은 법령부터 고쳐나가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국적을 박탈해 유대인이 무국적자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만든다. 이 조치는 유럽 전역에 적용하고, 유대인 표시인 '다윗의 별' 무늬를 옷에 달도록 했다. 그리고 '게토 설립'을 통해 유대인을 게토로 이주시킨다. 마침내 게토를 벗어난 유대인을 처형할 수 있는 법령을 만들어 학살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렘킨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맥더못 교수에게 교수 제안을 받는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기차로 이동하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일본 쓰루가-교토-요코하마를 거쳐 미국 시애틀 항구에 도착한다. 미국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가지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여정을 거쳐 그는 마침내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 도착한다.
렘킨은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에 카네기재단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에서의 유대인 대량 살육'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나중에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의 초안이 되고, 이 책을 1943년 11월에 완성하고 1944년 11월 출간한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미국의 주요 언론-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에서 중요한 서평으로 다뤄지면서 미국 정부가 렘킨을 주목하게 된다.

이 책은 '인도에 반한 죄'와 '제노사이드'의 개념을 만든 두 학자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이론적 근원을 추적하는 내용이면서, 이 두 사람이 우연하게 '로보프대학'의 동문이자 유대인이고, 이 책의 저자의 할아버지와 같은 도시의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는 우연을 발견하는 내용이다.
더구나 저자인 필립 샌즈 역시 '국제인권법'을 전공한 교수로 라우터파하트와 렘킨과 같은 법학 전공자라는 점에서 두 학자의 평생을 추적하는데 적임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이라는 나찌의 범죄를 개인사적으로 추적, 접근한 '전쟁미시사'의 저작으로도 훌륭한 가치를 갖는다.
책은 '라우터파하트'와 '렘킨', '한스 프랑크'에 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만, 저자의 가족에 관해서도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저자의 어머니인 루스가 아기 때 폴란드에서 런던으로 탈출할 때 도왔던 미국인 선교사, 할아버지 레온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았지만, 그의 가장 친한 친구 '막스'와 동성애 관계일 수 있다는 암시, 저자와 배다른 남매인 줄 알았던 미국에 사는 산드라와의 이야기 등은 마치 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 긴박하고 숨막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책임번역한 정철승 변호사는 현재 광복회와 민족문제연구소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자신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의 외손자로 독립운동가 집안의 변호사다. 그가 국제인권법의 기원을 다룬 이 책을 책임번역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지만, 번역이 유려하고, 재미읽게 읽히는 것은 탁월한 번역과 역사에 깊은 이해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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