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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나는 교회를 나가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렇다고해서 내 믿음이 견고하고 신앙이 깊다고는 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크고 높아질 수가 없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은 그저 의심없이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줄로만 알던 때가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성직자가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 뉴스에 오르기라도 하면, 일반인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고 그들은 거기에 보태어 그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 신앙 자체를 덤으로 비판한다. 그것은 어린 아이가 버릇이 없으면 당장에 버릇없는 아이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것과 덤으로 그 부모를 비난하게 되는 경우와 동일하다. 내가 처음 교회에 등록을 하기 위해 8주간 주일마다 교회 당직자들에게 간단한 교육을 받을때가 생각난다. 그때 한 주 교육을 맡은 나이 지긋하고, 교양있어 보이는 집사님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몇십년간 교회생활을 했지만,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은 것은 최근에 일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신자가 된 지금은 알것도 같다.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절대자를 믿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마더 데레사라는 세기의 성녀조차도 한때 하나님의 부재를 고민했던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자신있게 요구한다. "내게 증거를 보이라, 그러면 신을 믿겠다"라고.
영국 명문 옥스포드 대학교의 생물학과 석좌교수인 리처드 도킨스를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서지만 이미 그는 몇십년전에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명저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저서들은 넓게 봐서 모두 반종교적인 기류를 담고 있다. <만들어진 신>에서 도킨스는 평생의 무신론의 논리를 완벽하게 정리하고자 원한 듯 하다. 이 책은 무신론자의 경전까지는 못되더라도 그것의 이론적인 논거를 거의 완벽하게 집약하고 있는 뛰어난 저서라고 생각된다.생물학자이지만 그는 전형적인 진화론자란 느낌이 들었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논증에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앞장세운다. 말하자면 생물은 환경에 적합한 개체만 살아남아 변이되고, 그러한 변이가 계속되면 고등생물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성서의 창조론에 맞서, 이 진화론의 핵심논거를 지속해 자신의 책으로 끌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이론이나 자연선택설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가 그쯤은 알것이라고 생각해서 넘겨버린 것인지, 아니면 무지한 창조론자들이 다윈의 <종의 기원>을 좀 읽어보라는 독려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좀체 헤깔렸다. 아마도 후자의 의미가 더 있는 듯 하다. 나또한 집의 서재의 한쪽 귀퉁이에 읽어보지 못하고 보관중인 다윈의 이 오래된 서적을 펴보게 되었으니까.
도킨스는 이 책에서 무신론자로서 모든 종교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그 가운데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대표로 도마위에 올려놓고 왜 인격신을 믿는 종교자체가 허구인지, 조목조목 반대의 논거를 열거하고 있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도킨스가 불교와 유교 자체를 종교로 보지 않고 도덕이나 윤리 체계로 이해한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이것은 그의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거의 논리의 오점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책 가운데 옥의 티가 돼 버렸다. 그는 차례대로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에서 역사적으로 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명이나 파스칼의 내기, 성서속의 존재증명 등의 허구를 파헤치고 `신이 없다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란 장에선 자연선택설을 기반으로 나름 무신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든다. 이렇게 신의 존재에 허구를 밝혀낸 그는 종교가 있음으로써 우리 인간이 도덕을 세울 수 있고,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반대 논증하기 위해 `도덕의 뿌리: 왜 우리는 선한가?"라는 장에선 종교없이 충분히 인간이 정의롭고 도덕적일 수 있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로 들어와서 그는 `내가 종교에 적대적인 이유'란 장에서 자신이 왜 무신론자가 되었고 종교의 역사적인 해악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 있다. 그리고 `종교로부터의 도피'란 장을 통해 그는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에게 부모의 종교적 신념을 주입하는 일이 아이의 교육과 인생에 가장 큰 해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기까지 그는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긴 논증을 통해 인격신과 유일신 신앙을 가진 종교, 좁게 말하자면 기독교의 성서와 창조론의 논리적 허구를 날서게 비판하고, 신이 없다는 것을 거의 완전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이 놀라운 것은 그가 기독교의 전통이 오래된 서양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사람이라는 것이고, 그 영역에서 살아가고 활동해야할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다. 종교를 사회적 성공과 사교적 기회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그는 아마도 종교와 적당히 타협하고 살았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그는 더 안정된 환경속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과학자로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그가 무신론자임을 온세상에 드러내지 않아도, 그는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더 좋았을 것이란 점이다. 그 점에서보면 그는 정직하고 또 용기있는 학자이며, 종교가 이 사회에 끼치고 있는 해악을 양심적으로 고발한다는 면에서 봤을때도 그는 존경할만한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나는 종교인이고 또 그와 신념을 달리하는 면이 있지만 그의 그런 점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지금 나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다. 천동설이 진리이고 그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을때 종교적인 재판을 받은 갈릴레오가 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가 돈다'라는 명언을 남겼듯이, 나는 나의 신앙의 허점을 심판하는 도킨스의 책을 모두 읽고 책장을 덮는 순간에 그의 완전해보이는 논증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하나님은 리처드 도킨스까지도 사랑하고 계신다'라는 말을 내뱉고 싶었다. 이것은 무엇때문일까?
"예수에게 인간의 아버지가 있었을까,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어머니가 처녀였을까? 판단에 쓰일 만한 증거가 충분히 남아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그것은 원칙적으로 명확한 답을 지닌 엄밀한 과학적 질문이다. 즉, 답은 "예"나 "아니오"다.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려 냈을까?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3일 뒤에 다시 살아났을까? 우리가 현실적으로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의 여부를 떠나서 그런 질문들은 모두 답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엄밀한 과학적 답이다." <만들어진 신> p.95
나는 도킨스가 얘기하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정치를 잘못해서 많은 인간이 살육당한 것보다는 종교적인 이유로 죄없는 사람들이 살육당한 경우가 더 많고, 오늘날 기독교와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 때문에 세계가 평화롭지 못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근본주의는 성서나 코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자신들의 종교 이외를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인 신앙을 갖는 집단 관념이다. 오늘날의 이슬람의 테러나 미국의 만행은 모두 종교적인 이유를 그 기저에 깔고 있다. 그런면에서 나도 도킨스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러한 만행이 있다고해서 우리가 종교 자체를 부정해야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본다. 나는 어떠한 종교건 간에 그 종교 자체의 이념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화합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어떤 종교에 살육을 가르치고 반목과 전쟁을 이념으로 삼은 경전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그러한 신념을 갖고 살아가려는 인간들의 잘못된 신앙과 생활이 오늘의 이 평화롭지 못한 세상을 만든 것이다. 마더 데레사와 조지 부시를 대비해보라. 그들은 같은 하나님을 믿지만, 한분은 일평생을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가르침을 실천한 분이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과 침략을 일삼는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그들은 같은 성경을 읽었다. 조지 부시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침략과 살육을 옹호하고 이슬람 같은 타 종교인은 최첨단 무기로 쓸어버려야할 집단이라고 쓰여 있을까?
도킨스는 또하나 이 책에서 실패한 부분이 있다. 많은 부분 신의 존재의 허구와 성경이 소설이라는 관점을 증명하는데 노력하고 있지만, 그가 진정 신이 없다는 것또한 명백하게 증명하지 못했다는것과 19세기의 생물학자 다윈의 이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진화론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는점이다. 무신론자들을 잠시 들뜨게 했을지는 모르지만, 신앙인의 신념을 그 정도의 논거로 흔들리게 하지 못했다. 도킨스는 증거를 대면 신을 믿겠다고 주장하지만, 신앙인의 입장에서 봤을때 그는 신이 없다는 명확한 증거도 대지 못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도킨스는 과학자다. 과학에서 하나의 이론이 세워지기까지는 수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그러한 실험실의 과정을 거쳐야만 이론은 진실이 된다. 그가 증거를 대라고 하는 것은 그의 직업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은 과학자의 엄밀한 태도로는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성은 과학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성서속의 사건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간단히 예를 들어 예수님의 기적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죽어 버린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그가 잠에서 깨어나듯 살아난다는 것이 어찌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으며, 죽은 지 삼일만에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는 것도 과학적으론 절대 증명 불가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우리는 이 모두를 믿어야 한다. 그것을 믿고 난 다음, 우리 신앙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지, 도킨스는 절대로 알 수 없다. 그것은 그 신앙인만이 알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다. 과학으론 설명될 수 없는 현상들이 내 영혼속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정확히 설명할 순 없겠지만, 지극한 행복감, 충만감 같은게 아닐까?
그러나 나는 앞서 얘기했지만 하나님은 리처드 도킨스까지도 사랑하실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능력에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때로 인간은 실수하고 또 범죄할 수 있지만, 언제나 돌아설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성경속에선 회개로 지칭하지만, 구태어 그렇게 종교적인 가치를 지닌 단어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사랑앞에 우리는 모든것을 포용할 수 있으며, 유신론이나 무신론을 뛰어 넘어 정작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성서속 가르침의 으뜸은 사랑이다. 투쟁이나 전쟁이나 살육이 아니다. 사랑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사랑의 가르침이 허구임을 구태여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