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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큰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장르소설은 아닌데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예순다섯 살의 두 여성이 주인공이고, 이야기도 대체로 담담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이야기가 계속 궁금했다.
안나와 경선은 자매다. 안나는 1월에, 경선은 같은 해 12월에 태어났기 때문에 실제로는 채 1년 차이도 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성격도, 외모도, 살아온 방식도 전혀 다르다.
안나는 결혼하지 않았고 교직에서 은퇴한 뒤 연금으로 생활한다. 경선이 사는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로 이사한 뒤 혼자 조용히 살아간다. 경제적으로 크게 부족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지만, 그녀의 생활은 평온한 만큼 단조롭다. 어쩌면 나도 나이가 들면 안나처럼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다기보다는 혼자 있는 생활에 익숙하고,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경선은 안나와 다른 삶을 살아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했으며, 이제는 손녀까지 있다.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아야 하고, 비슷한 시기에 전남편의 부고 소식도 듣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 자주 만나지도 않던 자매지만, 안나는 경선의 보호자가 되어 병간호를 맡는다. 안나가 경선을 간호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보낸 과거도 조금씩 드러난다. 각자는 상대방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이해한 모습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까운 가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서로의 내면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안나와 경선, 경선의 손녀 다니엘이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부분이었다. 특별히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는 여행은 아니다. 세 사람은 낯선 장소를 함께 걷고 시간을 보내며,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본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여행이 참 좋아 보였다. 성격이 다른 두 자매가 세대가 다른 손녀 다니엘과 함께 여행하는 모습 자체가 즐거워 보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경선의 딸은 이혼을 결심한다. 누군가는 수술을 받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결혼생활을 끝낸다. 소설은 이러한 일들을 과장하거나 특별한 교훈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인물들의 변화가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젊었을 때 읽었다면 안나와 경선의 이야기를 지금만큼 재미있게 읽지 못했을 것 같다. 중년이 된 지금은 두 사람의 생활과 생각이 낯설지 않다. 혼자 살아가는 안나의 일상도, 가족 안에서 여러 역할을 맡아온 경선의 삶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년의 두 자매가 등장하지만 소설은 무겁거나 쓸쓸하지 않다. 사건을 극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사람의 삶과 관계는 계속 달라진다. 그 과정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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