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페스트 (초호화 스카이버 금장 에디션) - 1947년 오리지널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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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새책 서가에서 책 표지 덕에 발견(!)했다. 갈색 장정에 금색 글씨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도서관 도서는 책 본체와 분리되는 겉장이 있을 경우 제거한 후 소장하기 때문에 표지에 한글이 전무한 경우 외서처럼 보인다. 양피 가죽에 금장의 작은 프랑스어로 제목을 새긴 책을 유심히 보니 카뮈의 페스트였다. 코로나 발발 후 관심이 높아져서 이런 고급 장정의 책이 나왔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무도 빌려가지 않고 서가에 남아 있다니.


​『시지프 신화』를 읽고 나서 카뮈를 더 읽어야할지 고민했다. '프랑스 작가' 콤플렉스 때문인지 이해력의 한계인지 또는 그 책이 유난히 어려웠던 건지 『시지프 신화』는 편두통을 유발했었다. 그러나 카뮈의 명성을 보건대 미처 깨닫지 못한 뭔가 있지 않을까 미심적은 마음도 있었다. 한 번 더 읽어보기로 했다. 한편으론 전염병의 시대의 필독서로 여겨지기도 했으니.


알제리 해변가의 프랑스 도청 소재지 오랑은 "평범하다는 게 첫인상인 도시"다. "일상을 벗어난" "사건이 일어날 만한 곳이 아"님에도 어느 날 그 일이 발생한다. 첫 조짐은 쥐였다. 곳곳에 죽은 쥐 시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서술자'라고 부르는 화자는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발생한 기간 동안의 연대기를 써내려간다. 『페스트』는 전염병의 연대기이자 도시 오랑의 사람들이 겪어낸 한 시기에 대한 기록이다.


병명이 밝혀지고 도시가 봉쇄된다. 사람들은 현실을 부정하다 받아들이고 전염병과 싸우고 굴복한다.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를 불확실한 상황에서 병마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사가 있고 종교에 기대는 사람, 탈출하려는 사람, 그 와중에 사익을 챙기는 사람 그리고 묵묵히 옳다고 여기는 삶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술자는 펜데믹의 한가운데를 뚫고 나아가는 인간 군상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초기에 페스트의 정체를 알아챈다. 20년전 파리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음을 아는 그는 일의 경과를 어느 정도 예측했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죽으리라는 걸, 도망치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걸 알았을텐데 미리 계획된대로 병약한 아내만을 요양원으로 보내고 자신은 도시에 남는다. 그리고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인정하면서도 굽히지 않고 환자에게 매달린다.


사실 의사 리외는 바로 좀 전에 동료 의사에게 직업 '몇몇 환자들이 도시 곳곳에서 난데없이 페스트로 죽었다'고 인정해 놓고도, 여전히 그 재앙이 현실로 와닿지 않았다. 다만 의사이기에 신체적 고통을 일반인보다 더 잘 상상해서 가늠할 수 있었다. 창밖으로 예전과 똑같이 보이는 도시를 보며, 의사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살짝 가벼운 구역질이 일었다.

p.53


"아닐 겁니다. 파늘루 신부는 학자예요.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못 봤죠. 그래서 자꾸 '진리'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지만 교구 내의 종부성사를 집전하고 임종하는 사람의 마자막 숨소리를 들어 온 신부라면, 아무리 촌마을 신부더라도 나처럼 생각할 겁니다. 고통의 장점을 증명하기 전에, 그 고통을 보살피겠죠."

p.160


"어쩌면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게, 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 좌우되니까, 어쩌면 신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침묵하고 앉아 있는 하늘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자기를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걸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승리는 늘 일시적일 뿐이죠. 영원하지 않고."

(…)

"네, 압니다. 그렇다고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할 순 없어요."

"물론 그렇죠. 다만, 이제는 페스트가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요."

"네. 끝없는 패배죠."

p.163


카뮈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로 파악한 작가다. 적어도 『페스트』의 등장인물들을 볼 때는 그렇다. 한없이 고통을 연민하는 리외도 그러하고 그의 주변 인물들도 대부분 선하거나 선한 쪽으로 변화한다. 시청 서기 조제프 그랑은 세심한 정리 능력으로 의료 자원 봉사대를 지원한다. 방문자로 오랑에 머물고 있는 호인 장 타루 역시 특별한 이유없이 리외를 돕기를 자처한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일"만이 관심사라는 그는 쉴 새 없는 업무 끝에 감염되어 죽음을 맞는다. 연인을 파리에 두고 온 신문기자 레몽 랑베르는 탈출을 모색하던 중 마음을 바꿔 자원봉사에 투신한다. 감염자 수용소에서 아들을 잃은 예심판사 오통도 마찬가지다. 이타심이 이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아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거대한 의도는 없었다. 잃은 아들을 덜 생각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즉 자신이 먼저였다. 자신을 명확히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참된 선함이 가능한 일일까.


이 세계에 존재하는 악은 항상 무지에서 생긴다. 아무리 의도가 선했어도 무지하면 악의만큼이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대체로 사람은 악하다기보다는 선한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해와 몰이해가 미덕과 악덕을 가르는 것이다.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자신에게 살해할 권리까지 인정하는 무지다. 살인자의 영혼은 이처럼 맹목적이다. 극도로 명민한 통찰력이 없이는 참된 선의도 진짜 사랑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p.167


그렇다. 만약 인간이 영웅적인 사람을 본보기와 귀감으로 삼는 것을 좋아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영웅'이 반드시 한 명 필요하다면, 서술자는 독자들에게 가진 거라곤 약간의 선한 마음과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이상뿐인 이 보잘것없고 존재감 없는 영웅을 추천하겠다. 그럼으로써 진리에는 그 본연의 마땅한 의미가, '2+2'에는 '4'라는 답이, 그리고 영웅주의에는 차선의 지위, 즉 행복이라는 고귀한 욕망보다 '절대로 앞서지 않고 그 바로 뒤'라는 부차적 자리가 딱 주어진다. 또한 이 연대기에도 '좋은 기분으로 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두드러지게 불쾌해한다거나 저속한 흥행물처럼 과잉된 감정 없이 하는 진술이라는 특징이 부여된다.

p.175


이야기를 마치면서 타루는 한쪽 다리를 흔들어서 발로 가볍게 테라스를 두드리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의사는 몸을 약간 일으켜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을 찾은 것 같냐고 물었다.

"네, 그 길은 공감입니다."

p.320


하지만 많이 야윈 오통 씨가 힘없는 손을 들어 올리더니 신중하게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그에게서 뭔가가 결정적으로 변했다고 느꼈다.

(…)

"그런 게 아닙니다. 수용소로 다시 돌아가려고요."

(…)

"그러면 바쁠 테니까요. 좀 어리석은 말로 들리겠지만, 그러면 아들과 헤어졌다는 느낌이 덜해질 것 같아요."

p.326


예외적인 인물도 있다. 그랑의 이웃 코타르는 자살을 기도하는 등 내내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도시가 봉쇄되고 나서 평안을 찾는다. 그를 암시하는 말들은 마치 『이방인』의 뫼르소가 살아서 오랑에 등장한 듯 하다.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갇힌 상황을 이용해 사리사욕에 몰두하던 코타르는 페스트가 잠잠해지고 도시의 문이 열린 자 스스로 파멸하고 만다. 욕심을 채우면 행복해지리라 믿었을테지만 마음은 손쓸수 없게 피폐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랑은 여주인의 담배 가게에서도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여주인이 알제에서 떠들썩했던 최근의 어떤 체포 건에 대해 말했다. 해변에서 아랍인을 살해한 어느 젊은 직장인의 이야기였다.

p.74


리외는 도시의 고통을 끝까지 직면했다. "직접 겪지 않는 고통은 진정으로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고난을 자처했다. 어쩌면 길어진 재앙의 기간이 그를 견딜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재앙 한 가운데 놓인 사람들에겐 그것이 "한없는 제자리걸음"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세계의 끝에서부터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질러서 서툴게나마 연대감을 전하려고 애쓰는 생면부지의 우정 어린 음성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직접 겪지 않는 고통은 진정으로 공유할 수 없다는 끔찍한 무력감도 생생하게 밀려왔다.(…) 웅변이 고조될수록 그랑과 이 웅변가 사이의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본질적인 간격만 도드라졌다. (…) '아니. 함께 사랑하거나 함께 죽거나 둘 중 한 가지 방법뿐인데, 당신들은 너무 멀리 있어.'

p.176


사실 재앙만큼 볼거리 없이 밋밋한 것도 없다. 너무 오래 끌기 때문에 큰 불행도 단조롭게 만들어 버린다. 페스트라는 끔찍한 재앙을 겪은 사람들에게, 이날들은 화려하고 잔인하며 거대한 화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여정 위에 놓인 모든 것을 뭉개 버리는 한없는 제자리걸음으로 기억되었다.

p.227


카뮈는 재앙을 통해 "인간에게 경멸해야 할 것보다 칭찬해야 할 것이 더 많"음을 배웠다고 썼다. 소설 『페스트』 속의 한 해동안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2년째 겪고 있는 상황의 재현이었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봉쇄에 가까운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것에 의지해야 하고 근거가 불확실한 예측 외엔 희망을 걸만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시절의 끝에 카뮈와 같은 배움을 얻길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리외와 같은 누군가가 남긴 담담한 증언을 읽을 수 있길 또한 바란다.


침묵하지 않고 페스트에 스러진 사람들을 위해 증언을 하기로,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의 기억을 남기기로 말이다. 재앙의 한복판에서 배운 것,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칭찬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만큼은 말하기 위해서였다.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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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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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읽은 단편 「음복」의 강렬한 인상이 오래 남았다. 가부장 전통과 세대간의 차이 그 안에에서 비틀린 여성의 문제를 제사와 음복이라는 소재에 담은 방식이 훌륭했고 무엇보다 이야기 속 상황 묘사가 생생하게 기억됐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오랜 상처를 주고 받고 그 대물림을 막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짧다면 짧은 단편에 꽉 들어차 있었다. 강화길 작가의 또다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화이트 호스』는 2017년부터 2020년 봄까지 발표됐던 작품을 모은 단편집이다.  「음복」을 비롯해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첫 세 편은 결말의 물음표가 던지는 질문이 이야기 전체를 뒤집는 공통점이 있었다. 차례로 읽어나가면서 이 단편집 전체 작품이 아이러니를 묻는 질문으로 묶이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세 번째가 끝이었다. 「음복」의 물음표는 '제사'와 그에 수반되는 '음복' 문화가 윗 세대와 아래 세대에게 부과하는 의미의 무게를 달리하고 있으며 화자의 시댁 안에서 존재하는 가족 간의 갈등이 가볍지 않음을 강조한다. 또한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모든 일이 가까운 미래에 쉬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말한다. '시시함'을 물으면서.


참…… 시시하지?

p.42


질문은 비슷한 방식으로 「가원佳園」에서 이어진다. 화자는 어렸을 적 자신을 대하던 조부모의 대조적인 모습과 후에 알게된 실상이 다름, 그들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이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과거가 옛일로 머물지 않음을 말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다 옛날 일이다. 모두.


그치?

p.74


「손」의 물음은 책임과 관련이 있다. 상의없이 해외근무를 연장한 남편, 적응하기 힘든 시골 학교 근무와 시어머니의 행동, 아이 양육에 대한 걱정 등이 화자를 괴롭힌다. 환경, 사람 모두 자신에게 적대적인 듯 서술되지만 마지막 질문은 문제가 모두 주변만의 탓일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어디선가 그것이 소리를 냈다.


뭐해?

p.110


강화길 작가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서사에 잠재된 암시들 때문이다. 이야기의 재미만 이끌려 쉽사리 읽고 나면 마지막에 남은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된다. 아니 답하기 어려운 이유를 납득할 수 없게 된다.


세 번의 질문이 끝난 뒤에 아이러니 찾기가 시작된다. 단편 「서우」는 실종 살인 사건이 일어난 동네에 사는 여성의 귀가길을 보여준다. 미심쩍은 택시 기사와의 대화는 그녀가 사건과 연루된 듯한 인상을 강화해간다. 마지막 과연 위협을 느껴야할 사람은 택시 기사일까, 승객일까.


​「오물자의 출현」은 여배우의 이미지가 가십으로 소비되면서 비틀려가는 모습을 그린다. 여러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였다가 한 남자를 잊지 못하는 순정녀인 동시에 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가 하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그녀는 인위적인 드라마 도취되어 일상의 자아 또한 왜곡된 채이다. 여자의 죽음은 인구에 회자되며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그 안에 진짜라 할 만한 무엇이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여전히 가십의 생산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로 발견된 일기의 출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십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가십에 불과한 법이니까. 알면 됐고, 모르면 또 됐고, 뭐 그런 거 아니겠나.

p.183


「화이트 호스」는 작가의 소설 쓰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단편이다. 작가 스스로 길게 썼다고 적은 '작가의 말'에 이 단편을 쓰게 된 전말이 나온다. 작가는 밥 딜런과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듣고 얻은 영감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어느 날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아이디어를 얻어 소설을 첫 줄을 쓰게 됐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첫 문장을 쓴 뒤 이어 결정했다.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할 거야. 귀신에 시달리는 이야기가 될 거야. 고택에 갇힌 이야기가 될 거고. 고딕 스릴러가 될 거야. 화이트 호스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가 될 거야. 화이트 호스의 역사는 집의 역사가 될 것이고, 이곳에 머문 사람들의 기억이 될 거야. 그들의 기억에 따라 화이트 호스의 의미는 달라질 거야. 왜냐하면 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에 의해 그 의미는 계속 바뀔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그들이 하는 일이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 바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지.

p.296, '작가의 말' 中


얼마나 짜릿했을까. "이걸 써야겠어."라고 외쳤을 때 얼마나 시원했을까. "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에 의해" "의미는 계속 바뀔 수밖에 없"고 그것이 소설가가 '하는 일'이며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니. 이런 '일'을 "진짜 원하는 것"이라며 도장찍듯 말할 수 있는 작가가 강화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는 동안 계속 읽을 수있는 독자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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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별밤 에디션)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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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출간 소식을 듣고 기뻤다. 단편으로 읽은 작가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이야기가 좀더 계속되길, 연하면서도 질긴 작가의 목소리를 더 듣길 바랐다. 드디어 300쪽 넘는 긴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됐다.


『밝은 밤』은 백 년을 지나는 4대에 걸친 모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정의 딸 삼천이가 영옥을 낳고, 영옥이 미선을 낳고, 미선이 지연의 어머니가 된다. 작가는 이 책에서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돕고 위로하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밤같은 시간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는 소중한 마음들"을 담고 싶었다고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 만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깊이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책을 읽은 후 운좋게 작가 강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많은 강연을 들었지만 최은영 작가의 '강연'처럼 생활밀착형인 경우는 처음이다. 작가는 (아마도) 자신의 집 거실에서 (크게) 꾸미지 않은 자연스런 얼굴로 화면을 대했다. 자신의 말만 전하는 보통의 '강연'에 대한 기대는 처음부터 빗나갔다. 작가는 자신이 작가가 된 이후 겪은 정신적인 어려움의 시기를 풀어놓았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이야기가 소설 곳곳에 녹아 있음을 알게 됐다. 작가는 "과거의 나 자신을 포용하고 돌아봐주는 나를 하나의 책으로 보고 읽어가면서 이해해주자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편을 처음 써서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매일 쓴다는 생각으로" 이 긴 소설을 마쳤다고 했다. 너무도 해맑은 작가의 얼굴에는 가끔 울음이 비치는 듯도 했고 잠자다 깨 옆에 와 있는 반려묘을 소개하며 아이처럼 웃음짓는 얼굴도 보였다.


최은영 작가는 "자신의 성공을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일평생 꿈이라고는 소설쓰는 일밖에 없었음에도 그게 너무 커서 실망할까 두려워"했다. 출간 후 반응을 궁금해하기보다 독자의 기대를 실망시킬까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자기를 갱신하는 글을 쓰고 무조건 잘 써야 된다고 생각 두 번째 책 출간시 열등감"을 느꼈다는 작가는 상담가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내가 나를 상처줄 수있는 가장 잔인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고 이런 생각은 소설 속 화자 지연에게 그대로 반영돼 있다.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p.86


2019년은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한 시기였다. 문학상과 관련된 출판계의 관행에 저항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작가로서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그는 그 기간동안 "쓰지 않는 자신에 대한 낯설음"을 느꼈다고 한다. 글을 쓰지 못한지 한 해가 되어갈 무렵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아무 것도 증명할 필요 없이 저녁 7시에 함께 식사하는" 의무만 주어졌다. "물리적 거리감 덕에 한국에서 느꼈던 무게가 멀리" 느끼게 되어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노트북을 열었고 마침내 글이 써졌다". 작가는 그곳에서 "열흘 동안 밝은 밤의 첫 100매를 쓸 수 있"었다. 그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없었으면 독자가 『밝은 밤』을 만나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 '희령'은 "유배지처럼 고립된 곳이란 설정"에서 시작됐다. 화자 지연은 천문학 연구원으로 이혼 후 희령 근무를 선택한다. "산맥과 바다 사이에 갖힌 지형적 배경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작가는 "별과 하늘에도 관심이 많아" 이런 설정을 택했다지만 마음의 고립 상태와 지역적 배경이 어우러지는 지점으로 볼 수 있다.


"존재를 증명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소설 속 지연"은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다. 소설 속 화자가 보여주는 "버림받을 것 같은 마음, 사람들이 떠날 것같은 두려움, 약한 마음은 모두 작가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에 책에는 "지연을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무서움에도 두려움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새비 아주머니를 통해 형상화된다. 어린 딸을 데리고 전쟁터를 가로질러 북에서 남으로 피난길을 떠난 새비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그녀의 딸이 지연에게 보낸 메일에 들어있다. "무서워서 떨면서 발걸음을 옮기는" 태도는 또다른 작가의 모습으로 보였다.


어머니는 자기 신념이 강했고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나를 데리고 늦가을에 대구로 피난을 가는데 어머니가 바들바들 떨던 것이 기억나요. 자꾸 농담을 하면서. 나는 어머니가 추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떨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어머니는 일평생이 그런 식이었죠. 바들바들 떨면서도 제 손을 잡고 걸어갔어요. 어머니는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어요. 무서워서 떨면서도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나는 어머니를 닮고 싶었어요.

p.333


이야기의 첫 인물 삼천은 백정의 자식 그것도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삶 속으로 끌려들어가 100년의 시간을 시작한다. 작가는 삼천의 모델을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찾았다. 17년 전 "40일 동안" 읽은 책 속 이야기 한토막이 한 권의 소설이 됐다. 짧게 묘사된 한 사람에게 한 권에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비가시권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p.337


소설을 다 읽고 남았던 궁금증이 강연(?)을 들으면서 이해됐다. 소설 중에는 지연의 언니 정연이 어떻게 세상을 뜨게 됐는지에 대한 부분이 없다. 또 지연이 엄마 미선과 할머니 영옥이 불화하게 된 이유도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지 않다. 작가는 이에 대해 명쾌하게 답했다.


서사를 비워두는 방식의 글쓰기를 좋아해요, 실제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도 그렇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쓸겁니다.

'안성도서관 책으로 이어지다, 온앤오프 책마당' 작가 강연(2021.11.21) 中


맞다. 세상 돌아가는 걸 다 알 수는 없다. 최은영 작가는 세상을 아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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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개정판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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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가 왜 위험할까. 책만 읽어도 위험해질 수 있다면 칼을 들 경우 세상의 종말이 오게 되는 걸까. 도발적인 제목이다. 온전히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그렇다면 제목만큼 내용도 도발적이었는가를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하고 싶다.


책은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독서의 역사"를 읽어보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서술하겠다는 시도는 앞머리의 '저자의 말' 부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독서의 역사에서 여성이 드러나는 대목들을 짚어가며 구성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이 부분이 약 53쪽으로 끝나버린다. 이어지는 책의 나머지 서술은 시대별로 독서하는 여성을 담은 그림을 소개하는 정도다. 그림 도판을 크게 싣고 아트지에 선명하게 인쇄한 것도 좋았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소략한 편이다. 이렇게 본다면 여자와 독서에 대한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지 '독서의 역사'를 탐구하는 책이라는 소개는 과한 면이 있는 듯하다.


다행히 책의 번역자인 조인한, 김정근이 쓴 글이 이 책의 체면치레에 한 몫을 담당했다. '조이한·김정근의 책 읽기와 여자'라는 소제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책과 독서의 역사를 서술한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간략하게 서술한 내용을 좀 더 풍성하게 설명하고 있달까. 상당한 양의 역자 서술이 없었다면 이 책을 화보집에 가깝게 보였을 듯하다.


14세기에 지적 호기심, 특히 여자의 지적 호기심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인류의 원죄가 이브의 호기심에서 생겼다고 믿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종교의 권위를 의심하게 만들고 회의를 유발하는 지적 호기심과 지적 능력의 표상인 책은 허용할 수 없는 금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서류를 읽거나 영혼을 살찌우는 성서와 기도서 외에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주 낯선 것이었다.

p.89, '조이한·김정근의 책 읽기와 여자1'中


지식과 여성의 관계는 부정적인 결과를 상상케하는 조합이었다. 책과 여성이 예술품이 함께 등장한다는 건 그 책이 성스러운 것일 경우에 한정됐다. 12세기 엘레오노르의 관에는 책을 든 고인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당대를 풍미한 여성 권력자를 묘사한 형상에 책이 등장한 것이 이채로웠다. 책보다는 사교와 정치에 많은 시간을 쏟은 여성이었지만 그만큼 교육 수준 또한 높았다는 걸 증명하는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나친 독서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엘리트적 남자의 지적 우월감이 깔려 있었다. 즉 독서란 지적 능력을 지닌 특정한 남자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여자와 교양이 없는 대중은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계몽의 대사이라는 생각을 거의 모든 지식인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자에게 책은 잠재된 위험이며,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가장의 임무를 지닌 남자는 그런 위험을 감지하고 예방해야만했다. 이제 가정에서 독서는 가장의 도덕적이고 엄격한 시선에 노출되게 되었다.

p.120, '조이한·김정근의 책 읽기와 여자2'中


여성에게 책이 워험한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책을 읽는 행위는 사적인 공간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자신만의 고독한 공간에서 책에 몰두하는 여성들은 '혼자'가 된다. 그것도 아주 '기쁘게'.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p.188, '조이한·김정근의 책 읽기와 여자3'中


책 읽는 여자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녀들은 좀더 영리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또 단지 이기적인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녀들은 혼자서도 아주 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혼자 있는 것, 자신의 환상과 작가의 환상이 만나게 되는 것이 독서가 주는 커다란 기쁨 중의 하나다.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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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처럼 문학 읽기 - 작가는 굳이 말하지 않고, 독자는 달리 알 길이 없던 문학 속 숨은 의미 찾기
토마스 포스터 지음, 손영민.박영원 옮김 / 이루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는 굳이 말하지 않았고, 독자는 달리 알 길이 없었던 문학 속 숨은 의미 찾기


부제


책 제목보다 부제가 더 눈에 띄었다. 읽긴 읽었는데 검은 글자만 안구를 스쳐간 느낌이 책을 읽을 때 종종 든다. 시를 읽기를 멀리하는 이유이기도 한 이 '느낌'은 '이해하기 어렵다'에서 시작된다. 분명 한글로 된 문장인데 어려울 때가 있다. 앞뒤 문장과의 맥락을 모르겠고 뜬금없이 등장하는 표현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모호함에 빠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놓치고 있는게 뭘까?" 서사의 재미에 휘둘리기보다 의미를 캐내는 읽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이런 궁금증이 늘어만 간다.


토마스 포스터 미시간대 영문학과 교수의 『교수처럼 읽기』는 문학 읽기의 (전문가적?) 비법을 공개(?)하는 책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비법은 그 단순명료함면에서 칭찬할 만하다. 포스타 교수에 따르면 단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기억, 상징, 패턴"


기억, 상징, 패턴. 이 세 가지야말로 독서에서 전문가와 일반인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p.13


물론 수학 공식을 외웠다고 해서 수능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 것처럼 비법을 알았다고 문학 작품을 투시할 수 있는 건 (당연하게도) 아니다. 원리 다음은 유형 정복이고 마지막 단계는 자유로운 활용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세 가지 문학 해독의 원리를 제시하고 그것이 어떻게 실제 작품에 적용되는지 실례(實例)을 제시한다. 


그런데 문학 교수들이 책을 읽을 때는 이야기의 감정적인 차원에도 반응하지만 대개는 다른 요소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이 작품의 감정적인 효과는 어디서 오는가? 등장인물은 누구와 비슷한가? 이런 장면을 전에 본 적이 있는가? 단테(혹은 초서나 컨트리 가수 멀 헤거드)가 이런 말을 했던가? 이런 의문들을 제기하는 습관을 갖추거나 문학 작품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된다면, 새로운 관점에서 문학 작품을 읽고 이해하게 될 것이고, 독서가 더 보람 있고 즐거워질 것이다.

pp.12-13


안타깝게도 저자가 제시한 첫 번째 비법에서부터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문제의 비결은 '기억'! 하루가 다르게 뽀얗게 지워겨 가는 기억력을 노력으로 극복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하니 재빨리 첫 번째 단계를 수긍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 '기억'의 문제는 나머지 두 가지 비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이미 읽은 작품들을 기억해야 두 번째, 세 번째 비법인 '상징'과 '패턴'을 찾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이래서 공부는 젊을 때 하라는 거였다.) '기억'을 단념하니 '상징'도 '패턴'도 먼나라 이야기다. 이제 '교수'처럼 읽기는 단념하고 이 책을 '자기개발서'처럼 읽기로 한다.(자기개발서는 저자에게 한정된 개발의 방법을 소개하는 책으로 독자에게 그 방법들이 얼마나 유용할 지는 책과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상징'이나 '패턴'을 알아보기 위해선 작품과 작품 사이의 연계성을 '상호텍스트성'이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나 설정이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하는 걸 말한다. 이런 관련성을 알아볼 수 있을 때 각 설정들이 같은 맥락 안에서 의미를 풍부하고 만들고 있는지 혹은 이전의 가치를 비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책과 책이 주고받는 '상호텍스트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개개의 문학작품은 읽을 때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닐 뿐 역사성을 알아보거나 더 넓은 의미망 속에서 작품이 갖는 위치 등은 알 수 없게 된다.


이전 작품과 새로운 작품들 간의 이런 상호작용든 여러 차원에서 늘 일어나는데, 비평가들은 시나 소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 현상을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고 부른다. '상호텍스트성'은 텍스트에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독서 경험을 더 깊고 풍부하게 해주는데, 그중 어떤 의미는 독자들이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작품이 다른 텍스트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인지할수록 똑같거나 비슷한 점을 더 쉽게 알아볼 수 있고, 작품이 더 생기를 띠게 된다.

pp.63


상징과 패턴을 인지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독자가 작품에 대해 똑같은 모양의 이해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요인이 문학 독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을 어떻게 이해하는가'하는 문제에는 나의 특성도 반영되는 것이다. 독자의 생각이 편향돼 있다면 작품이 제시하는 방향과 상관없이 나의 시선만을 확인하게 된다. 책을 읽는데 있는 이것처럼 무서운 일도 없다. 


독자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작품을 경험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수준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강조하고, 그런  차이가 작품의 한 측면을 서로 다르게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분명 각자의 역사, 즉 지금까지의 모든 독서 경험을 동원하지만, 그와 동시에 교육 정도, 성별gender, 인종, 계층, 종교, 인간관계, 철학적 성향을 투영하게 마련이다(그 밖에 다른 요소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런 변수 들은 필연적으로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렇다면 독서에서 상징만큼 독자의 개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측면도 없을 것이다. 

p.157


저자의 지적대로 '창작'하는 독서는 지양되어야 한다. '상징'과 '패턴'을 이해해 보겠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 끝에 저자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는 먼나라에 도착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문학 작품을 쓰는 일은 상상의 활동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독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어떤 작품이 말하려는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당 작품이 우리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 작가의 상상과 무관한 우리만의 상상에 불과하고, 또 그게 뭐든 작품에서 보고 싶어 하는 무엇을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그것은 독서가 아니라 창작이 된다. 

p.183


시대성을 고려한 독서에 대한 지적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21년을 사는 우리의 눈으로 청동시 시대의 아킬레우스를 재단하지 말 것이며, 현재 먹거리를 기준응로 제임스 조이스 작품의 파티 음식을 품평해서는 안된다. 또 1950년대 할렘가의 풍경을 21세기의 윤리 의식으로 재단하려한다면 작품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 없이 도덕군자스런 평가만 늘어놓게 될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역사적 순간을 공유"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만약 독서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최대한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그 작품이 원하는 의도 그대로를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제시하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당신만의 눈으로 읽지 말라.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서기 2천 몇 년이라는 현재의 입장에 고정되어 있는 당신만의 시각으로 작품을 대하지 말고, 그 이야기가 쓰인 역사적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관점에서 바라보라는 뜻이다.

pp.321-322


책 중간 중간 저자의 문학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면 묻고 싶을 질문들을 배치했다. 책의 서술 자체도 수월한 강의를 듣는 듯 편안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문답을 읽고 있자만 이런 교수님 강의를 한 학기쯤 실제로 듣고 싶다. 어떤 황당한 질문에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답을 줄 것만 같다.


책에는 문학을 파헤칠 수 있는 여러 기법과 사례들이 들어 있다. 저자의 비법을 다 활용못해도 예로 등장하는 작품을 읽어보고 해당 분석을 이해해 보는 정도만으로도 가치있을 것같다. 셰익스피어에서 시작해 온갖 서양 작품의 의미를 무겁지 않게 말을 건네듯 풀어내는 저자의 태도 덕에 읽기만해도 흥미진진했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읽기를 안내하는 책을 냈다. 이른바 '교수처럼' 시리즈라 할만하다. 『교수처럼 소설 읽기』, 『교수처럼 시 읽기』, 『교수처럼 논픽션 읽기』, 『교수처럼 문학읽기(어린이판)』. 단, 국내에는 『교수처럼 문학 읽기』 단 한 권만 번역되어 있다. 다른 책은 몰라도 『교수처럼 소설 읽기』는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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