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타는 사람이 쓴 시집, 시인이 쓴 철학책이 가능하다면?
_이광수, 최희철의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됐다. 어떤 내용이라도 좋으니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읽었거나 갖고 있는 책들 중에서 감명 깊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이 담당자의 주문이다.
‘철학자’라니?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쓴 책 중에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이 있지만 나 자신을 ‘철학자’로 누군가에게 소개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내 책의 제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제목은 『인문 육아』 내지 『오이디푸스의 일기』였다. 하지만 출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출판사는 마크 롤렌즈라는 미국의 분석철학자가 늑대를 키우며 쓴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던 참이었다. 마크 롤렌즈는 어린 늑대를 분양 받아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 했고 그 과정을 솜씨 좋게 철학적으로 해명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책을 쓰면서 『철학자와 늑대』를 의식하고 있었다. 마침 어린 아이를 홀로 맡아 키우며 육아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글을 쓰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무모하게도 『철학자와 늑대』에서 마크 롤렌즈가 제시한 시간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 욕망이나 자유에 대한 입장과 대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원고가 완성되자 『철학자와 늑대』를 소개한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고 결국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내 책에 ‘철학자'라는 호칭이 붙은 것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철학자’로 불러주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마크 롤렌즈처럼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유명세를 얻은 책을 쓴 적도 없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철학자’라는 호칭을 붙여둔 제목을 제안해주자 한편으로 그간 어줍잖게라도 해왔던 사유를 인정 받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목에 ‘철학자’가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철학자’라 불리울 수 있는 자격은 자신만의 독자적 사유를 해오고 있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철학자’는 철학교수를 의미한다. 만약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면 아직 ‘철학연구자’에 불과한 자가 ‘철학자’를 참칭하는 것이 된다.
‘철학자’가 철학교수와 동의어가 된 것은 사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향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오래된 일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철학자’와 철학교수가 동의어가 된 것은 칸트 이후에 성립한 것이다. 기껏해야 독일에서 근대 대학이 성립한 이후이기 때문에 300년도 채 되지 않은 등식인 것이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성찰』 등을 남긴 근대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이지만 철학교수는 아니었다. 『에티카』와 『신학정치론』과 같은 철학사의 빛나는 책을 남긴 스피노자는 생업은 안경공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역시 철학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연구자로 불렸을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이 이들과 같은 위대한 철학적 성취를 해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철학자가 아니면서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의 이 연재를 하게 된 것에 대한 변명이라 해두자.











‘서재’라는 말에도 ‘철학자’라는 말만큼이나 거부감이 있다. 서경식은 『내 서재 속 고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서재’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는다. 부득이할 경우에도 기껏 ‘공부방’ 정도의 말로 대신한다. “서재가 좁아 책 둘 곳이 없어서 난처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날 경우, 예전의 나는 반감을 느꼈다. 하지만 요즘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는 아차, 싶은 때가 있다. 그것은 ‘서재’라는 말 자체에 수치에 가까운 감정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서경식이 ‘서재’라는 말에 수치심을 느낀 이유는 ‘서재’라는 말을 ‘부르주아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치솟는 주거비용으로 몸을 누일 방 한 칸조차 구하는 것도 힘겨운 많은 청년들에게 따로 책을 보관하는 방인 ‘서재’를 갖는다는 것은 아마 그저 사치에 불과해 보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대학 시절 서재는커녕 좁은 하숙방에는 가진 책을 꽂아둘 공간도 없었다. 게다가 책이 많으면 하숙방을 옮길 때 이사비용이 곱절로 들었다. 그 때문에 하숙집에서 누군가 이사 나가는 날은 책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이사비용을 아끼려 누군가 책을 버리고 가면 다른 학생들은 가만히 기다렸다 읽어보지 못했던 책을 골라 왔다. 내 좁은 하숙방에도 그렇게 모은 책과 사다 모은 책이 켜켜이 쌓였다. 만약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 책들도 아마도 버려졌을 것이다. 그나마 방이 두 칸이라도 있는 신혼집을 지방에 구한 덕분에 그 때 하숙방에 쌓여 있던 책들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책들도 지금껏 내 서재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그럴싸한 ‘서재’를 갖췄다고 하기 힘들지만 부끄러운 기분을 누르고 이 연재를 수락한 데에는 나 나름의 읽는 방법을 통해 읽어온 책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철학자의 서재’라는 이 부담스러운 제목에 대해서는 뭐라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 정작 중요한 책 이야기를 여태 미뤄두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의 가장 가까운 오른 편 책장에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의 책이 꽂혀 있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이를테면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라마톨로지』,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 『차이와 반복』 같은 책들이다. 보통 이 책장에는 가장 자주 보는 저자의 책이나 최근에 가장 관심이 있는 주제를 꽂아두는 편이다. 최근에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 케네스 클락의 『그림을 본다는 것』과 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그 왼편 책장에는 철학사의 고전에 해당하는 책들이 꽂혀 있다. 플라톤의 『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같은 고대철학서에서부터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과 같은 칸트의 책까지 주로 대학과 대학원 시절 읽었던 책들이 주를 이룬다. 그 맞은 편으로는 내 전공분야인 현상학 관련 책들, 하이데거와 후설이 쓴 독일어 원서들이 꽂혀 있다. 철학 외의 분야 중 내 서재에 가장 많이 꽂혀 있는 책은 신학서적, 다음으로는 문학책이다. 근래에는 아즈마 히로키, 사사키 아타루와 같은 젊은 일본 사상가들이 쓴 책들을 많이 읽는다.

최근 내가 가장 즐겨 읽은 책을 한권 꼽자면 이광수와 최희철이 쓴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이다. 이광수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두고 이광수와 최희철이 글로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광수가 인도 여행 후 찍은 본인의 사진에 대해 “내가 보는 세계 안에 그가 보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나온다”고 쓰면, 최희철은 “그걸 ‘푸른 인연’이라 말하고 싶다. 삶이 끝없이 중첩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부딪히며 바람고 파도를 만드는 것, 그 파도가 우리 삶의 귀퉁이를 적시는 것”이라 화답한다. 두 중년의 대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사진 한 장을 두고 길러내는 두 사람의 깊은 생각 때문이다.









이 책이 아름다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책에서 사진으로 묻는 이광수는 본래 ‘사진가’가 아니고, 철학으로 답하는 최희철은 본래 ‘철학자’가 아니다. 이광수는 인도 역사를 전공한 대학 교수이며, 최희철은 이광수의 소개를 빌자면, 부산수산대학 어업과를 졸업하여 “배타는 일과 닭 잡아 파는 일을 생업으로” 삼아 몇 권의 시집을 쓴 ‘철학하는 시인’이다. 최희철은 최근에도 배를 타고 저 멀리 멕시코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아마도 ‘푸른 인연’이라는 말도 배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만들어낸 생각해냈을 것이다.

시인이 쓴 철학책, 역사가가 만든 사진집, 배 타고 닭 잡아 파는 사람이 쓴 시집이 가능하다면, 철학교수가 아닌 철학자가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의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구태여 나는 이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 들뢰즈를 운운하며 ‘탈주’나 ‘-되기’와 같은 개념들은 여기서 쓰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곧 다시 쓰게 될 것이다.

- 한국해기사협회 매거진 <해바라기> 8월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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