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가는 물리학 - 미시세계에서 암흑물질까지, 우주의 실체를 향한 여정
마이클 다인 지음, 이한음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로 가는 물리학

과학책 읽는 걸 좋아한다. 과학 전반의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즐거움도 있고, 과학의 엄밀성, 논리성, 객관성이 인류의 이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기에, 배우는 즐거움과 함께, 합리적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책을 읽기 시작한 건 30대 후반, 40대 초반부터였다. 그때까지 주로 사회과학, 역사, 문학 분야 책을 읽었는데, 여기에 과학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지적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과학책 읽기의 첫걸음은 진화론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나는 믿는다. 진화론을 배우면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알게 된다. 즉, 인간은 자연 속에서 생존하는 수 억의 뭇생명과 똑같은 생명체 가운데 하나일뿐이며, 진화를 거듭하면서 '정신'과 '이성', '언어'와 같은 추상적 개념을 갖게 된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런 배움으로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미개한 시기에 인류가 만든 절대적 존재인 '신'이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런 과정이 중요한 건, 인류가 지구 행성 위에서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우주의 탄생 시점인 138억 년 전의 시간부터, 오늘날 확장하는 관측 우주의 지름 940억 년을 이해하는 배경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 의미를 성찰하고 우주의 비밀을 풀어가는 고등 동물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걸 배울 수 있다.

인류의 지적(知的) 확장은 비균등,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경우, 뛰어난 화가, 발명가, 건축가, 무기 설계가, 조각가, 의학자, 과학자 등으로 전인(全人)의 모델이었다. 어느 시기나 천재들이 있었고, 극소수의 천재들이 한 시대를 끌고 나가면서 인류의 진보가 동력을 얻었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 물리학자는 여전히 극소수의 천재들이다. 평범한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고도의 사고(思考)와 사유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며, 이들의 발견은 인류의 진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책 '우주로 가는 물리학'은 이론물리학자인 마이클 다인이 '물리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역사와 성과, 물리학자의 업적, 물리학 이론을 '가능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책이다. 물리학 입문서, 물리학 개론서로 이해해도 좋은데, 그렇다고 아주 쉽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리학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수식이 전혀 없어도, 말로 설명하는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다.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물리학 용어들이 낯설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 낯선 대상을 만나면 우선 두려움과 불안이 나타나는데, 물리학도 수 많은 법칙과 용어, 개념 등이 낯설어서 어렵게 느껴진다.
이 책이 어렵다면 그건 우리가 전혀 모르는 세계를 설명만 듣고 이해하는 어려움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상당히' 쉬운 내용이며, 물리학에 관심이 있고, 물리학 관련 책을 몇 권 읽은 독자라면 낯익은 물리학자의 이름과 물리학 법칙과 개념들이 등장해서 반갑고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론물리학자 마이클 다인은 누구보다 이론물리학을 잘 아는 과학자로서, 물리학이 다루는 분야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작은 단위인 10-(마이너스)35승의 '프랑크 길이'와 '끈 이론'의 '끈', '양자 폼'에서 가장 큰 수인 10의 27승인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까지 사이에 있는 모든 물질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이 단위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지 99.999%의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이런 세계를 발견하고, 설명하는 천재들이 있기에 보통 사람들의 과학 지식과 이성의 합리적 판단을 하는 근거를 만든다. 
수학자와 과학자가 발견한 '법칙'과 '증명'은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건 엄밀한 검증을 통해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며, 과학이 훌륭한 이유는, 끊임없이 스스로 의심하며, 새로운 발견과 검증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15장으로 구성했으며, 고전물리학의 시조인 아이작 뉴튼의 업적부터 설명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물리학자, 수학자의 이름과 업적만 알아도 물리학의 기본 공부는 한 걸로 볼 수 있겠다. 19세기 이후 물리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등이 발견한 법칙과 논증한 이론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하고 있어서 물리학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리학은 필연적으로 우주와 만난다. 우주는 '무한'해서 매우 큰 수가 등장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매우 작은 수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빅뱅의 순간 10-(마이너스)37초의 순간에 우주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물리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1919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후, 오늘날의 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에서 크게 도약했다. 
양자역학, 끈이론 같은 개념이 등장하고, 물질과 반물질, 암흑물질을 발견하면서 물리학이 감당하는 영역과 질문의 깊이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물리학이 어려워진다는 뜻은 인류가 그만큼 더 많은 우주의 비밀을 알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리학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수식 없이, 숫자와 설명만으로 물리학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으며, 물리학자의 업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고 있어 이해하기 쉬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문 - 장남수 소설집
장남수 지음 / 강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문 - 장남수

작가의 창작은 경험에 바탕한다. 픽션이라고 해서 '순수한 창작'일 거라는 짐작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호러, 공포,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스티븐 킹의 작품 대부분도 스티븐 킹의 경험이 조금씩은 들어 있고, 작품의 작가의 아주 작은 경험을 씨앗으로 자란다.
인간의 상상력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아무리 새로운 상상을 하더라도 그 상상은 반드시 과거에 존재했던 경험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은 욕구와 함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존재하며, 그 두 세계를 얼마나 절충, 타협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세계가 형성된다.
장르 소설이 작가의 상상을 더 많이 주입한 창작이라면, 현실을 더 강렬하게 반영한 소설이 '사회 소설'로 불리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1980년대 전두환 독재와 노태우 정권 때 민주화 투쟁과 함께 노동운동이 폭발했다. 그와 함께 노동문학도 꽃을 피웠는데, 이때 노동문학은 현실의 노동현실과 새로운 사회를 향한 의지가 결합한 '낭만적 노동문학'이었다.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이 쇠락한 원인은 역설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절대 빈곤이 사라지며, 국가의 부가 커지면서 노동자 개인의 삶이 나아지면서였다. 여기에 국가 경영에 실패한 김영삼 정권이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왔고,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되는 한편,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은 씁쓸한 퇴장을 하게 된다.
세월이 흘렀고, 지금 1970년대와 80년대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을 기억하는 사람은 최소한 50대 후반 이후의 중늙은이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야만적이었으며, 폭력이 난무하고, 인권이 존재하지 않던 비참한 시절이었다.
자본의 착취라는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현재의 노동자들은 예전과 다른 생각,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건 자본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은 착취의 이미지를 감추고, 혁신, 자기개발, 첨단, 능력과 같은 가면으로 대중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다른 쪽에서는 끝없는 경쟁, 고용 불안,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개별 노동자를 착취하고, 그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며, 최소한의 임금으로 살아가도록 강제한다. 60년을 산 중늙은이가 이런 말을 하면, 청년들은 '꼰대'라고 말한다.

이 작품집 '파문'을 쓴 작가 장남수는 원풍모방 노동자로 일했다. 2000년 이후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최대 82%까지 올라갔다가 지금은 75% 정도로 낮아졌는데, 1970년대만 해도 대학진학률은 20%를 조금 넘었다. 즉 열 명 가운데 두 명만이 대학에 갔고, 여덟 명은 사회로 나와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장남수도 그때 수많은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라 노동자가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가 발표한 첫 소설 작품집에는 그의 과거 경험이 파편처럼 박혀 있는 걸 발견한다. 그건 오래 된 상처이기도 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부심이기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막심 고리키도 어릴 때부터 세상을 전전하며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그는 사회가 자신의 '대학'이라고 말했고, 사회의 밑바닥, 가난 속에서 피땀 흘리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살아가며 배우고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고, '어머니' 같은 위대한 작품이 탄생했다.

나이 들면서 변하는 사람과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 둘은 분명 다른데, 변하는 사람은 나이만 먹는 사람이다. 외모가 달라지고, 사는 형편이 더 나아지거나 못하게 되어도 그 사람의 내면은 성장하지 않고, 일정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결국 시대의 변화,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 퇴화, 퇴행하는 사람이다.
성장하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노력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과거 10대, 20대 때 노동자였던 사람 가운데 시간이 흘러 여전히 노동자로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변함 없는 노동자로 생활하는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해서 과거의 자신보다 조금씩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성장하는 사람'이다.
장남수는 소년 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하는 10대부터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한 사람이다. 다른 공장보다 노동자로 생활하기 좋은 환경이었던 원풍모방에서 노동조합은 그에게 학교였다. 노동조합 사무실에 있던 많은 책을 읽으며 스스로 공부했고, 노조회보에 글을 썼다.
그는 나중에 더 나이 들어 검정고시를 보고, 성공회 대학교를 졸업했다. 학력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끊임 없이 공부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고, 과거의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서다.

그가 쓴 첫 소설집을 읽었다. 나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살았고, 작가가 겪었던 일도 미미하지만 경험했으며,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동질감과 동료애를 갖고 있다. 그의 소설은 낯설지 않고, 낡았지만 익숙한 가재도구를 만지는 느낌이다.
작가는 작품에서 지금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금이 있기까지 언니(물들인 날), 엄마(엄마의 빛, 그기 머라꼬), 기찬(파문)의 삶에서 과거의 흔적이 묻어날 뿐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 나와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집의 조건), (가이드)에서도 집과 여행의 밝은 면보다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처지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모진 세월을 살았고, 자신을 둘러싼 폭력에 저항하며 좀 더 강하고 날카로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작가는 분노보다는 포용을 선택했다. 작품에서 언니와 화해하는 나, 엄마에게 깊은 연민을 갖는 나, 여행가이드의 처지를 알고 다만 얼마의 수고비라도 남들 모르게 찔러주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따뜻한 마음을 가졌음을 알게 된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 길을 멀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제야 작가로 가야 할 길을 바로 찾았다는 생각을 한다. 첫 작품집을 낸 장남수 작가를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욕망을 파는 집 1~2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욕망을 파는 집 - 스티븐 킹


장편소설. 1천 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지만,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스티븐 킹의 특징이자 장점인 인물 개개인에 대한 서사의 핍진성은 여전히 놀라운데, 작품을 관통하는 서사는 빈약한 편이다. 소설 앞부분에 릴런드 곤트가 등장하고, 그가 잡화점을 시작하면서 이 서사의 끝부분이 보이는 건 나만의 관찰력은 아닐 것이다.
스티븐 킹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그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모든 종류의 부정적 감정이 주인공이다. 탐욕, 이기심, 경쟁심, 질투, 시기, 분노, 차별, 불만 같은 부정적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런 감정은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언더 더 돔'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체스터밀이 거대한 투명 돔으로 갇히면서 발생하는 마을 주민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그린 소설인데, 양상이 조금 다를 뿐, 캐슬록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폭력은 근본에서 같다.

캐슬록은 작은 시골 마을로 사람들이 조금씩은 알고 지낸다. 시골에 살면 한다리 건너 누구네 집에 사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도시처럼 익명으로 살기 어렵다. 마을 행사에도 참여해야 하고, 친하게 지내면 밥도 같이 먹게 된다. 
차라리 도시처럼 철저히 익명으로 살아가면 상대에 관해 모르고, 알고 싶지 않고 관심을 끊고 살면 사건이 발생할 확률도 낮아진다. 대신 도시에서의 삶은 고립되어 외롭고 쓸쓸한 삶이 될 확률이 높다. 어느 쪽 삶을 선택하는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핵심은, 사람과 가까워지면 감정을 나누게 되고, 그 감정의 교류가 꼭 좋은 쪽으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게 이 소설의 배경이다.
인간이 모여 살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필연적으로 경쟁, 질투, 이기심 같은 감정이 나타났다. 이건 한 개체가 생존할 때 필요하기 때문에 발현된 것이며, 부정적 감정이지만 반드시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경쟁, 질투, 이기심 등의 감정은 다른 개체보다 내가 더 노력하고, 성장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건 곧 경쟁하는 동성들 사이에서 우수하고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는 걸 의미한다.
즉,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에서 경쟁, 질투, 이기심, 욕망, 시기의 감정이 발생하는 배경과 원인을 말할 때, 개체 또는 집단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그런 감정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 감정을 개체(인간)가 좋은 쪽으로만 발현하거나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개체와 집단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경쟁'의 경우는 꼭 부정적이지 않지만, '경쟁'하려는 의지와 행동에서 시기, 질투, 이기심 같은 부수적 감정이 나타나고, 이 바탕에 보다 본질적인 '탐욕'이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캐슬록 마을에 어느 날 영업을 시작한 작은 상점 '니드풀 씽스(needful things)'가 사람들 눈에 띈다. 작은 마을이어서, 거리에 가게가 문을 열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지켜본다. 어떤 상품을 파는지, 누가 주인인지, 주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그 가게를 드나드는지 등등.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그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구경하는데, 신기하게도 꼭 자기가 갖고 싶었던, 원하던 물건이 눈에 띈다. 모든 사람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욕망하는 물건을 찾아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가게 주인 릴런드 곤트는 외지에서 온 사람이다. 
여름 한 철 관광객이 잠시 머물다 가는 시골 마을에 외지에서 온 사람이 가게를 열었다는 자체도 뉴스거리가 되고, 그 사람이 파는 물건이 새 제품도 아닌, 골동품이라는 것도 신기한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가게에 별 생각 없이 들렀다 깜짝 놀란다. 마음이 설레고, 심장이 뛸 정도로 갖고 싶은 물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물건이라는 게 너무 소박하고 값싼 것들이라 다른 사람에게는 우습게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애착을 갖는 물건이 꼭 비싼 건 아니다. 소소하고 값싼 물건이라도 특히 집착하거나 애정을 듬뿍 담아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경우가 더 많다. '니드풀 씽스'에서 사람들은 그런 물건을 발견한다.
'니드풀 씽스'의 주인 릴런드 곤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원하는 물건, 그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물건을 보여준다. 즉, 사람들은 자기의 호기심, 욕망을 충족해주는 사람에게 끌리며, 그런 사람의 말을 따른다고 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
작품에서도, 릴런드 곤트에게 물건을 싸게 산 사람들은 릴런드 곤트가 물건을 싸게 주는 대신 '가벼운 장난'을 하나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이때 '가벼운 장난'은 물건을 산 사람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크지 않아 릴런드 곤트의 제안을 수락한다.
하지만, 사람이 연못에 던진 돌멩이가 개구리에게는 목숨이 걸린 것처럼, 누군가 '가벼운 장난'으로 한 짓이, 어떤 사람에게는 목숨을 거는 행위라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가볍게 생각한다.

릴런드 곤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쟁, 이기심, 질투, 분노, 시기, 탐욕 같은 감정을 통제한다. 악마는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사기꾼은 99%의 진실을 말하며, 악마는 친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초등학생 브라이언 러스크는 귀한 야구카드를 '니드풀 씽스'에서 싼값에 산다. 그리고 릴런드 곤트에게 '가벼운 장난'을 하나 해주면 야구카드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노라는 말을 듣는다. 어린이의 영혼까지도 아무런 가책없이 잡아먹는 악마라는 사실을 캐슬록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쪽지, 편지, 애완견 살해, 돌멩이로 창문 깨기 같은,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장난'이 오해와 불신과 질투와 욕망에 사로 잡힌 사람들 사이에서 뇌관이 터지는 것처럼, 어느 순간 폭발하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결과를 드러낸다.
그렇게 캐슬록 사람들은 미쳐날뛰고, 마을 행정위원장 댄포스 키턴은 아내를 살해하고, 공사장에 보관하던 다이너마이트를 곳곳에 설치해 장례식장, 시청 건물, 다리를 폭파한다. 사람들은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마을은 불에 타고, 미쳐 날뛰는 사람들로 캐슬록은 아비규환, 지옥이 된다.

마을 하나를 완전히 궤멸시키고 사라지는 릴런드 곤트의 정체는 독자가 상상하는 그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어느 정도 읽은 독자라면 작품 초반에 이미 정체를 알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보안관 앨런 팽본은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니드풀 씽스'의 주인 릴런드 곤트를 눈여겨 본다.
소설의 마지막은 앨런 팽본과 릴런드 곤트의 대결이 하이라이트지만, 인간 사이에 스며들어 인간을 파멸시키는 악마의 정체가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악마'는 외부에서 들어오는가, 아니면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 그 자체인가.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을 오해하고, 불신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자기 목숨을 대신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사소한 가짜 편지 한 장으로 그 사람을 증오하는 감정이 든다면, 그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인간의 감정은 너무 쉽고 빠르게 바뀔 수 있으며, 대부분의 인간은 어리석어서 외부의 작은 자극만으로도 사랑이 증오로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현명한 사람은 이런 감정의 기복과 변화를 알아채고, 그 감정의 뿌리를 냉정하게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릴런드 곤트가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을 충동해 폭력을 일으키지만, 외부의 개입이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가족, 이웃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중에 - 스티븐 킹

혼령을 보고, 혼령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어떤 경험을 할까. 스티븐 킹은 이런 질문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어머니와 살고 있는 제이미는 서너 살 때 이미 혼령을 보기 시작한다. 그는 너무 어려서 사람과 혼령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를 실제와 똑같이 보고, 대화까지 할 수 있다. 이 능력을 엄마인 티아가 알게 된 건 제이미가 여섯 살 무렵이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작은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아들의 능력을 인정한다.
제이미 엄마 티아는 저작권 대리 사무실을 운영하는데, 꽤 괜찮은 수입을 올리는 업체여서 넉넉한 생활을 한다. 외삼촌(제이미 엄마의 오빠)이 하던 저작권 대리 사업을 물려받아 꾸준히 성과를 내며 넉넉한 삶을 살던 티아와 제이미는 그러나 투자 사기를 당하면서 가진 재산을 모두 잃게 되고 한동안 어려운 생활을 한다.

제이미의 엄마 티아는 리즈와 연인 사이다. 엄마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제이미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리즈는 경찰이지만 마약 운반을 하는 부패한 경찰이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티아나 리즈 모두 2008년 모기지 사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고, 티아보다 리즈의 가족이 더 큰 피해를 당해 리즈가 경찰이면서도 마약을 운반하는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는 계기가 된다.
제이미는 혼령을 보는 특별한 재능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건에 말려들면서 끔찍한 경험을 한다. 물론 엄마를 위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은 작가의 혼령을 만나 쓰다 만 소설의 내용을 받아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끔찍한 경험을 더 많이 한다. 더구나 엄마의 연인이었던 경찰 리즈에게 납치당하면서 생명이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하는데, 기지를 발휘해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난다.

제이미의 도움으로 엄마 티아는 저작권 대리업이 다시 좋아지고, 수입이 많아지면서 다시 안정적 생활을 하게 된다. 제이미의 외삼촌이자 엄마의 오빠인 해리가 요양원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요양원에 간 제이미는 혼령 해리를 만난다. 그리고 묻지 말았어야 할 질문을 한다. 삼촌, 내 아빠가 누군지 아세요?
이 소설은 제이미의 성장소설이다. 제이미의 독백으로 진행하고, 제이미가 여섯 살 무렵부터 막 성년이 되는 열 여덟 살까지의 이야기 가운데 삶에서 중요한 경험을 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제이미는 이 이야기를 '공포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어린 제이미가 외부모인 엄마와 둘이 살면서 겪은 인생 이야기이면서 결코 바라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제이미의 슬픈 탄생과 성장의 이야기다. 제이미는 엄마와 비교적 넉넉하고 행복한 삶을 살며 성장하지만, 그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깊은 딜레마에 빠진다. 즉,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놓인 딜레마와 같은, 결코 돌이킬 수도, 잊을 수도 없는 낙인을 가슴에 찍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제이미는 테리올트의 혼령이 사라지지 않고 자기를 따라다닌다는 걸 알게 된다. 폭탄을 건물에 설치해 많은 사람을 해치던 폭파범 테리올트는 정체가 드러나면서 자살하는데, 제이미는 형사 리즈의 강압으로 테리올트의 혼령을 보게 되고, 그에게 마지막으로 설치한 폭탄이 어디 있는지 알아낸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생명을 구했지만, 정작 테리올트의 혼령이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제이미의 뒤를 따라다니며 괴롭히자 제이미는 존경하는 버켓 교수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는다.
제이미는 테리올트의 혼령이 나타나자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먼저 다가가 그 혼령을 끌어안는다. 혼령을 지배하는 힘은 실체가 없었지만 마치 지구 밖 멀고 먼 외계에서 온 존재로 여겨진다. 그동안 제이미가 봤던 혼령들은 제이미가 묻는 말에 진실을 말했으며, 공격적이지 않고, 일주일쯤이면 혼령의 존재가 사라지지만, 테리올트의 혼령 내부에 또 다른 무언가 존재하고 있어 테리올트는 시간이 많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다.
제이미가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달려들자 그 존재는 오히려 겁을 먹고 도망한다. 제이미는 그 존재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제이미가 부를 때면 언제든 나타나기로 약속한다. 버켓 교수는 제이미에게 말하길,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존재를 다시 불러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존재는 무얼까. 단순히 외계에서 온 불가항력의 존재일까. 그건 제이미의 정신 세계로 읽힌다. 아버지 없이 자란 제이미는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없는 정신적 허기를 느낀다. 아이에게 엄마는 하나의 우주, 절대 세계이면서 온전한 존재다. 그런 엄마가 로즈라는 동성의 연인과 사귀고, 사랑을 할 때, 제이미는 질투, 공포, 외로움,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제이미는 성장 과정에서 느낀 이 부정적 감정에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가 온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접어드는 질풍노도의 시기, 정신적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면서도 쉽지 않은, 부모를 뛰어넘어 자기의 정체성과 자아의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 시기가 닥치고, 제이미가 겪은 혼령과의 대화나 보이지 않는 끔찍한 존재와의 사투는 제이미가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독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제이미가 알게된 출생의 비밀로 이 소설은 공포에서 잔혹극으로 변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비밀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한 사람의 삶과 존재를 규정하거나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다.

제이미가 알게 된 비밀은 더욱 그 자신은 물론,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심각한 비밀이었고, 그걸 아는 순간 제이미의 삶은 근본에서 흔들린다. 그가 혼령을 보고, 혼령과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그의 삶을 뒤흔든 것처럼. 그 둘은 결국 같은 의미이며, 자기 정체성을 상징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도에서 - 스티븐 킹

스콧 캐리는 40대 백인 남성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기획, 제작하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다. 키는 190센티미터가 넘고 몸무게도 120킬로그램이 나가는 거구인데, 평범하고 선량한 남성이다. 이웃의 은퇴한 노인이자 의사였던 밥 엘리스와 친하게 지내는 스콧은 최근 자기에게 벌어진 일을 말한다.
날마다 몸무게가 줄어들고 있다면 좋은 일일까. 어느 정도까지는 좋은 일이겠으나, 스콧에게 일어난 것처럼 감량이 멈추지 않고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오로지 '몸무게'만 줄어든다면.
스티븐 킹은 '몸무게가 줄어드는 남자'라는 아이디어로 짧은 소설을 한 편 썼다. 평소라면 이 정보 분량은 단편집 모음에 들어가는 게 맞을 정도다. 내용도 그렇고, 분량도 중편 수준이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을 하나의 '장편'으로 펴낸 걸까.
스콧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심지어 행복하다고 느낀다. 비록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지만, 지금 하는 프리랜서 업무가 잘 풀려서 몫돈을 만졌고, 건강도 아무 문제 없고, 좋은 이웃들과 지내며, 나쁜 일이 일어나지도 않고 그럴 만한 꼬투리도 없다.
이웃에 사는 레즈비언 부부(가운데 남편 역할을 하는) 매콤과는 조금 불편한데, 그 집의 강아지들이 스콧의 마당 잔디밭에 똥을 싸기 때문이다. 스콧은 강아지와 산책할 때 목줄을 하고, 똥을 치워달라고 말한다. 매콤은 필요 이상으로 스콧에게 냉정하게 대한다.
레즈비언 부부인 매콤과 디어드리는 보스톤에서 이사온 '결혼한 레즈비언 부부'로, 이곳에 채식 식당을 열고 운영하고 있다. 음식은 맛있지만 보수적인 동네여서 레즈비언 부부를 곱게 바라보지 않고, 뒤에서 흉을 보거나 험담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스콧도 안다.
마을 축제의 하나로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스콧도 참가한다. 매콤은 다른 지역의 달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아마추어보다는 잘 달리는 실력인데, 스콧은 그런 매콤에게 내기를 하자고 요청한다. 스콧이 이기면 스콧의 집에서 채식 요리를 먹으며 이웃으로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 전부였다.
매콤이 보기에 거구의 중년 백인 남성인 스콧은 달리다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아 보였지만, 농담인줄 알면서도 그러자고 한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하고, 스콧은 처음에 천천히 뒤쳐지다가 조금씩 속도를 내며 앞으로 나간다. 결승선이 가까워지면서 폭우가 쏟아지고, 매콤을 추월하던 스콧은 넘어지려는 매콤을 부축해 일으켜 그가 결승선을 먼저 지나가도록 돕는다.
지역신문에 두 사람의 사진이 실리고, 문을 닫을 위기에 있었던 매콤과 디어드리의 식당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자리를 잡는다. 이들 매콤과 디어드리 레즈비언 부부에게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은 스콧이었고, 이제 그들은 스콧의 주방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이웃의 밥 엘리스 부부와도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친밀한 사이가 된다.
스콧은 그들에게 자기의 몸무게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고 밝히고, 곧 몸무게가 0에 수렴하면 자신은 떠난다고 말한다.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가장 가까운 이웃인 밥 엘리스 부부와 매콤 부부에게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스콧의 몸이 저절로 허공에 떠오를 정도가 되던 날, 스콧은 매콤의 도움을 받아 커다란 풍선을 잡고, 허리에는 폭죽을 매달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밥 엘리스 부부와 매콤 부부가 하늘로 올라가는 스콧을 지켜본다.

스콧은 왜 몸무게가 날마다 줄어들까. 스티븐 킹의 아이디어는 단순했을 걸로 본다. 날마다 몸무게가 줄어들다 마침내 0에 수렴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스콧은 자기 몸무게가 줄어드는 걸 보면서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암에 걸리지 않고, 병에 걸려 고통당하지 않고, 몸무게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몸무게'는 육체적, 물질적 의미의 '몸무게'이기도 하지만, 스콧의 정신 연령일수도 있고, 존재의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일수도 있다. 스콧은 큰 고민 없이 사는 평범한 백인 중년 남성으로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서 '인생의 환희', '삶의 기쁨', '존재의 감동'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즉,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일상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스콧의 소멸은 스스로 지금의 현실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결과다. 스콧이 자신의 소멸을 바라지 않아 보이지만, 그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온전히 인정한다. 날마다 몸무게가 줄어드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몸무게가 머지 않아 0에 수렴하면 자신이 소멸할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스콧에게 좋은 이웃이 있지만, 이웃은 본질에서 스콧의 삶을 붙드는 강력한 의미를 갖는 존재는 아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가족 사이에서도 자살하는 가족이 있는데, 아무리 가까운 가족도 '개인'의 존재에 관한 본질적 고민과 고통에 관해서는 교감하기 어렵다. 
스콧이 어떤 외부의 영향이나 작용 없이 저절로 몸무게가 0에 수렴하는 현상은 온전히 스콧 내부에서 발생한 존재론적 문제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소설이 공포, 호러, 스릴러가 되려면 스콧의 몸무게가 0으로 수렴하는 원인과 과정에서 불가사의하거나 끔직한 일이 벌어져야 하는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시 스콧의 상황을 객관의 눈으로 보자면, 스콧은 40대 백인 남성으로 몸집이 크다. 그는 혼자 살고, 가까운 이웃이 있지만 또래의 친구는 없다. 결혼했지만 이혼했고, 자녀는 두지 않은 걸로 나온다. 그에게 가족은 멀리 사는 고모가 한 분 계실 뿐이니 고아나 마찬가지다. 스콧은 외로운 남성이다.
천성은 착하고, 나름 밥벌이는 하지만, 여성에게 인기가 없고,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스콧은 이렇게 살아가는 나날이 지겹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게 공허한 나날을 보내던 스콧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시한부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게 암이든, 병이든, 자살이든 마찬가지다. 그는 결심했고,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그의 몸무게가 0으로 수렴하는 시간은 불과 두어 달. 그때까지 마음을 다스리며 이웃들과 즐거운 시간을 만들기로 작정한다.
이 작품을 홍보하는 전단지에서는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전에 없던 상냥함'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작품은 고독한 삶을 살던 중년 남성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록 스콧 자신이 선택한 마지막이긴 해도, 모든 마지막은 슬프고, 안타깝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