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는 FA컵 64강전이 있었다. 수없이 온 곳이지만 여전히 축구장 앞에 서면 떨린다. 저 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도심 한복판에서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게 가끔씩 새삼 신기하다. 일 하나를 마감하느라고 유독 피곤한 몸으로 빽빽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눌리다시피해서 오면서도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매주 축구장에서 경기를 본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이다. 이날은 올해 첫 야간경기. 야간 경기 너무 좋아 게다가 이겼다!


목요일에는 드디어 교정지를 보냈고 아쉬탕가 요가를 갔다. 새로 나온 4월 요가 스케쥴을 보니 아쉬탕가 요가가 일주일에 두 번 있었던 3월과 다르게 4월에는 딱 하나 있는데 그마저도 세미나 시간이랑 겹쳐 당분간 아쉬탕가를 못하게 됐다. 3월에는 아쉬탕가, 빈야사, 코어요가 사이에서 뭘 가고 뭘 안 갈지 행복한 고민을 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그 어느때보다 정성들여 아쉬탕가를 하고 왔다. 이날의 성과는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를 할 때 드디어 매트에서 머리를 떼었다는 것. 물론 3초도 못 갔지만ㅋㅋ 이제 요가한 지 두 달이 넘어가는데 붙은 근육들이 느껴진다. 배도 한결 단단해졌고 특히 허벅지 뒷쪽과 삼두근이 단단해졌다. 근육이 붙고 단단해지고 있어! 요가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올 때의 봄밤은 어쩐지 더욱 포근하고 설레고 황홀해서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와인을 마시고 푹 잤다. 


금요일인 오늘은 아침에 빈야사 요가를 다녀왔다. 이제 수리야나마스카라A와 B에는 매우 익숙해져서 내 몸이 내 이상을 제대로 실천하는지 아닌지와 별개로 누군가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가르쳐주는 걸 매우 두려워하는 소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운동갈 시간을 따로 못 내고 있는 봉이가 지난주부터 유튜브로 홈트를 찾아보는 걸 봤기 때문이다. 어차피 영상보면서 혼자 할 거라면 내가 가르쳐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퇴근하고 같이, 혹은 주말마다 같이 30분씩만 해도 좋을 것 같아서. 봉이는 처음이니까 일단 블럭도 필요할 것 같고. 블럭이랑 요가매트를 알아봐야겠다. 그나저나 요즘 읽고 있는 책 두 권이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만 시간 빼서 아무것도 안 하고 책만 읽고 싶은데(두 권 다 한 번 잡으면 푹 빠지기에 딱 좋은 책이어서) 이번 주는 뭔가 계속 바쁘다. 스피노자 한 줄을 못 읽었네. 출퇴근 시간에 짬짬이 나눠 읽기에는 몰입도가 너무 커서,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다음에 읽고 싶어서 두 권 중 한 권은 따로 빼놓았다. 아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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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지난 번에 못 간 나에게는) 올시즌 첫 홈경기를 봤고

너무나 반가운 사람들이랑 우르르 몰려가 술을 마셨고 

신나게 취한 나머지 돌아오는 길에 난데없이 치솟아 오르는 마이클 잭슨 소울을 주체할 수가 없어

일행 빼고는 지나다니는 사람 없는 지하철역에서 저러고 놀았다...

이래저래 주말이 휙 지나가버렸다. 주말아 문워킹으로 뒷걸음쳐서 다시 와주면 안 되겠니 


월요일은 정신없이 바빴고(와중에 중요한 어떤 것에서 깔끔하게 통과했다 만세!)

화요일 저녁에는 친구와 오랜만에 단둘이서 오키나와 식당에서 오리온 생맥주를 마셨다.

두툼한 카츠산도도 끊이지 않고 몇 시간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도 최고의 술친구.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빨간 코트와 역시 무척 좋아하는 스타킹이 

걸을 때마다 살랑살랑 눈앞에 아른거리며 귀갓길 친구가 되어주었다. 

춤추듯이 걸어서 집으로 오는데 봄밤 참 좋더라. 

미세먼지만 아니면 하염없이 걷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걷고 싶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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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에서 돌아오니 교정지와 유니폼이 도착해있다. 이번에도 교정지와 함께 신간 네 권을 보내주었다. 이런 식으로 미팅 때마다 늘 챙겨주는 책도 책이지만(정말 안 그래도 되는데.....) 지난 번에 원고 넘겼을 때는 고생했다고 머그컵을 선물로 줘서 무척 고마웠었다.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아 이번에는 나도 보답할 수 있게 됐다. 후쿠오카에서 사온  명란젓, 명란 마요네즈를 비롯해서 로이스 감자칩, 로이스 초콜렛, 곰 발바닥 쿠키 등등을 종합선물세트로 꾸려 택배로 보냈다. 역시 선물은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즐거워.


여행의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교정지와 유니폼을 보니 탈칵, 소리와 함께 뚜껑이 확 열리며 그 안에 잠시 넣어놨던 일상이 바로 쏟아져나온 느낌이다. 이런 거 좋아. 땅에서 발이 떨어진 채 나른하게 부유하는 느낌도 좋지만 나는 역시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땅 위를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 결국 땅 위에서 문득문득 발을 떼는 건 땅 위를 다른 리듬의 스텝으로 좀 더 잘 걷기 위해서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책을 읽고 스피노자 공부를 하는 것도 다 스텝을 익히는 것일지도. 그나저나 교정지와 유니폼이라니. 마치 내 일상의 수많은 사물들끼리 의논 끝에 가장 대표적인 두 개를 뽑아낸 것 같은 아이템 구성이잖아. 회사 바깥 내 일상의 60프로는 저 둘이 차지할 것 같은데, 이리하여 다음주부터는 내내 교정지를 붙들고 마감을 달릴 것이고, 당장 이번 주말 경기부터 올 시즌 끝날 때까지 저 유니폼을 입고 경기가 있는 곳이라면 온갖 곳을 다 가겠지. 이렇게 다시 일상 스타트!


2. 여행 다녀오느라 이번 주에는 요가를 두 번만 갔다. 사랑하는 아쉬탕가와 빈야사. 이제 수리야나마스까A 수리야나마스까B를 포함 파르쉬보따나아사나까지는 잘 하겠는데 웃디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와 아르다밧나 파드모따아사나가 여전히 잘 안 된다. 균형잡기가 너무 힘듦. 다리를 앞으로 쭉 뻗을 때는 무릎이 완전히 펴지지 않고 그 상태로 옆으로 벌릴 때는 늘 균형이 무너져서 결국 두발을 딛게 되거나 휘청휘청 겨우 버텨낸다. 안정감이라고는 1도 없음ㅋㅋ 그 상태로 앞으로 숙이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두려움마저 살짝 일었나. 이 상태로 앞으로 숙여 손바닥과 정수리를 땅에 대라고? 그게 가능해? 첫날에는 엄두도 못냈는데 이제는 하긴 한다. 아르다밧나 파드모따아사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숙이는 것을 성공하면 균형잡기는 웃디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보다는 수월한 편. 하지만 이것 역시 휘청휘청 한정감이라고는 1도 없음ㅋㅋ 이걸 잘 할 수 있게 될까? 하지만 처음에 짜투랑가를 무릎대지 않으면 못하다가 이제는 무릎 안대고도 거뜬히 하고 몸을 일으켰을 때 허벅지가 들 수 있게 된 걸 보면 저것들도 언젠가 되긴 되겠지? 쉬르사아사나나 부자피다아사나 류의 공중에서 몸을 띄우는 아사나들은 현재로서는 아예 목표로 삼을 수 조차 없는 다른 세계고, 일단 나의 목표는 1) 웃디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 2) 아르다밧나 파드모따아사나 3)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 잘하기. 이것들을 잘 해내게 되면 매우 뿌듯할 것 같다. 그날까지 천천히 한 스텝 투 스텝. 


3. 전에 ㅅㅈㅁ님이랑 이야기하다가 "사실 나는 '심심하다'는 상태를 잘 모른다"라는 것에 둘이 매우 격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 이야기를 한참 했었다. 그러게 사실 나는 심심한 느낌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한 번은 심심하다고 말하는 봉이한테 심심하다는 기분은, 전혀 관심 없는 강연을 억지로 들어야 하거나 미팅이 턱없이 길게 늘어질 때 느끼는 지루함이랑 비슷한 거겠지? 아니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오후의 무료함 같은 거? 라고 물었었는데 조금 다른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봉이가 "야 네가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인 적이 있어?ㅋㅋㅋㅋ"라며 막 웃었는데ㅋㅋ 생각해보면 몸이 너무 피곤하거나 아파서, 혹은 마음이 피곤하거나 아파서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히는 상태인 적은 있어도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인 적은 살면서 거의 없는 것 같다. 늘 하고 싶고 재미있는 일이 넘쳐나서 문제지. 요가도 교정지보며 글 다듬고 글 쓰는 것도 축구장 가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철학 공부 하는 것도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만나 노는 것도 술마시는 것도 여행가는 것도 그냥 다 너무 즐겁고 이것들만으로도 시간이 늘 부족해. 


4. 그나저나 저렇게 묶어놓고 보니 교정지 꽤 두껍다... 언제 다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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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짧은 여행에서 가장 잊지못할 음식이 일본 친구가 꼭 가보라길래 첫날 저녁에 바로 갔지만 웨이팅만 두 시간인 바람에 다음날로 예약해두고 다시 찾아갔던 야끼니꾸와 생맥주였다면(아 정말 입에서 살살 녹았다!), 가장 잊지못할 곳은 호텔에 들어와 씻고 유카타까지 갈아입고 침대에 누우려다가 아무래도 그냥 잠들기 아쉬워서 "한 차 더 가자!" "내 말이! 내일 피곤해서 고생하든 말든!"하고 극적으로 의기투합,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날듯이 밖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가 소박하고 조촐한 입구가 마음에 들어 무작정 문을 열었던 이자카야일 것이다. 왜 그런 곳 있잖아. 딱히 음식이 되게 맛있는 것도 딱히 스페셜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그 모든 것이 당시의 나의 기분과 마음상태와 딱 맞아떨어지면서 최고의 공간으로 바뀌는 곳. 한눈에 봐도 전혀 유명한 곳도 아니고 요즘 후쿠오카는 포장마차에만 가도 영어 메뉴, 심지어 한국어 메뉴도 다 있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고(없을 줄 알았다) 열 테이블이 채 안 되는데 그 중 세 테이블에 어느 정도 취한 내 또래의 사람들이 "마지데에에에에?!!!!" "조또 욥빠라짯단데스께도!" 라는 추임새를 사이사이 넣으며 취한 일본인 특유의 업된 억양으로 엄청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고 서버들은 그 시간에 갑자기 들어온 한국인 두 사람을 지나치게 반기지도 않았지만 은근하게 신경 써주는, '마시고 취하는 암자'라는 가게 이름답게 너구리 굴처럼 짱박혀 아늑하게 술마시기 참 좋은 곳이었다. 아마 너구리굴 같은 느낌을 주는 것에는 적당히 침침하고 적당히 작아서도 있겠지만 솔솔히 피어올라오는 담배연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명란 계란말이와 함박스테이크를 시켜놓고 서비스로 가져다준 닭요리도 앞에 놓고 쿠로키리시마 대신 주문한 시마비진을 연거푸 비워대며 세상에 뭐 아직도 그리 할말이 많이 남아있는지에 서로 놀라며 오래오래 이야기했다. 오래 전 요코하마에 살았을 때, 요코하마를 떠난 이후에는 어쩌다 일본에 출장다녀올 때, 가끔씩 HOPE를 사서 서랍 속에 넣어두었었다. 야자키 히토시 영화에서 이케와키 치즈루가 침울하게 꺼내 물어 피던 장면이 마음에 강하게 남아 일부러 찾아 사서 피웠던 날, 세상에 너무 독해서 게다가 사래까지 들리는 바람에 기침을 해대느라 네 모금도 다 못 피우고 껐었던 담배. 썩 좋은 첫만남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후부터 기분이 매우 울적하거나 말 그대로 희망이 다 날아가버린 것 같은 날에 이 독한 맛이 자꾸 생각났다. 그래서 늘 비상약처럼 한 갑 사서 서랍에 넣어놨었지. 어떤 때는 일주일만에 다 피운 적도 있고 어떤 때는 한 개와 그 다음 한 개 사이에 몇 개월이 흐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에게 HOPE는 늘 아주아주 슬프고 아주아주 씁쓸하고 아주아주 절망적인 순간에만 꺼내드는, 그게 독한 기운이 됐든 담배 이름과 연결한 말장난 같은 희망이 됐든 나에게 뭔가 주문 같은 게 필요한 날에 내 아지트 같은 곳에 가서 혼자서, 꼭 혼자서 꺼내드는 담배였다. 시마비진 언더록을 네 잔째 주문했을 때였나. 문득 HOPE 생각이 났다. 그래, HOPE가 있었지! 일본, 담배를 필 수 있는 이자카야, 시마비진 언더록, 여행 마지막 밤. 너무 좋은 조건이잖아. 물론 제1조건인 '절망'이 빠져있기는 하지만 뭐 어때. 벌떡 일어나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근처 편의점에 가서 HOPE를 샀다. 아아 오랜만이야 호프. 담배를 끊기도 훨씬 전에 이미 어느 순간부터 HOPE를 찾지 않게 되었는데 그래서 마지막이 2009년이었지 아마? 취기때문에도 그랬겠지만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담배갑을 보는 순간 저 담배갑 뚜껑을 열던 과거의 내 마음들이 스쳐지나가서, 그 씁쓸했던 순간들을 함께 넘었던 한 때의 회사동료를 객지에서 불시에 만난 것 같은 기분에 아, 나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뭉클했네. HOPE를 사들고 신나게 돌아와서 시마비진을 한 잔 더 시키고 정성을 들여 HOPE를 열고 한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내 평생 처음으로 굉장히 행복해서 피우는, 누군가와 함께 피우는 HOPE였다. 무척 좋은 밤이었다. 다음날 숙취로 매우 고생했지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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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먹고 걷고 마시고 먹고 걷고 마시고 시답지않은 걸로 엄청 진지하게 분석하고 토론하고 역시 시답지않은 걸로 더 시답지않은 농담을 하며 배가 끊어져라 웃고 이러면서 놀고 있다. 후쿠오카 첫 날 먹은 것들. 면이 바삭바삭 과자 같은 나가사키 볶음짬뽕풍 라멘과(이거 되게 마음에 들었다ㅋㅋ) 모두가 거침없이 담배를 피워대서 옛날 생각이 물씬 났던 이자카야에서는 후쿠오카 전통주와 하이볼에 말린 홍어 지느러미, 꼬치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어서 거듭 주문해서 먹은 튀긴 두부와 너무나 나 입이야!라고 뭉크적 정체성을 뽐내고 있는 오징어 입을 먹었고 점심에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초밥을 먹었다. 역시 일본에서 먹는 성게알은 너무 맛있어서 계속 우니! 우니! 연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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