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그림일기
오세영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7·80년대 운동권 필독서라 불리는 사회과학서적이 있었듯이 만화에도 그런 필독서가 있다. 대표적으로 허영만의 <오! 한강>같은 만화 말이다. 이 만화는 제도권의 억압으로 인해 작가의 의지와 저항이 동요(사회의 불만과 안쓰러움이 덜 소화되어 배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 한강>을 통해서 현실도피와 사회의 압력에 굴종할 수밖에 없고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모습을 인정해야만 하는 동일률을 찾을 수 있었다. 시대의 '암울함', '아픔' 같은 단어들만 떠올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90년대 만날 수 있었던 <부자의 그림일기>는 투철한 작가의 의지와 절실한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이 현실사회에 대한 정확한 모사됨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작가주의의 정신의 최고봉이라고 칭송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한 내 주위의 많은 타인들의 삶을 오세영씨가 <부자의 그림일기>에서 잡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자연스럽게 습득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회에 대한 저항이 너무도 지나쳐 덜 익은 문제의식이 그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혹은 듣는 이) 인상을 찌푸리게 하지만 오세영씨의 그림에는 현실의 불만족성을 보다 정확히 보도록 하는 시각을 선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의 그림일기>에는 현실에 대한 희화성(폭로를 위장한)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만화에 대한 일반적 관념인 '재미'를 배제한 것이다. 진중함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노동 대중의 고단함, 쓰라림을 잡은 그림 하나하나가 웃고 넘어가는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또는 그들의 삶을 홀대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 문제의 다양한 모습이 갖는 사회문제의 핵심을 직시할 수 있는 시각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단순히 인물의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인물을 통한 사회문제의 핵심인 보편성을 드러내고있기 때문이었다.

'불'의 마지막 그림인 한가족의 TV시청그림이나 '목록'의 마지막 그림인 한 신사의 구겨진 뒷모습에서 한 두 세대가 포함된 가족사가 현대사의 굴곡에 엮어있음을, 수출국가의 뒷모습은 노동자의 피가 있을 허울좋은 신사의 모습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회성 상품이 아니라 깊은 이해와 섬세한 시각이 담긴 작품(작품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이 담긴 만화임을 단언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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