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밤
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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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무엇인가 잃어버린 기억은 오래도록 괴롭힌다.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다. 작가는 상실이라는 현실적인 감정을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풀어낸다. 그녀가 풀어낸 이야기는 기괴하거나 엉뚱하지만 그 안에서 다루는 감정은 익숙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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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냄비 요리」에서는 이별한 사람이 물이나 순무로 변하고, 남겨진 사람은 그것을 요리해 먹는다. 발상은 괴기하면서도 독특했다. 상대가 남기고 간 것을 먹는 행위가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한 적응 시간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별의 경험이 거의 없어서인지 그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사랑 접인 병원」의 설정은 흥미롭다기보다 조금 불편했다.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의 손가락을 잘라 접인하고 기억과 성격을 공유한다. 죽고 못살 만큼 사랑하는 순간은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지는 않다. 헤어지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가 먼저 생각났다.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몸을 바꾼다는 설정이 썩 내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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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지상의 밤」은 사람이 해파리가 되려 한다는 이야기다. 읽는 동안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는데, 이전에 《이웃집 소시오패스의 사정》에서 읽었던 작품이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을 견디지 못해 해파리가 되려는 인물의 선택은 기묘하지만, 결국 그가 다시 삶의 감각을 되찾는 과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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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가게 앞에는 싱크홀이 있다」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한다. 싱크홀의 원인이 만두를 먹으러 온 두더지들이라니. 어두운 구멍과 삶에 흥미를 잃은 인물을 다루면서도 이야기가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는다. 두더지들이 만두를 먹는 장면은 재미있었고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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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한겨울 따뜻한 실내에서」였다. 나이 든 희재와 입주 가사도우미 해영, 희재의 오랜 친구이자 단골 죽집의 주인인 유자가 등장한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희재의 생활에 해영과 유자가 자연스럽게 들어오면서 세 사람만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가족이나 연인이 아니어도 나이가 들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서로의 생활을 돌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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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편이 똑같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설정이 강해서 인물의 감정에 충분히 들어가지 못했고, 어떤 작품은 예상하지 못한 유머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도 상실과 외로움을 무겁게만 다루지 않고, 물과 순무, 해파리와 두더지 같은 엉뚱한 존재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낯설고 기묘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생각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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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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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장르소설은 아닌데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예순다섯 살의 두 여성이 주인공이고, 이야기도 대체로 담담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이야기가 계속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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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 경선은 자매다. 안나는 1월에, 경선은 같은 해 12월에 태어났기 때문에 실제로는 채 1년 차이도 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성격도, 외모도, 살아온 방식도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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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결혼하지 않았고 교직에서 은퇴한 뒤 연금으로 생활한다. 경선이 사는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로 이사한 뒤 혼자 조용히 살아간다. 경제적으로 크게 부족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지만, 그녀의 생활은 평온한 만큼 단조롭다. 어쩌면 나도 나이가 들면 안나처럼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다기보다는 혼자 있는 생활에 익숙하고,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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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은 안나와 다른 삶을 살아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했으며, 이제는 손녀까지 있다.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아야 하고, 비슷한 시기에 전남편의 부고 소식도 듣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 자주 만나지도 않던 자매지만, 안나는 경선의 보호자가 되어 병간호를 맡는다. 안나가 경선을 간호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보낸 과거도 조금씩 드러난다. 각자는 상대방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이해한 모습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까운 가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서로의 내면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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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안나와 경선, 경선의 손녀 다니엘이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부분이었다. 특별히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는 여행은 아니다. 세 사람은 낯선 장소를 함께 걷고 시간을 보내며,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본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여행이 참 좋아 보였다. 성격이 다른 두 자매가 세대가 다른 손녀 다니엘과 함께 여행하는 모습 자체가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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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온 뒤 경선의 딸은 이혼을 결심한다. 누군가는 수술을 받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결혼생활을 끝낸다. 소설은 이러한 일들을 과장하거나 특별한 교훈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인물들의 변화가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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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읽었다면 안나와 경선의 이야기를 지금만큼 재미있게 읽지 못했을 것 같다. 중년이 된 지금은 두 사람의 생활과 생각이 낯설지 않다. 혼자 살아가는 안나의 일상도, 가족 안에서 여러 역할을 맡아온 경선의 삶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년의 두 자매가 등장하지만 소설은 무겁거나 쓸쓸하지 않다. 사건을 극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사람의 삶과 관계는 계속 달라진다. 그 과정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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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시간의감촉 #은희경 #문학동네 #소설추천 #도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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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러닝 앤솔러지
김연수 외 지음 / 판미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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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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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굉장한 세계- 경이로운 동물의 감각, 우리 주위의 숨겨진 세계를 드러내다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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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신형철 해제 / 아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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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5 ㅣ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5
마치다 소노코 지음, 황국영 옮김 / 모모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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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더니스 모지항 고가네무라점의 다섯 번째 이야기가 돌아왔다.시바의 어린 시절과 첫사랑, 상실의 경험이 드러나며 그가 현재의 점장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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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지나칠 정도로 멋있게만 보였던 시바 점장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다.그가 보여준 친절은 단순한 서비스 정신이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받았거나 받기를 바랐던 다정함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일이었다. 다양한 손님들의 고민과 회복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권은 첫사랑과 상실,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그래서 마냥 가볍게 읽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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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를 읽을 때면 내가 사는 동네에도 이런 편의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잠시나마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곳, 텐더니스 편의점은 바로 그런 곳이다.사람들이 잠시 머물 수 있게 하고, 필요한 것을 건네며,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또한 헤어짐을 끝으로 남겨 두지 않고 새로운 출발로 이어 주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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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언제나 대단한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하루가 조금 덜 힘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면 충분할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 짧은 만남 속에서도 사람은 서로의 삶에 작은 흔적을 남긴다. 이 소설은 기적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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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도서리뷰 #바다가들리는편의점5 #마치다소노코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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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아나다
다카세 준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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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지면서 감염된 사람은 머리카락이 뿌리째 빠진다. 아이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성인이 대머리가 된 세상에서, 어느 날 마치카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적은 머리숱 때문에 열등감을 가졌던 마치카는 대머리 세상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자라난 머리카락은 마치카를 또다시 움츠러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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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기준은 누가 만드는 걸까. 소설 속 사람들은 모두가 대머리가 된 사회를 평등한 세계라고 부른다. 과연 평등과 동일함은 같은 개념일까.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질문이 계속 남았다. 전염병 이전에는 탈모가 감추어야 할 결핍이었지만, 이후에는 대머리를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오히려 자라난 머리카락을 감추어야 한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웃음이 나면서도 불편함이 남는다.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이 두렵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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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대머리가 된다는 기발한 설정은 오히려 현실의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머리카락이 없다는 결핍과 머리카락이 있다는 특권이 뒤바뀌는 상황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모두가 같아지면 아무런 갈등도 비교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사람들은 다시 차이를 찾아낸다. 차이를 없애면 평등해질 것이라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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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지닌 열등감과 오래된 감정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하기 전에 내가 어떤 기준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도서제공 #도서리뷰 #돋아나다 #문학동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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