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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난민 ㅣ 문학동네 시집 49
윤의섭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1월
평점 :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지고 있지 않은 책.<천국의 난민>이라는 시집이 책이라기 보다 마치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현실의 소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나는 너무 자주 읽어서 도서관에서 빌린 시집을 나 자신의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바로 잠시 전까지도 말이다. 불현듯 윤의섭의 시집이 읽고 싶어 방 안을 모두 뒤졌고, 다 뒤지고 난 뒤 시집을 사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이전에 잊고 있었던 기억과 함께.
읽고 싶었지만 읽을 수 없었다. 시집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강의에서 잠시 다루어졌던 한 편의 시. '천국의 난민'를 읽으며 내내 놀라운 마음을 가라 앉혀야 했다. 좋다 나쁘다라는 감정 너머에서 밀려오는 놀라움. 어린 시절 처음 동화책을 읽었을 때, 새로운 시공간이 꿈처럼 펼쳐지던 기분과 흡사했다. 그러나 학교 생활에 휩쓸려 시인도 시집에 대한 기억도 잊혀지고 그 학기를 마치게 되었다. 그 다음 학기가 시작될 무렵쯤 나는 정발 번뜩하고 그 시가 읽고 싶어져서, 수업시간에 모아두는 파일을 뒤지고, 먼지가 쌓인 상자와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시인의 이름도 시의 제목도 잊혀진 가운데 나는 그 시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마다 붙들고 시의 내용을 설명하며 물어 보았지만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잘모르겠다며 멋적어 할 뿐이었다. 생각나는 단어를 검색 사이트에서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다.
천국,
내가 기억하고 있던 단어는 천국이었다. 비로소 시집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도서관에서 시집 부분의 모든 책을 다 뒤진 후였다. 이 시집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내 가슴 뛰며 책장을 넘겼다. 책을 덮고 나서 왜 그토록 이 시집을 읽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윤의섭의 시에서 천국을 보았던 것이다.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천국을. 나는 난민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현실의 시간과 공간에서 다른 차원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현실의 시공간성에서 자꾸만 미끌어지던 내 자신이 산사람처럼 실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귀신처럼 실재하고 있다-라고 윤의섭의 시가 말해 주었던 것이다.
시인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런 메시지를 읽었고 편히 숨쉴 수 있는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천국의 난민이라는 시집에는 제목처럼 정말 난민들이 가득 살고 있다. 윤의섭이라는 시인의 목소리를 빌어서 은하철도999에서나 만날 수 있는 우주가 펼쳐진다. 시 한 편 마다 한 혹성의 사연이 실려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무임승차를 하고 있었던 샘이다. 아니 시 안에서 몰래 숨어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난민 같은 자아가 있을 것이다. 그 자아를 내내 업고 현실을 살아가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바로 내 리뷰를 읽는 당신에게 나는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은하철도의 승차권 같은, <천국의 난민>을 건네 주고 싶다. 지금 나는 열차에서 내려 또 다른 열차를 타고 다른 우주를 여행하러 떠난다.
시인은 시를 썼다. 그 시를 찾아 읽는 것조차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여행을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 편의 시 대신 시인의 말 중 일부를 남긴다.
[......그리하여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현실은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꿈꾸게 하였다. 시간과 공간의 고립성이 갖는 부적절함을 인식하게 된 것은 바람 부는 한가운데에서 잠깐 동안이나마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이다. 바람 속에 서 있어본 적이 있다면, 그 순간이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모를리 없다. 분명, 바람 속이라는 공간과 잠시 뒤 사라질 짧은 순간이라는 한계는 이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말하자면 전혀 다른 세계이다. 그것은 다른 세계로의 도피를 말하는게 아니다. 이 세계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른다. 보여지고 만져지는 세계는 그 이면에 감추어진 또 다른 본질을 가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그 이면이 슬쩍 우리에게 나타나는 순간을 우리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