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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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답 같은게 있을까?  정답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그건 오해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정답이라고 말할 때 의미는 오직 자기 기준에서의 정답일 뿐일테니까.   보편 타당한 진실은 과학세계의 발견 안에서만 가능하다.  인생상담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어쩌면 교회나 사찰 같은 것, 혹은 성직자는 필요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길만한 담대한 용기와 지혜를 갖고만 있다면.  종교적 진실은 모든 경전에 다 기록되어 있는 것이니 보고 행하면 된다.   경전을 펴들면 절대의 언어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친다.  문제는 가르침을 행할 용기와 지혜가 부족하고,  인간이 숱하게 유혹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반복해 기도하고 신을 찾고 용서를 구하고 다짐해야 한다.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망각의 귀재요, 반복해야만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어리석은 존재들. 그게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 가련한 인간을 투사하는 것이 문학이다.  

순문학은 어떤 면에서 맛이 없다.  달콤하지 않고 고달픈 현실의 장면들로부터 잠시도 벗어남을 허락하지 않는다.  순문학은 독자의 또다른 현실을 복사한다.  달콤하지 않고 즐겁지 않아도, 순문학을 즐겨 읽는 것은 가끔 고통으로부터 얻는 쾌락 같은것에 물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현실'이 아닌 `주인공의 현실'에 잠시 몸담는 일은 고통을 배가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인생의 정답에 다가가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런 행위는 주인공의 현실로부터 삶의 다층성을 확인하고 나의 궁지와 운명 같은 것에 반항하는 힘을 북돋는 일이기 때문이다.  판타지에 단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 오직 순문학 세계만을 배회하는 나같은 독자들은 가끔 인생을 너무 경직되게 바라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읽어야할 순문학 작품들이 넘치고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할지언정 `위로하고' `회복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모든 순문학 작품들은 내게 상담실의 교사와 같다.  직접적인 해결책은 건네지 못하지만, 언제나 상담실을 나오면 마음만은 가볍지 않던가?    

은희경의 신작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를 읽었다.  그의 신작도 반가웠지만 그의 이름은 내게 시간을 20대 초입으로 되돌렸다.  군대 내무반에서 꺼내 든 은희경의 작품 <새의 선물>을 읽은지가 10년이 훨씬 지났다.  군문을 빠져나오면서 내게 뿌듯했던 일은 내무반의 책들을 모두 읽었다는 것이었고, 그 책들을 통해 내 머리가 굳지 않았다는 위안 같은 것이었다.  그 위안에 은희경의 작품도 한몫했을 것 같다.  두번째로 난 하나의 다짐을 해두었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군대 생활에서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되돌아보고자고. 그러나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언제나 그러한 다짐은 뒤로 뒤로 미루어졌다.  이제 그런 시간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학이 아니었다면 삶을 성찰하려 시도하기나 했을까?  30대의 내게 은희경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던가?  10년 넘는 세월을 지나 다시 찾은 은희경의 상담실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을까?   

17살 소년 연우, 매사에 심드렁하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공부에도 소질은 없다.  싸움을 잘하지도 못하고, 용감하게 나서는 성격도 아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 가운데 뛰어나지도 뒤떨어지지도 않고, 특별하지 않아서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는 아이.  어쩌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런 성격이 아닐까?  그래서 그는 17살을 은연중에 대표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전체를 통해,  연우는 나의 17살을 기억하게 한다.  세대의 차이가 날 일이지만, 오늘의 17살을 상상하게 해준다.  17살, 이성에 대한 설레임과 주어진 과업(학업)에 대한 고민, 주위의 환경에 불만을 드러내지만 적극적으로 뭔가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무능력 아래 무기력해지는 나이.

연우의 엄마, 신민아씨.  이혼을 하나의 사건 이상으론 해석하려 들지 않는 사람.  연우의 유아시절, 아이들 속에 섞여 있는 자신의 아이가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생명체란 사실은 그를 쿨한 이혼녀로 씩씩한 엄마로, 연우 앞에 서게 했다.  옷 칼럼니스트, 여덟 살 아래의 연인 재욱과 티격태격 하지만, 차분한 사랑을 키워간다.  알콜중독자 같이 술을 즐기지만, 과도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모든  이혼녀가 저런 툴툴한 성격에 뒤끝없는 사랑을 할 줄 알고, 털털하지만 때론 세심한 엄마의 역할을 할 줄 만 안다면 얼마나 매력적일까?

실력있는 문화평론가지만, 아웃사이더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 재욱 형.  그는 이혼녀의 애인이라는 흔치 않는 캐릭터.  제도권 안으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자기의 스타일대로 자기 멋과 생활을 즐길 줄 아는 용기 있는 남자.  17살, 또래들에게 진지한 조언을 건넬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티격 태격 하는 모습에서 진한 인간미를 발한다.  

그리고,  연우의 여자친구, 채영. 카프카를 읽고 글을 제법 잘 쓰는 아이.  부유한 부모의 보살핌 아래, 부러울 것이 없지만 과도한 사랑과 집착에 상처를 품고 있는  17살.   그리고 연우의 절친 독고태수와 마리.  랩과 춤을 사랑하는 소년과 공부에 소질있는 범생 소녀.  모두 우리들의 기억속 17살 또래 친구들.  반갑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린 어떤 모습으로 17살을 살 수 있을까?  17살 이후의 모든 기억들을 지우고, 세상이 그런 저런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약간 씁쓸한 기억들을 삭제해 버릴 수만 있다면, 우린 다시 17살을 더 잘 보낼 수 있을까?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꼬마들이 `바른 생활'을 먼저 펴들 듯, 17살 아이들은 성년으로 살아갈 계급과 지위를 얻기 위해 교과서를 펴들고 `열공'한다.  모든 것은 제도권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교육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잘 살아간다는 것은 `옳게' 살아간다는 말과 다르다.  학교는 옳게 가 아닌, 잘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거대한 공장이니까. 그 공장은 여느 공장과 다르지 않는 구호를 갖고 있다.  최고의 품질, 고객 만족 !  그런데 그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사온 집, 연우의 방은 그 방을 썼던 아이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거울이 걸려 있던 곳은 바래지 않은 하얀 벽지로,  침대에 누워서 보니 거대한 새 한 마리의 완성되지 않은 날개가 돋아나 있다.  그 방 창문을 내려보다 한 소녀가 그 안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발견한다.  17살에게도, 사랑은 진실이다. 어쩌면 일생 가장 완전한 의미의 사랑일 것이다. 조건이나 욕망보다는 끌림과 호감이 우선일 테니까.  소설은 연우의 느릿하고, 차분하지만, 순정만화 같은 채영과의 사랑을 담아내려 한다.  작가는 아바타의 몸짓으로 채영과 연우를 연기하고, 살아낸다.   아바타의 몸을 빌려 독자들은 시간을 거슬러 17살의 시간속으로 여행한다.  잊혀진 기억들을 더듬는다.  그 기억들 속에서 감추어진 비밀들과 만날 수도 있다.  어쩌면 17살은, 생의 청사진 였을지도 모른다.  순수가 아닌 가장 추한 시기일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담고 한 발을 디디면, 어른이 된다. 

말썽을 부리며 문제아로 낙인찍힌 독고태수나 영원히 소녀로 남을 것만 같은 채영,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모와 선생님이 좋아할 것 만 같은 범생 마리. 그들은 그들의 부모로 환생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마 똑같이 어쩌면 비슷하게, 그들의 아이들을 갖게 될 것이고, 그 아이들의 눈에 고리타분 비춰질 지도 모른다.  영원한 반복속에서 소년과 소녀는,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생을 규정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고 타인을 연민과 위로의 시선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때로는 세상 모두를 위로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을 한탄 할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 모두가 성인(聖人)이 될 수는 없다.   17살, 연우와 친구들은 인생의 어느 시기가 오면 자신들이 보냈던 17살을 갈망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 완전할 수 없고 나이를 먹을 수록 끝없이 흠결들을 보태어야 하는 것이 삶임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갈수록 순수와는 거리가 먼 행위가 아닌가.  그러나,  뭔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 우리들의 생에 실망하며 멈추고 싶을 때,  우리는 이 소설속 문장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아랫배에 힘을 준다.  어깨를 크게 들먹여서 흐느끼듯이 숨을 조절한다. 아, 더 달릴 수 있구나. 나 지금, 나라고 하는 전 존재, 나라고 하는 전 우주를 오롯이 혼자 짊어진 채 달리고 있는 거야. 내가 팽개치는 순간 그것은 산산조각이 나고 내가 떠메고 나아가는 한 그것은 전진한다. 나는 나다. 어쩐지.  어쩐지, 스스로 강해지는 기분......."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p.271

이혼의 곤경들을 안고 싱글맘으로 살아온 엄마의 아픔은 직설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마시는 술은 사회적 곤경과 생활의 궁핍을 달리 표현하고 있다.  이혼녀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편견, 제도권으로부터 벗어나 아웃사이더로서 스스로 모든 생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하는 재욱 형의 처지는,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카페에 앉아 도란도란 밤늦도록 세상과 사랑을 담소하는 그들의 언어속에서, 우린 위안을 발견한다.  돈과 권력과 지위, 는 17살 아이들이 획득해야할 유한한 자산이다.  그러나 유한한 자산은 차지 하는 이와 차지 하지 못하는 이로 세상을 나눈다.  부유한 태수와 마리, 채영의 부모들도 결코 완전하게  행복하지 않는건 마찬가지인 듯 보인다.  살면서 세상의 작은 것들로부터 우린 위안을 얻는다.  이 세상은 거대한 것들로만 구성돼 있지 않다.  공룡의 시대에도, 개미는 존재했다.  거대한 것들은 세상의 호령할 조건이언정, 살아갈 조건은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소수 아웃사이더들의 독창적이고 분방한 삶을  연민이 아닌 때론 동경의 심정으로 바라보는것 아닌가.  용기없이 규격화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니까.

태수의 죽음과 채영이 쓴 판타지 소설,  G-그리핀 랩, 마리의 질투, 연우의 달리기.  생의 비극과 즐거움, 희망, 쾌락, 흠결들, 인생의 모든 요소를 적절히 배합한 은희경의 신작은 30대를 살아내고 있는 독자에게 차분히 삶을 응시하고 되돌아보고 생각하고 기록하고, 정리할 것을 요구한다.  이 작품은 세상이 규정한 17살은 애초에 무시하고, 이혼녀에게 던지는 사회적 편견에 웃어주고,  실력있는 아웃사이더에 보내는 핀잔을 가볍게 토스하면서, 좀더 넉넉한 이해심을 발휘해 보는게 어떤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그 시절,  전방 산악 지대의 야간 경계 근무를 마친 새벽시간, 상황실에서 흘러나오던 형광들 불빛을 벗삼아 고요한 밤 읽어내려가던 문장들, 잠안자고 책이나 읽는다는 소대장의 핀잔에 침묵으로 저항하며,  왜 그렇게 그러한 문장들에 집작했던가. 뭔가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은희경을 읽던 시기는 비교적 자유분망하던 때였다. 소대원들과 떨어져 파견 근무를 나와있던 이른 초여름.  은희경의 문장들은 선들선들한 바람결에 내 생의 어느 시기, 내 영혼을 노크했던 것이다.  

이제, 군문을 나오던 시절의 간절한 고뇌는 잊혀진 유행어처럼 싱거운 것들이 되어 버렸다.  이제 나는 안정과 넉넉함을 향해 매일 아침 정글을 헤집고 사냥을 나간다.  고민이 있고 성취가 있다.  아직 보수주의로 뇌가 굳어진건 아니지만, 가끔 이유없이 내면이 공허감으로 차올라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20대의 어느 시절 터득한 그 방법으로 인생의 공허와 권태에 맞서리라.  문학에는 삶의 풍경들이 있다. 인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다.  닮고 싶은 개성이 있다.  유쾌한 즐거움과 멋드러짐이 있다.   문학은 포기할 수 없는 내 삶의 로맨스다.  은밀하지만 건전한 로맨스다.  로맨스 하나 없는 삶은 얼마나 재미가 없나?   은희경이란 상담실의 문을 닫고 되돌아오는 길에,  깨닫는다.  아, 문학은 여전히 `당신을 위로하는 힘'이었구나. 

"고정된 편견을 깨주는 이 고등학생 래퍼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삶의 클래식에 대해 생각해본다. 과연 어떤 삶이 정통일까.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세계에 태어난 사람들. 자신이 진실하지 않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시스템의 보호를 받기 위해 거짓으로 살아가는 것? 아니다.  어쩌면 진정한 클래식이란 자기 자신이라는 세계가 아닐까?   솔직해지자. 자신의 존재만큼 큰 것은 세상에 없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스스로가 누군지 알고 그리고 드러내야 한다. G-그리핀처럼. "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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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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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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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문학을 선호하고 즐기는 사람인 내게도 여전히 김훈의 소설은 어렵고 힘들다.  소설책이란 쉽게 쉽게 넘기는 맛에 읽는 거야, 란 어쩌면 김훈의 소설에선 통하질 않는 얘기다.  김훈의 문장들은 어렵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겁고 둔중하다.  시처럼 유려하지 않지만 가끔 난해해서 문장을 거슬러 되돌아가야 한다.  한 해가 지는 날들에 그의 소설을 잡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독자의 손을 잡아 끈다.  아무래도 올해 소설을 너무 쉽게 읽어왔단 반성을 김훈의 문장들은 하게 한다. 그래서 나쁘지 않다.  해가 지는 시간들엔 언제나 그 해를 반성하기 마련이니까.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내 마음을 아프고, 단절케 했던 것은 내가 올해 발설한 문장들이 형편없이 삶과 일치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기 때문이다.  생각과 언어가 일치하지 않고,  통절한 사유 없음과 현실의 가벼움에 휩쓸린 내 인간됨의 실체가 온전히 나를 힘들게 한다.  

가을에 써 겨울에 내놓은 소설 김훈의 <내 젊은날의 숲>은 이 가볍고 자기기만에 능숙한 독자의 삶을 내리치는 죽비와 다름 없었다.  단순한 이야기의 흐름속에서 대체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답답해할 즈음에 쉽고 읽고 쉽게 써내려간 그간의 어떤 글들이 유령처럼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소설이란 타이틀을 감추고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작가의 또다른 산문처럼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김훈의 문장들은 내밀히 공간과 시간의 역사안에 파고들어 그 안에 감추어진 절망의 부스러기들을 털어낸다.  숲은 경치로서 아름다움을 불러오지만,   나무는 언제나 현실의 때 같은걸 간직한다.   김훈은 적절히 이 숲과 나무라는 전체성과 구체성을 넘나들며 우리 삶 안에 감추어진 절망과 희망의 풍경들을 가감없는 문장들에 담아냈다.  김훈의 소설을 읽는 한동안 내 삶은 구체성을 띠었고, 나또한 익숙한 중력과 숱한 욕망을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보편 타당한 인간이어야 함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지방의 말단 공무원으로 봉직하다, 뇌물 사건에 연루돼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뇌물 상납의 중간책에 지니지 않았지만,  고위층의 몫까지 모두 뒤집어 썼다.  평생 상관의 비위를 맞추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말년은 너무나 누추하고 창피스럽다.  화자의 언어에서 아버지의 연민이 느껴지지만,  그 억양에 간절함 같은 것은 없다.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리감을 갖는다.  그것이 바보처럼 상관의 죄까지 뒤집어 쓰고, 교도소에 들어 앉아 있는 남편에 대한 원망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보다 능숙하게 좀더 만이 해먹고 죄값을 피해가지 못한 어리숙함에 대한 원망에서인지, 알 수 없다.  화자인 나는 계약직 세밀화가로서 그림을 그린다.  언제나 고민은 사물을 보고 사물의 내면으로까지 침투해 드러가지 못하는 한계성을 깨닫는 데 있다.  사물의 본질에 대해 인간의 투사된 느낌이란 온전할 수 없다.  주관성의 덫에 걸리고 마는 그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있지만,  전방 수목원의 안요한 실장은 과학자로서 꽃의 빛깔이나 발현의 현상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논문이란 형식에 담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다.  이 두가지 상반된 태도에서 세상에 대해 갖는 뭇 사람의 오해와 차이가 잉태된다. 

`내'가 민통선 안쪽 마을로 한번 우회전 하여 들어가는 모습에서 아주 오래전 읽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주요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주인공이 찾아든 `눈의 고장'은 현실 너머에 있는 또다른 현실 풍경을 주인공의 낯선 모습으로 묘사하는데,  김훈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찾아든 민통선 안쪽 마을은 이 소설의 주요한  배경을 이룬다.  안과 밖에 대한 구획을 시도하는 모습은 유사하지만, 그 차이를 확연케 하지 않은 점은 독창적이다.  내 젊은 날의 숲, 이란 소설 제목은 민통선 안쪽 마을의 숲속에서 보낸 짧지만 긴 여운이 남긴 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한 공간이 사람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 공간을 점유하는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단 한번의 우회전으로 찾아들어간 민통선 안쪽 마을과 그 밖의 세계를 이원적인 배경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그 둘 사이에 특징적인 차이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는 없다.  소읍이나 도시에서나  공간안에 감추어진 사연들은 그가 `알지 못하는 일들로 가득차 있기 마련이고, 언제나 그 일들은 어떤 풍경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민통선 안쪽 마을은 도시의 축소판이며, 사랑과 절망과 희망과 죽음이 뒤엉킨 거대한 용광로처럼 보인다.  

소읍의 안쪽에서 타인의 삶이 변주되는 모습을 화자는 담담히 서술한다.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이 되겠습니다'라고 미술학원 문짝에 써놓은 교사 이옥영은 아이들의 수업이 다가오는 시간, 정갈한 죽음을 준비하고 욕실 수도꼭지에 넥타이로 목을 메달고 죽었다. 그 넥타이의 주인은 그와 사귀었던 포병대위의 것이었고, 사건은 옷가지를 가지런히 침대위에 벗어놓고 긴 생머리 타래를 뒤로 모아 손수건으로 묶은 후, 메뉴큐어까지 지웠듯,  비교적 정갈하게 마무리 된다. 얼마간 비극적인 것은 그가 뱃속에 삼 개월 된 태아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상사인 안요한 실장은 자폐적인 증상을 내보이는 아들 `신우'를 혼자서 키운다.  어느 순간부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연구실에 함께 따라와 아빠 곁에 붙어 사는 아이를 화자인 나는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는 자신의 이혼을 `쟤 엄마는 이혼했어'라고 돌려 말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자등령 숲의 해설사 이나모의 삶은 단순하게 구획된다. 전방 사단의 부사관 생활 삼십 년, 잔반 배달업 십오 년, 숲 해설사 십여년, 그리고 읍내 아파트에서 혼자서 자다가 지병이었던 심근 경색의 발작으로 숨졌다.  단 한 번의 우회전으로 그가 진입해 들어온 `설국'인 민통선 안쪽 마을 풍경의 파편들은 이러했다.  그러나, 풍경속에 깃든 사연은 내게 세밀화로 세상을 그리듯이 그저 사물의 문 앞을 얼쩡거릴 뿐이다. 그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일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우리는 항상 모든걸 보려 노력하지만, 보지 못한다.  모든 걸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숱하게 실패한다.

"그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파트 빈방에 육신을 버리고, 자등령 너머의 숲속, 그가 말한 대로, 인간의 시간과 섞이지 않는, 내용이 다르고 전개방식이 다르고 작동원리가 전혀 다른, 낯선 나무들의 시간이 흐르는 숲의 어둡고 깊은 가장자리 쪽으로 그는 지팡이를 끌며 가고 있을 것이었다."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p.217

자등령 지대는 한국전쟁 시절 서로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일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자등령을 뒤덮고 있는 국군과 인민군의 뼈들은 대인 지뢰에 솟구치고, 백병전에 뒤엉킨 채 50년 동안, 그 산에 잠들어 있었다.  발굴 현장을 이끄는 김중위 곁에 선 화자는 피아의 구별조차 무의미한 그 무수한 유해를 바라본다.  고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피아는 무수한 사망자를 냈고, 7일 이상 살아남으면 고참병이 되었다. `죽음으로써 삶을 제거하고 죽임으로써 죽음을 갚는 무한 소모전',  그 안에서 이제 풋풋한 청춘의 삶을 시작하려는 김중위를 만나 알 수 없는 설렘에 얼굴을 붉히고,  밤마다 전화선을 타고 넘어오는 저 밖의 세계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넋두리를 듣는다. 비난과 멸시의 언어에 능숙했던 엄마의 태도는 진정 그 안에 `예상했던' 큰 슬픔과 연민을 품고 있었다.  삶은 간단치 않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항상 유보적이어야 한다. 누구도 온전히 멸시와 천대를 받을 수 없다.  저간의 사정을 들어보지 않는다면,  그에게 유죄를 내리는것조차 우리 자신의 `유죄'를 증거할 뿐이다.  살아서 증오속에 뒤엉킨 백병전의 피아는, 죽어서 적의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유골은 이념과 두려움과 살의와 공포를 잊고, 그저 홍적세의 분화구처럼 함께 침묵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등령 수목원에 거주하는 내게 혼입된다.  세계는 거대한 혼입의 용광로다.  자등령은 세밀화가에게는 인식의 대상이자, 평화로움이다.  6.25 시절 자등령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현장에 있었던 저 피아조차 구별 할 수 없는 뼈들의 주인은,  매순간 죽음을 예상하고 참호에 거총하고  자등령 산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을 것이다.  저 남쪽의 어느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등령 마을로 찾아든 이옥영 선생은 삶의 비밀을 간직한채 자살했고, 숲 해설사 이나모는 자등령을 생계의 터전으로 삼았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엄마는,  자등령 기슭에 아버지의 뼈를 흩뿌렸고 감추어진 슬픔과 연민을 드러낸다.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김중위는 밖의 세상에서의 시작을 고대하며, 희망을 발설한다.   이 혼합된 풍경안에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의 공간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래도록 간직된다. 시간의 길고 짧음은 문제되지 않는다.  삼백만년 전 홍적세에 만들어진 분화구를 간직한 자등령 골짜기에서, 분화구의 고인물을 마시며 한가로이 노니는 짐슴처럼,  저 풍경안에 녹아든 시간과 공간의 혼입됨은,  독자와 화자 모두에게 절망과 희망의 파편들로 인식된다. 그러나 절망이 섞여있지 않은 희망이란 풍경은 낯설지 않은가?  

"제가 쓴 몇 편의 소설 속에는 아무런 위안이 없습니다. 다만 독자들을 한없는 고문과 고통과 절망의 늪으로 몰고 나가는 것, 그 결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 세계의 의미와 무의미를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저의 글쓰기입니다."   김훈 에세이 <바다의 기별> 中

김훈의 문장들은 가볍지 않다.  그것은 연필로 꾹꾹 눌러쓴 수공업의 흔적을 내보인다.   어떤 들뜸이나, 유머도 없다.  가감없이 건조하고, 메마르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의미가 생성된다. 그 의미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무심코 지나치면 자등령에서 50년전 피아가 엉킨 뼈들의 외침은 허공을 공명할 뿐이다.  그 풍경안으로 녹아들지 않으면,  모든것은 겉핥기에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의 문장들을 탓할 수 없다.  그의 문장들은 우리 삶이 무척 가볍고, 건조하고, 메말라 있음을 들추어낸다.   김훈은 여행의 순간을 한 편의 소설로 엮어 냈다.  사유(思惟)하는 인간만이 무심한 풍경속에서 무수한 의미들을 추려낼 수 있다.  그의 소설이 내게 던진 고민과 그의 문장들의 난해함은,  내게 충분히 유익했다.    김훈이 계속해 독자에게 `고문과 고통과 절망'을 주는 글쓰기를 이어가길 소망한다.  `이 더러운 세상의 악과 폭력과 야만성 속에서 더불어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독자들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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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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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모바일 혁명 - 아이폰+아이패드×트위터=미래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지난 일주일은 내게 좀 색다른 시간들이었다.  좀 늦긴 했지만, 모양만 스마트폰 흉내를 내고 있던 휴대폰을 버리고 아이폰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는데 스마트폰이 왜 필요해란'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간 모든 작업은 집의 데스크톱을 주로 사용했다. 블로그를 비롯 트위터 까지도 유선 컴퓨터를 통해 접속했다. 사실 트위터는 스마트폰에서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트위터엔 올 초에 가입했지만, 저런걸 왜 하나? 란 의문이 들긴 했다.  아이폰과 함께 한 일주일 동안 내 생활엔 어떤 변화가 생겼다.  하루종일 컴퓨터를 켜지 않고도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문서편집이란 생산적인 작업은 제외하고 말이다.  일주일간 집의 전기요금을 많이 아꼈을 것 같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내게 주는 어떤 느낌은 단순히 그런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매순간 네트워크와 연결 돼 있고, 그 네트워크에 역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들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예를 들면 고정된 컴퓨터에 앉고, 전원을 연결하고, 컴퓨터를 켜고, 부팅을 기다리고, 익스플로러를 여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는 것은 시간과 전기세를 절약한다는 차원을 넘어, 오랜시간 인터넷을 사용했던 나에게 묘한 역동성과 신비감을 불어넣었다.  스마트폰이 불러온 생활의 변화를 소위 `혁명'이란 무시무시한 단어로 불러야했던 이유를 지난 일주일 동안 절감했다. 
                   

 


  <아이폰 주제별 폴더로 정리>      

  

아이폰과 함께 산 일주일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유선 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간적으로 지인들과 채팅을 할 수 있다.  복잡한 절차없이 모바일 뱅킹을 통해 은행업무를 처리했고,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주문된 책의 배송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내 주위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위치를 검색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지도 검색을 통해 현재 위치를 불러오고 주변의 편의시설을 검색한다.  차량 운전중 반경 몇 킬로미터 내의 주유소를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할 수 있었다.  나의 블러그 업데이트를 검색하고, 다른 블러그를 방문했다. 앱스토어에서 많은 무료 앱을 받아, 아이폰 바탕화면에 폴더를 형성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해 정리했고, `어셈노트'는 그 필요성에 유료로 구입을 결정했다.  일단 신용카드가 없어,  앱스토어 미국 계정을 만들고 기프트카드로 구입해 설치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그간 별 유용성을 발견하지 못했던 트위터의 활용이다.  처음 트위터가 140자로 제한을 두는 문자 메세지 서비스로 알고만 있었는데, 이 트위터의 활용은 아이폰 생활에 가장 중요한 한 분야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트위터는 무의미하게 수다나 떠는 곳이 아니라, 정보를 생성하고 교환하고 질문을 나누고 조언하는 거대한 지구적인 소통 공간이었다.

동영상,사진,문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으로 네트워크에 연결된 세상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다.   타임라인에 올라온 사람들은 예외가 없다.  정치인, 연예인, 작가, 경제인, 사회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타임라인 안에서 순간적으로 소통하고,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정보를 나누는 일은 트위터만이 해낼 수 있는 놀라운 일이었다.  이렇게  아이폰을 제대로 쓰기까진  공부가 필요했고, 첫 일주일 동안 내 스마트 폰 활용 지식을 급상승 시켜준 책 한 권을 열독했다.  공병호의 <모바일 혁명>이란 책이다.

이 책은 스마트폰의 대표주자 아이폰과 요즘 한국에 출시돼 새로운 미디어 기기로 주목받는 아이패드, 트위터, RSS 활용법, 등을 주로 다룬다. 모바일 기기들의 사용법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어서 실용적인 활용도가 높은 책이다.  그러나, 책의 전반부에는 저자가 스마트 폰을 사용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담고 있고, 모바일 혁명이 몰고올 변화에 사용자가 어떻게 대처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싣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는데,  아이폰의 활용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간 그 유용성을 알고 있었으나 활용하지 못한 RSS 활용법의 예시나 야후의 플리커와 구글의 피카사를 통해 무한한 사진 정보의 소통 공간을 확인하고 적극 활용하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 

저자 공병호는 정보통신 관련 전문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아이폰으로 눈을 뜨고, 아이폰과 함께 침대에 가고, 아이폰 없이는 잠시도 생활할 수 없는 상태'라고 자신의 모바일 생활을 들춰보인다.   독자들은 아마도 저자의 아이폰 생활을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더 쉽게 이 책을 활용할 수 있을 듯 하다.  저자는 우리가 모바일 라이프에 동참해야 할 이유를 몇가지 들고 있다.  첫째,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뒤쳐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을 내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순히 옛것이 좋기 때문에 고집한다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게으름은 모바일 혁명에 참여하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둘째, 저자도 언급했듯이 아이폰은 중독 가능성이 높은 기계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엔 빠져들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우리가 아이폰이란 기계 자체에 열광하는 것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것을 생활에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  그걸 통해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더 높이는가? 하는 문제는 중독과 활용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일독후에 완전하게는 아닐지라도 아이폰을 생활속에 활용하는데, 기본적인 교두보는 마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10여년 전 인터넷이 자리잡아 가던 시기엔 이상한 대회들이 있었다.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 오직 인터넷으로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를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유치한 대회 같단 생각이 들긴한다.  인터넷에 대한 사람들의 호들갑도 한몫 했을 듯 하다.   인터넷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인터넷으로 은행일을 보고,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그래서 사람은 한달간 외부 출입없이 잘 살 수 있었다는 것이, 이 대회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굳이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저 정도 일이면 전화로도 모두 가능하다. 전화로 음식을 시켜먹으면 굶을 일도 없고, 은행일 정도야 텔레뱅킹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런 대회를 연 이유란 그 시절 인터넷이란 신매체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가? 를 보여주고자 한 의미로 해석된다.  이제 10여년이 또 지난 지금 사람들앞에 등장한 모바일 기기가 가져올 변화는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인터넷이 고정된 좌석의 컴퓨터에 앉는 순간, 한 개인이 네트워크에 연결됨을 의미한다면 아이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이제 사람들은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고정성,불편함,편의성,활용성 모두를 극복하고 업그레이드 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단 한순간도 네트워크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당신의 휴대폰이 켜져 있듯이, 네트워크에 당신은 항상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진정한 네트워크의 주민이 된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힘이 사람의 가치를 몇 배는 상승시킬 것이다.  손안에 세계가 담겨 있는 것이고, 그 안엔 모바일 기기를 쓰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것은 인터넷이 빠르게 진화한 결과다.  그 진화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다윈의 진화론은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은 선택 받아 융성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종은 퇴화 한다는 이론이다. 지금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에게 진화와 퇴화 가운데 하나의 선택을 종용하는 듯 보인다.  우리에게 지금 불고 있는 이 모바일 혁명에 잘 대처하는 사람들은 남보다 더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발명품들은 언제나 보편적인 상용화의 길을 걷는다.  곧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트위터는 우리의 분명한 미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먼저 잘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 잘 응용했던 사람들은 그 미래엔 몇 발자국 앞서 걸을 수 있다.  모바일 혁명이 손안의 오락기가 되느냐, 아니면 생활의 가치를 업그레드 시키는 요술 방망이가 되느냐, 는 언제나 사용자의 선택과 활용에 달려 있다.   




201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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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전태일,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떤 육중한 무게감이 항상 나를 짓눌러왔다.  전태일에 관한 한국 현대사의 인식은 자신의 목숨을 불살라 뜻을 관철했던 무서운 `역사'로 자리매김 했던가?    그래서 그의 이름은,  같은 노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불리워질 수 없고  언급할 수 없는 `신화'로 나의 내면에 가라앉아 있었던 듯 하다.   그래서였을까?  흔쾌히 <전태일 평전>을 펴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스물 두살 나이에 평화 시장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목도하고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온 몸을 불구덩이 안에 가둬버린 사람.  아무래도 그를 읽어내는 일은 세상과 화해하며, 조화롭게, 성실하게, 잘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는 유순한 이의 마음을 결국 갈아엎고야 말 것이란 두려움을 안겼다.  한 권의 책이라고 무턱대고 펴들 수만은 없다.  책 한 권이 역사를 변형시키는 무게를 갖는 것은 그러한 책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자를 독자로 맞이하였을 때이다. 

 

전태일 그가 죽고 40년이 흘렀다.  지난 2010년 11월 13일은 그의 분신 40주기였다.  살아 있다면 전태일은 이제 환갑을 맞았을 나이다.  그의 40주기를 맞아, 전태일이 분신했던 서울 종로구 청계6가에는 그의 이름을 딴 다리 하나가 생겼다.  많은 시민들은 `버들다리'라는 평범한 이름대신 "전태일 다리" 로 개명할 것을 허락하였다.   40년 전 평화시장의 한 복판 이었던 그곳에서 전태일은 온 몸을 불태우며,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는 지극히 상식적인 문장들과 최후의 유언같은 `내 죽음을 헛되어 말라'는 말을 세상에 토해내고 분신했다.  그의 전신은 순간 숯처럼 시커멓게 타올랐으며, 온 살결이 화상으로 터쳤다.  그리고  얇은 눈꺼풀은 뒤집혔고,  입술은 퉁퉁부르터서 이제 그의 형체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비롯, 세상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전태일은 그 `몰골'을 하고서도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주장을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스물 두살의 이 파릇한 청년을, 불구덩이 속에 집어 넣었으며,  무엇이 이 청년의 절박한 외침을 불러왔는가? 

 

전태일은 가난했다. 평생 헐벗고 굶주렸다. 그가 성모병원의 누추한 병상에서 한 마지막 유언은 `배가 고프다'는 것이었다.  분신 하루 전날 라면 한끼를 먹은게 다였던 그는 그 말을 이 지상에 남겨두고 세상을 떴다.  어린 시절 재단기술자였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 때문에 전태일은 초등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고, 가족 모두가 굶주렸던게 일상사였다.  인생을 비관한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 등에 못이겨 그의 어린 시절은 가출과 노동, 방황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전태일의 직업은 신문팔이, 구두닦이, 손수레 뒤밀이, 삼발이 장사였다.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부모의 후원아래 사랑받으며 공부할 나이에,  그는 세상의 밑바닥에서 주린 배를 안고  가난과 굶주림을 학습했고 그런 아이에게 던져지는 뭇 사람들의 멸시와 무관심을 경험했다.  그가 어떤 성품을 지니고 있건 상관없이, 그의 미래가 어떻게 꽃피울지 관심조차 없이, 단지 가진게 없다는 이유 하나로 천대와 비웃음이 그의 삶을 이미 규정해버렸다. 

 

가난했기에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적도 없었다. 그러나, 전태일은 배움에 대한 열망을 자신의 짧은 삶 안에서 불태웠던 사람이다.  그의 학력이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다녔던 고등공민학교의 1년간이 전부였다. 그의 수기에서 `청옥시절'로 표기되는 이 기간 동안, 그는 스물 두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일할 때, 그는 입버릇 처럼 `대학생 친구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되뇌인다.  하루 14시간 혹은 하루 16시간의 노동에 혹사당하면서도, 그는 대학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고, 거금을 모아 검정고시를 위한 통신강의록을 구입하기도 한다.  훗날 그가 법대생이 독해할 수 있을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독학하고, 노동현실의 부당함을 스스로 깨우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분신의 순간, 근로기준법 책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책엔 수많은 밑줄이 쳐지고, 페이지마다 손때가 묻어 있었을 것이다.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비참한 노동 현실의 돌파구만큼이나 지식과 배움은 전태일에겐 간절한 무엇이었다.  

 

196,70년대 평화 시장엔 수많은 피복공장들이 난립해 있었다. 여기에 속한 공장주들은 시장법에 따라 발족한 평화시장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관청과 노동자를 상대하며, 업주들의 대변인기관 노릇을 했다. 평화시장 피복 노동자는 재단사, 미싱사, 시다, 등으로 구성 되었는데 총 작업장 수가 800여개, 근로자 수는 2만 여명에 달했다.  그 가운데 미싱사와 시다는 대부분 여공들로서 대부분 가정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12살에서 15살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이들은 철저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처해 있었다.  8평 정도 되는 작업장에 수대의 재봉대와 시다판들이 가뜩이나 비좁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틈서리에서 핏기 잃은 창백한 얼굴의 종업원 수십명이 끼어 앉아 일을 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1.5미터.  악명높은 평화시장의 다락방. 전태일과 그의 어린 시다들은 이런 환경속에서 하루종일 혀리조차 펴지 못하고, 제대로된 건강 검진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일해야 했다.  명절 성수기엔 밀려드는 물량으로 업주들은 잠이 안오는 약이나 주사를 종업원들에게 놓기까지했다.  그렇게 하루 14시간씩 몇 년을 일해도 어린 시다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나이를 먹어 병든 몸을 안고 공장을 떠나기 일수였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던 노동자들의 현실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던가?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  전태일의 1970년 초 작품 초고에서  

 

 

 전태일은 거대한 인간 시장인 평화 시장의 어두운 작업장에서, 저 처절한 노동의 현실을 목격하며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노동자의 권리, 노동자의 인권은 업주들이 스스로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스스로 요구해야할 권리임이 마땅하다고 말이다. 그런 전태일에게 근로기준법의 발견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만연되는 현실의 부당함을 근로기준법은 철저히 부정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정당한 급여와 근로 여건과 건강과 휴식과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명백히 쓰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은 정반대였지만, 근로기준법만 지키면 모든 부정의가 정의로 환원되고야 마는 이 역설.   그는 근로기준법을 연구하며, 노동자를 규합하고 노동 현실을 고발할 것을 결심한다.   전태일은 1969년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와 1970년 `삼동친목회'를 조직하여 평화시장의 노동자 동료들을 규합하고 노동청과 근로관독관을 찾아다니며, 근로 조건의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업주와 관료의 카르텔은 확고했다.  그가 손에 든 근로기준법은 그저 유식한 법조항에 지나지 않았고, 현실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휴지조각이었다.   그러나 전태일의 강고한 저항은 언론을 통해 평화시장의 실체가 보도 되는 성과를 올리기에 이른다.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정직한 노동에 정당한 대우가 보장되는 사회였다.  부한 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노예취급 하지 않는 세상,  모두가 인간으로서 공정하게 부가 분배되고,  소중한 노동자의 땀이 결실이 되어 돌아오는 그 순리의 세상이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내며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지 않아도, 업주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주고자 했다.  노동자에게 은전과 자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상식적인 대우만 해도, 업주와 노동자가 모두 다 잘 살 수 있음을 그는 증거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기엔 현실은 너무 척박했다.  비록 배우지 못했지만, 전태일은 이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알고 있었다. 평화 시장의 돈만 밝히는 그 업주들처럼이 아니고,  언젠가 철학자 칸트가 역설했듯이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걸,  그는 사람의 도리로서 깨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전태일은 어느 순간,  재단사로서 성공한 미래의 청사진을 버린다.   그토록 평범하고 쉽고 이기적인 길을 버린다.   언제까지나 계속될지 모를 저 어린 시다들의 노동을 목격했던 그로서, 그는 내면의 양심의 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요구했던 근로조건의 개선은 관료와 업주들의 결탁으로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약속을 어겼고, 끝없이 노동자인 자신과 그들의 동료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세상은 하루 14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속에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고 있는 어린 시다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질 않았다.  그는 그 어린 동생들을 위해, 이 땅의 처절한 노동 환경의 부당함을 고발키 위해,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했다.  세상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평화시장의 어린 노동자들의 인간답지 못한 삶을 알려야했다.  그는 성자처럼 모두를 위해 혼자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   분신 몇 달 전 어느 기도원에서 써내려갔을 일기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을 숙연케 한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간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궁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전태일의 1970년 8월 9일 일기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최초의 노동자 항의 집회가 예정된 청계천 광장으로 자신의 동료들을 먼저 내려보낸 후,  한쪽 품에 근로 기준법 책을 안고 10분후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태일이 몇 발자국 발을 내딛자마자, 갑자기 그는 불길에 휩싸였다.  그가 한쪽 품에 끼고 있던 근로 기준법 책도 함께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 화염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목놓아 부르짖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을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그리고 최후 성모병원의 어느 누추한 병상에서,  그의 곁을 지키던 어머니와 동료들에게 외마디 당부를 하고 스물 두살 슬프고 아름다운 생을 마감하였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전태일은 그렇게 이땅에 영원한 노동자의 친구이자, 오빠이자, 형으로서 남겨졌다.  전태일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비인간적인 노동현실을 고발했고, 어린 나이에 피지 못하고 시들고 있던 어린 노동자들을 감싸안았고,  부당한 착취와 억압과 직무유기에 능한 업주와 관료들의 비리를 증거했다.  자신의 살과 함께 태워진 근로기준법 책을 통해 근엄한 법조항이 고통받는 노동자를 위해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함을 세상에 알렸다.  전태일의 분신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신화가 아니며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800만 비정규직이 처한 오늘의 현실이자, 사회 곳곳에서 착취와 억압아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일상이다.  그래서 전태일의 외침은 아직도 유효하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어서 혹사당해서는 안 된다.  근로기준법은 지켜져야 하며, 법을 지키는 것은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며 목적이어야 한다.  정의란 이렇게 단순하고, 명쾌한 법이다.  전태일의 수기는 인권변호사이자 깨어있는 양심이었던 고 조영래 변호사의 집념으로 쓰여졌다.  독재에 항거하며 투옥과 수배를 반복했던 그는, 수배시절 인간애로 넘쳐나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을 발견했다. 그의 손에 의해 다시 쓰여진 전태일의 삶은 항상 가난한 자들과 권력에 휩쓸리던 사람들의 변호에 앞장서던 그의 삶과 닮아 있다.   

 

전태일과 조영래의 만남은 생전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입버릇처럼 생전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결국, 죽어서야 그는 믿음직한 친구 한 명을 얻고야 만 것인가.



20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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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 사이언스 클래식 16
칼 세이건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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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었다.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 그의 합리적인 종교비판에 지지를 보내는 쪽과 종교를 과학으로 재단하려 했다는 혐의를 씌어 그를 비난하는 쪽이었다.  나또한 그 두꺼운 책을 읽어내려가며 종교적 근본주의 비판에 대한 그의 견해에 찬동했으나, 신이 없다고 확신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는 반발했다.  내가 그렇게 반응한 것은 당시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신앙심을 키워가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에 반발하는 나의 리뷰는 여전히 논란을 일으키며 리뷰 가운데 가장 많은 반발성 댓글이 달렸다.  지금도 가끔 잊을만 하면,  내 휴대폰으로 내 리뷰에 대한 반발성 댓글이 날아온다.  

지금 나는 겉모습으론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가끔 성경을 읽으려는 마음을 품고 산다.  아내는 철저한 크리스챤이다.  가끔 아내가 교회로 나를 이끌지 못한 안달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어느 순간 꼭 교회에 다녀야 신앙인으로 살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교회를 한창 다니던 시절은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었지만 좋지 않은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그건 목사님들의 설교 때문이었다.  어떤 목사님은 타 종교를 비난하고 비하하는 것을 설교의 제목으로 삼았다.  어떤 분은 기복신앙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믿음을 단지 요술방망이 취급 했다.   믿으면 내가 잘 되고, 내 자식이 잘되고, 뭐 그런식이다.   이런 설교를 듣고 있자면, 종교지도자들이 더욱 많이 공부하고 식견을 넓혀야 하는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기독교 목사는 타종교의 경전까지 모두 알고, 세계의 역사와 문화 문명에 대한 이해에도 밝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렇게 식견이 있는 분들이 이슬람이나 불교를 마냥 비상식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들의 그런 협소한 견해는 빈약한 지식과 얇은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나의 교회 생활은 어떤 실망으로 종결되었다. 

세상의 보편타당한 진실은 `진실'이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진실이 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나와 타인의 다른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와 타인이 같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른 역사적 환경과 문화를 통해 생성된 종교를 믿고, 그 문화권 안에서 경건한 종교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모태 신앙을  갖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순진무구한 아이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종교생활을 시작하기 일수다.  그러므로 종교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인간이 공격의 대상이 될 순 없다.  진정한 신앙인이란 내 생각에 자신의 종교 안에서 충실한 인간이다.  그들 사이에 다툼의 소재는 없다.  이런 사고 방식을 갖는다면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를 보는 일도 없을 것이고,  불교 사원에서 이 땅이 하나님의 영토라고 선포하는 철없는 젊은이들이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 안에 종교의 가장 위대한 가르침인 평화와 사랑의 정신이 담겨 있다.   왜 이런 포용력을 종교 지도자들은 갖질 못하는가?    

과학과 종교의 대립은 인류 역사의 기나긴 사연을 간직한다.  과학은 종교의 비과학성을 꼬집었고, 종교는 과학의 오만불손함을 질책했다.  과학은 끊임없는 탐색의 정신으로 이 세계의 법칙들을 탐구해 냈다.  먼 과거 하늘의 별이 천공의 수정이라고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다.  혜성이나 월식, 일식 같은 천문현상을 신의 메세지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 이전엔 세상의 중심은 지구라고 우기며 종교는 인간과 지구에 신의 특권을 부여했으나 과학은 사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하찮은 별 가운데 하나'임을 증명해 내며 종교의 오류를 수정했다.  오늘날 과학과 종교는 긴 휴전의 상태에 있으나 언제 그들의 논쟁에 큰 불이 붙을지 예측할 수 없다.  여전히 이 세상에는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에 영도된 반종교적인 과학자들이 가득하고,  종교의 영역에는 경전의 문자 하나까지도 포기하지 못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허다하다.  

과학 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어떤 과학자일까 ?  1985년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열린 자연 신학에 관한 기퍼드 강연을 담아낸 그의 유작이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이란 책으로 묶여 나왔다.  그는 NASA의 자문위원으로 보이저, 바이킹 등의 무인 우주탐사선 계획에 동참했던 유능한 과학자이자 하버드와 코넬의 천문학 및 우주 과학 분야의 교수였다.  그러나, 그는 대중에게 가장 쉬운 언어로 과학 지식을 소개하는 강사와 저자로서도 유명했다.  1996년 62세의 나이로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그의 <코스모스>는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는 과학 서적 베스트 셀러자리를 차지한다. 

이 책에서 칼 세이건은 현재까지 천체물리학이 발견한 우주의 진실을 설파한다. 태양계의 생성 과정,  태양계를 이루는 행성들의 구성 성분, 지구와 멀리 떨어진 별들의 운명, 초신성과 성운의 정체 등을 설명한다.  그는  인간이 죽고 태어나는 과정처럼, 저 먼 우주의 별도 생성과 파괴의 순간을 맞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은하 가운데 일부 별들은 수명을 다해 폭발하며 별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웃 행성들은 그 폭발의 과정에서 함께 파괴됨으로써, 무고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먼 미래 태양이 생명을 다하고 폭발하는 과정에서 생명체가 거주하는 지구가 함께 파괴되는 현상이 올 수 있는데, 지금 우주 안에서 그같은 일들이 일상다반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설명 끝에 그는 신의 전지전능함을 의심하기도 한다.  과연 신이 있다면 왜 우주와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불완전한 운명을 갖게 했을까?   

세이건은 우주의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이 우주에는 셀 수 없는 별들의 무리인 은하가 있고, 우주의 크기도 인간의 수치로는 계산 할 수 없다.  수 억 광년이라면 상상할 수 있겠는가?  빛의 속도로 수 억 년을 가야 하며, 그게 끝이 아니고,  최고의 성능을 가진 허블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면 마치 하늘엔 모래사장의 모래알처럼 많은 별들이 흩뿌려져 있다.   그 가운데 지구와 같은 조건을 갖고 있는 별이 없다고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이건은 현재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UFO 목격담의 허무맹랑함을 비유로 들어, 종교적 영역에서의 맹목적인 믿음을 비판한다.  UFO 목격담은 수없이 많지만 단 한 건도 확실한 물증이나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천체로부터 정기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이처럼 간단한 데이터를 이처럼 단순하게 해석하는 경우에도 과학자들이 깜박 속아 넘어갈 수 있다고 치면, 만약 더 큰 것이 걸려 있고, 감정적 경향이 작동하고 있으며, 나아가 증거가 훨씬 더 약하고, 믿고자 하는 의지가 훨씬 더 강하고, 회의적인 전통이 들어설 틈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종교의 영역에서는 말입니다."  칼세이건,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P.137 

그는 직접적으로 종교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종교적 인간은 곧 회의적인 인간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의 종교는 어떤가?  모든 회의를 금지한다. 신앙은 믿음의 문제지 회의와 고민의 문제가 아니다. 절대자에게 모든걸 믿고 맡기면 된다.  이 맹목성을 세이건은 중고차를 사는 문제에 비유해 비판한다.  중고차를 살 때 중요한 것은 중고차가 지금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우리 삶에 절대자가 필요하다는 믿음만으로 신을 만들어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중고차가 제대로 움직이는가? 하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중고차 판매상의 친절함과 미사여구 만으론 또 충분히 않다. 종교 지도자들의 마음을 녹여내는 설교만으로 믿음의 근거를 확보할 수 없는 것처럼.  이럴 경우, 직접 중고차 타이어를 걷어차보고,  자동차 엔진 전문가를 한 명 대동해 사고 싶은 중고차를 일일히 확인해 보아야 한다.  세이건의 비유는 적절해 보인다.  그는 과학처럼 종교도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지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인간의 운명과 실체에 관한 `진실'과 `사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러분은 자동차보다도 덜 중요한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초월적인, 윤리와 도덕에 관한, 세계의 기원에 관한,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제들을 다룰 때에도 최소한 이 정도로 회의적이며 엄밀한 음미를 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p.186 

과학적 엄밀성으로 종교를 비판해온 세이건은 이제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1985년 기퍼드 연설 당시, 세계는 핵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동서 냉전의 시대로서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강국들은 5만 5천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 가운데 2만 2천개 정도가 전략무기로서 최대한 신속하게 발사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정도 양이면 지구의 모든 도시를 박살내고 나서도, 여전히 1만 8천개의 핵무기가 남아 도는 상황이었다.  세이건은 인류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지구상에 생존했으나 지금은 멸종된 공룡처럼, 언제든 멸종될 수 있는 존재임을 명심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방대한 시간의 역사를 통해 멸종이 생명의 원칙이며, 오히려 생존이 예외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행성에서 존속이 보장된 종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그는 인간의 운명을 위협하는 핵무기의 존재를 우려한다. 세이건은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바로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천방지축의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지금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벌어지는 각종 테러와 전쟁을 통해 확인된다. 무차별한 폭력과 대량학살은 먼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서 독자는 칼 세이건이 상당히 합리적인 인간이고, 이성적인 과학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과연 신을 부정했던 것일까? 종교의 불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일까?  그렇게 읽은 독자들이 예상외로 많다.  사실 그런 의심을 살만한 여러 항목들이 보이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종교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지, 신의 존재자체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모습을 이 강의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줄 수 있는 그 많은 혜택들이 있다. 그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적 현상이다.  과학은 모든것에 답을 주지 못한다.   어차피 인간은 신의 존재를 알 수 없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  과학의 운명은 거기까지다. 그러니, 과학이 신을 부정할 아무 근거도 이유도 없다.  과학의 사명이 왜 신의 존재 부정이어야 하는가?   세이건은 이 마지노선을 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는 마지노선에서 `탐색'이라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우주를 탐색하는 과정,  우주안에서 신의 존재를 음미하고 탐미하는 과정, 그것은 맹목적인 믿음의 문제와 갈린다.  그러나, 어쩌면 가장 경건한 종교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왜 그럴까? 

성경 전도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해아래 새것이 없다"  존재는 이 우주의 일부분이다.  인간을 비롯한 미세한 원소까지도 원자까지도, 이 우주의 일부분이다.  우주 밖에서 온 것은 아무것도 없고,  진정 해아래 새것은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과학이 엄밀하게 이 세계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 즉  천문학이 저 먼 별들의 운행과 운명을 관찰하고,  생물학이 생명이 가진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 어떻게 반종교적인 활동일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그들이 사랑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라.  그들은 죽을때까지 서로에 대해 모든걸 알 수 없다.  그러나 관심과 사랑으로 점차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곧 사랑의 전 단계일 수 있다. 알고 싶은 욕망, 현상에 대한 파악, 그것은 해아래 새것이 없이 존재하는, 그것을 존재하게 만든, 어떤 대상에 대한 앎의 욕망이요, 사랑의 과정이다.  상징적인 언어로 쓰여진 경전을 읽고 종교간의 차이를 간파해 배타성을 키워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는 것이 종교의 본질은 아니다.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을 깨달아 가는 과정은 신의 흔적을 찾고 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과학을 후원해야 하고, 과학은 종교의 성스러운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과학과 종교의 길은 다르지 않다.  모든 다툼은 그 길이 다르다는 착각에서 온 것이다.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을 읽고서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생애 처음으로 방문한 천문대에서 천체 망원경으로 별 하나하나를  관측하던 밤에 내 마음에 깃든 경이로움과 경건함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저 먼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탐구하는 일이야말로 그러므로 가장 경건한 종교적 예배의 일환인 것이다.  과거 종교의 이름으로 과학적 발견을 멸시하고 부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는 중세 교회로부터 철저한 박해를 받았지만, 21세기 교회는 그를 박해했던 과거를 사과했다.  그러나 사실 교회는 갈릴레오라는 과학자에게 사과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진리'에 사과한 것이다.  칼 세이건은 반종교적인 과학자가 아니라 어쩌면 가장 합리적이요, 가장 경건한 신의 아들일 수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모르는게 너무 많은 피조물이 세상의 이치, 어쩌면 신의 섭리에 관심조차 없이 게으른 것보단 오히려 끊임없는 탐색을 통해,  신이 만든 세상과 우주를 알아가고자 분투하는 그런 모습을 오히려 더욱 사랑하시지 않겠는가?    

"저는 우리의 이런 한계를 기뻐해야만 마땅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모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다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반면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조금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것들 덕분에, 우리는 저 경건했던 우리 조상들의 코스모스와는 전혀 다른, 저 경외감이 드는 코스모스와 맞대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칼세이건,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p.30 

 


20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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