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에서 돌아오니 교정지와 유니폼이 도착해있다. 이번에도 교정지와 함께 신간 네 권을 보내주었다. 이런 식으로 미팅 때마다 늘 챙겨주는 책도 책이지만(정말 안 그래도 되는데.....) 지난 번에 원고 넘겼을 때는 고생했다고 머그컵을 선물로 줘서 무척 고마웠었다.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아 이번에는 나도 보답할 수 있게 됐다. 후쿠오카에서 사온  명란젓, 명란 마요네즈를 비롯해서 로이스 감자칩, 로이스 초콜렛, 곰 발바닥 쿠키 등등을 종합선물세트로 꾸려 택배로 보냈다. 역시 선물은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즐거워.


여행의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교정지와 유니폼을 보니 탈칵, 소리와 함께 뚜껑이 확 열리며 그 안에 잠시 넣어놨던 일상이 바로 쏟아져나온 느낌이다. 이런 거 좋아. 땅에서 발이 떨어진 채 나른하게 부유하는 느낌도 좋지만 나는 역시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땅 위를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 결국 땅 위에서 문득문득 발을 떼는 건 땅 위를 다른 리듬의 스텝으로 좀 더 잘 걷기 위해서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책을 읽고 스피노자 공부를 하는 것도 다 스텝을 익히는 것일지도. 그나저나 교정지와 유니폼이라니. 마치 내 일상의 수많은 사물들끼리 의논 끝에 가장 대표적인 두 개를 뽑아낸 것 같은 아이템 구성이잖아. 회사 바깥 내 일상의 60프로는 저 둘이 차지할 것 같은데, 이리하여 다음주부터는 내내 교정지를 붙들고 마감을 달릴 것이고, 당장 이번 주말 경기부터 올 시즌 끝날 때까지 저 유니폼을 입고 경기가 있는 곳이라면 온갖 곳을 다 가겠지. 이렇게 다시 일상 스타트!


2. 여행 다녀오느라 이번 주에는 요가를 두 번만 갔다. 사랑하는 아쉬탕가와 빈야사. 이제 수리야나마스까A 수리야나마스까B를 포함 파르쉬보따나아사나까지는 잘 하겠는데 웃디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와 아르다밧나 파드모따아사나가 여전히 잘 안 된다. 균형잡기가 너무 힘듦. 다리를 앞으로 쭉 뻗을 때는 무릎이 완전히 펴지지 않고 그 상태로 옆으로 벌릴 때는 늘 균형이 무너져서 결국 두발을 딛게 되거나 휘청휘청 겨우 버텨낸다. 안정감이라고는 1도 없음ㅋㅋ 그 상태로 앞으로 숙이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두려움마저 살짝 일었나. 이 상태로 앞으로 숙여 손바닥과 정수리를 땅에 대라고? 그게 가능해? 첫날에는 엄두도 못냈는데 이제는 하긴 한다. 아르다밧나 파드모따아사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숙이는 것을 성공하면 균형잡기는 웃디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보다는 수월한 편. 하지만 이것 역시 휘청휘청 한정감이라고는 1도 없음ㅋㅋ 이걸 잘 할 수 있게 될까? 하지만 처음에 짜투랑가를 무릎대지 않으면 못하다가 이제는 무릎 안대고도 거뜬히 하고 몸을 일으켰을 때 허벅지가 들 수 있게 된 걸 보면 저것들도 언젠가 되긴 되겠지? 쉬르사아사나나 부자피다아사나 류의 공중에서 몸을 띄우는 아사나들은 현재로서는 아예 목표로 삼을 수 조차 없는 다른 세계고, 일단 나의 목표는 1) 웃디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 2) 아르다밧나 파드모따아사나 3)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 잘하기. 이것들을 잘 해내게 되면 매우 뿌듯할 것 같다. 그날까지 천천히 한 스텝 투 스텝. 


3. 전에 ㅅㅈㅁ님이랑 이야기하다가 "사실 나는 '심심하다'는 상태를 잘 모른다"라는 것에 둘이 매우 격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 이야기를 한참 했었다. 그러게 사실 나는 심심한 느낌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한 번은 심심하다고 말하는 봉이한테 심심하다는 기분은, 전혀 관심 없는 강연을 억지로 들어야 하거나 미팅이 턱없이 길게 늘어질 때 느끼는 지루함이랑 비슷한 거겠지? 아니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오후의 무료함 같은 거? 라고 물었었는데 조금 다른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봉이가 "야 네가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인 적이 있어?ㅋㅋㅋㅋ"라며 막 웃었는데ㅋㅋ 생각해보면 몸이 너무 피곤하거나 아파서, 혹은 마음이 피곤하거나 아파서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히는 상태인 적은 있어도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인 적은 살면서 거의 없는 것 같다. 늘 하고 싶고 재미있는 일이 넘쳐나서 문제지. 요가도 교정지보며 글 다듬고 글 쓰는 것도 축구장 가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철학 공부 하는 것도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만나 노는 것도 술마시는 것도 여행가는 것도 그냥 다 너무 즐겁고 이것들만으로도 시간이 늘 부족해. 


4. 그나저나 저렇게 묶어놓고 보니 교정지 꽤 두껍다... 언제 다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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