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지배 (2016.8.9 매일신문에 쓴 글)


직업의 영향은 매우 강한 것이라서 직업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알프레드 가드너가 쓴 <모자 철학>에는 세상과 사람들을 오직 머리의 크기로만 판단하는 모자 장수가 등장한다. 모자 장수의 직업적 경험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머리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머리가 더 크고, 그래서 더 큰 모자를 쓴다. 모자 장수는 존스가 7인치 반을 쓴다 해서 그를 존경하고, 스미스가 6과 4분의 3인치를 쓴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한다. 제한된 직업적 경험이 제한된 시각을 낳은 것이다.


나 역시도 제한된 시각 탓에 작은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적이 있다. 이제 막 제대한 사촌 동생에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모두 저축해서 기회가 되면 유학을 가라고 권했다. 하지만 작은아버지는 아들이 얼른 생활 전선에 나서 자립했으면 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지금 자립하면 더 멀리 나가기 힘드니 공부에 집중하게 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작은아버지는 내게 다그쳐 물으셨다. “네가 공부를 좀 더 했다고 네가 생각하는 공부만 공부로 아느냐?” “생활 전선에서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냐?”

작은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공부를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나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내가 보고 겪은 경험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마치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큰 모자를 쓴다고 믿었던 모자 장수처럼 말이다. 존스가 7인치 반 크기의 모자를 쓴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공부를 많이 하면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와 유학을 다녀오고, 학위를 받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서사는 좋은 일자리가 대졸자보다 많았던 1980년대라면 몰라도 박사 실업자와 이십 대 태반이 백수라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공부 외의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직업의 지배를 받고 있던 모자 장수만큼이나 철저히 공부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화여대에서 미래라이프대학을 만들어 뷰티학과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온 사회가 ‘공부의 지배’ 속에 있지 않으면 가능한 발상이 아니다. 뷰티학과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생활 전선과 직업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가능할 수 있는 ‘배움’을 ‘공부 산업’의 선봉인 대학이 학과라는 ‘공부 제도’ 속에서 획일화하는 것이 바로 공부의 지배가 의미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교 바깥에 학교가 있고, 배움 바깥에 배움이 있고, 삶 바깥에 삶이 있다. 공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공부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공부 바깥에 있는 공부로 나가는 것이다.

공부의 지배, 공부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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