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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1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은 사랑의 연속이 아니라 싸움의 연속이다. 서로 다른 평행선을 달려온 두 사람이 교차되는 순간부터 연애시절과는 다른 문제들이 생겨난다. 문제야 세상사는데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애정 관계를 바탕으로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면 사소한 일도 더 깊은 상처로 남게 된다.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오해해 버리게된다. 연애시절에는 없었던 문제들이 결혼과 동시에 폭팔적으로 늘어난다. 문제는 곧 쌓이고 쌓여 싸움이 된다. 싸우는 쪽은 오히려 낫다. 침묵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응어리를 만들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다. 결국은 조용히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될테니.
<연애시대>라는 소설은 2년이 채 못되는 결혼 생활을 마감한 두 부부가 서로의 재혼 상대를 추천해주면서 다시금 자신들의 연애 시절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는 스토리를 큰 줄기로 하고 있다. 임신한 아이가 죽어버린 뒤 남편이 아픈 아내를 외면하면서 결국 이혼하게 된다. 아내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남편은 소개받은 아내의 옛 고향 친구에게 다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흔히 사랑과 결혼은 다른 문제라고들 한다. 그렇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자신이 진정 필요로할때 떠나버리는 사람과 같이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결혼은 상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바탕으로한 사회적 계약이 아니던가. 겉으로 보기에 상처를 입은 쪽은 아내다. 그러나 남편 역시 무책임한 자신으로부터 상처를 입었다. 둘은 이혼후에야 서로의 잘잘못을 놓고 싸우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다.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을 뿐더러, 한번 큰 상처를 입었기에 두번다시 같은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자기 보호 본능 때문에 진심을 숨긴다.
그러나 작가는 다른 인물들의 사랑을 통해, 이 두 사람이 가진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자기애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여자프로레슬링 선수는 직업적으로 악한 역할을 해야하지만 실은 병을 앓아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한다. 부인의 고향친구는 임신을 빌미로 결혼했으나 이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날로 당장 그의 옆집으로 이사하고 직장도 바꾸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아내를 결혼식에서 본 순간 사랑에 빠진 호텔 연회 담당자는 4년 동안이나 기다려 결국 고백에 성공한다. 이들의 모습은 두 사람과는 달리 씩씩하기 그지없다.
["있어. 세상에는 그런 사랑 방식도. 나머지는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야. 과정이야 어떻든 상관없어. 행복해지는 쪽이 이기는 거야."
"과정이 잘못된 사랑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식적일 수밖에 없어."]
["맞선 상대를 알선하는 일? 고작 그런 일밖에 못해? 한심한 여자 같으니.....또 다시 실패할까봐 두려운 거지? 실패하면 또 도전하면 되는 거야. 까짓 호적이야 좀 지저분해지면 어때. 그런게 말련에 가서 무슨 흉이 되냐고. 가령 네 아이가 호적을 봤다고쳐. 엄마는 아빠하고 무슨 연애를 이렇게 많이 반복했냐고 물으면 이게 내 노력의 흔적이란다. 이 수많은 X표시는 나의 훈장이란다,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 거라고"
두려운 건 X표시가 아니었다. 그 표시들이 생기기까지 내가 입을 상처, 리이치로가 입게 될 상처였다. 사유리는 상처를 입어도 다시 일어서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언제까지든 싸움만 하다 세월 보내는 인생, 그만 하고 싶었다.]
1년3개월만에 이혼한 두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싸우고 또 싸워서 서로의 추한 말과 행동에 상처받고 또 그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 나가야 한다. 고통과 행복의 곡예를 쉼없이 펼치는 서커스다. 달콤한 연애는 있을 지언정 달콤한 결혼은 없다.
이 소설은 연애를 다루고 있지만 끊임없이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하지만 결혼이 두렵다고? 그럼 일단 싸움의 기술을 익혀라. 마음을 비워라. 머리에서 떠오른 말을 모조리 입밖으로 토해내라. 아내에게 남편에게 상처를 주라. 상처를 받아라. 그리고 자신이 낸 상처를 상대에게 솔직하게 인정하라. 고치려 노력하라. 비온 뒤에 땅이 굳어도 비는 또 내린다. 하지만 용기를 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것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