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어린아이, 인간 - 인간은 어떻게 유아화되었는가
클라이브 브롬홀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제목부터 흥미를 끌었는데, 읽기 시작하면서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인류학, 생물학의 관점에서 현존하는 인류가 어떻게 진화를 했는지 아주 재미있는 이론 하나를 내 세워서 진화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론은 바로 ‘유아화’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완전히 성숙하지 않고, 유아화하면서 집단화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집단화’라는 것은 힘이 약한 동물이 강한 동물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집단화와 완전 성숙의 관계는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인 침팬지, 보노보노, 고릴라 등을 통해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완전 성숙한 단계에 이르면 서로 강하게 경쟁하고 독립, 개별화하기 때문에 집단화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집단화 이후, 인류는 한 곳에 무리지어 살 수 있었고, 협동을 통해 사냥과 채집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유아화-즉, 생물학적 퇴화-는 암컷보다는 숫컷이 더 심해서 오늘날의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지적,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것도 다 그런 이유랍니다. (뭐, 저는 이 이론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
유아화가 덜 진행된 서구의 종족들이 더 폭력적인 것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고, 동양의 인종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유아화가 진행되었답니다. 물론 인종차별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 아주 흥미있는 내용 가운데, ‘동성애’ ‘사랑의 탄생’ ‘일부일처제’ 등이 있는데, ‘사랑’이라는 감정도 ‘암컷’ 즉, 여성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하는군요. 여성들은 자신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있는 숫컷(남성)을 원하게 되는데, 그런 본능적인 행동에 의해 ‘사랑’이라는 감정도 생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일처제도 그렇구요.
현재, 대부분의 남성 중심주의 사회인 가부장제는 남성들이 경제권을 쥐면서 이루어졌는데, 남성이 여성에게 이토록 폭력적인 이유가 바로 ‘여성에 대한 두려움’, 즉 다시 옛날처럼 모계 사회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라는군요. (전 모계 사회로 돌아갔으면 하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닌 - 밀레니엄 프로파일 1
로버트 서비스 지음, 정승현 외 옮김 / 시학사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맑스와 엥겔스가 나오면, 당연히(!) 레닌이 나온다고 예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구 소련의 정치체제가 붕괴하면서 레닌의 동상이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것을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보았습니다. 레닌 자신은 결코 우상 숭배가 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만, 스탈린을 비롯한 후계자들이 레닌을 ‘인간’에서 ‘우상’으로 탈바꿈시켜놓고 말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칼 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맑스 자신은 ‘맑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으니까요.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것이 ‘사회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맑스의 이론을 현실 속에서 실천으로 성공한 사람이 바로 레닌이니까 말입니다.
즉, ‘과학적 사회주의 사회’를 구현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레닌이었기에 레닌 동상의 철거는 ‘사회주의 사회’의 붕괴와 같은 의미를 같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많은-특히 레닌의 적들-사람들은 레닌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닌은 그 누구보다도 책을 좋아하고 토론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방적인 독재자가 아니라 합리적인 정치가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는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였으며 무장 투쟁으로 국가의 체제를 바꾸고 현대사를 송두리째 휘감아버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만명의 한 걸음보다는 소수의 열 걸음을 더 가치있게 생각한 ‘정예 혁명가’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시기에나 그 시기에 맞는 인물이 나타난다고 본다면, 레닌은 전제정치에서 민주정치로 가는 과정에 나타난 불세출의 인물일 것입니다. 영웅은 그 스스로 나타나거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내는 부산물이자 시대를 바꿔놓은 매개물이기도 합니다.
레닌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레닌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맑스와 엥겔스에서 레닌으로 이어지는 혁명가의 대열은 마치 쇠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결코 끊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19세기 말에 나타난 거대한 봉우리이고 레닌은 20세기 초기에 나타난 거대한 봉우리입니다. 매 시기마다 거대한 봉우리가 솟아올라 이어지면서 산맥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였고, 모든 사람들은 ‘프로’였다.

나 역시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5년의 세월이 흐르고, 깨달았다.

‘치기 어려운 공은 치지 않고, 받기 어려운 공은 받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내가 늘 마음 속에 그리던 삶이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와 똑같았다는 것을.

나는 결코 ‘프로’가 될 수 없고, 되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프로’의 강박에서 벗어나렵니다.

모두들 행복한 ‘프로’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이 글을 쓸 때는 회사에 다닐 때였고, 조금 우울한 상황이었습니다.

경쟁, 비교, 실적 등 모든 직장인들이 떠안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많이 들던 때여서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게 되었나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맑스 엥겔스 평전
하인리히 겜코브 지음, 김대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평전을 읽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시간 정도씩 읽으면서 너무나 좋았던 책입니다. 다 읽기가 아까운 그런 책 있죠?

잘 쓴 평전은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무수히 많은 오해와 왜곡으로 칠갑된 인물일 경우, 올바른 평전은 한 인물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기도 합니다.

근현대사의 세계적 인물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그의 반대자들마져 동의한-인물이라면 당연히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입니다.

사실 칼 맑스는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또한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물질적, 물리적 토대가 사라지고 나서도 여전히 역사적 의미를 잃지 않을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인류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인류의 근본을 뒤흔든 역사, 경제, 철학 이론을 제시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제 사회로 이행할 때, 자본가-부르주아-의 역할에 대해 방향을 제시했고, 부르주아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높이 평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의 역할과 사명, 의무에 대해 강력한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자본가와 자본가가 구성한 의회, 언론, 국가 권력은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노동자 계급의 성장에 대해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고 물리력을 강제한 탄압으로 체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2백년이 넘는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노동자 계급의 성장은 본질적인 면에서 처음이나 현재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 시간, 복지, 문화, 생활 수준, 건강 상태, 위생 상태 등이 상대적으로 좋아진 것은 그만큼 물질의 생산력이 증대했고 노동자 계급이 투쟁을 한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노동자 계급이 멈칫거리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자본가(와 그의 국가)는 즉각 반격에 나서 노동 조건을 퇴보시키고 노동 시간을 늘리며 임금을 삭감하고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자본’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해부한 완벽한 이론서입니다. 어떤 자본주의의 경제학자도 두 사람이 쓴 ‘자본‘의 분석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오늘날에도 가장 위대한 저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자본’을 포함한 두 사람의 저작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이끌고 나갈 새로운 주인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역사가 발전한다고 했을 때, 원시 공산제, 노예제, 봉건제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가 올 것이며 그 세계는 더 이상 착취와 억압이 없는 평등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두 사람은 믿었습니다.

바로 그 평등과 자유의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이 노동자 계급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도 자명한 논리 앞에 많은 사람들은 의심하기도 하고 열광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인류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견했습니다.

이 책은 19세가 유럽의 정세를 비교적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1848년 독일 혁명부터 1876년 프랑스 혁명, 유럽 노동의 역사인 제1인터내셔널, 제2인터내셔널의 탄생에 관해 맑스와 엥겔스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 당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노동자 계급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맑스와 엥겔스의 우정입니다. 두 사람은 진정으로 ‘친구란 두 개의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는 말처럼 마치 한 사람인양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맑스가 이룩한 모든 위업은 또한 엥겔스가 이룩한 것이며,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없었다면 이 모든 업적은 결코 나올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맑스와 엥겔스에 대해 일부분만 알고 있던 저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정보와 균형잡힌 시각으로 맑스와 엥겔스의 삶을 볼 수 있게 했고, 그래서 더욱 두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신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199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엊그제 카프카 작품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카프카를 처음 만난 것은 어릴 때였는데, 그때 읽었던 ‘변신’과 엊그제 읽은 ‘변신’은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으로는 주인공이 어느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했고, 그러다가 죽는다 정도였다면, 이번에 읽으면서는 정말 슬픈 느낌이었습니다.

카프카는 보통 난해한 소설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고, 어느 정도 타당한 내용입니다.

그가 쓴 글들 대부분은 고도의 상징과 은유를 내포했지만, 실제 표현하는 방식은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이어서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게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변신’만큼은 ‘사실적 환상’보다는 ‘상징과 은유’라는 면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삶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한, 인간이란 ‘벌레’와 같은 미물이라는 존재를 강렬하게 일깨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 가족과 개인, 가족의 근본적인 의문을 이 작품은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가족에게서도 소외된 주인공은 결국 자신을 ‘벌레’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한 이유는 중층적이어서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적 가족 관계에 동시에 걸려 있고 그런 체제와 제도, 관계 속에서 소외당하는 ‘인간’, 자연인으로의 인간의 좌절을 그린 작품이라고 봅니다.

카프카의 ‘변신’이 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은 우리 사회가 카프카가 살았던 그때와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회의 구조가 억압적일수록 사회와 개인, 가족과 개인의 관계가 비인간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