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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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로 겨울 스웨덴을 배경으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눈이 내리는 도시, 마치 이 지구가 아닌 저 먼 우주의 어느 행성 같은 공간이다.  기차가 설원을 달리는 장면이나 설원 한 가운데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는 눈덮인 대저택은 영상이 아닌, 그림 같단 착각을 주기도 한다.  헐리우드가 만들었지만 유럽의 분위기가 나는 이 영화는 이렇게 스웨덴이란 공간이 주는 이점을 만껏 활용한다.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국경으로 맞대고 있는 북유럽 선진 3국 가운데 하나다.   안정적인 사회보장과 질높은 문화수준을 향유하는 나라로서, 카메라가 어느 곳을 비춰도 그러한 이미지를 대변해주는 듯 하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의 이면에는 성폭력,근친강간,연쇄살인 등이 자라고 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이 촬영지로서 스웨덴을 손꼽은 것은 원작의 배경때문이기도 하겠다.   북구 겨울 스웨덴의 풍광에는 아름다움과 음산함이 함께 곁들여 있다.  저 푸르스름하고 어둑씬한 화면이라니?  스릴러 영화는 스토리로 얘기하는 법이다.  하지만, 감독은 어느곳에서 그 스릴러의 본질이 잘 살아날 수 있을지 잘 간파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소설을 영화화 하는 것은 이러한 세밀한 공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원작자 스티그 라르손의 10부작 소설 <밀레니엄>은 작가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3부작에서 멈춘다.   이 영화는 그 가운데 1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2,3부는 봐도 보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영화는 완성도가 있다

 

 

독특한 풍광에다 이제 두 명의 범상치 않는 배우가 등장한다.   007 22탄 <콘텀 오브 솔러스>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터브가이 다니엘 크레이그는 부패 기업의 비리를 폭로하는 지적인 기자역할을 수행한다.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그는 몸과 얼굴로 우선 관객을 압도하는 배우다.  특유의 무표정과 날카로운 눈매는 그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스파이나 기자 역할을 잘 수행할 거란 느낌을 전해준다.  해결사 본드 역할에 익숙한 관객이 지적이긴 하지만 약간 나약해 보이는 기자 미카엘에 적응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미카엘과 더불어 미스터리를 푸는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  얼굴 곳곳에 피어싱이라니?   몸 전체가 개성이다.  마치 개콘의 패션NO.5 에 비견되는 포스.   깡마른 바디,  마른 눈에 진한 눈화장은 섬뜩하다.  온 몸에 문신을 하고 히피룩을 즐기는 여자 해커.  사건을 맡으면 놀라운 집중력과 추리력으로 자료를 찾고 분석하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여자.  단 한 번도 웃지 않는 이 주인공은 소설속에서 묘사된 등장인물의 성격과 외양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이야기.  루니 마라, 그녀는 스물 일곱의 신인으로 재벌가 출생에다 뉴욕대학교 심리학과를 나온 재원이란다.  이 영화가 19금 판정을 받은건 다 루니 마라 덕분인데, 그가 양갓집 귀수라니 ? 의외로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영화를 즐기지 않는 나같은 관객도 영화 내내 빠져들 수 있는 건 다 이런 이유다.   영화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풍경과 인물을 이렇게 적절히 배합한 영화를 찾기란 어렵다.   40년 전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재벌가의 손녀는 할아버지 헨리크 방예르에게 평소 압화 된 꽃을 선물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가 실종 살해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이후에도 방예르에게 똑같은 방식의 선물들이 도착한다.   그리고 손녀를 잊지 못한 헨리크는 재벌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로 명예훼손 사건에 패소한 기자 미카엘을 자신의 자서전 대필자이자, 이 사건의 `사설 탐정'으로 고용한다.   재벌 가문의 유산 상속녀가 될 것이 확실한 손녀 하리에트는 누가, 왜, 어떻게 살해 했을까? 

 

영화는 이러한 미스터리를 푸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사건의 본질과 실체는 비교적 단순하다.  영화는 소설이 주는 긴장감과 흥미를 잠시도 놓지 않으면서 긴박하게 흘러간다.  러닝타임 158분은 그리 길지 않다.  피곤한 몸으로 관람석에 앉은 관객조차 잠시도 눈을 떼게 할 수 없는 장치들이란 역시 풍경과 인물에게서 오는 흥미로움이지 스토리가 주는 아니란 느낌을 받는다.  독특한 것은 이 영화의 포스터와 제목도 마찬가지다.   두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와 루니 마라를 앞과 측면에 배치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미스터리다.   제목은 어떤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길 없다.  밀레니엄과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  포스터와 제목에서도 고도의 마케팅이 살아숨쉰다.  결국 그게 잘 먹혀들었는데 이것도 능력이지.

 

밀레니엄은 영화 속 미카엘이 소속된 신문사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  그들은 영화속에서 연쇄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나 성폭력범들을 가리킬까?  원작자가 3부작을 쓰고 요절했으니, 10부작에서 그리려한 것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명작의 이런 요소가 독자와 관객의 흥미를 더 끄는 법이긴 하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이해되지 않는 설정들이 있다.  영화 초반과 후반의 이야기 흐름은 생략과 요약이 반복되며, 명확히 잡아내기 힘들게 해놨다.  감독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러한 촬영 방식을 택한 듯 하다.  영화는 스토리로 미스터리를 말해야지만, 여러 씬들의 편집으로도 말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긴 한데, 영화를 다 보고 난후 원작을 뒤져보고 싶은 이 충동은 뭐지?

 

 

결국 영화는 현실의 미스터리를 차용하기 마련이다.  그게 소설이든 영화든, 모든 것의 바탕엔 `날것의 현실'이 있다.  이 영화도 스웨덴의 높은 성범죄를 바탕에 두고 있다.  요절한 원작자 스티그 라르손은 스웨덴 사회의 정치,경제적 비리를 파헤친 작가였다고 한다.  그는 상시적인 암살위협에 노출되었다고 하는데 영화의 음산한 분위기는 그 때문일까?

 

한 편의 미스터리를 보며, 영화보다 더한 미스터리도 겪고 있는 시절을 되돌아본다.   국민 세금 14조원을 들여 깔아논 KTX 노선을 정부는 왜 투자한번 한적 없는 민간 토건 기업에 던져주시려는 걸까?  오늘자 <프레시안> 기사는 KTX 노선에 군침을 흘리는 민간의 수장들이 MB와 대학 동문이라는 기살 쏟아냈다.  선거를 앞두고 권력쟁탈전이 불을 튀기고, 디도스 사건으로 국가기관이 침탈을 당한 이 엄중한 시기에도 아량곳 없이, 국토부는 무슨 꿍꿍이로 대체,  운영권만 쥐면 백퍼센트 돈을 벌게 될 KTX 알짜 노선을 대기업에 기부할 요량인지 모르겠다.  국토부는 4대강을 진두지휘한 그곳?    또, 그것을 지시한 빅브라더의 의중이야말로 진정 이 시대의 미스터리 아닌감?   네 정체가 모냐 진짜?

 


 

 

개츠비의 영화읽기 20

201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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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정봉주 - 나는꼼수다 2라운드 쌩토크: 더 가벼운 정치로 공중부양
정봉주 지음 / 왕의서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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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현상을 목격하는 경우가 있다.  나꼼수의 MC,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의 구속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표면적인 죄명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고 4년 가까이를 끌어오던 재판은 작년 12월 21일 대법원이 1,2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하면서 그는 결국 구속되고 말았다.   나꼼수의 국민 깔데기, 노원구 공릉동을 지역기반으로 하며 `위대하고도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 자칭하던 그는 구속과 동시에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사실상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세계 팟캐스트 순위 1위를 자랑하며, `나꼼수 돌풍'을 일으킨 4인방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그였다.  나꼼수에서 그는 유일한 정치인 출연자였다.  BBK 스나이퍼를 자칭하며 지난 대선 때, 그는 BBK 의혹을 제기했고 4년이 지난 지금,  그와 함께 의혹 제기에 앞장선 의원들은 모두 사면을 받았지만 그만 유일하게 이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했다.   이를 두고 나꼼수의 영향력을 죽이려는 수작이 아닌가 의심들을 한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무고한 사람을 그것도 1년간이나 감옥에 보낼 수 있을까?   무죄가 심히 의심되는 그런 사람을 말이다. 그가 검찰청에 출두해 감옥에 입감 되던 날, 붉은 색 스카프를 두르고 검찰청 앞에 모인 그의 수많은 지지자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 진실은 감옥에 가둘 수 없다' 고 말이다.   

 

정치인이 쓴 책은 되도록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 나같은 독자들이 많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선거에 득이 될까 해서 많은 정치인들이 책을 낸다.  책을 본인들이 직접 쓰는지 의심스럽지만, 자화자찬이 가득하고 함량미달의 선거팜플렛 같은 서적은 선물이라도 받고 싶지 않다.  그런 내게 나꼼수에서 상시적 깔데기(자화자찬)를 들이대는 이분의 책을 구속되자마자 구입해 읽었다.  왜 그랬나?  정봉주가 무죄라는 확신 때문이다.  정봉주의 구속은 4년 전 매듭지어진 듯한 BBK 사건을 국민의 뇌리 속으로 다시 불러오는 기능을 했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권의 자충수 ?

 

먹고 살기 바쁜 생활인이 대부분인 국민들은 사실 BBK 인지 비비큐인지 내 알 바 아니었다.  사실, 알고자 해도 사건이 너무 복잡했다.  등장인물도 한 두 명이 아니다.  대체, 이걸 알아서 내 생활에 득이 될 게 없다.  무슨 사건이 이렇게 복잡할 수가 있나?  하지만, 정치가 본래 꼼수라고 헷갈리는 이 정부 하에서 `국가가 수익모델'인 이 정권에서 `나꼼수'란 팟 캐스트 방송은 결국 초유의 `가카 헌정 방송'을 하기에 이른다.  4개 종편,YTN를 비롯한 모든 공중파를 접수한 정권하에 소위 뉴스라는 게 진실을 왜곡하고, 이슈의 곁가지만 다룬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보는 채널은 EBS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공정성을 잃은 방송은 이미 시청자에게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찰나 나꼼수의 등장은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아, 수다는 본래 여자들의 전유물 아니었나?  하지만, 이들 4인방은 남성 수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 어떤 방송에서도 이렇게 시원하게 국민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했다.  4명의 남자가 웃고 떠들고 시답짢은 수다를 주고받는 듯 하지만, 이들은 그 사이사이에 세상의 공식적인 뉴스와 언론이 다루지 않고 국민이 가장 듣고 싶은 진실을 들려주었다.  나꼼수라는 괴물 팟캐스트의 등장은 이 땅의 언론 현실이 얼마나 척박한지, 이 정권들어 인권과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퇴보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바로비터 아닌가?

 

그는 감옥에 갈 것을 예상했을까?  스스로 폭풍집필이라 평한 이 책에서 정봉주는 자신의 정치역정을 가감없이 들려준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을 타고 당선된 `탄돌이' 의원으로서 그는 정치계를 잘 몰랐던 순박한 초선 의원이었다.  정치가 여,야 할 것 없이 계보로 이루어지고, 그 알량한 계보 없이는 그 어떤 유능한 젊은 정치인도 성장할 수 없다는 우리 정치 현실을 그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한다.  이 책의 가치는 무엇보다 BBK 사건의 본질을 그것의 최전선에서 파헤친 장본인에게 직접 듣는 데 있다.   그는 이 사건의 핵심과 진실이 무엇인지 추정과 추측이 아닌, 증거를 갖고 풀이한다.  요즘 초등학생이 얼마나 똑똑한가?  걔들도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다 알 정도의 사건이 BBK다.

 

"얼마 후 2007년 대선 직전, MB가 광운대에 가서 직접 강연한 내용의 동영상이 나와 다시 전세가 역전되었다. 동영상에서 MB는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말도 안 되는 유명한 논평으로 이 사건을 덮었다. `설립했다고는 했지만 `내가'라는 주어가 없다'는 논평이었다. 실소만 나올 뿐이었다.  이후 나경원 대변인은 `주어 경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검찰이 이 논평을 믿었는지 아니면 국민이 동의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수많은 연관성을 말해주는 자료들에도 MB와 BBK는 관련이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BBK 사건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달려라 정봉주>, p.229

 

명백한 증거와 상당한 의심과 분명한 꼼수가 BBK 사건에는 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주가조작이며, 분명한 피해자도 존재한다. 그것도 수천명의 개미 투자자들이다.  주식시장에서 주가조작은 큰 죄이다.  금전적인 피해를 불러왔다는 것도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인 신뢰를 흔드는 범죄행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한 정봉주 의원은 대법원의 최종심에서 1년의 실형을 언도받았다.  상식을 뒤엎는 이 판결 하지만 우린 안다.  재판이 항상 정의롭지는 못했음을.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 정권 하에서 법원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사법살인을 저지른다.

 

1959년 7월 31일 이승만의 정적이었던 독립운동가 죽산 조봉암 진보당 당수가 사형을 언도받는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에 이어 2위를 차지하던 그를 독재자 이승만은 간첩 혐의를 씌워 사형시킨다.  52년이 지나서야 우리 대법원은 재심을 통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74년 독재자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시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 기속했고,  법원은 이 중 8명에게는 사형,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하는 인혁당 사건을 일으킨다.  역시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이들의 범죄 혐의는 모두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모두 무죄나 면소(기소 면제) 판결을 받았다.  정봉주의 재판이 훗날 어떻게 평가받을지 두고볼 일이다.

 

정봉주는 명랑한 정치인이다. 그는 입감되는 날, 검찰청사 앞 현장에 모인 수천명의 지지자들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 지역기반에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그 지역기반을 옮기고 있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치명적인 매력의 남자, 위대한  정치인, 21세기 융합시대의 융합 지도자..."  그의 깔데기 언설이 계속되는 동안 객석도 함께 호흥하고 웃고 떠들었다. 구속을 앞두고, 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마치 축제 같았다.  그날 KBS 9시 뉴스는 단 10초에 걸쳐 그의 입감 소식을 알렸다. 그것도 뉴스가 시작되고 35분이 지나서야...?

 

광장에 모인 나꼼수의 4인방과 그 관객들의 웃음과 유머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  그 두려움에 떠는 자들은 뭔가 켕기는 게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가 감옥에서 나올즘이면 울면서 감옥으로 직행하지 않겠는가 `졸~라' 추정 된다.   그것이 곧 정의라 확신하는 바이다!   진실은 어떤 순간에도 감옥에 가둘 수 없다.  진실은 지금 국민의 머리속을 배회하고 있다. 

 

 

 

 

 

 

 

20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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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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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이 타계하셨던 2010년 12월에 서재에 들여놓은 책을 1년이나 묵히고 펴보았다.  그때 함께 들여논 책은 한길사에서 나온 그의 전집 가운데 6권에 이른다.  1970년대,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읽힌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 <자유인>, <우상과 이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21세기 아침의 사색>, 그리고 이 책 <대화>였다.  1년간 감히 펴볼 생각을 못했다.  다른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 사회적 진실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없어서 였다고 하는게 더 정확하다.  리영희의 저서들로부터 깨닫게 될 진실들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현대사의 여러 사건들을 진실이란 깃발아래 써내려간 논평가요, 저널리스트였다.   끊임없는 탐구정신으로 세계의 시대조류를 파헤친 성실한 언론인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를 거치며 그는 진실을 추구하는 글쓰기를 해왔다.  투옥과 고문을 당했고, 수차례 언론사와 교수직에서 해직당하며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의 반대편에는 시대가 요구하는 맞춤식 글쓰기와 처세로 승승장구한 언론인과 교수들이 있었고,  그들은 리영희와 전혀 다른 영광의 길을 갔다.  그들은 훗날 장관, 언론사 사장, 고위관리로 임용됐다.   이 영화와 리영희가 멀어진 것은 단 한가지 이유,  진실에 바탕을 둔 삶과 글쓰기를 해왔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 보기드는 고집장이 리영희는 누구인가?

 

리영희는 1929년 12월 2일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에서 태어났다.  1942년 남한으로 내려와 경성공립고등학교와 1950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를 졸업하고 안동에서 친구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그 해에 6.25 전쟁을 맞아 유엔군 연락장교단에서 통역관으로 3년 전쟁을 보낸다.  미국 고문관과 한국군 장교 사이의 통역 업무를 맡았던 그는 지금의 통일 전망대 근처, 향로봉 고지에서 오랜시간 전쟁의 참혹함과 군대에 대한 혐오를 경험한다.  통역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휴전이되고도, 1957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기 전 7년간이나 그는 스스로 혐오하던 군대에 잡혀있어야 했다.  군 제대후, 그는 합동통신사 외신부장과 조선일보사 외신부장을 거치며 저널리스트로서 인생을 시작한다.  엄혹한 시절, 진실을 추구하고 탐구한 리영희식 글쓰기가 시작된 지점이다.

 

6.25 전쟁을 전장에서 몸소 체험하고,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예편 한 이력으로 봤을 때,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영희는 최전선 전장에서 인생의 젊은 날을 보내며 전쟁의 비극과 그 원인, 이데올로기의 허상 같은 걸 배운다.  전장 고지에서 미군 고문관의 통역담당 장교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보충병으로 충원되어 전방 고지로 올라오던 병사들의 신분과 죽음을 예약한 고지전의 아이러니를 몸소 체험한다.  안타깝게도 죽음이 예약된 고지전에 충원된 병사들의 신분이란 지금과 다를 바 없이, `돈과 빽'이 없는 사회 하층민이 대부분이었다.  리영희는 미군 고위관리들과 함께 전쟁을 겪어내며, 강대국의 계산적 논리를 배운다.  훗날, 그가 대부분의 지식인들과 달리 미국에 대한 환상에 젖지 않고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이유다.

 

리영희의 자서전 <역정>을 읽은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1960년대 까지를 다루고 있는 그 책에 대한 기억은 강렬했다.  지금껏 그 어떤 책에서도 배우지 못하고 감히 생각해 보지 못할 이야기를 그는 반쪽짜리 자서전(삶의 전반기만을 다룬다)을 통해, 쏟아냈던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2000년 지병인 뇌출혈로 사실상의 집필 활동을 접었고 자신의 삶과 글쓰기를 정리할 최종적인 자서전을 낼 형편과 여력이 없었다. 외국언론을 통해 그는 `사상의 은사'로 호칭되었다.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가장 진실한 언어와 양심으로 담아냈던 그의 삶이 한 권의 묵직한 자서전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큰 행운과도 같다.  민족문제연구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임헌영과 대담 형식으로 된 이 책 <대화>는 임헌영이 시대순으로 굵직한 사건과 그의 행적을 회고하고 질문하면 리영희가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총 2년간이나 수정,퇴고 작업을 거쳐 이 책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700여 장의 육중한 부피를 읽어내려가며, 왜 그가 `사상의 은사'라는 별칭을 얻었는지 독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저널리스트로서 그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를 워싱턴포스트에 익명으로 기고하는 일에 전념했고, 훗날 4.19 혁명에 공헌한다.  베트남 전쟁을 분석하는 심층적인 저술,연구 활동을 통해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이 무엇인지 논파하는 글을 발표한다.    리영희는 박정희 군사정권을 실질적으로 조정하고, 지원하는 것이 미국이며 한국 정치와 경제가 미국의 지배전략에 따라 좌우 되는 것을 파악해 숨은 진실에 대해 중요한 기사와 저작들을 내놓게 된다.  독자들은 한국 현대사의 숨은 비화, 여럿을 목격하고 파악하는 희열의 순간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리영희가 당시의 독재권력 하수인들에 의해, `의식화의 원흉'이란 악담을 들은 것은 이 때문이었을까?   21세를 살고 있는 독자들까지도 이 책의 행간을 읽어나가며 얻게 되는 `진실'과 그 진실을 추구하는 한 지식인의 `열망', 그것 말이다.

 

"중국의 장개석 총통과 소련의 스탈린은, 제 2 차 세계 대전 중 카이로선언과 포츠담협정으로 일본 패망 후 그 식민지인 조선민족의 즉시 독립을 주장했지요. 그러나 영국의 처칠은 철저한 제국주의 신봉자였기 때문에 조선인의 자치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의 로즈벨트 대통령은 조선인을 미국의 식민지인 필리핀 인민의 수준으로 간주해서 적어도 30년 동안은 신탁통치를 하고 난 뒤에 자주독립을 허용하자는 주장이었어.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도 모르는 한국사람이 많아요. "   리영희 <대화>, p. 82

 

박정희에 대한 리영희의 묘사는 주목할 만 하다.  이 책에 따르면 박정희는 대구사범 재학 시절 일제가 운영하던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려 하는데, 기혼자에 만 20세가 넘어 자격이 되지 못하자, <만주신보>에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이란 혈서를 보내고, 그에 감복한 일본 장교들이 그를 일제 육사에 입학시키게 된다.  리영희에 따르면, 그는 일제시대엔 천황 숭배자로 민족의 배반자였고, 해방이 되자 남한의 사상적 주류였던 남로당(공산주의)에 재빨리 편승했는가 하면, 여,순 사건으로 형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의 사상과 충성을 맹세했던 남로당은 물론 자신의 책임으로 관리하고 있던 비밀 당원의 명단까지 미국 군정에 팔아넘긴자로 철저한 기회주의자요 변절자라는 것이다.

 

리영희는 또한 박정의 시대의 경제 발전을 그 개인의 성과로 돌리는 것에 반대한다. 1960년대까지 모든 면에서 앞서가던 북한을 미국은 경계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동베를린에 대항해서 서베를린을, 동독에 대항해서 서독을 집중적으로 지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 남한을 자본주의의 `테스트 케이스' 또 `쇼 케이스'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래, 미국은 박정희 시절 다른 예속국가와 정부들에게 지원한 것보다 월등히 많은 물질,정치,외교적 원조를 전면적,직접적으로 제공한다.  미국은 체면을 걸고 로스토 계획에 따라 케네디가 미국의 남한 경제지원을 일본에게 대행시킨 것이다.  이것이 박정희가 정권의 목숨을 걸고 한일회담의 성사를 강행한 이유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일정한 물질적 성과를 마치 박정희 대통령의 뛰어난 정치적 지도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사실은 이상과 같은 미국의 세계적 체제경쟁 배경 때문이었다는 국제정치를 알 필요가 있어요.  게다가 한국인의 높은 교육 수준과 지적 수준이 다른 예속국의 국민들과 달랐고."    리영희 <대화>, p.295

 

온 몸과 이성의 힘을 다해, 리영희는 시대의 무지와 권력자들의 횡포, 반민족적 사대주의와 싸워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며 드는 생각은 자생적인 독재자와 강대국 미국에 대한 반감 같은게 아니었다.  그 시대의 시민, 민중, 민족의 역량에 대한 각성 같은거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리영희는 이 책 안에서 권력자와 강대국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그 시대에 협업하고 동업했던 `끄나플'들과 침묵으로 일관했던 `시민'들에 대한 반성도 요구한다.  이땅에 독재와 사기 정권이 들어설 수 있던 책임을 정치 세력과 미국에만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시절 지식인과 언론인을 비롯한 뭇 대중이 그같은 정치구도와 세력을 허용했단 주장처럼 들린다. 이 말은 오늘날의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꼼수정권을 들어서게 한 것은 바로 우리들 아닌가?  사실 잘먹고 잘살게 해준다면 사기와 편법에 능숙한 지도자도 괜찮다고 자위했던 우리들 아니었던가?

 

"박정희 시대의 언론과 권력관계를 두고 말하면, 차라리 신문사주와 신문인이 자진해서 권력에 몸을 팔았다고 나는 생각해. `강간'을 당했다기 보다 `화간'을 한 것이지."  리영희 <대화> ,p.321

 

리영희는 비롯 가진게 없었지만, 뛰어난 영어실력과 통역장교로 7년간 복무하며 한국 최고의 엘리트로서 미군정의 영향력이 남아있던 남한에서 권력을 움켜쥘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마음만 고쳐먹었다면 아마도 고위 관리와 장관을 거치며 일생 호의호식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을 거치며 꼬박 세번 투옥당해 옥고를 치르고,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다. 삼남매를 키우며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세번째 구속되었던 법정에서 방청객의 아내에게 고개를 돌려,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다 입회형무관에게 제지당한다.  조선일보 외신부장으로 있던 시절, 김대중이란 신입 직원이 들어오는데 맘에 들지 않았단다.  훗날, 그만 남고 리영희를 비롯한 많은 기자들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퇴출 당했다.  알다시피 김대중은 훗날 조선일보 대표 주필로 이름을 날렸다.

 

편한 삶을 마다하고 누군들 이런 고초를 겪고 싶어했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저널리스트와 지식인의 본령이 진실의 추구와 탐구에 있고,  저널리스트가 발굴한 진실을 뭇 대중과 나누는 것에 있고, 무지의 나락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에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20세기 중국 인민의 사상적 스승이자 계몽의 선구자란 호칭을 얻은 작가 루쉰을 리영희는 가장 존경하며 닮고자 했다.  그처럼 리영희도 한국 민중을 노예근성이 장악한 어둠의 장막에서 구출해 내려 노력했다.  그의 글쓰기를 통해 7,80년대 의식화 된 젊은이들이 많다. 보다 정확히 그것은 의식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땅의 지식인과 대중이 진실에 눈뜨는 기회였다.  그 시절 어떤 언론인과, 지식인도, 그처럼 온 몸을 던져 진실을 쓰지 못했다.  리영희가 언론인으로서 미래에도 존경받아야 할 이유다.

 

지난 5년은 언론과 역사의 퇴행기였다.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고, 남북관계는 단절되고, 한국 외교는 미국으로 편향되었다.  네티즌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과 SNS의 통제는 진실을 추구하는 입들을 막고자하는 꼼수였다.  민주주의가 언제든 퇴행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몸소 체험했다.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유통시키려는 세력이 여전히 막강하며,  지식인의 곡필이 뭇 대중을 희롱하는 시대다.  리영희의 회고록 <대화>를 읽으며, 글을 쓰는 자의 태도를 배운다.  `진실을 가르치는' 그의 글쓰기로부터 이 시대 책읽는 자와 글쓰는 자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진실은 남이 그저 건네주는게 아니라 찾고 탐구하는 것이며, 비판하는 가운데 다가오는 것이다.  리영희, 그를 어찌 `사상의 은사'라 부르지 않겠는가?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리영희 <대화>, p.675

 

 

 

 

 

 

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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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쓰다 - 이이화 자서전
이이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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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자서전을 읽었다.  올해가 가기 전 자서전 한 권을 읽고자 한 계획은 이로써 달성했다.  그것도 재야 역사학계의 거목이라 표현해도 좋을 이이화의 자서전은 그가 집필한 한국통사를 비롯한 역사서를 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같단 느낌이 들었다.  역사학자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아니다.  시대에 대한 정직한 견해와 비판의 시선이 없다면 역사학자는 어용과 허구의 옷을 입는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라지만 지금 이 시대야 말로 역사를 되돌아봐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결국 역사라고 하는 것은 현실을 밝게 비추고, 미래를 올곧게 설계하는 일이 아닌가?

 

이 자서전에서 우린 재야 역사학자가 탄생하는 과정을 개인과 시대라는 배경안에서 관측할 것이다.  역사를 핍진(逼眞)하게 서술하고자 하는 노력을 이이화는 자신의 전생애를 걸쳐 보여준다.  그것은 모든게 풍족히 갖추어진 연구실에 틀어박혀 사료를 뒤지고 앉아 있는 여느 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현실의 모든 정치,사회적 곤궁에 함께 참여하고 발언하는 용기있는 글쓰기를 표방한다. 

 

이이화는 1936년 대구 비산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학자였고 주역의 대가인 야산 이달 선생이었다.  그는 어렸을 적 야산에게서 주역과 한문을 깨쳤다.  평생 아버지와 애증의 관계였으나 놀랍게도 역사학자로서 그가 대성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한학에 빚지고 있다.  그는 뛰어난 한문실력으로 훗날 사료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역사학자로서의 필수적 능력을 얻는다.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출해 부산,여수,광주 등의 고아원을 떠돌았고 유일한 졸업장을 명문 광주고에서 얻는다. 

 

고학으로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입학, 문학 청년의 꿈을 키웠으나 결국 중퇴하고 아이스케끼,빈대약장수,술집웨이터 등 다양한 생의 이력을 경험한다.  이이화의 궁핍한 삶은 한국 전쟁 이후, 뭇 소시민의 삶의 각박함을 상징한다.  자서전의 초반은 개인사에 집중돼 있다.  청소년기 고학 생활에 대한 경험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것을 통해 독자는 개인이 거쳐온 한국 전쟁 이후 20세기 후반의 역사와 사회 지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경험담 자체가 20세기 한국사의 구체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 개인이 맞이한 4.19나 5.16의 현장을 육안으로 살필 수 있다.

 

그가 역사학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이십 대 후반이었다.  어릴 적 갈고 닦은 한문 실력 덕분에 그는 동아일보사 출판부와 색인실 임시직 직원을 거쳐,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 서울대 규장각, 박정희가 공들여 설립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에서 고전과 역사를 번역, 연구한다.  그때부터 그는 평생 글쓰는 일로 밥벌이를 대신한다.  문학을 포기하고 그가 얻은 것은 역사라는 학문이었다. 그는 역사연구에 자신의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가 역사를 연구하며 보낸 젊은 시절은 학벌에 대한 컴플렉스와 차별이 상존했다. 사료를 엉망으로 번역하고 역사를 오독하는 교수들이 넘치는 시대에, 그는 가난과 고학으로 대학 졸업장이란 간판은 없었지만 실력 하나만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책을 읽어가며 독자는 학벌이나 재력이 아닌 실력 하나로 결국은 인정받고야 만 자수성가형 역사학자와 만나게 된다.  오늘날 젊은 이들은 거의 대부분 대학을 나온다.  그들이 갖고 있는 스펙은 `유사 이래 최고'라고들 한다.  이이화의 모진 삶을 되돌아보며 학벌같은 정형화된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분야에 대한 진정한 열정과 능력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자서전은 그러한 면에서도 독해가 가능하다.

 

" 그런가 하면 박사논문이나 저술 또는 자서전마저 돈을 주고 사서 내는 부류들이 있다.  이른바 대필이다. 이는 표절보다 더 비양심적인 행위라고 본다. 이런 자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이 널려 있을 뿐만 아니라 떡하니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이화 <역사를 쓰다>, p.173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자서전의 가치는 역사를 보는 정직한 눈을 가진 한 역사학자의 탄생에 있다. 그는 100년 전 동학농민전쟁의 의미를 되찾는데 주력했고, `역사바로잡기운동'이나 `과거사청산' 등의 운동을 주도한다.  `한국전 이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상임대표'를 맡는 등의 공적인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에도 힘을 보탰다.  1995년부터 쓰기 시작한 한길사의 <한국통사 시리즈> 전 22권을 10년 동안 집필하여 완성한 것은 필생의 최대 업적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사 왜곡에는 온 국민이 분노하면서도, 진정 우린 자신의 역사를 왜곡하는 시도와 꼼수에는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서술이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역사의식은 역사학자만이 가져야 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가르치는 교과서임을 우린 안다.  역사의식이 없다는 것은 인간을 한갓 경제적 동물로 격하시킨다.  잘먹고 잘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기에 우린 도덕적 흠결이 가득한 지도자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식으로 자위하기 일수였다.  마치 오늘날 박정희 독재정권을 오직 경제적 이유로 미화하려는 집단이 가진 의식과 일맥상통한다. 오늘 우리 시대의 소시민이 당면한 피폐함은 그같은 역사의식의 부재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는 아닐까?

 

"특히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온갖 정치적 파행과 폭압을 자행하면서 18년 장기 독재를 통해 국민을 현혹하는 갖가지 이념공작을 벌였다. `반공' `멸공'을 내세워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저항하는 학생들을 강제 입대시켰으며, 무고한 시민을 불법 체포해 고문을 자행했다. <민족일보> 사건, 통혁당 사건,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등 그 사례는 더 나열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불법 감금과 고문으로 희생된 무수한 의문사는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   이이화 <역사를 쓰다>, p. 413

 

역사에도 양면성이 있다면, 먼저 과오를 인정,사과하고 공로를 논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오늘 이 시대를 보자. 남북관계는 10년전으로 후퇴했다.  남북이 사이가 멀어지는 이 때,  중국은 북한과 부쩍 가까워졌다.  교역규모 면에서 최대인 중국과의 관계는 친미일색인 편향외교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날치기로 통과된 한미FTA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알길 없다.  집권당의 비서를 통해 국가 기관인 선관위가 사이버 테러를 당했지만, 주류 방송과 언론은 어물쩍 넘어갈 기세이고 경찰의 수사 결과는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도 황당할 지경이다.  27살짜리의 단독범행이라니, 내 나이 스물 일곱으로 필름을 돌려보며 그 무모함을 상상해본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자서전을 읽으며 한 역사학자가 민중과 서민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려는 시도를 엿본다.   감시와 비판의 시선이 없다면 앞으로 우린 새롭게 등장한 4개 채널 종편의 막무가내 막장뉴스와 FTA로 수입되는 채리값이 싸질 거라는 공영방송의 지저귐을 진실로 여길 것이다. 역사는 역사학자가 쓰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쓴다.  역사의식을 갖춘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정직한 관점과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민중과 대중의 시선으로 역사를 다시보려는 노력을 역사학자 이이화는 평생토록 이어왔다.  왜 민중과 대중의 시선이 중요한가?  역사의 주체는 1%의 권력이 아니라 99%의 민중이기 때문이다.  우린 권력자의 호의호식(好衣好食)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다.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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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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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몇 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이라지만,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은 몹시도 미시적인 일이다.  인간은 더불어 비속한 동물이다.  만물의 영장, 지구를 지배하는 지적 생물, 종교적 입장에선 선택받은 자로 묘사되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1만년에 지나지 않으며, 그건 지구의 나이라고 알려진 45억년이나 한때 지구를 호령하던 공룡의 시대가 3억년 동안 계속된 것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도 인류 문명은 온 우주의 진리를 독점하고 세상의 이치에 통달한 것처럼 큰소리를 치곤 했다.  특히 종교적 영역에서 중세 1천년의 시간은 인류의 지적 지평이 얼마나 허술하고, 고약한 비약을 감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중세는 AD 392년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이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1천년간 중세 기독교는 세계를 종교적 색깔에 꿰맞추기 위해, 철학과 과학 등 모든 학문을 탄압했고, 그리스 초기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고 있던 과학과 자유로운 철학 세계의 사유를 짓밟았다.  세상은 성서적인 기준에 따라 해석되어야 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은 지구여야 했고, 그래서 태양을 비롯한 별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은 신앙이 되었다. 

지상의 삶은 천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구원받아야 할 여정이었고 과학자들의 연구는 성서의 창조 드라마에 시비를 걸면 심판을 받아야 했다. 지난 1천년은 우주의 역사에서 지극히 미약한 시간이지만,  그러한 시행 착오가 진리에 대한 인류의 각성을 가져왔다는 데는 도움을 주었다.  지구라는 아름다운 인류의 터전은 종교적인 영역에서 바라는 것처럼 우주의 중심도, 유일한 행성도, 선택받은 대지도 아니었다.  지구는 우주의 수십억 은하 가운데 하나인 은하수 은하의 나선 팔 가운데 한 구석에 위치해 있는 존재 조차 미미한 태양계에 거주한다.  천상에서 가장 밝은 별인 태양이라지만, 은하수 은하에만 태양(항성: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나 그보다 큰 별들이 수천억개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지구처럼 그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은 또 수조개가 있다.   

이러한 지구라는 주변부의 하찮은 행성에 발딛고 살아가는 인류는 대체 누구이며, 이 우주의 정체와 진실은 무엇일까 ?  오늘도 티뷰이 뉴스에서 순간 들려오는 온갖 개인과 사회, 세계의 문제들이란 하나 반갑고 환영할만한 게 없다지만,  우주라는 배경과 역사안에서 오늘의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사소하고, 우습지 않을까?  왜냐하면, 현미경 속을 분주히 오가는 미생물의 날렵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누구든 그네들의 삶에서 역시 심각성과 진지함보다는 어떤 유머와 아이러니를 먼저 연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양 과학서로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온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그 명성대로 인류가 지금껏 발견한 과학 지식과 지적 탐구의 역사를 해설한 책이었다. 저자 칼 세이건은 1980년에 이 책을 탈고 했지만,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이 책의 가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당시 최고의 천문학자이자 행성 전문가였던 세이건은 NASA의 자문 위원으로 보이저, 바이킹 등의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했고, 하버드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에서 천문학을 강의했다.  그는 대중들에게 과학지식을 보급하는데 관심을 두었고, 코스모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최고의 대중적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이 책은 텔레비전 판 코스모스를 기본으로 하면서 더욱 정교하게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역사,철학, 생물학 등 모든 학문에 능통했던 저자의 해박한 글쓰기를 통해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본질'을 사색해 볼 기회를 주는 책이다.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p.65 

흔히 종교적 인간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들을 `신'의 영역에 남겨둔다.  무지가 신앙이란 고귀한 이름을 달고, 경건의 옷을 입는 것이다.  때론 이것이 삶에 보탬이 되곤 한다.  대부분의 신앙은 기복신앙의 성질을 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중세 1천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미신의 해악은 순수한 과학 발전을 가로막았고 경건한 중세는 호기심 많은 인류가 탐구욕을 갖는 것조차 죄악시했다.  그리고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마녀 심판 하듯, 탄압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질문한다.  우주는 진정 창조 되었는가?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인과율을 생각해볼 때, 창조는 필연같다.  하지만, 세이건은 직접적으로 이렇게 묻는다. `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그 창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  흔히 종교적인 입장에서 세계는 인과율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원인의 끝에서 신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신의 존재 문제에선 인과율의 예외를 두곤 한다.  창조주는 인과율의 적용을 받지 않고, 본래 존재했다고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인과율 아래서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엔 인과율을 생각할 때, 신은 대체 누가 창조했는가? 라는 이 질문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누가 이 문제에 확실히 답할 수 있을까?  세이건은 차라리 생각을 바꿔 우주의 기원에 답이 없고, 신은 항시 존재했다는 답변은 우주가 항시 존재 했다는 답변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종교적 관점에선 몹시도 불경스럽다.  하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이 예민한 질문을 이 책에서 마주하자마자, 세이건이 무척 용기 있는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하지 않는 종교인은 맹목으로 빠지기 쉽다. 창조주는 대체 누가 창조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할 줄 아는 종교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예민한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신앙에 충실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껏 인류의 진보는 과학적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한 탐구를 통해 이어온 것이다.  교황청이 20세기에 들어서야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탄압한것에 반성문을 썼듯이, 종교는 과학이 발견하는 진실들에 빚지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특이점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설명을 신의 몫으로 떠넘긴다. 이것은 여러 문화권에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신이 무(無)에서 우주를 창조했다는 답은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근원을 묻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대결하려면 당연히 `그렇다면 그 창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해결해야 한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p.513 

그렇지만,  칼 세이건은 과학 만능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과학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의 자정 능력에 달려 있다고 역설한다.  인류 문명의 역사 1만년 가운데 인류가 코스모스의 일원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최근 100년 안의 일이다.  그리고 인류는 핵무기를 갖게 됨으로써 세계를 수천번 파괴하고도 남을 힘을 갖게 되었다.  우주 탐사선을 지구 밖으로 내보내는 모든 기술은 핵무기를 실어나르는 기술에서 가져온 것이다.  과학이 가진 양면성은 이 지구 파괴와 우주 탐색이라는 부정과 긍정의 성질을 동시에 안고 있다.   

종교에선 흔히 종말론을 들먹이지만, 지구 종말은 필연이다.  태양은 헬륨과 수소가 핵반응을 일으키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지만,  타는 물질은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태양은 에너지를 소실하고, 빛을 잃을 것이며 태양계의 행성들도 태양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하지만 지구의 나이만큼이나 먼 훗날의 일이다.  하지만, 세이건은 이러한 별의 탄생과 죽음이 코스모스의 일상다반사한 일이며, 지금도 우주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장엄한 서사시라고 단언한다.  별이 인간의 운명처럼 생과 사를 넘나들고 저 조용한 밤하늘의 별들 사이에서 수많은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놀랍고 경이롭다.  더불어, 셀 수 없이 많은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저 은하들에 반드시 있을 것이고, 지구처럼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세이건은 확신한다.  

"그런데 과연 우주에 이야기할 상대가 있을까?  우리의 은하수 은하에만 물경 3000억 내지 5000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하는데, 지적 생물이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을 거느린 별이 어찌 태양 하나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칼 세이건 <코스모스>,  p.595 

한달 동안 700여 페이지를 읽어내려가며 난 한 과학자의 지적 해박함에 놀랐다.  그는 천문학자지만 이 책에서 그는 인류역사와 철학에도 정통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도 어느 교회에선 성경 이외엔 다른 책은 불경스럽다며 읽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전도서에도 지식을 더하는 것은 번뇌를 더하는 것이란 말이 실려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중세가 갈릴레오와 같은 천문학자나 데카르트와 같은 합리적 철학자에 의해 끝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교회는 그 막강한 힘으로 불경한 것들을 마녀 심판하고 무고한 학자들을 불태워 죽이고 있을 것이다.  하여, 여전히 우리는 태양이 거룩한 지구를 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건 교회가 숭배하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탐구에서 나오며, 지식에서 나온다.  종교적 신념에 어긋난다고 해서, 세상을 비합리적인 믿음에 묶어 둘 수는 없다.  비록, 그것이 신념을 벗어나는 개념이라 하더라도, 우주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거주하는 은하수 은하는 여타의 은하들과 같이 타원형이며 세이건은 이것이 마치 거푸집에서 동시에 재조된 듯 하다고 비유 한다.  지구에서 통하는 물리법칙은 우주 어느 곳에서도 동일한 법칙으로 통한다.  1+1이 2가 되는 것은 우주 공통의 원리란 얘기다.  이 수학공식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과학이란 2가 되어야 한다고 소망하지 않아도 그냥 2인 것이다.  과학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 원리를 파악하려 한다.  넓게 보아 이것은 몹시도 종교적인 일이기도 하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모든 법칙까지 창조했을 것이다.  이 법칙을 연구하고, 감추어진 진실을 찾는 작업,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절대로 반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다.  이것은 신의 섭리에 가닿는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탐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편협한 욕망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은하수 은하의 구석진 나선팔에 위치한 태양계의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은 저 수조개의 별과 은하들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 존재 자체가 몹시 미미하고 대수롭지 않다.  그 미미한 존재가 대우주를 인식하고, 탐구를 시작한 것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세계와 우주,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의 언어와 지식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다.  신앙이 객관과 합리를 따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종교의 영역에서 그토록 갈망하는 `진리'의 일부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20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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