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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가장 완벽한 드라마의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주인공이 죽는 것이어야 한다. 주인공이 죽는다면 해피엔딩이라 할 순 없다. 그래도 그는 비장하게 죽어야 한다. 죽어버린 주인공은 그 자체로 그를 욕망하던 이들에게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 그의 육체가 화학작용을 멈추는 순간, 그는 완벽한 영웅이나 왕으로 되돌아 온다. 이것은 한 인물을 증오하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죽음은 그의 과오를 감정의 문제에서가 아니라 객관화의 눈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제왕은 죽을 때를 알고 죽어야 신화로 환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성석제의 소설 <왕을 찾아서> 속 그네들의 영웅이자 왕이었던 마사오의 전설이 시작되고 그가 미화되는 지점도 마찬가지로 그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순간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역 조폭, 마사오의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는 소설은 독자들의 기억속에서 아련하게 쓰러져간 한 영웅의 그림자를 불러온다. 마사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묘사하고 있는 화자는 철저히 어린 시절의 회상과 추억들을 도구로 쓴다. 무소불위의 싸움꾼, 동네 건달, 호색한은 동시에 빈자들의 친구, 정의의 사도, 비열한 조폭들의 희생냥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무엇이 한 시대, 한 인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마사오는 평가가 불가능한 전설 저 너머에 있다. 소설은 비통하게 쓰러져간 왕을 중심에 놓고, 그의 권력을 탐하고 왕좌를 시시탐탐 노렸던 비열한 군상들의 일면들을 나열한다. 유신조, 조창용, 박재천, 그들 수하들의 모습. 지역 패권을 가진 마사오을 정상에서 끌어내려는 그들의 탐욕은 부질없이 폭력과 살인을 낳고 옛 영웅의 죽음과 새 왕의 대관식을 치룬다. 마사오의 권력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화자에게 마사오가 정통성을 가진 이윤, 오직 어린 시절 나의 기억속에 그가 힘과 비범함으로 존재하였다는 데 있을 뿐이다. 굳어진 권위는 흔들리지 않는다. 패권적인 힘은 굴종하는 인간을 대량생산한다.
이 수동적이자 마초적인 힘은 이해불가하다. 허나, 모든 권력의 속성이 그와 같다. 권력의 정통성은 권력을 갖게 되는 순간, 획득하는 것이다. 정통성에 근거가 있는것도 아니고 뚜렷한 합법성을 소유하고 있는것도 아니다. 이 소설이 지역 패권을 갖고 오랜시간 통치했던 마사오를 정통의 범위에 두고, 그를 쓰러뜨리려는 외지 패권 조창용과 그의 수하로 돌변한 박재천을 비열한 반역으로 그리려 하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마사오의 정통성을 서사로서 완성하는데 화자인 나, 장원두의 기억은 중요하다. 수많은 유쾌한 추억들로 독자의 흥미를 돋우려는 소설의 전략은 독자에게 마사오의 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기억을 통해 독자의 동참을 획책한다.
유머와 가벼움, 추억과 성장담, 인간 내면의 보편적인 본질 등을 성석제의 문장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둔중한 조폭 권력의 세력 다툼을 이야기로 묶어내면서도 문장은 전혀 심각하지 않다. 성장담과 추억속엔 어린 시절에 대한 작가의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유머와 가벼움을 양념처럼 바르고 권력 쟁탈의 과정을 통렬하게 그리면서, 궁극적으로 작가는 생활의 편린과 인간의 권력욕을 담아내는 마술을 보여준다. 허나, 그가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문장들은 이상하게도 작위적으로 비추이지 않는다.
"나는 쑥쓰러워하면서 바삭거리는 메뚜기를 씹었다. 그래서 군말 없이 나를 따라나섰던 거로군. 생맥주도 사주고 말이지. 정의의 사도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가장 수줍어하는 법이다. 그래서 자신이 구해준 숙녀와 소년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석양 속으로 말 타고 떠나는 법. 속으로는 그 숙녀와 천년만년 살고 싶어 미치겠지만. " P.262 성석제, <왕을 찾아서>
화자는 마사오를 지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이자 한 때 그가 가난과 불의, 불평등에 시달리던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고 묘사한다. 그는 아이들의 우상이었고 어른들에게는 왕으로 군림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났는지를 의심케 만들만큼 큰 영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문장은 어떤 신화와 전설의 화법을 차용한 듯 보일 정도다. 그러나 현실에 그러한 `사내'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는 사람들이 가진 욕망이 가장 극렬하게 드러나는 전형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화의 색채가 진해지는 것은 시간을 거쳐간 인간들의 거대한 욕망이 보태어지기 때문이리라. 신화가 영웅성을 더할수록 한가지씩 거짓말을 보태는 법이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잘 생긴 동네 건달 아저씨가 한 분 사셨다. 그분의 집은 아이들의 놀이터나 다름 없었던 묘지가 자리잡은 뒷산 자락에 있었다. 집이 아니라 개집보다 조금 큰 정말 `개집'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멀쩡하게 잘 생기시고 꼬마들에게 일장 훈계도 잘 늘어놓던 그 멋진 분이 그런 곳에 사신다는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 시절엔 그분이 개집에 산다는것도 우리들에겐 신비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분이 술을 잔뜩먹고 그 개집에서 주무시다 어느 겨울날 얼어죽었다, 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와 꼬마들의 상실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호령할 것 같았던 그분의 기상과 의기, 독특한 주거 환경은 마을 꼬마들의 이상이었다. 소설속 마사오의 일대기를 읽어나가다 내 기억속 왕이 되지 못한 `마사오'을 떠올린다.
"내 마음의 시생대, 가장 오랜 영토를 지배하는 영원한 왕, 세월이 흘러가도 추억은 남듯이 그가 통치하던 땅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땅에 있는 것들은 모두 일월이 빛과 그늘에 눌리고 밟혀서 묵은 책 속의 검은 활자처럼 단단하고 납작하게 고정되어 있다.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마사오가 죽은 것이다. 마침내, 드디어, 이윽고 때가 되어 그의 육체에도 안식이 찾아들었다." P.9 성석제 <왕을 찾아서>
권력을 찾아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인간들의 일대기를 그리며, 권력의 허망함과 권력앞의 비열함을 그려내려한 소설은 지역을 떠나 국가, 세계의 권력 속성과 중첩된다. 권력을 획득하는 자가 정의도 획득하는 세계에 우린 살고 있다. 마사오의 1인 독재는 현실마냥 영원하지 못했다. 여왕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왕을 남편으로 맞이하면 된다는 `세희'의 상승에의 욕망과 조폭끼리의 의리보다 화려한 처세술로 왕의 자리에 등극하는 세희의 남편 `재천'은 우리 세대, 권력획득의 표준 메뉴얼처럼 읽힌다. 마사오에 대한 나, 장원두의 아려한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설속의 나, 장원두가 걸어들어간 안개와 회오리바람이 피어오르는 저 흐릿한 계곡 너머의 `지역'이나 매일 먹는 밥처럼 맛이 없는 일상이 내려앉은 우리 곁의 세상에서나, 그 완벽한 그리움을 대체할 무엇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죽음이 영웅의 신화를 짓듯이, 인간의 끝없는 갈망은 아련한 그리움을 낳을뿐이다.
성석제의 소설을 접하기는 처음이다. 그간 신문,TV 등을 통해 관련 기사나 작가의 기고글, 혹은 인터뷰, 여행기 등을 읽고 보아온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성석제는 유머와 농담을 자신의 글속에 담아내길 즐기는 작가로 알고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그의 재능을 맘껏 발휘한다. 농담과 유머가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다. 소설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문장을 유머로 비트는 능력이 놀랍다. 독특한 것은 문장의 완성도가 처음보다 뒷부분으로 넘어갈 수록 좋아진다는 점이다. 초판이 발행된 것이 15년이 지났고 아마 그는 신출내기 작가로 이 작품을 구상하고 써내려갔을 것이다. 문장의 완성도가 상승하는 형태라면, 서사의 완성도는 후반부로 갈수록 흐릿해진다. 서사 골격의 완성도를 높였다면 충분히 좋은 소설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점이 아쉽다.
이 소설은 독자들의 무의식 속에 잠든, 왕 마사오를 깨웠다. 우리가 되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자극한다. 비록 그것이 지금은 아련한, 아릿한, 그 무엇일지라도 한 편의 소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그런 것들이 아니겠는가?

20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