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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서 깊이로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윌리엄 파워스 지음, 임현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내 독서생활에 위기가 왔음을 직감케 된다. 농담이 아니다. 읽고도 충만하지 못하고, 읽고 있어도 좀더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원인은 무엇일까? 생활인으로서 일과 독서를 조합하기가 힘들다. 바쁜 삶은 창조성을 말살하는 일등공신이다. 독서에 감동이 없는 건 아마도 그것과 연관돼 있을 것이다. 더불어 어느 순간부터 멀리하게 된 고전 독서, 내 독서 생활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신간과 베스트 셀러 위주의 독서 생활이 바로 문제다. 이와 비슷하게 내 삶 전체를 공허하게 하는 것은 또 있다.
얼리어답터는 아니지만, 생활의 모든 것을 최신 전자기술의 도움을 받는다. 넘치는 편의성들. 차안에는 네비게이터가, 사무실에선 업무의 모든 것을 컴퓨터가 제어하고, 집엔 무선공유기를 통해 어느 공간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고, 아이폰을 통해 24시간 네트워크를 떠날 수 없다. 특히 아이폰의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생활의 질을 끌어올렸다. SNS는 내가 그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며, 세상의 중심에 내가 서 있다는 착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올해 내 수첩에 적어넣은 비전 15가지 가운데 하나가 삶을 스마트하게 만들고 SNS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었다. 생활은 편리해지고 사람들에게 뒤쳐졌다는 느낌은 지웠지만, 여전히 공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독서생활의 최대의 황금기가 있었다. 까마득하지만, 20대 초입 막 군입대를 앞둔 시절이었다. 겨우 10개월이었지만, 겨울부터 가을까지 나는 줄곧 책만 읽었다. 휴학하고 입영통지서가 날아올 날을 기다리던 시간들, 시골집에서 책만 읽고 보낸 시간들에 나는 주로 고전을 읽었다. 그것이 평생 처음으로 시작했던 본격적인 책읽기였다. 철학,문학서를 위주로한 인문서를 탐독했다. 세상에 대한 의문과 인생에 대한 회의가 짙었던 시절, 고전 독서를 통해 만난 역사속의 인간들은 내게 살아갈 분명한 이유와 어떤 감동과 인류의 지혜를 건넸다. 자와 볼펜 하나를 들고, 수많은 고전들을 독파했던 네 계절의 시간들이 내게 준 최대의 보답은 삶을 충만감으로 깊게 채웠다는 것이다.
이제 이십여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더 많은 책을 읽었고, 생활은 더 윤택해졌고, 인생의 불확실성은 많이 사라졌다. 고독을 느낄새도 없이 바쁘고 편리하게 시간이 흘러가지만 여전히 나는 그 시절의 충만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비슷한 불안과 초초함을 느끼는 사람이 이 시대, 나만은 아닌가 보다.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하고,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주요한 매체에 정치, 문화, 미디어와 기술에 관련된 글을 기고해온 필진인 윌리엄 파워스는 이 문제를 심도있게 파고든 책을 세상에 내 놓았고 미국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 아마존 베스트 셀러에 오른다. 원제 `Stop! Breathe! Think! 로 <속도에서 깊이로>란 책이다.
저자는 스크린(인터넷)이 세상을 눈부시게 바꿔놓으며 정보 교환의 속도를 높이고, 사람들간의 거리를 좁혀 마치 유토피아를 현실 세계에 구현해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왔지만, 실제 사람들의 삶은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정보 기술의 노예로 전락했고 쓸데없는 정보교환에 열을 올리며 중독의 나락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한다. 트위터와 페이스 북을 통해 인류 전체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걸 위해 진정 자신 곁의 사람들로부터는 떠나게 되었다. 가족이 모이면 대화가 사라지고 저마다의 스마프폰 속 트친들과 살갑게 대화하기 일수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별 필요도 없는 기사들을 검색하느라 스마트폰과 인터넷 포탈을 뒤지고, 하루에도 시덥짢은 트윗을 수없이 날리고, 그렇게 날아든 정체모를 트윗을 읽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어쩌다 네트워크에 접속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알 수 없이 불안 초초가 사람들을 잠식하곤 한다. 이 괴상한 불안 증후군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가 이 책에서 스마트 폰을 끄고 인류 고전속의 작가와 철학자를 찾아 떠난 이유다.
신제품의 유효기간이 갈수록 짧아진다. 자고 일어나면 쓰나미처럼 밀려와 최신, 최고라고 떠벌리는 제품들이 소비자를 희롱하는 시대다. 희롱이 아니라 `우롱'이라고 해야 될까? 사는 순간 구닥다리로 전락시키는 소비전략을 구사하는 마케팅 기법앞에 소비자는 봉이라고 불리워야 하리라. 정보 속도와 `항시접속성' 앞에, 집중할 수 없는 시대에 또한 우린 살고 있다. 글을 쓰다가도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고, 전자책이 상용화 단계가 접어들면 책조차도 넷 상의 분주함속에서 읽어야할 판이다. 끊임없는 정보 중독증에 걸리도록 유혹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깊고 조용히 사색할 시간을 빼앗기고 말았다. 인간의 창조성이 몰입과 여유의 순간에야 한 인간의 삶에 축복처럼 내려앉을 수 있다면, 스크린으로 지구가 점령당한 우리 시대는 스마트 한 시대가 아니라 dumb(바보같은)한 시대가 아닐까?
저자가 이 시대에 발견한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책의 제목처럼 속도를 버리고, 깊이로 들어가자는 것이다. 깊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고전을 읽고 그들의 삶과 철학을 본받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이 책속에서 저자가 유독 주목한 고전 작가들은 플라톤, 세네카, 구텐베르크, 세익스피어, 벤저민 프랭클린, 소로, 맥루한이다. 플라톤은 철학을 통해 인생의 사소한 분주함과 거리를 두는 법을 가르친다. 먹고 사는 것은 훌륭한 철학이 기본 전제 됐을 때만 오직 의미를 획득한다. 먹고 사는 일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일을 인생의 목적으로 착각하며 이유없이 분주하다. 내, 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나, 를 살찌우기 위해 노력한다. 인생의 근본목적이 내, 가 누구인가를 먼저 배우는 과정이라 하면 어떤가? 전자만을 추구한다면 전형적인 주객 전도다.
외부의 평화와 외부의 만족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절름발이 인생을 산다. 마음, 즉 내부의 평화를 얻는 법을 아는 사람은 외부가 고달플 지라도 인생이 훼손되지 않는다. 이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바깥이 아수라장이 되어도 내면은 고요할 수 있다', 고 세네카는 가르친다. 마음의 수련이 부족한 오늘 고전속의 대 사상가의 식견은 그 자체로 위안을 주지 않는가? 구텐베르크는 책을 통해 자기 성찰을 이루라고 조언했고, 세익스피어는 최신 도구보다는 오래된 필기구를 통해 인생의 여유를 찾았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절제의 규범을 스스로 만들어 삶의 질서를 창조했고 성공적인 삶에 도달했다. <월든>의 작가 소로는 어떤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세상이 규정한 성공의 법칙과 정 반대의 삶을 살며 깊고 고요한 인생 철학의 진수를 인류에게 남겼다. 현대의 학자 맥루한은 `지구촌'과 `미디어는 메세지다'란 말을 통해 디지털 세상을 예언했고 그 세상의 부작용을 경계하며 쓸데없이 뜨거운 마음의 온도를 낮추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최신간이다. 여전히 나는 최신간을 통해, 그들의 해설를 통해 고전을 읽고 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속도에서 깊이로, 라는 책 제목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많은 책 가운데 우선적으로 선택해 분주히 읽어내려간 이유다. 그러나, 실망감도 만만치 않다. 제목만큼 책 내용이 썩 깊이있지 못하다. 스마트폰의 해악과 디지털 스크린의 해악을 설명하는데 책의 반을 허비한다. 시간 낭비다. 후반, 양념처럼 고전 작가와 그들의 언설을 인용해 놓았다. 내가 제 3 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고전을 느리고 깊게 읽어내려가야할 필요성을 깨닫기에 충분한 책이다. 별을 세개 밖에 주지 못한 이유이지만, 별 다섯개를 줄만한 책들이 내 서재에 가득 쌓여 있다는 것을 안다. 결국 이 책은 깊이 없는 내 독서를 돌아보게 한다.
아이폰은 내 생활을 생동감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아이폰 자체는 죄가 없다. 이 책의 저자도 아이폰과 모든 스크린(인터넷도구들)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저자는 줄곧 그래서 중용과 중도를 이야기 한다. 한마디로 잘 쓰자, 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궁여지책으로 주말 이틀간은 모든 스크린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정도까지야 할 수 없겠지만, 이제 나또한 스크린을 현명하게 사용할 분명한 이유를 이 책을 통해 발견했다. 차를 몰면서도, 퇴근 후에도, 끊임없이 스마트 폰을 확인하는 버릇을 없애야 겠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고전 독서로 방향을 틀어야 겠다. 꾸준한 독서생활에서도 채워지지 못하는 이 공허감은 분명히 인생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내 가벼운 독서 탓이 크다. 고전으로 돌아가자.

201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