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hug! 아프리카
김영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여행의 목적이 꼭 즐거움일 필요가 있을까?   우린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여행한다.  그러나 꼭 그것만이 여행의 목적은 아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을 읽다보면,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고, "아테네"라고 하지 않고 "세계"라고 답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이 나라만이 전부가 아님을 우린 시시때때로 잊어버린다.  세계가 우리의 무대, 우리 생의 공간이란 진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우린 때로 배낭의 짐을 꾸려야 한다.

대개 해외여행이라면 초보여행자들은 근사한 여행지를 찾기 마련이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뒷골목이나 미국 뉴욕의 한 복판을 걸어보고 싶은 것은 이심전심이다.  내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현실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떨어지고 색다를수록, 또 누추하지 않고 세련된 세계일수록 제대로된 여행지란 착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여행은 대개 수박겉핧기에 그치고 만다.  고달픈 기억들이 여행을 더 의미롭게 한다.   `집나가면 개고생'이어야 하는 것이 여행의 본질 아닐까?

그래서 대한민국 방송국 대표 프로듀서로서 그간 참신한 기획으로 코메디 오락물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왔던 김영희 PD가 무작정 배낭짐을 꾸리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쌀집아저씨란 별명이 왜 붙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는 그렇게 불렸다.  그 단어에서 풍기는 소탈한 이미지만큼 그가 연출한 프로그램엔 오락성과 공익성이 잘 배합되곤 했다.  대체 그는 왜 하고많은 나라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들이 움집해 있는 대륙 아프리카로 여행을 갈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을 받아들고 생긴 첫번째 궁금증이다.

소감부터 말하면 이렇다.  지금껏 몇 편의 여행기를 읽어보았지만 이 책만큼 참신하고 생동감 넘치는 여행기를 만나보진 못했다.  이 책에서 김PD는 세가지 조리기구를 통해 아프리카를 맛있게 요리해 나간다. 그 세가지는 짧고 감칠맛나는 문장, 헨드폰으로 찍은 듯한 날렵한 스냅사진, 그리고 놀랍도록 정교하게 아프리카를 스케치한 그림들이다.  특히 여행지의 풍광이나 사람들을 묘사하는 그의 그림 실력은 자타가 공인해줄만큼 특출나다.  피디가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려도 되는건가?   고백하건대, 이 책을 읽는 내내 사진이나 여행기보다 더 재밌었던건, 그의 붓터치를 거쳐 새롭게 탄생하는 아프리카의 표정들이었다.

여정에 따라 쓰고,찍고, 그린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고달프지만 신비스러운 아프리카 여행에 그와 동행하고 있음직한 착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책에서 만난 아프리카는 여행지로서 바라보기엔 토착민의 삶에 먼저 안쓰러운 눈길이 쏠린다.  최고급 식당은 현지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다.  관광지마다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자신을 단돈 몇십달러에 써달라고 애원하기 일수다. 아프리카에 더이상 공식적인 노예상은 없다. 그러나 자발적인 노예들은 가는 곳마다 득실대며 당신의 은전을 요구하고 있다.

관광객이 건내는 단 몇 달러의 돈에 자존심을 내팽개칠 수 있는 아프리카인들은 여전히 노예적 삶을 살고 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묻혀 있는 케냐의 묘지앞에 서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 여행기를 읽으며 그가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아프리카의 현실이란게 무엇인지 감잡게 된다.

그러나 포커스를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닌 아프리카 대지에만 놓고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면 이 대륙은 신비 그 자체다.  단박에 이 세계는 인류가 기원한 태고의 땅이자 거룩한 대륙이다.  세계 최고의 도시 마라케시에서는 수많은 국제 회의가 열린다. 마라케시의 이름을 본딴 국제협약들도 즐비하다.미국 그랜드캐년의 규모를 넘어서며 영화 <반지의 제왕>의 무대가 되었던 드라켄즈버그 협곡은 마치 관광객을 화성이나 달 표면으로 이끌만큼 환상적 풍광을 지녔다.  세계 최대의 사막 사하라와 낭만의 도시 카사블랑카도 빼놓을 수 없다.   또 나이아가라 폭포에 버금가는 빅토리아 폭포의 장엄함은 사진과 글만으로도 그 웅장함이 전해오기에 충분하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며 영화같은 사파리를 즐길 수 있는 곳,  동물도감에서나 나올법한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땅이 바로 아프리카다.이곳엔 문명에 익숙하지 않은 원시의 웰빙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드넓은 초원에 불이 꺼지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 도시에서는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밤의 본래 모습이 드러난다. 진정한 밤이 초원을 덮는다.  그래야 비로소 동물들이 잠을 잔다.  그러므로...인간이라는 동물들의 불면증은 밝은 밤에서 비롯된 것! 진정한 밤을 가질 수 없는 현대인들이 진정한 잠을 경험할 수 없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기가 현대인들의 진정한 잠을 방해하고 있다. "  <헉! 아프리카>, 김영희 , p.26

김피디는 두달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아프리카의 속살을 속속들이 경험했다.  그것은 세련된 부분들이 아니라 먼지날리는 신작로처럼 누추한 풍광들이다.  후진적인 사회 시스템은 게으르고 비전없는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에서 시원하고 있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꺼풀 더 벗기고 아프리카를 바라보면 우리 사회의 비릿한 풍경들이 겹쳐보이곤 한다.  보다 나을것도, 보다 좋을 것도 없는 그런 세계말이다.  특히 정치인의 마인드는 우열을 가늠하게 힘들지도 모르지.....

아프리카 대륙이 후진적인 것은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아프리카는 자원과 시민을 진보한 유럽 세계에 수탈당했다.  서양인들이 남기고 간 것은 가난과 무기일 뿐이다. 현재 빈곤과 내전의 고통에 휩싸인 아프리카는 기름진 얼굴을 한 유럽인들이 값싼 은전을 베풀러 오는 여행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피디가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것도 이 장엄한 대륙의 가능성이다. 사기꾼, 거지, 도둑, 강도가 득실대는 아프리카 대륙을 거쳐오면서, 언제나 유모와 여유로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김피디는 여행지 곳곳에서 대한민국 쌀집아저씨의 여유와 인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언제나 빛을 발하는 것은 못된 사람들 사이에 보석처럼 박힌 성실하고 매너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 먼 타국, 온통 검은 피부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성실함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드넓은 우주의 어느 행성에서 발견한 생명의 흔적만큼 가슴뛰는 그 진실. 독자는 미지와 암흑의 땅에서 가슴이 따뜻해 지는 그 익숙한 사람들에 감동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아프리카의 희망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김PD는 왜 아프리카로 떠났나'에 대한 짧지만 가장 명쾌한 답이 될 것 같다.



2009.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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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7-2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도 님의 강력할 지름에 땡스투하고 구매했는데
이 책은 더한 뽐뿌질을 ㅎㅏ시네요~.^^;;;
보관함에 넣습니다~.^^

개츠비 2009-07-28 11:42   좋아요 0 | URL
nabee님...제가 뽐뿌질을 했나요 ? ^^ 좋은 책은 널리 퍼트리면 좋죠. 굿바이스러니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