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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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리즈 외에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봤는데, 눈-시리즈는 유독 가독성이 뛰어난, 그의 작품 중에서도 좀 특이한 경우인 것 같다. 사람과 사건, 독자의 의도 아주 세세한곳까지 돋보기를 들이미는 오지랖 넓은 성격을 작품에 그대로 투영한 작가의 장점에 가독성까지 더해진 것은 아마 넘칠만큼 풍부한 이야기 꺼리가 나올만한 큰 사건 배경 설정과 다양한 인물 등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눈뜬 자들의 도시는 시민이 아니라 권력자(정부, 정치가, 언론등)에게 카메라의 초점이 맞추어져 얘기가 진행된다. 작가는 전지적 시점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 가능성 중에서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가능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므로 전편에서 시민에게 카메라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후편에서는 권력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는 것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작품의 재미는 권력자들이 백지투표 사건 후 계엄령으로 수도의 시민들을 격리시켜 놓고 사태를 수습하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을 와해시키려 음모를 꾸미지만, 예측하지 못한 시민들의 반응으로 인해 결국 4년전 은폐되었던 모두가 눈이 먼 사건까지 들추게 되며 다시금 사람들이 눈이 멀게되는 과정에 있다.

밝혀둘 것은 옮긴이의 말처럼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는 그리 낙관주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다 하더라도 결말의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부분을 두고 작가의 관점이 어두운 쪽으로 살짝이나마 기울어졌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전작 <도플갱어>에서도 그런 어두운 시각은 보여진다. 사라마구는 이타성을 잃어버린 개인주의, 무관심을 가장 경계한다. 그런 부분에 도플갱어의 테르툴리아노 막시오 아폰소와 개 짖은 소리가 싫다던 남자를 포함한 다시 눈이 먼 사람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노작가는 공동체, 가족성을 잃어버린 현대의 인간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재미있는 부분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여자들, 동물들은 희망이나 구원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여성과 동물을 그렇게 그리는지 작가의 속내가 궁금할 뿐이다.

어쨌거나 나는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가 있어서 괴테나 까뮈와 동시대 살았던 독자들이 부럽지 않다. 이 한마디면 이 책을 추천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책이 아니라 백지투표처럼 이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변화시켜 나가기 위한 '다리'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는 나라의 독자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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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 세트 - 전5권
조르주 뒤비 외 엮음, 전수연 외 옮김 / 새물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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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라는 책 이름은 지갑을 열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전쟁과 종교 갈등으로 피범벅된 유럽의 굵직한 역사에 가려진 미시사는 주로 가족을 중심으로한 일반인들의 생활이 시대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세세하게 짚어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으로 유럽 사생활의 역사를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가족에 초점을 맞춘 사생활 역사의 축약본과 같기 때문에 문학을 제외한 각종 문화적 부분들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미 가족 미시사와 관련된 책은 출판되어 있기 때문에 좀 더 색다른 시선을 원했던 독자라면 식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 내가 읽었던 4권과 관련해서 말하면, 필자 중에 프랑스인이 많아서인지 영국쪽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자료가 너무 빈약하다. 중세 이후 책을 읽을 때 "유럽"이 아닌 "프랑스"의 사생활 쪽에 무게 중심이 가 있다는 것을 염두해두면 좋을 것 같다.(친절하게도 필자들이 서두 부분에서 각 챕터별 집필 의도나 한계를 분명하게 밝혀두고 있다)

시원시원한 편집과 깔끔한 활자 덕에 가독성이 높아서 구매 후 쳐박아둘 염려는 없다. 출판사가 이쪽 계열 책들을 많이 번역해주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좀 더 세분화된 미시사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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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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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시다 슈이치의 전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서 <퍼레이드>, <일요일들>, <거짓말의 거짓말>을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것이다.  <랜드마크>는 전혀 취향에 맞지 않아 덮어 버렸고 <거짓말의 거짓말>에서는 이야기 구조가 너무 헐겁고 엉성한 기분이 느껴졌다면 이번 소설은 그런 걱정은 제쳐두고 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형식상으로는 <퍼레이드>와 같이 각각의 인물별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구조인데  그 유기성이 한층 성숙해졌다고 해야하나? 아무래도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 라인이다보니 훨씬 매끄럽게 써진 느낌이다.  제목인 '캐러멜 팝콘'처럼 처음에는 통통 튀는 젊은 연애담에 끌려 책장을 덤기다 보면 어느새 책장을 덮을 때는 가족과 연인, 친구 사이에 서로의 눈치하에 협의되어 묵인해버린 일들이 떠오르게 될것이다. 그러나 딱히 속았다던가 썩 기분이 좋지 않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것이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 같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게되면 자신의 치부가 까발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인 부분들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만들어 놓았다.

 10여명 남짓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얽혀 있지만 그것은 4계절 각각의 쳅터로 나누어져 또 개별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소설의 구조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데 요시다 슈이치는 이런 구성에 있어서는 참으로 탁월한 것 같다. 모두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나 또한 개인일 수 밖에 없다.  타인들이 말하는 행복도 내가 원하는 싶은 행복도 모두다 갖고 싶다. 선택하기 싫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잡게 되는 일이 허다하지 않는가. 그걸 알면서도 마음 먹은대로 안되서 답답하기만 인생인데 또 하루는 가고 내일은 온다. 그러다 그런 고민마저 잊게 된다.  이런 인물들의 고민을 좀 더 재밌게 읽고자 한다면 소설의 중반부인 '여름'까지 읽는 뒤, 원하는 인물 쳅터만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 다음 다른 인물들의 쳅터도 같은 방법으로 읽어보면 퍼즐을 끼우는 것처럼 추리하면서 읽어볼 수 있다. 왜 이런 반응을? 왜 이런 말을? 하면서 말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섬세한 묘사가 중반 이후로 가면 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도 있고, 이렇게 읽은 다음 다시 '가을'부터 읽어나가면 같은 소설이라도 읽는 방법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기때문에 좀 더 적극적인 독서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처럼 <퍼레이드>의 거칠지만 무모한 젊음이 그립다.  날이 갈수록 매끄럽고 세련되어지는 소설의 기술이라는 달콤함을 걷어내면  '세상살이 다 이런거야?' '세상살이 다 이런거야.' 라는 식상한 뒷맛이 느껴져 영 개운치 않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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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6-12-03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이 소설 읽고 뭔가 개운치 않은 뒷구녕 덜닦은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인데, 퍼레이드보다 훨씬 형식상 매끄러워 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더라구요. 인생 뭐 있어? 라는 주제로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쓸 수도 있는 작가의 역량은 놀랍지만 항상 주제가 그런 식으로 결말을 맺는 작가의 입장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네요. 한마디로 메세지가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해요. 님 서평 보니깐 책 보면서 느꼈던 답답한 느낌들이 확 풀리는 느낌이네요 ㅋ

시체렐라 2006-12-0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세지가 진부하다는 말과 일관된 주제 의식,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그런가봐요. 독자들이 세련된 글보다는 거칠지만 개성있는 글에 마음이 끌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테하누 어스시 전집 4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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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에는 별 5개를 줘도 아깝지 않음을 우선 밝혀둔다.

 3권이 나오고 2년쯤 흐른것 같다. 표지까지 리뉴얼되어 나왔는데 출판사에서는 구판을 산 독자들에게 보상판매를 안한다면 4권 표지라도 따로 찍어서 한정 수량으로 주문받는 정도의 센스라도 보여줬다면 이렇게 화가 나진 않을텐데.

<게드 전기>로 일본에서 애니화 되었다지만, 일본내 상영회 결과 자국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고 한다. 다시 공부하고 오라는 덧글 정도면 말 다한거 아닌가_-; 공개된 몇몇 컷을 봐도 솔직히 이건 별로라는 생각이 앞선다.

황금가지는 어스시 시리즈를 과연 완역해 줄것인가.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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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절영 2006-08-06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판 보상판매하는가 보더라구요. 황금가지 홈페이지 가서 확인해 보세요.^^

시체렐라 2006-08-2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그러나 지금에야 덧글을 봤네요. 이벵은 저 산넘고 물건너 가고ㅜㅠ
 
연애시대 1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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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혼은 사랑의 연속이 아니라 싸움의 연속이다. 서로 다른 평행선을 달려온 두 사람이 교차되는 순간부터 연애시절과는 다른 문제들이 생겨난다.  문제야 세상사는데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애정 관계를 바탕으로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면 사소한 일도 더 깊은 상처로 남게 된다.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오해해 버리게된다. 연애시절에는 없었던 문제들이 결혼과 동시에 폭팔적으로 늘어난다. 문제는 곧 쌓이고 쌓여 싸움이 된다. 싸우는 쪽은 오히려 낫다. 침묵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응어리를 만들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다. 결국은 조용히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될테니.

 <연애시대>라는 소설은 2년이 채 못되는 결혼 생활을 마감한 두 부부가 서로의 재혼 상대를 추천해주면서 다시금 자신들의 연애 시절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는 스토리를 큰 줄기로 하고 있다.  임신한 아이가 죽어버린 뒤 남편이 아픈 아내를 외면하면서 결국 이혼하게 된다. 아내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남편은 소개받은 아내의 옛 고향 친구에게 다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흔히 사랑과 결혼은 다른 문제라고들 한다. 그렇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자신이 진정 필요로할때 떠나버리는 사람과 같이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결혼은 상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바탕으로한 사회적 계약이 아니던가. 겉으로 보기에 상처를 입은 쪽은 아내다. 그러나 남편 역시 무책임한 자신으로부터 상처를 입었다. 둘은 이혼후에야 서로의 잘잘못을 놓고 싸우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다.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을 뿐더러, 한번 큰 상처를 입었기에 두번다시 같은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자기 보호 본능 때문에 진심을 숨긴다.

 그러나 작가는 다른 인물들의 사랑을 통해, 이 두 사람이 가진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자기애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여자프로레슬링 선수는 직업적으로 악한 역할을 해야하지만 실은 병을 앓아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한다. 부인의 고향친구는 임신을 빌미로 결혼했으나 이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날로 당장 그의 옆집으로 이사하고 직장도 바꾸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아내를 결혼식에서 본 순간 사랑에 빠진 호텔 연회 담당자는 4년 동안이나 기다려 결국 고백에 성공한다. 이들의 모습은 두 사람과는 달리 씩씩하기 그지없다.

["있어. 세상에는 그런 사랑 방식도. 나머지는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야. 과정이야 어떻든 상관없어. 행복해지는 쪽이 이기는 거야."

 "과정이 잘못된 사랑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식적일 수밖에 없어."]

["맞선 상대를 알선하는 일? 고작 그런 일밖에 못해? 한심한 여자 같으니.....또 다시 실패할까봐 두려운 거지? 실패하면 또 도전하면 되는 거야. 까짓 호적이야 좀 지저분해지면 어때. 그런게 말련에 가서 무슨 흉이 되냐고. 가령 네 아이가 호적을 봤다고쳐. 엄마는 아빠하고 무슨 연애를 이렇게 많이 반복했냐고 물으면 이게 내 노력의 흔적이란다. 이 수많은 X표시는 나의 훈장이란다,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 거라고"

두려운 건 X표시가 아니었다. 그 표시들이 생기기까지 내가 입을 상처, 리이치로가 입게 될 상처였다. 사유리는 상처를 입어도 다시 일어서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언제까지든 싸움만 하다 세월 보내는 인생, 그만 하고 싶었다.]

 1년3개월만에 이혼한 두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싸우고 또 싸워서 서로의 추한 말과 행동에 상처받고 또 그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 나가야 한다. 고통과 행복의 곡예를 쉼없이 펼치는 서커스다.  달콤한 연애는 있을 지언정 달콤한 결혼은 없다.

 이 소설은 연애를 다루고 있지만 끊임없이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하지만 결혼이 두렵다고? 그럼 일단 싸움의 기술을 익혀라. 마음을 비워라. 머리에서 떠오른 말을 모조리 입밖으로 토해내라. 아내에게 남편에게 상처를 주라. 상처를 받아라. 그리고 자신이 낸 상처를 상대에게 솔직하게 인정하라. 고치려 노력하라. 비온 뒤에 땅이 굳어도 비는 또 내린다.  하지만 용기를 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것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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