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아날로그 라이프 365일
송은정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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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숨 쉬는 이 곳이 비록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너무 연하지도, 그렇다고 진하지도 않은 녹색의 표지도 좋았다.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단순히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는 원초적인 이유만으로 집어 든 책이다. 총 서른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해봤을 고민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마음에 와 닿았다. 


"하루는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거짓말을 한 뒤 반나절 동안 파주로 면접을 다녀왔다. 저녁 식사를 겸한 2차 심층 면접까지 치렀건만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오늘이 매일 반복됐다." (16p) 


이직을 고민하던 저자는 '퇴사 후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했다. 그녀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지인들은 무언가를 도전할 나이가 아닌 안정기에 접어들 나이라고 조언했지만 그녀의 선택은 달랐다. 캠프힐(Camphill). 영국 곳곳에서 장애인과 함께 일하며 자원봉사를 하는 곳이다. 공동체 생활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유럽의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 지친 심신을 정화해 줄 것만 같은 유기농 식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저자는 캠프힐로 떠났다. 







"먹는 것을 스스로 일구는 삶은 멋졌다. 사계절 내내 지속되는 고단한 노동을 단순히 '멋짐'으로 미화하는 것이 적절할 리 없지만 달리 대체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웰리부츠를 신은 채 사방으로 땀 냄새를 풍기며 귀가하는 가드너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그들의 활기에 속으로 매번 감탄했다." (68p)


저자에게 한국에서의 '채식주의자'로서의 삶이 다소 버거웠다면, 캠프힐에서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유기농 라이프가 가능했다. 식빵을 직접 굽고, 샐러드에 들어갈 양상추와 샐러리를 재배하며, 소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키웠다. 수확한 감자와 오이, 파, 토마토, 각종 허브가 담긴 채소 상자는 손수레에 실려 집집마다 주기적으로 배달됐다. 그곳에서 저자는 자연의 리듬을 배웠고, 정직한 노동 앞에 겸허해졌다. 






짐작해보면 작가가 한국에서 보냈던 시간들, 그러니까 직장인으로서 보냈던 시간들은 지금의 내가 보내는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게 해냈을 때 그에 따르는 보상- 대개는 월급-과 회사와 집을 오고 가는 삶.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 재미있는 일에 도전해보자고 생각하지만, 생각에 그치는 삶. 그녀가 한국을 떠나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종종 죄책감에 빠졌던 까닭은, 바쁘게 살아야만 인정받은 세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약 30년 간 허겁지겁 달리는 삶을 살았던 그녀가 하루 아침에 변할 리는 없지만, 캠프힐에서의 생활은 그녀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현실이 된 꿈이 완벽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실을 바탕으로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 너무나 지루했다. 당장 손에 잡히는 성취가 없으니 열심히 임하겠다는 동기부여가 약해졌고, 스스로가 나태한 사람처럼 느껴져 죄책감에 빠지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종잡을 수 없는 상태로 반년쯤 지냈을까. 더디게 움직이는 몬그랜지의 일과에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줄 알았던 달팽이가 실은 최선을 다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분명 나아가고 있었다. 정해진 일과 동안 필요한 만큼의 일을 하는 것이 마치 게으름을 피우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던 건 초과 노동의 경험에서 기인한 슬픔 부작용이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느슨한 일상이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지 시간적 여유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151p)







"디데이가 정해진 뒤로 나의 모든 관심사는 한국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향해 있었다. 더 이상 이곳에 없을 내 모습 따위는 상상하지 않았다. 끝보다 시작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이며 애써 미소 짓던 주디스가 마지막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그제야 내 앞에 닥친 이별을 실감했다. 수요일 아침의 노랫소리, 카푸치노, 기도하는 시간, 탐스러운 사과나무, 크리스틴의 헬로우, 창문 너머로 비친 달, 안나의 바짓단 소리, 한낮의 티타임, 조의 벤조 연주, 지긋지긋한 빵,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 니콜의 엉터리 댄스, 크리스마스 편지, 따뜻한 해영의 부엌, 그리고 우리가 나눴던 모든 눈 맞춤들. 방금 전까지 선명하게 빛나던 순간들이 과거를 향해 뒷걸음질쳤다." (295p) 


저자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북아일랜드로 떠난지 1년 3개월 만이다. 저자가 여정에서 배운 것은 아일랜드도, 그리고 그녀가 현재 머물고 있는 한국도,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하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지루한 삶 속에서도, 때로는 숨 막힐 듯이 조여오는 삶 속에서도, 매일 조금씩 더 나다운 모습을 산다면, '열심히'보다는 '성실하게' 산다면, 그녀는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어제의 나와 조금씩 작별하는 삶. 매일 매일을 성실하게 삶으로서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삶을 그녀는 지향한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이곳은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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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덴마크식 육아 - 회복력 있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행복한 아이를 키우는 새롭고 강력한 방법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 & 이벤 디싱 산달 지음, 이미정 옮김 / 새로운발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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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아이의 삶이 달라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와 언론을 비롯한 각종 매체를 통해서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고 보살피는지에 따라 아이들의 성격, 능력 등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봐왔다. 부모가 아이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눈에 띠는 성과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아이들(아이들이라고 부르기에도 더 어린 유아들)은 인격이 형성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기 이전부터 무언가를 학습하는 방법부터 배운다. 그리고 그 학습이 대부분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과 연관된다. 문제는 인성과 정서 발달의 선행 없이 단순히 기술 발달만을 꽤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불안을 초래하거나 부모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덴마크식 육아>는 덴마크 남자와 결혼한 미국인 엄마와 자녀를 키우고 있는 덴마크인 심리치료사가 공동으로 집필했다. 저자들은 무엇이 덴마크의 부모와 아이들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만드는 걸까?’라는 의문을 바탕으로 책을 썼고, 그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덴마크식 육아를 꼽았다.

 

덴마크식 육아의 기본은 아이를 회복력 있고 정서적으로 행복하게 키우는 것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회복력이 있고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덴마크에서는 이런 양육 방식을 오랜 기간 고수해왔고, 그 결과 아이와 부모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 안정적인 상태에 이르게 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내면의 힘에 대해서 강조한다. 아이들이 올바른 삶을 살고, 역경이 왔을 때에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부모의 양육 방식에 달렸다고 말한다.

 

<나의 덴마크식 육아>에서는 총 여섯 가지 육아 비법을 공개한다. 첫 번째는 놀이(Play)’.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놀이는 아이들을 발달시키고 웰빙하게 한다. 두 번째는 진정성(Authenticity)’이다. 진정성이란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진짜 감정을 인식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진정성 있게 행동했을 경우 아이에게는 내면의 나침반이 생겨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을 잘 이겨낼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는 리프레임(Reframe)’이다. 이는 아이들이 좌절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네 번째는 공감(Empathy)’으로 타인과의 소통에서 친절과 관대한 태도를 기를 수 있다. 다섯 번째는 경고 멈추기(No Ultimatums)’로 부모와 자녀 간의 힘겨루기와 분노를 방지할 수 있다. 마지막은 연대감과 휘게(Togetherness and Hygge)’로 일상과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는 방식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고, 감정을 조절하고,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능력은 건전하고 안정적인 성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 오늘날 근심과 우울을 예방하는 데 회복력이 아주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은 몇 년에 걸쳐 자녀들에게 회복력을 서서히 가르친다. 그리고 회복력을 가르치는 데 사용해 온 방법 중 하나는 놀이에 높은 중요성을 부과하는 것이다.”(39p)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는 독서를 좋아하거나 아주 사교성이 뛰어난 아이일지도 모른다. ADHD를 겪고 있는 아이는 에너지가 넘치고 기가 막힌 드럼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집쟁이는 포기를 모르고 끈기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행동에 있어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려고 하면 부정적인 수식어보다는 각자의 고유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자신 그리고 자녀의 정체성에 관한 부정적인 판단을 다시 쓰고 아이들로부터 행동을 분리하자.”(103p)

 

덴마크 사람들은 휘게를 삶의 방식으로 여기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안락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가 되면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가족 구성원 모두 함께 노력한다.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력한다. 휘게는 양초와 맛있는 음식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등의 행동을 포함하며 이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도 있다.”(165p)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덴마크인들의 삶의 방식인 휘게(Hygge)’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하루를 편안하고 충실하게 보내는 삶의 태도 휘게. 덴마크인들은 그들의 유산처럼 내려오는 휘게를 아이들을 양육할 때에도 적용해서, 아이들 역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덴마크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저자들은 현재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을 위해 덴마크에서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덴마크식 양육 방법을 자세히 기록했다. 덴마크식 양육 방법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과 행복한 그들이 길러낸 아이들 역시 내면의 안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의 부모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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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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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온전히 책으로 치유 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책을 읽음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고과거의 상처를 마주하지만 오히려 더 단단해진 사람들의 이야기앤 후드의 장편소설 <내 인생 최고의 책>은 책을 통해 잊고 있었던 불편한 과거와 마주하지만 결국엔 책의 힘으로 극복해내는 에이바의 이야기를 담았다.

 

에이바는 남편의 외도로 상처받은 중년 여성이다그녀는 친구 케이트의 추천으로 북클럽에 가입하게 되고북클럽 멤버들과 교감하며 책에 대한 토론을 이어나간다북클럽 멤버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그들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책들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읽어보거나 한번쯤은 들어본 작품들이라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북클럽에서는 올해의 주제로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책을 선택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에이바는 고민 끝에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라는 책을 떠올리게 된다동생의 사망과 어머니의 자살로 절망에 빠진 어린 에이바에게 검은 캐딜락을 타고 온 여자가 건넨 책이 바로 <클레어에서 여기까지>이다. <내 인생 최고의 책>에서 북클럽 멤버들이 언급하는 책들 모두 실존하는 책이지만주인공 에이바가 선택한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만이 가상의 책이다에이바는 어린 시절 가족을 잃었던 슬픔을 달래주고 나지막이 그녀를 위로해줬던 책을 떠올리며다시 한 번 책의 힘에 대해 느끼게 된다그동안 책과 멀리하는 삶을 살았던 그녀가 어린시절 그녀를 일으켜 세웠던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 에이바의 마음속에 무언가 불꽃같은 것이 일어났다로절린드 아든을 찾아내리라그해 여름 내내 슬픔에 빠진 어린 소녀가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얼마나 여러 번 읽고 또 읽고 했는지 말해주리라자기 작품이 오래 전에 누군가를 구원해줬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까그 당시 에이바에게 세상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는너무나 부서지기 쉽고 무서운 곳이었다작가는 자기 책이 에이바에게 그 어떤 책보다 중요하다는 걸 이해할까?”(94p)

 

<내 인생 최고의 책>은 에이바뿐만 아니라 그녀의 딸 매기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엮어 놓았다매기는 현재 에이바를 떠나 파리에서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다유부남 쥘리앵과 사랑에 빠져술과 마약섹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녀가새로운 삶을 찾게 되는 계기 역시 책이다그녀는 종종 들르던 가니메데스 서점에서 일하며 새 삶을 살기 시작한다.

 

매기가 일어섰다무릎에 힘이 없어서 천천히 나가야 했다이른 아침이라 하늘에 분홍색과 붉은색으로 줄이 그어진 것 같았다날씨가 덥겠구나매기가 생각했다주위를 둘러봤다마음을 끄는 뭔가가 있는지 찾아봤다건물이나 아니면 도로 표지판 같은 거라도 좋았다하지만 눈에 익은 게 하나도 없었다길모퉁이까지 가서 다시 둘러봤지만 여전히 낯익은 곳이 없었다계속해서 걸었다드디어 저 멀리 초록색 파이프와 파란 도관으로 외관이 꾸며진 퐁피두 센터가 보였다마음이 놓였다그쪽으로 걸어갔다그 근처로 가면 노아를 만났던 카페가 있고빈백 의자가 놓여 있던 책방도 있다카페오레를 큰 잔으로 한 잔 마시고 오믈렛과 빵을 먹어야지그런 뒤 책방으로 가서 빈백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책을 읽어야지.”(297p)

 

독자들은 <내 인생 최고의 책>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기 전까지 자신에게 최고의 책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유년시절 읽었던 책들을 돌아보게 되고, 상처 받았던 마음을 다독여줬던 책을 다시 꺼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독서가 가진 치유의 힘을, 부디 책을 읽는 독자들도 느껴보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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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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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으로 일본을 떠올렸을 때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저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이미지가 다를 테지만, 나의 경우에는 '정돈된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 정돈된 것은 그들의 깨끗한 거리만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태생적으로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서의 철저한 교육을 통해 정돈된 삶,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면 어쩌면 <인간증발>에서 사라진 일본인들에 대해서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제목과 표지만 보고 스릴러 소설 즈음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책장을 넘겨보면 일본의 이면을 꿰뚫어보고 있는 르포 형식의 보고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책은 프랑스 저널리스트 레나 모제와 그의 남편인 스테판 르멜이 일본의 민낯을 꼼꼼히 기록한 글과 사진을 엮었다. 부부는 5년간 도쿄, 오사카, 후쿠시마 등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증발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기록했다. 


"사람들은 사라진 사람들이 수중기 속에서 과거를 깨끗이 씻어버리려고 온천을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은유에서 증발을 뜻하는 일본어 '죠-하츠'가 유래되었다."


사회에서 사라진 사람들, 누구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사람들. 부부는 그들을 '증발한 사람들'이라고 칭하며 그들이 증발을 선택한 이유를 일본이 처한 현실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10만 명이 증발하듯 사라지고 있는데, 그 원인은 대부분 경기 침체로 인한 파산이나 실직, 이혼 등 비극적 상황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자발적 실종'이라는 외로운 길을 택하게 된다. 


이렇게 자발적 실종을 택하면 대부분 사망자 또는 실종 처리되는데, 그럴 경우 취업이나 금융거래, 사회보장 혜택 등이 어려워 비극적 삶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봄날 새벽, 유이치는 저렴한 모텔을 알아본 후 병든 어머니를 그곳에 버리고 그대로 달아났다. 쓰레기 채집과 막일을 전전하다가 산야의 이 작은 모텔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2층의 사무실과 투숙객들 사이에서 사는 현재의 삶이 편하다. 산야의 주민 중 몇 명이나 야반도주해서 왔는지,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정부의 지원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자급자족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다. 여기서는 모두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죽어갈 것이다."(85p)


저자들은 그들이 일본에서 만난 자발적 증발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장감 있고 진솔하게 다루고 있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가 밝히는 자발적 실종자들의 이야기는 생생한 사진들과 함께 배치되어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인간증발>은 일본 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도 자발적 증발을 택한 사람들이 있는지,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라고 말한다.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사람들이 증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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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가정부 조앤
로라 에이미 슐리츠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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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가정부 조앤(The Hired Girl)>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열네 살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생각했을 때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품은 아마도 <빨강머리 앤>일 것이다하지만, <어린 가정부 조앤>을 읽은 후부터는 열네 살 소녀조앤 스크래그스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그녀의 별명은 황소씩씩하고자신감 넘치는 성격의 조앤조앤은 때때로 버릇없게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열네 살이라는 발랄한 나이에 맞는 행동으로 사랑스러움 그 자체인 소녀다그래서인지 주변 인물들에게 누구보다 사랑받는 인물이다그런 조앤에게 생에 첫 시련이 찾아왔는데바로 조앤의 아버지조앤의 아빠는 조앤이 학교를 다니며 책을 읽는 것보다농장 일을 하면서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라고 강요한다당차고 씩씩한 조앤은 그런 아버지에게 맞서지만농장에서의 일은 그녀의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열네 살 소녀조앤그녀는 농장을 나와 이름과 나이를 속여 유대인 가정의 가정부로 취업하게 된다그것이 그녀가 열네 살이 될 때까지 했던 결심 중 가장 큰 결심에 속한다. <어린 가정부 조앤(The Hired Girl)>은 조앤이 가정부로 일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에 큰 비중을 담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조앤은 운 좋게도 부유한 유대인 가정인 로젠바크 씨 댁에 들어갔고그곳에서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된다또 학교에 대한 갈망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을 배우게 되며유대인 가정을 바라보며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무엇보다 열네 살 소녀답게로젠바크씨의 둘째 아들 데이비드를 짝사랑하게 된다.

 

<어린 가정부 조앤(The Hired Girl)>은 어린 소녀 조앤이 기록한 일기장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소녀의 일기인 만큼 아기자기하고 때 묻지 않은 감성을 찾아볼 수 있다무엇보다 열네 살 소녀의 눈으로 20세기 초반의 미국을 바라보고 있어그 시대의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특히 조앤이 공부를 할 수 없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자라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성인들에게까지 큰 교훈을 주고 있다.


나는 맨발로 바닷가를 걸으면서 데이비드를 생각했다데이비드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사랑예술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이 세상이 모래 알갱이처럼 사소한 일과 좁은 생각 들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세상은 넓고 거칠며 장대하다언젠가 나는 작은 돛단배를 타고 바람과 물살을 가르며 저 드넓은 바다 같은 삶을 향해 용감하게 항해할 것이다파도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겠지만 정복당하지는 않으리라내가 바로 운명의 주인이자내 영혼이라는 배를 지휘하는 선장이니까.” (5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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