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집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이 나아갈 바를 명확히 하지 못할 때(자의든 타의든), 지식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분명히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집>>은 그 답을 서설의 형식으로 모여주었다. 이진선이란 주인공의 삶을 통해서 시류에 표류하는 지식인('인류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의 일기로 말이다. 나는 이 일기형식을 빌린 수밖에 없는 소설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왜 소설의 형식은 일기인가?'
또 '지식인에게 일기 쓰기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필역 하고 이를 행동의 중심 축으로 놓여지지 못할 때, 혹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확고하지 않거나 불확실한 정황에 기인한다고 생각되어질 때, 또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펼친다해도 사회가 이를 배척할 때, 지식인은 사회와 행동에 괴리된다. 이를 허심탄회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일기이다. 지식인은 일기를 통해서 자신이 사회에 대해 외치지 못한 것을 말하고자 할 것이다. 이진선이 일기에 끊임없이 현실문제에 생채기를 하듯 말이다.

또한 개인적 글쓰기인 일기는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고 또 그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행동에 채찍질하는 행위이다. 이런 일기를 '인류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지식인이 쓴다면 아마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무능력함과 혼돈 그리고 아쉬움을 수없이 되새기는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은 아마도 이진선처럼 시대의 흐름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절차가 차단된 지식인일 것이다.

자신의 길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개인의 능력부족이든 시대의 경직성 때문이든) 지식인들의--더구나 사회 변혁에 주요한 일원으로 간주하는-- 수를 헤아릴 수 없다고 간주한다면, <<아름다운 집>>은 그들을 속앓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만개하기도 전에 사그라진 꽃들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지식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었다는 점은 지식인에 대한 평면적인 이해에서 보다 인간적인 일면으로까지 확대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점 때문에 최인훈씨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광장>>보다 뼈아픈 역사의 흐름에 표류하는 지식인을 보다 확연히 그려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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