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시는가요?

 

 엘사이드 노사이르는 1990년 11월 5일 뉴욕 매리어트 호텔 연회장에서 연설을 마친 메이르 카하네를 암살했습니다. 메이르 카하네는 호전적인 랍비이자 유대인 방위연맹의 창립자였는데요, 카하네를 총으로 쏜 아랍인은 달아나면서 한 노인의 다리에도 총을 쏘았고, 호텔 앞에서 기다리던 택시에 급히 올라탔지만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던 우체국 청원경찰과 총격을 주고 받다가 결국 길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랍비 카하네와 암살자 둘 다 목에 총상을 입어 어느 쪽도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TV에서는 이 테러 사건을 끊임 없이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랍비 카하네에게 총을 쏘았고, 다시 총을 맞아 쓰러진 엘사이드 노사이르는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책의 저자인 잭 이브라힘의 아빠입니다.


2. 그러니까 책의 저자가 테러리스트의 아들인 건가요?


 네, 맞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들고, 잭 이브라함이 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책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이 코너에서 소개했던 책을 기억하시는지요? 수 클리볼드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이었는데요, 수 클리볼드는 바로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하나였던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였습니다. 엄마인 수가 가해자의 엄마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아들 딜런이 왜 그런 일을 저지르고 말았는지를 탐색하고자 쓴 책이었는데요, 오늘은 시점이 그와 반대인 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테러리스트 아빠를 둔 아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고통을 어떻게 뚫고 지나왔는지를 소개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아들을 둔 엄마가 쓴 이야기에 이어 테러리스트 아빠를 둔 아들이 쓴 이야기라니 오늘도 지난 주처럼 마음이 아픈 이야기일 것만 같습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보통은 테러리스트 가족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교육 수준도 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잭 이브라힘의 아버지는 이집트 출신의 산업기사였고, 어머니는 미국인 교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비교적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집인데요, 잭의 어머니는 본래는 카톨릭이었는데,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사제에게 질문을 했는데, “이런 질문을 하다니, 너는 신앙심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대학 도서관에 꽂힌 이슬람에 대한 책을 발견하고 지역의 모스크를 찾아갔는데 상상과는 아주 다른 아주 포근하고 화목한 무슬림 공동체를 만났다고 해요. 보통 무슬림이라고 하면 쌀쌀맞고 차갑고 남성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않았던 거죠. 잭의 어머니는 거기에서 잘 생긴 남자를 만납니다. 금속전문가였던 남자는 배를 설계하는 것부터 목걸이 디자인도 식은 죽 먹기로 했냈구요, 미국에 온 지 1년만에 보석상에 일자리를 얻어 결혼할 여자를 위해 직접 약혼 반지를 디자인하고 제작도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의 저자와 한 살 아래 동생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놀이 공원에 아빠와 가서 함께 놀기도 한 기억을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기억할만큼 책의 저자는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행복했다고 합니다.


4. 그러면 지난 주의 딜런 가족처럼 잭의 가족도 우리가 생각하는 테러리스트의 가족의 이미지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는 거네요. 그러면 왜 잭의 아버지는 테러리스트가 된 건가요? 원래부터 이슬람 근본주의자였고 테러를 목적으로 미국으로 가게 된 건가요?


 그렇죠. 잭의 아빠도 원래는 미국에 대해 호감이 있어서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해요. 잭의 아빠가 미국에 대해서 마음이 돌아서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세부적인 사건이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바바라라는 여자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고 해요. 잭의 엄마는 미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이슬람교를 전도하는 활동을 했는데, 그러다가 갈 곳 없는 여인이 있다면 가끔 가족의 침대를 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이슬람교의 전통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 바바라라는 여자가 주변에 잭의 가족이 바바라의 방에서 옷을 훔치고, 잭의 아버지를 강간범으로 고발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음에도 돈을 뜯어내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5. 그런 일이 있었군요. 


결국 무죄로 드러나긴 했지만, 아마 잭의 아빠에게 이 일은 알라에 대한 신앙적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온 자신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는 더욱 독실한 무슬림 신앙인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80년대 말 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내 이슬람 공동체에서도 미국에 대한 저항이 고조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부터 잭의 아빠는 모스크를 다녀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고, 지하드를 위해 준비한다며 롱아일랜드의 사격장에 가서 사격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6. 그러면 잭의 아버지는 그런 일들을 겪고 나서 유대인 랍비에 총을 쏜 거군요. 


 그렇습니다. 잭의 아빠인 노이사르가 카하네를 총으로 쏜 이후부터 잭의 가족이 살던 클리프사이드파크로 한번도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학교로도 돌아기지 못했구요. 지난 주에 클리볼드 가족이 딜런의 총격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리틀턴에서 살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지요? 여러 곳으로 이동하며 수차례 전학을 해야 했던 잭은 어딜가나 학교에는 적응을 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 동네와 학교가 조금 편해지려고 하면 전학을 해야 했으니까요.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잭의 집이 비워진 사이 누군가가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은 모두 가져가 버리고 컴퓨터 키보드 위에 칼을 놓아두고 갔다고 합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처음 등교한 날 아이들이 몰려와 물었다고 합니다. “네 아빠가 랍비 카하네를 죽였니?”.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 어린 아이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런데요, 잭의 아버지 노이사르와 잭의 가족이 영영 떨어지게 된 사건은 이 사건이 아닙니다. 다른 사건이 있었던 거죠.


7. 그러면 노이사르가 다른 범죄도 저질렀다는 건가요?


 노이사르는 카하네에게 총을 쏜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노이사르가 카하네에게 총을 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어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잭의 가족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아랍인들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잭은 학교 폭력에서, 땅딸막하다는 이유로,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 없다는 이유로 얻어 맞았다고 합니다. 잭의 엄마도 그런 일을 겪기 비일비재였다고 해요. 머리쓰개와 베일을 썼다고 유령이나 닌자로 불렸습니다. 노이사르는 카하네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노이사르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는데 거기에 가담한 혐의로 다시 체포된 겁니다. 그 이후로 유죄판결을 받은 노이사르는 50건의 혐의 중 48건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아 무기징역에다 15년간 가석방 금지를 당했고 가족은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수신자부담 전화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아버지와 인연을 끊게 됩니다. 오늘 책의 저자 이름이 잭 이브라힘이라고 말씀드렸죠? 이 일이 있은 후 모든 가족이 성을 바꾸게 됩니다. 아버지로 인해 받은 차별, 그리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이름을 바꿔 버린거죠. 그 이후로 잭은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8. 잭의 가족사를 들으니 잭도 정상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떨까요? 이런 상황에서라면 정서적인 충격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잭도 강한 무슬림 신앙이 있던 가족 탓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자신의 사고체계에 슬며시 스며들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그래엄 벨이 전화를 발명했다”나 “파이는 3.14다”와 “유대인은 모두 사악하며 동성애는 죄악이다”를 하나의 사실로 같은 선상에서 받아들였다고 해요. 아버지는 늘 중동에 집착했고 유대인이 악당이라는 이야기를 상기시켜 토를 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 잭이 자신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더 데일리쇼>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스튜어트는 독단적인 것을 증오했다고 합니다. 반전운동과 동성애자의 권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파고들어 의문을 제기하고 관심을 쏟는 모습을 보고, 그는 새로운 아버지를 만났다고 해요. 놀랍게도 스튜어트라는 그 진행자는 유대인이었구요. 


9. 코미디 방송 하나가 독단에서 깨어나게 한 거군요.


 어쩌면 코미디 방송이 당연한 것을 뒤집는 것이니, 코미디 방송에서 상식이 뒤집어졌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잭은 아버지의 범죄로 인한 가정 파탄, 학교에서의 왕따 피해 등 온갖 어려움을 당했는데 이런 일을 겪으며 증오보다는 공감이 힘이 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편견이야말로 테러리스트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잭은 이 책에서 구조적 가난, 광신, 교육 박탈로 인해 차별과 폭력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기 시킵니다. 우리의 독단과 편견이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죠. 잭은 열 여덟살 이후로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린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지식 공유 프로그램인 테드 강연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 강연 마지막에 잭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하면서 눈가에눈물이 맺히는데요, 거기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겁니다.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편견 속에서 살고 싶지도 않고, 우리의 편견에도 도전하고 있는 거지요. 책의 제목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10. 이 책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를 한번 정리해주세요.


 네, 우리는 누군가가 뚱뚱하다고, 동성애자라고, 가난하다고, 혹은 타고 다니고 입고 다니는 옷으로, 직업으로, 학교로, 인종으로, 종교로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가요? 여성이라는 혐오하고,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차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도록 이 책은 요구합니다.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율은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난민이 들어오면 테러 위험이 증가하고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는 건데요, 그런 생각이 세상을 더 증오로 가득차게 만듭니다. 결국 급증하고 있는 테러의 원인은 이슬람의 호전적 성향이라기 보다, 이슬람을 호전적으로 만든 구제국주의 국가들의 인종주의적 편견과 차별, 지배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성도 이뤄지지 않고 있지요. 이 책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우리 자신의 좁은 시각에 대해서 성찰해보는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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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는 사람이 쓴 시집, 시인이 쓴 철학책이 가능하다면?
_이광수, 최희철의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됐다. 어떤 내용이라도 좋으니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읽었거나 갖고 있는 책들 중에서 감명 깊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이 담당자의 주문이다.
‘철학자’라니?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쓴 책 중에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이 있지만 나 자신을 ‘철학자’로 누군가에게 소개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내 책의 제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제목은 『인문 육아』 내지 『오이디푸스의 일기』였다. 하지만 출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출판사는 마크 롤렌즈라는 미국의 분석철학자가 늑대를 키우며 쓴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던 참이었다. 마크 롤렌즈는 어린 늑대를 분양 받아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 했고 그 과정을 솜씨 좋게 철학적으로 해명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책을 쓰면서 『철학자와 늑대』를 의식하고 있었다. 마침 어린 아이를 홀로 맡아 키우며 육아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글을 쓰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무모하게도 『철학자와 늑대』에서 마크 롤렌즈가 제시한 시간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 욕망이나 자유에 대한 입장과 대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원고가 완성되자 『철학자와 늑대』를 소개한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고 결국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내 책에 ‘철학자'라는 호칭이 붙은 것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철학자’로 불러주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마크 롤렌즈처럼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유명세를 얻은 책을 쓴 적도 없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철학자’라는 호칭을 붙여둔 제목을 제안해주자 한편으로 그간 어줍잖게라도 해왔던 사유를 인정 받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목에 ‘철학자’가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철학자’라 불리울 수 있는 자격은 자신만의 독자적 사유를 해오고 있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철학자’는 철학교수를 의미한다. 만약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면 아직 ‘철학연구자’에 불과한 자가 ‘철학자’를 참칭하는 것이 된다.
‘철학자’가 철학교수와 동의어가 된 것은 사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향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오래된 일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철학자’와 철학교수가 동의어가 된 것은 칸트 이후에 성립한 것이다. 기껏해야 독일에서 근대 대학이 성립한 이후이기 때문에 300년도 채 되지 않은 등식인 것이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성찰』 등을 남긴 근대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이지만 철학교수는 아니었다. 『에티카』와 『신학정치론』과 같은 철학사의 빛나는 책을 남긴 스피노자는 생업은 안경공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역시 철학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연구자로 불렸을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이 이들과 같은 위대한 철학적 성취를 해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철학자가 아니면서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의 이 연재를 하게 된 것에 대한 변명이라 해두자.











‘서재’라는 말에도 ‘철학자’라는 말만큼이나 거부감이 있다. 서경식은 『내 서재 속 고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서재’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는다. 부득이할 경우에도 기껏 ‘공부방’ 정도의 말로 대신한다. “서재가 좁아 책 둘 곳이 없어서 난처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날 경우, 예전의 나는 반감을 느꼈다. 하지만 요즘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는 아차, 싶은 때가 있다. 그것은 ‘서재’라는 말 자체에 수치에 가까운 감정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서경식이 ‘서재’라는 말에 수치심을 느낀 이유는 ‘서재’라는 말을 ‘부르주아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치솟는 주거비용으로 몸을 누일 방 한 칸조차 구하는 것도 힘겨운 많은 청년들에게 따로 책을 보관하는 방인 ‘서재’를 갖는다는 것은 아마 그저 사치에 불과해 보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대학 시절 서재는커녕 좁은 하숙방에는 가진 책을 꽂아둘 공간도 없었다. 게다가 책이 많으면 하숙방을 옮길 때 이사비용이 곱절로 들었다. 그 때문에 하숙집에서 누군가 이사 나가는 날은 책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이사비용을 아끼려 누군가 책을 버리고 가면 다른 학생들은 가만히 기다렸다 읽어보지 못했던 책을 골라 왔다. 내 좁은 하숙방에도 그렇게 모은 책과 사다 모은 책이 켜켜이 쌓였다. 만약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 책들도 아마도 버려졌을 것이다. 그나마 방이 두 칸이라도 있는 신혼집을 지방에 구한 덕분에 그 때 하숙방에 쌓여 있던 책들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책들도 지금껏 내 서재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그럴싸한 ‘서재’를 갖췄다고 하기 힘들지만 부끄러운 기분을 누르고 이 연재를 수락한 데에는 나 나름의 읽는 방법을 통해 읽어온 책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철학자의 서재’라는 이 부담스러운 제목에 대해서는 뭐라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 정작 중요한 책 이야기를 여태 미뤄두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의 가장 가까운 오른 편 책장에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의 책이 꽂혀 있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이를테면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라마톨로지』,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 『차이와 반복』 같은 책들이다. 보통 이 책장에는 가장 자주 보는 저자의 책이나 최근에 가장 관심이 있는 주제를 꽂아두는 편이다. 최근에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 케네스 클락의 『그림을 본다는 것』과 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그 왼편 책장에는 철학사의 고전에 해당하는 책들이 꽂혀 있다. 플라톤의 『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같은 고대철학서에서부터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과 같은 칸트의 책까지 주로 대학과 대학원 시절 읽었던 책들이 주를 이룬다. 그 맞은 편으로는 내 전공분야인 현상학 관련 책들, 하이데거와 후설이 쓴 독일어 원서들이 꽂혀 있다. 철학 외의 분야 중 내 서재에 가장 많이 꽂혀 있는 책은 신학서적, 다음으로는 문학책이다. 근래에는 아즈마 히로키, 사사키 아타루와 같은 젊은 일본 사상가들이 쓴 책들을 많이 읽는다.

최근 내가 가장 즐겨 읽은 책을 한권 꼽자면 이광수와 최희철이 쓴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이다. 이광수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두고 이광수와 최희철이 글로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광수가 인도 여행 후 찍은 본인의 사진에 대해 “내가 보는 세계 안에 그가 보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나온다”고 쓰면, 최희철은 “그걸 ‘푸른 인연’이라 말하고 싶다. 삶이 끝없이 중첩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부딪히며 바람고 파도를 만드는 것, 그 파도가 우리 삶의 귀퉁이를 적시는 것”이라 화답한다. 두 중년의 대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사진 한 장을 두고 길러내는 두 사람의 깊은 생각 때문이다.









이 책이 아름다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책에서 사진으로 묻는 이광수는 본래 ‘사진가’가 아니고, 철학으로 답하는 최희철은 본래 ‘철학자’가 아니다. 이광수는 인도 역사를 전공한 대학 교수이며, 최희철은 이광수의 소개를 빌자면, 부산수산대학 어업과를 졸업하여 “배타는 일과 닭 잡아 파는 일을 생업으로” 삼아 몇 권의 시집을 쓴 ‘철학하는 시인’이다. 최희철은 최근에도 배를 타고 저 멀리 멕시코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아마도 ‘푸른 인연’이라는 말도 배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만들어낸 생각해냈을 것이다.

시인이 쓴 철학책, 역사가가 만든 사진집, 배 타고 닭 잡아 파는 사람이 쓴 시집이 가능하다면, 철학교수가 아닌 철학자가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의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구태여 나는 이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 들뢰즈를 운운하며 ‘탈주’나 ‘-되기’와 같은 개념들은 여기서 쓰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곧 다시 쓰게 될 것이다.

- 한국해기사협회 매거진 <해바라기> 8월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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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지배 (2016.8.9 매일신문에 쓴 글)


직업의 영향은 매우 강한 것이라서 직업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알프레드 가드너가 쓴 <모자 철학>에는 세상과 사람들을 오직 머리의 크기로만 판단하는 모자 장수가 등장한다. 모자 장수의 직업적 경험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머리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머리가 더 크고, 그래서 더 큰 모자를 쓴다. 모자 장수는 존스가 7인치 반을 쓴다 해서 그를 존경하고, 스미스가 6과 4분의 3인치를 쓴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한다. 제한된 직업적 경험이 제한된 시각을 낳은 것이다.


나 역시도 제한된 시각 탓에 작은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적이 있다. 이제 막 제대한 사촌 동생에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모두 저축해서 기회가 되면 유학을 가라고 권했다. 하지만 작은아버지는 아들이 얼른 생활 전선에 나서 자립했으면 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지금 자립하면 더 멀리 나가기 힘드니 공부에 집중하게 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작은아버지는 내게 다그쳐 물으셨다. “네가 공부를 좀 더 했다고 네가 생각하는 공부만 공부로 아느냐?” “생활 전선에서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냐?”

작은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공부를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나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내가 보고 겪은 경험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마치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큰 모자를 쓴다고 믿었던 모자 장수처럼 말이다. 존스가 7인치 반 크기의 모자를 쓴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공부를 많이 하면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와 유학을 다녀오고, 학위를 받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서사는 좋은 일자리가 대졸자보다 많았던 1980년대라면 몰라도 박사 실업자와 이십 대 태반이 백수라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공부 외의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직업의 지배를 받고 있던 모자 장수만큼이나 철저히 공부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화여대에서 미래라이프대학을 만들어 뷰티학과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온 사회가 ‘공부의 지배’ 속에 있지 않으면 가능한 발상이 아니다. 뷰티학과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생활 전선과 직업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가능할 수 있는 ‘배움’을 ‘공부 산업’의 선봉인 대학이 학과라는 ‘공부 제도’ 속에서 획일화하는 것이 바로 공부의 지배가 의미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교 바깥에 학교가 있고, 배움 바깥에 배움이 있고, 삶 바깥에 삶이 있다. 공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공부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공부 바깥에 있는 공부로 나가는 것이다.

공부의 지배, 공부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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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오늘 자에 쓴 졸문.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생각난 <테러리스트의 아들>과 엮어서 썼는데, 결말이 너무 성긴 글이 되었다. 사실 원고 마감 날짜를 착각해 급히 쓴 탓도 있는데,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이웃의 공감에 대해서도, 가해자의 가족들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아이가 타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사회 곳곳에 가득한 혐오 표현에 대해서도 모두 쓰고 싶었는데, 그걸 이런 모양으로 밖에 못 써내서 아쉽다. 굳이 다시 정리해보면, 내 아이가 타자인만큼, 이웃도 타자고, 타자에 대해서는 혐오 대신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논지가 제대로 담기지 못한 듯 아쉽다. 여하간 두 책은 꼭 엄마, 아빠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육아분투기, 가해자의 엄마, 가해자의 아들 (2016.8.12 한국일보에 쓴 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반비)를 쓴 수 클리볼드는 1999년 4월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이다. 졸업반 학생이던 딜런은 다른 친구 하나와 함께 별다른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을 난사해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했고, 이후 이 사건은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을 포함해 미국 내의 총기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수는 사건이 일어난 후 딜런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를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딜런은 언제나 수에게 “우리 햇살, 착한 아이, 늘 내가 좋은 엄마라고 느끼게 해주던 아이”였다. 실제로 그랬다. 딜런은 졸업 후 애리조나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평소 행실도 발라 그런 낌새가 없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수 클리볼드도 보통의 엄마들보다 더 잘 준비된 엄마였다. 수는 타고나기를 걱정이 많은 편이라 늘 아이들의 건강을 챙겼고, 좋은 버릇을 가르치려 유난을 떠는 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석사 학위를 취득할 때는 아동발달과 아동심리를 공부했고, 취직한 뒤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딜런은 왜 그런 비참한 사건을 일으킨 것일까. 아들을 잃고 가해자의 엄마가 된 후 17년 동안 수는 어떻게 이 비극의 어둠 속에서 살아왔을까.



이 책을 읽으며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또 다른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는 반대로, 가해자 아빠를 둔 아들이 쓴 책이다. 저자인 잭 이브라힘은 1990년 11월 뉴욕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어난 메이르 카하네 암살 사건의 범인이자 세계무역센터 폭발 테러를 공모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엘사이드 노사이르의 아들이다. 잭은 사건이 있고 난 후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나 수차례 전학을 거듭했고, 학교에서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 없다는 이유로, 땅딸막하고,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얻어맞고 다녔다. 아버지가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내내 차별을 당해야 했던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이브라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 후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비극의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는 편견 속에서 폭력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증오를 세뇌받으며 살아온 삶과 단절하고 이제는 공감이 증오보다는 힘이 세다고, 공감을 퍼뜨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런 비교는 무의미하지만, 이브라힘 가족이 겪었던 일에 비해 클리볼드 가족의 사정이 나은 점이 있다면 사려 깊은 이웃들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잭은 아버지가 체포된 이후로 살고 있던 집을 떠나야 했지만, 클리볼드의 가족은 지금도 딜런이 살던 그 집에 살고 있다. 많은 위협과 협박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고 지지해주는, 심지어 몇몇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따뜻한 말, 특히 범죄자 살인자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공감이 있어 “비극의 여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하느님이 축복하시길”.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시길래 이렇게 유치원에 자주 오세요, 아이 엄마는 무슨 일 하세요, 집은 어디세요?”. 나는 왜 이런 질문들이 두려웠던 것일까. 부족한 내 사교성 탓일 수도 있지만, 공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잭은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고, 수는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내 아들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고 썼다. 공감은 다른 이들은 물론 심지어는 내 아이까지도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엄마들을 “맘충”으로 부르고, 장애인 교육 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기는 사회였다면 클리볼드 가족은 동네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내 아버지도, 내 아이도 아니다.


육아분투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테러리스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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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2016-08-1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서경식 선생님 강연이 있었고, 그 날 패널로 나서게 되어 말씀을 나눴다. 우문들을 선생님은 이번에도 너무도 아름답고도 정교한 언어로 답해주셨다. 사전에 아래의 질문 목록을 만들어 갔는데, 대부분의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의 강연과 대담 내용은 아르코미술관에서 나중에 책으로 묶어낼 계획도 있다고 하신다. 일단 내가 준비해갔던 질문 목록을 올려둔다.


아르코미술관 난민포럼5. 서경식 선생님의 강연 후 드리게 될 질문들. (패널. 권영민)


(강연을 듣고)

1.한국에서도 혐오 발언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재특회에서는 재일조선인을 바퀴벌레로 부른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는 파키스탄 사람들을 바퀴벌레를 연상시키는 말로 ‘파퀴벌레’, 중국 사람을 ‘짜장’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일본에서 헤이트스피치가 이렇게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에 위안부 문제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일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일본에서 ‘혐한’ 감정이 커지는 이유를 이렇게 썼습니다. “혐한 감정은 특히 이 10년동안 서서히 커져왔다. 그리고 그들의 혐한은 1990년대 초 이후의 역사 문제 갈등에서 한국인이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언제까지고 비난만 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부분이 크다”. 이런 생각은 타당한 것일까요?


(난민에 대한 책임의 문제)

 3.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3.8%입니다. 세계 평균의 1/10. 얼마되지 않는 숫자인데, 일부에서는 우리가 너무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지금 난민이 대거 발생하게 된 책임은 미국과 유럽 세계에 있는데 그 책임을 왜 우리가 함께 져야 하냐는 거죠. 그리고는 옆 나라 일본은 난민 안받는다며 진정한 주권국가라고 치켜 세웁니다.

 

 선생님께서도 9.11 이후 “대테러의 시대”가 발생한 근원으로 돌아가 사고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식민지주의’에 있다고 하신 적이 있고, 유럽, 미국,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의 마이너스 유산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 마이너스 유산을 왜 우리 같은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가 져야 하냐고 묻는 겁니다. 식민지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과 미국, 일본에게 난민을 더 받으라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 상황에 대해서) 

4.  우리문화사랑국민연대와 같은 오프라인 조직을 포함해 우리나라에는 현재 다문화주의를 반대하는 온라인 커뮤니트만 20개 정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혐오하지 않지만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에 대한 지원은 강력히 반대한다’고 하는데, 언뜻 들으면 인종주의적 혐오와 선을 그으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하자면, 난민을 포함해 한국에 있는 외국인을 지원하는데 예산만 해마다 2000억 이상 쓰이고, 지원단체까지 포함하면 수조원을 쓰고 있다며 외국인에게 지나친 특권을 주면서 정작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은 위반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보면 쉽고 명확한 논리인데요, 외국인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것과 외국인을 혐오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5.  일본에서는 헤이트스피치 금지 법안이 통과되었고, 이 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이 이미 2007년에 입법이 예고되었는데 10년동안 통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문제는 헤이트스피치 금지법안이나 차별금지법이 마련되더라도 혐오와 차별을 근본적으로 막지는 못할 것 같다는 것에 있습니다. 


(전시에 대해서)

 6.  선생님께서 지금 아르코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를 보셨는데요, 선생님께는 어떤 작품이 인상적이셨나요?


 저는 차지량 작가의 코리언세일이라는 작품이 재미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다문화 반대운동, 외국인 혐오 발언을 하는 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마치 난민을 환경오염 물질처럼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탄소는 미국이 가장 많이 배출했는데 왜 우리가 탄소로 인한 피해를 받아야 하냐는 거지요. 그래서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듯 언젠가는 난민을 거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지량 작가가 코리언세일이라는 작품에서 그런 상상력을 발휘한게 아닐까 해서 저는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브렉시트에 대해서)

8.  최근에 마이클 무어가 이탈리아를 휴가도 많고 낙관적인 나라인양 그린 영화를 만들어 공개했는데요, 사실 이탈리아 해변에 몇 년전부터 난민들이 떠밀려 오고 있다고 합니다. 한 쪽에는 일광욕을 하고 물놀이를 하는데 옆에서 바다를 건너기 위해 튜브를 사는 난민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입국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 샤를리 앱도 테러 이후 외국인에 대한 보복테러가 잇따라 일어났구요 르펜과 같은 극우정치인의 등장에는 그런 배경이 있는 것 같구요, 영국의 브렉시트, EU 탈퇴 결정을 두고도 난민 문제와 결부시켜 분석하려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자유, 평등, 인권과 같은 가치를 여지껏 유럽 세계가 내세워 왔는데 최근 분위기는 명백히 이런 인도주의적 입장이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베리안 반도 최후의 이슬람교 나라 그라나다가 함락, 그리스도교에 의한 레콩키스타가 완성되었을 때 유럽의 다원적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불관용적인 일원적 지배의 시대로 돌입했고 그것이 결국 홀로코스트로 귀결되었다고 쓰신 적이 있습니다. 영국의 EU 탈퇴 결정이 새로운 불관용의 시대로 돌입하는 것은 아닐까요?


(보편주의에 대해서)

9.  세계자본주의가 국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그동안 우세했었습니다. EU도 애초부터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각 국가들이 월경을 쉽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경계가 약해졌지만, 지금 양상은 흐릿한 경계 때문에 부의 편중이 일어나자 다시 국민주의로 회귀하는 상황처럼 보입니다. 다시 국경의 벽을 더 높게 만드는 것인데요, 세계적인 현상처럼 보입니다. 


(보편주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10. 선생님께 늘 여쭤보고 싶었지만 그동안 여쭤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시라 생각도 됩니다만, 선생님, 난민들 내지 소수 민족 커뮤니티 중심주의와 보편주의 사이에는 긴장이 있을텐데요, 말씀하신대로 이 양자의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새로운 보편주의’ 혹은 ‘보편적 보편주의’에 대한 모색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보편주의와 또 다른 보편주의 사이의 갈등도 있을 겁니다. 새로운 보편주의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고, 연대가 가능하려면 새로운 이념이 필요할텐데, 반식민주의가 그런 이념의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예비질문1. (모순과 갈등을 견디는 것에 대해서)  

  보편주의와 보편주의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갈등을 견디고 갈등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논리적으로 딱 맞아 떨어지지 않더라도, 모순적인 것들을 견디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비질문 2. (에스니시티와 내셔널의 관계에 대해서)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헤이트스피치는 인종주의적인 것일까요, 내셔널리즘적인 것일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까닭은 선생님의 글에서 네이션과 에스니시티가 가끔 구분되지 않을 때처럼 읽힐 때가 있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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