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사람들 - 파견 노동 확대에서 메탄올 실명까지, 청년노동의 현실 평화 발자국 26
김성희.김수박 만화 / 보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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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사람들

1988년 무렵에 나는 구로공단에 있는 영세한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삼미금속'이라는 회사였는데, 도금 공장이었다. 일당을 많이 벌려면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이 나았고, 군대 입대 전에는 3년 정도 배관공으로 일을 한 경력도 있어서 나는 공사현장이나 매형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파견 노동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중동 건설 붐이 일고 있었고, 몇 년만 다녀오면 집을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여서 인기가 높았다. 나는 그런 기회를 잡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중동에 가지 못했다.
구로공단의 영세한 공장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내 밥벌이도 있었지만, 그때 함께 공부하던 선배들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70년대 후반부터 알게 된 독서회는 번성했고, 내가 살던 지역에 새로운 독서회가 생기면서, 그곳에서 선배,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 가운데 극소수가 따로 '스터디'를 했는데, 사회과학 공부였다. 나는 정규 학교를 다닌 것이 국민학교가 전부였으므로 이때만큼 열심히, 깊이 있게 공부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검정고시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대학에 진학할 생각도 있었지만, 선배들은 대학보다는 현장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나는 대학생이 아니었으므로 '위장취업'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노동자였고, 이미 몇몇 공장을 전전하고 있었다. 휴대용 가스렌지를 조립하는 공장, 텔레비전 케이스에 필름을 씌우는 공장 등을 거치면서 저녁에 집에 돌아와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이 제1회 전태일문학상에 당선되었고, 나는 '노동자 작가'가 되었다. 그래도 삶은 달라지지 않았고, 올림픽이 열린다는 그 해에도 도금 공장에 다니며, 삶은 어둡고 무거웠다.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노동자의 의식은 낮았고, 회사의 감시는 심했다.
도금공장에는 황산, 염산 원액과 시안화나트륨(청산가리), 시안화칼륨 등 독극물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심지어 시안화나트륨은 작은 흰색 덩어리인데, 드럼통으로 가득 우리들이 옷을 갈아 입는 탈의식에 놓여 있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청산가리를 가지고 나갈 수 있었다.
염산, 황산, 시안화나트륨, 시안화칼륨 등 독극물을 취급하면서도 우리는 고무장화와 고무장갑만 끼었을 뿐, 보호안경도 없었다. 그 용액이 눈에 튀어 들어가면 물로 씻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렇게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노동자들은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쉬는 날 등산도 하고, 가끔 야근을 하지 않을 때는 저녁도 먹으면서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슬쩍 떠봤지만, 그들도 이 공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영세한 공장에서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고가 지금, 경제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파견노동자, 하청노동자, 비정규노동자 등으로 더 잘게 쪼개져 차별당하는 노동자의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정치는 군사독재에서 민주정부로 진보했지만, 노동자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성장하고, 수출이 세계 10위권이고, 국민총생산, 국가총생산, 1인당 국민소득 등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노동자의 소득도 증가하고, 절대 빈곤에서는 벗어났으며, 개인의 절대적 삶의 환경도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이 성장하고, 자본가와 부르주아가 가져가는 부의 크기에 비하면, 노동자들의 몫은 상대적으로 더 작아진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즉, 사회의 부가 커지면 거의 대부분을 소수의 자본가와 부르주아가 차지하고, 다수의 노동자는 아주 적은 몫을 나눠 갖는 것이다. 
이것을 서양 자본주의에서는 '신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한국은 특히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빈부의 격차는 더 극심하게 벌어지고,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이 깊어졌다. 정규직, 비정규직, 하청, 파견 노동자 등으로 세분화한 것도 외환 위기 이후부터였다.
이렇게 노동자의 고용 환경이 나빠지면서 노동자의 삶은 더 불안정하고, 임금 격차는 커지게 되었다.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본능이고,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여기기 때문에, 노동자의 죽음을 하찮게 여긴다. 
이 작품에서 메탄올 독성으로 실명하게 된 여섯 명의 청년 노동자들도 자본의 이윤 추구에 소모품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역사는 민주주의로 발전하면서 인권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인권의 확대로 인해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각종 차별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으며, 노동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주5일 노동, 최저임금제 등 노동자의 권익이 향상되는 것도 시대의 당연한 흐름이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은 서양의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보다 노동자의 처지가 매우 열악하고, 자본의 착취가 악랄한 현실이다. 자본가의 범죄는 가볍게 처벌되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파업은 무겁게 처벌된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해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이 고전적 형태의 자본 축적에 관한 해석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의 진화로 자본의 축적은 더 다양하게 발전하고, 노동자의 착취도 세련되게 바뀌었다. 여기에 노동자도 인간으로의 욕망을 가진 존재라서 이기심, 경쟁 같은 자본주의의 특성에 쉽게 빠지게 된다.
괴물이 된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건 민주주의와 인권, 복지를 바탕으로 하는 정부의 통제와 제도적 장치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고, 자본(가)의 범법 행위를 미리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고, 자본가가 범죄를 저지르면 강하게 처벌하는 법률을 만드는 등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지만, 그런 일을 하는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을 자본이 매수하는 방식으로 길들여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만든다.
여기에 사법부까지 매수하면서 자본은 모든 권력을 길들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인은 자본가다. 그들은 막강한 자본으로 국가를 장악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자는 다수지만 가진 것은 오직 '머릿수' 뿐이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자본가와 힘겨루기를 하지만, 사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는 전진기지 역할을 해야 하며,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혁명을 통해 끝장난다는 것이 고전적 혁명이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존재다. 평등하지는 않지만, 동등한 존재임에도 노동자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 인류의 역사가 불평등과 차별의 역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 보편의 평등과 인권이 확대되고, 부의 집중과 편향도 줄어들어드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리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과 노동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위험한 공장에 취업하고, 파견노동자가 된다. 공장은 하청, 재하청으로 내려오는 구조로 생산단가가 깎이고, 영세공장의 자본가는 최소한의 임금에서 이윤을 남기려고 독극물을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쓰게 된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을 돕는 단체의 일꾼들 역시 열악한 처지에 있지만, 이들은 한결 같이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와 함께 한다. 올바른 국가라면 이들 일꾼들이 하는 일은 모두 정부의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단체를 만들어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최저 임금 이하의 '생존비'를 받으며 일하면서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에게만 기대야 하는 걸까.

한국 그래픽노블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놓치지 않고 천착한다는 점에서, 김성희, 박수박 작가를 비롯한 그래픽노블 작가들의 성과가 놀랍고, 대단하다. 다른 장르보다 그래픽노블이 갖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화 장르가 기존의 '오락물'이라는 선입견을 떨치고, 깊이 있고 진지한 장르일 수 있다는 걸 그래픽노블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다.
만화는 현실을 조금 떨어져서 보는 효과가 있다. 소설은 상상을 통해, 영화는 미장센을 통해 리얼리즘을 구축한다. 만화는 단순화한 선으로 사물을 표현하기에 실제 현실 세계가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비현실성은 독자가 작품 속 세계와 현재(실제 세계)의 중간에서 작품과 현실을 오가며 비교, 판단할 수 있는 거리를 두게 만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지금, 현재 일어난 사건이지만 마치 1970년대, 1980년대 일어난 사건처럼 보인다. 그만큼 비정상적 사건이라는 뜻이다. 내용에도 나오지만, 후진국에서조차 일어나지 않는 미개한 수준의 사건이라는 뜻인데, 자본가와 관리자들이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본의 기본 조차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고, 그 원인은 오로지 '단가'를 맞추기 위한 것이며, '단가'를 맞춘다는 것은 영세 자본가가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비현실적 사건과 상황을 표현하는 김성희 작가의 그림은 디테일이 많이 생략된 단순한 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한 듯 보이는 그림은 오히려 실사화보다 작품의 내용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구체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는 장면에서는 디테일이 살아난다. 67쪽과 89쪽에 등장하는 박근혜의 그림은 다르다. 같은 인물을 실제 인물과 매우 비슷하게 그리거나, 만화화 해서 표현하는 것은 작가가 그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픈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노블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그림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기능도 있다. 이 작품 역시 언론에 보도되기는 했지만, 실제 내용 전체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김성희, 김수박 작가는 밀도 있는 취재를 통해 사건의 시작, 피해 노동자 개인의 삶, 노동자를 돕는 단체와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영세기업과 대기업의 태도 등 이 사건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어린 학생들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수업 재료로도 훌륭한 교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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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로자 - 만화로 보는 로자 룩셈부르크
케이트 에번스 지음, 폴 불 엮음, 박경선 옮김, 장석준 해제 / 산처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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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로자

80년대, 사회과학 공부를 할 때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몰랐다. 시간이 지나서 '레닌보다 뛰어난 이론가'였던 로자의 평전을 읽었다. 로자의 비범함은 물론이지만, 당시 유명한 사회주의자들의 비겁한 태도를 보면서, 유럽에서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로자가 살던 시대는 '혁명의 시대'였다. 로자는 1871년, 폴란드의 도시 자모시치에서 태어났다. 이 도시는 폴라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국경 쪽으로 붙은 도시였고, 유대인들이 전체 주민의 약 30%를 차지할 만큼 많았다. 
현재의 자모시치 구 시가지는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모시치 시는 폴란드의 귀족이었던 얀 자모이스키가 16세기에 세운 도시로, 서유럽과 북유럽을 연결하는 무역로에 세운 도시다. 도시 설계는 이탈리아 건축가 베르난도 모란도가 했으며,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양식을 적용한 아름다운 도시로 이름이 있다.
로자는 유대인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자유롭고 진보적인 성향이어서 유대인의 율법을 따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폴라드인'의 정체성을 갖도록 자식을 키웠으며,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식들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였다.
그런 부모에게서 막내로 태어난 로자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고,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똑똑했다. 하지만 다섯 살 무렵, 그는 한쪽 다리가 뒤틀리며 키도 자라지 않아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았다. 로자는 여성, 장애인, 유대인이라는 여러 겹의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야 했지만, 그의 지성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에 자기의 사상을 널리 알릴 만큼 뛰어났다.
로자가 세 살되는 해, 1873년에 로자의 가족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이주한다. 바르샤바 역시 유대인 인구가 전체의 약 30%에 이를 정도로 많았고, 로자는 중산층 집안에서 자유롭게 성장했다. 로자가 성장하던 바르샤바는 폴란드, 독일,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뒤섞인 복합적인 도시였으며, 유대인 공동체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자의 부모는 유대인 공동체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특정한 종교나 정파에 소속하지 않은, 진보적 시민으로 살아갔다. 이런 환경에서 로자는 폴란드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까지 네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었다. 
이런 재능은 로자의 장애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육체적 장애로 인한 제한된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로자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 우연의 일치지만,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도 1871년, 로자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그는 천식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을 평생 앓았다. 마르셀도 육제적 장애를 지닌 채 글을 쓰기 시작했고,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남겼다. 재능 있는 사람은 스스로 빛을 낸다. 비록 육체가 자유롭지 못하다 해도, 지성까지 장애를 갖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들을 통해 새삼 확인한다.
로자는 불과 아홉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독일어로 쓴 시와 산문들을 번역하고, 자신의 글을 써서 바르샤바에서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에 실린다. 

1881년 3월 1일, 러시에서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인민의 의지파' 단원들에게 암살당한다. 이들 무정부주의자들 가운데 폴란드인 '이그나치 리니에비에드츠키'가 있었다. 러시아 제국의 압제에 있었던 폴란드인들은 속으로 환호했지만, 러시아 제국은 폴란드를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암살단원 가운데는 러시아 여성 '소피아 페로프스카야'도 있었고, 그녀는 이 그룹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재판을 통해 이들은 모두 사형당하고, 로자는 그들의 소식을 신문을 통해 들으면서, 여성 혁명가의 삶에 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로자가 중학생이던 1883년 무렵, 처음으로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시기에도 '프롤레타리아 당'에서 활동하던 혁명가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특히 여성 혁명가의 체포와 죽음은 로자에게 특별한 충격을 주었다. 1885년에 '프롤레타리아 당' 당원이자 혁명가인 여성 두명, 19살의 마리아 보후스제비치와 로살리아 펠센하르트가 경찰에 체포되어 죽고, 1886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당' 지도부 네 명이 바르샤바 성채에서 교수형을 당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로자는 자신도 뭔가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15살 무렵 '프롤레타리아 당'에 가입한다.
로자가 '혁명가'의 삶을 선택한 것은 시대적 소명을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폴란드인으로 러시아 제국에 압제를 당하는 조국의 현실, 수많은 진보 지식인, 학생들의 반제국 투쟁, 로자가 다니는 학교에서 겪었던 차별, 여성의 사회적 제약,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의 고통 등 여러 겹의 구조적 모순이 로자를 내리 눌렀고, 로자는 그런 차별과 억압에 정면으로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6살의 로자는 이미 차르 경찰의 '요시찰 대상'이 되었으며, 그는 이때 마르크스, 엥겔스의 자적을 읽기 시작했다. 비밀 조직이었던 '프롤레타리아 당'과 나중에 결성한 '폴란드 노동자 연맹' 등에 대한 경찰의 감시와 탄압은 심해지고, 1888년, 17살이 된 로자는 여권을 만들어 스위스로 탈출한다. 불과 5년 전, 마르크스가 영국에서 사망했다.

로자는 취리히대학 철학과에 등록하고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수강한다. 마르크스의 저작은 물론, 다윈의 진화론을 비롯해 수학, 생물학 등 과학 분야의 지식을 쌓아간다. 사회주의자가 가져야 할 덕목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분야가 바로 '과학'이다. 과학과 철학은 철저하게 이성적 활동이며, 과학은 특히 객관적 근거가 증명되어야 하는 엄격한 분야여서 논리와 분석, 구조를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자, 사회주의자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학문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에는 이미 정착한 선배 혁명가들이 많았고, 그는 폴란드 혁명가들은 물론, 러시아, 독일의 유명한 혁명가들의 흔적을 찾았고, 그들을 만나 교류했다. 그는 1893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제3차 대회'에서 발언하며 선배, 동료 혁명가들로부터 진짜 혁명가로 인정받는다.
1898년, 독일사회민주당에 가입했고,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바르샤바로 가서 혁명에 동참했다. 이때부터 로자의 고난이 시작된다. 러시아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갇혔으며, 1911년에는 인터내셔널 사회주의국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1915년에는 다시 독일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된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이후에도 경찰의 감시를 받는 '보호관찰' 대상자였음에도 급진 좌파 단체인 '스파르타쿠스'의 지도부로 참여하게 된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레닌의 지도로 성공하면서 1918년에는 독일공산당 창립 총회에서 연설하고, 1919년, 운명의 그해에 스파르타쿠스 반란의 배후로 체포되어 학살당한다.

혁명의 시기,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깃발을 내걸고 투쟁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당대를 가장 앞서 가는 지성인들이었다. 다수의 민중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목숨을 걸로 투쟁했으며, 그들이 살았던 당대는 제국주의 폭력이 세상을 망치고 있었다.
진보적 지성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당연히 반제국주의였으며, 사회주의 이론은 그들의 무기였다. 로자는 독일 야경단에 잡혀 살해당하기 전까지 네 권의 책을 썼다. '자본의 축적'은 1913년에 쓴 저작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설명하고 있는 자본의 축적 과정을 자본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러시아 혁명' 등의 저작을 남긴 로자는 유대인, 여성, 장애인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뛰어난 사회주의자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다. 그가 가진 불리함 때문에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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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문학선 16
백남룡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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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 백남룡

북한 문학 작품을 처음 읽은 건 군복무 하던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이 왜곡되었어도 그 언저리였던 건 분명하다. 그러니까 82년을 전후한 시기였고, 나는 부대 근처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내가 복무하던 부대는 화천에서 산양리를 거쳐 민통선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포병대대였다. 부대 주변으로 가끔 북한에서 보낸 삐라가 떨어지곤 했다. 삐라를 주워도 가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관물대에서 북한 삐라가 나오면 말할 것도 없이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가거나, 최소한 군대 영창이라도 가게 될테니, 삐라를 발견하면 주워서 보고를 하던지, 그냥 두고 지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가 주운 삐라에 실린 단편소설은 어린 소년과 기차 그리고 김일성 장군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단편 내용은 김일성을 찬양하는 것으로, 북한 문학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감동 코드가 들어 있었다. 그 단편이 언제 창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제 읽은 백남룡의 소설 '벗'과 한 줄기로 연결되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작품은 1988년에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소설의 무대는 80년대 중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정진우 판사는 이혼 전문 판사로 복무하고 있다. 어느 날, 그에게 한 젊은 여성이 찾아온다. 채순희는 도 예술단의 성악 배우, 중음 가수(메조 소프라노)로 복무하는 예술노동자다. 그이는 정진우 판사에게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고, 이혼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정진우 판사는 채순희의 배우자인 리석춘의 의견과 주장도 들어봐야 해서 저녁에 자기 아파트로 리석춘을 부른다. 리석춘은 아내 채순희와 처음 만난 때부터 갈등을 일으키게 된 계기와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초산군에 있는 철제일용품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채순희는 도시에 있는 강안공장에서 파견을 온 리석춘을 만나게 된다. 리석춘은 한 달을 기한으로 공장에 선반기와 후라이스, 원통연마반들을 설치해주고 운전공들의 기능 양성까지 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리석춘은 채순희를 발견하고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했고, 아들 호남이도 낳아 키우고 있다. 채순희와 리석춘이 말하는 이혼 이유는 '생활 리듬'이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우리식 표현으로는 '성격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진우 판사는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각자 주장하는 내용을 귀기울여 듣는다. 리석춘이 일하는 공장을 찾아가 리석춘의 선배 노동자를 만나 리석춘이 어떤 사람인가를 듣고, 채순희가 복무하고 있는 도 예술단장을 만나 채순희에 관해 동료들의 평가를 경청한다.
이 과정에서 정진우 판사와 그의 아내 한은옥의 상황도 등장한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우연히 만났다. 법률 공부를 하는 정진우와 생물학을 전공한 한은옥이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정진우의 동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정진우는 한은옥이 외진 시골의 가난한 마을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고, 그가 마을을 위해 남새(채소) 육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연인이자 동지적 관계로 호감을 갖고 결혼한다. 정진우는 곧 판사로 복무하고, 한은옥은 학부 때부터 연구해 온 남새(채소) 연구를 계속하는데, 물이 귀하고 온도가 낮은 고향 연수덕에서 남새를 재배할 수 있도록 육종 연구를 무려 20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정진우는 자주 집을 비우고 출장 가는 아내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채순희, 리석춘 이혼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아내 은옥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자기의 이기적인 태도를 반성하고, 아내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걸 느끼게 된다.

소설은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채순희와 리석춘이 결국 이혼을 하게 될지, 아니면 정진우의 바람대로 다시 마음을 돌이켜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갈지 독자는 알지 못한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채순희가 바라는 남편 리석춘의 모습과 리석춘이 바라는 아내 채순희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를 서정적으로 그리기 때문에, 독자는 희망과 긍정의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된다.
이 작품의 특징은 서너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먼저, 이 소설에는 '위대한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소설의 '우상화'와 '위대한 지도자'에 관한 충성에 관한 내용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이건 매우 특이하게 보이는데, 북한문학이 80년대 이전보다 사상적으로 훨씬 유연하고 자유로워진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다만, 정진우를 비롯해 주인공들이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떠올릴 때, '당과 조국'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 개인의 삶의 존재 의미는 '당과 조국'의 이익에 있다는 정도가 이 소설이 북한소설이라고 생각되는 표현 수위다.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은 1988년인데, 소설을 읽어보면 한국(남한)의 60년대, 70년대 풍경이 떠오른다. 이 시기를 살았던 사람-50대 이상-이라면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풍경과 언어-작가가 구사하는 문장과 작품의 주인공들이 하는 대화-가 60년대, 70년대의 한국 풍경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남한에서 60년대, 70년대 개봉한 영화를 보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북한(평안도)과 경기(서울 포함)의 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가의 언어는 부드럽고 순하다. 문장은 소박하고 대화는 은근하며, 마음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의 성향에 따른 개성이 아니라, 북한의 체제가 보여주는 환경의 영향이라고 본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주체적'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고, '개인'보다는 '당과 조국'을 마음에 품은 개인들의 공동체로 묶인 집단의 정서를 내재하고 있다.
북한에서 '판사'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존재가 아니다. 정진우 판사는 단지 법률을 배운 지식인으로, 법적 판단을 하는 사람일 뿐, 공장 노동자, 예술단 성악 노동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노동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으며, '노동자'는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갖고 있다. 이것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에서 오는 모습이지만, 남한과 비교하면 극적으로 다르다. 남한의 판사는 스스로 최고의 엘리트라고 생각하며, 평범한 노동자를 깔보고 함부로 대한다. 이런 모습만 보면 '인간 중심'의 사회를 기준으로 볼 때, 어느 쪽이 더 평등하고 우월한가를 알 수 있다.
북한에도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은 있다. 이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자기 조국(북한)을 탈출해서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 자본주의적 탐욕에 이끌려 조국을 배신한 사람도 있다고 본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인물 - 채림 -이 있는데, 정진우 판사는 채림의 범죄 사실을 발견하고 호되게 질책한다. 채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가 재산을 원상복구하는 선에서 가벼운 징계를 받는데, 북한과 같은 집단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행동을 하면, 그 집단은 내부에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의 지배집단에서는 '개인주의'를 가장 경계하고, 이기적, 탐욕적 행위를 강하게 처벌한다.

정진우 판사는 채순희에게는 예술가가 갖는 허영심을 개인화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즉,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성악 가수-을 기예로써가 아닌, 그 노래를 듣는 노동자, 인민의 삶과 결합해 노동자, 인민이 예술단원의 노래를 통해 '당과 조국'을 더욱 깊이 사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공장의 선반노동자 리석춘에게는 '헌신성'만으로는 위대한 노동자가 될 수 없다고 충고한다. 아내 채순희가 바라는대로 현재의 조건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주체적으로 하는 능동적 노동자로 거듭나지 않으면 '당과 조국'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이런 정진우의 주장은, 북한(노동당)이 과거에 가졌던 보수적 태도를 버리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와 맞물리는 내용이다. 즉, 채순희와 리석춘의 불화는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데서 오는 나태와 무기력이 원인이었고, 이것을 깨닫고 새로운 마음과 정신으로 스스로 능동적인 노동자로 발전하도록 노력하는 순간, 두 사람의 불화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 남북한 문학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 소설 내용도 좋지만, 북한 체제가 보여주는 특수함, 북한 인민이 '당과 조국'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프랑스 독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경험일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독자들도 이 작품을 읽기 권한다.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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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일기 - 묻힌 기억을 끄집어내는 민간인 학살의 기록
박건웅 지음 / 우리나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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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이승만 정권의 학살 사건.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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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일기 - 묻힌 기억을 끄집어내는 민간인 학살의 기록
박건웅 지음 / 우리나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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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일기 - 박건웅

잠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 자는 습관이 있는데, 어제는 막 도착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몇 페이지만 읽으려다 그만 다 읽고 말았다. 80년대 중반 그러니까 20대 중반에 선배들과 사회과학 공부를 할 때 정치, 경제, 철학, 역사를 집중해서 공부했는데, 한국근현대사도 그때 기본을 배웠다.
한국 역사-통사-를 처음 배울 때, '민중사'의 관점으로 배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지배자의 관점으로 쓴 역사이거나, 친일 역사의 관점으로 쓴 역사를 배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는 정치와 뗄 수 없으며, 정치는 경제와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다는 걸 바탕에 깔고 공부해야 한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1984년 동학혁명부터 1987년 노동자대투쟁까지-를 올바르게 공부한 사람이라면, 결코 일베충이나 친일매국노가 될 수 없다. 지금 일베충과 친일매국노, 민족반역자들이 날뛰는 건, 그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학교 교육이 그만큼 부실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학교 교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 건 영어, 수학 따위가 아니라 역사여야 한다. 일제강점기 시기 친일매국노의 범죄와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한 항쟁, 해방 이후 이승만 도당의 독재와 만행을 가르치지 않았기에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가진 일베충과 매국노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아직도 전체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이승만 정권의 최대 학살 사건이자 한국현대사에게 가장 비극적인 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에 벌어졌지만, 이 학살 사건과 한줄로 연결되는 또 다른 학살 사건인 '제주4.3'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1947년 3월부터 시작된 제주4.3 봉기는 제주 경찰이 3.1만세운동 기념식에서 무고한 시민에게 총을 쏴 학살한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제주도에는 인구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갔던 제주도민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1947년 무렵 약 30만 명에 이르렀던 제주도민 가운데 당연히 다양한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공산주의자, 남로당원도 있었다.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에서 남로당을 '토벌'한다는 목적을 갖고 군대를 투입했고, 이건 다시 1948년 '여수, 순천 사건'으로 연결된다. 
즉, 1950년 6월 25일, 공식적으로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던 한국전쟁과 그 직후 벌어졌던 '보도연맹 학살 사건' 이전에 이승만과 극우집단은 대구10.1 사건(1946년), 제주4.3(1947년), 여수, 순천 사건(1948년) 등 일련의 조선노동당과 공산주의자,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들이 일으킨 봉기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미 수만 명의 공산주의자, 노동자, 지식인은 물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전력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승만 정부는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남한에서 좌익 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보도연맹'을 조직한다. 보도연맹을 기획, 관리한 자들은 한때 좌익 활동을 하다 전향한 배신자들과 극우, 친일매국노,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도 단체인 '서북청년단' 등이 주도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예비 검속'이라는 명목으로 불법 체포해 감옥이나 큰 건물에 몰아 넣었고, 그렇게 잡아온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학살했다. '악마의 일기'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그린 그래픽노블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박만순 선생님의 저작 '기억전쟁'임을 작가가 밝히고 있다. 작품은 여러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이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다락방
해방
창고
이름
목총
귀신
외무덤
삼형제
두 얼굴
호환
만세
순이
만남
기억
증언

작품의 형식을 보면, 작가는 그림 형식을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창고'부터 '순이'까지는 의도적으로 어린이가 그린 듯한, 서툰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부분은 실제 학살 장면이 등장하고, 군대, 경찰, 서북청년단의 만행이 잔혹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많아서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림을 서툴게 표현함으로써 공포를 누그러뜨리지만, 어린이의 시각으로 보는 듯한 솔직함으로 이승만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학살했는지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창고'에서 '순이'까지 보도연맹 학살의 직접 내용은 한 소년의 일기처럼 기록되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그림일기를 쓴 형식을 따라 윗부분에는 그림을 그리고, 아래는 내용을 적는 형식이다. 그림은 단순하고, 내용은 짧고 간략하게 생략되어 있지만, 독자는 오히려 그 간략한 형식의 그림과 짧은 내용만으로도 사건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앞부분 '다락방'과 '해방'에서는 주인공 '육삼이'의 이야기와 그가 '악마'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일제강점기 시기, 어린이였던 육삼이는 햇볕을 보면 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는 병이 있어 다락방에서 지낸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자,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몸에 666 문신을 새기고 나왔다고 해서 부모도 그를 '악마'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육삼이는 가장 친한 친구 필순이와 사이 좋게 지내면서 행복한 시기를 보내지만, 자기 뜻과는 상관 없이 보도연맹 가입자들 속에 묻혀 들어가 군인에게 학살당하고, '악마'로 부활한다. 그리고 그는 '창고'부터 '순이'까지 이승만 정부가 저지른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목격하고, '만남'에서 전쟁이 끝나고 4.19혁명이 일어난 이후, 하와이로 망명한 이승만을 찾아간다. 이승만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후 박정희 군사쿠데타, 전두환 군사쿠데타로 이어지는 한국현대사가 압축되어 나타나고, 1987년 민주항쟁이 그려진다.
'기억'에서는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이 나오고, 세월호 참사가 기록된다. 악마가 된 육삼이는 자신이 살았던 고향에 가 보지만, 고향은 골프장으로, 아파트로, 모텔로, 대형 교회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육삼이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666이 사실은 999 즉 '은하철도 999'의 철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의 보금자리였던 다락방 속으로 들어가 엄마를 만난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영혼으로 사라진 육삼이를 보도연맹 발굴단이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힌 곳을 파헤쳐 육삼이의 유골을 발견한다.
'증언'에서는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학살한 당사자 가운데 용기 있는 한 사람의 증언을 통해,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이승만 정권에서 치밀하게 기획하고 실행한 계획된 학살 사건이라는 것을 밝힌다.

박건웅 작가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꾸준히 그래픽노블로 작업하고 있다. '꽃' '노근리 이야기' '홍이 이야기' '어느 혁명가의 삶' '짐승의 시간' '그해 봄' '제시 이야기' '예안송' '아리랑' 그리고 이 작품 '악마의 일기'까지 어느 한 작품 소홀할 수 없는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대목을 그리고 있다.
나는 박건웅 작가의 작품을 초, 중, 고등학교 역사 교재로 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역사책을 읽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픽노블로 만든 작품들은 청소년이 읽기 쉽고, 재미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정식 교재로 쓰지 못한다면, 보조 교재로 청소년들이 꼭 한번씩은 읽을 수 있도록 학교도서관에 배치하고, 선생님들이 추천해서 - 사실, 선생님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 - 청소년들이 이 일련의 작품들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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