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변종모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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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부터 크게 마음에 와 닿았던 이 책. 책 속에 담긴 글자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에 가슴속에 크게 박힌다.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지만 최근에 이렇게 큰 울림을 준 책은 없었다. 낯설지 않은 작가임에도 이 책에서 그의 글을 제대로 만났다. 


22곳의 여행이야기. 그 곳에서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나와 코드가 맞는 글은 참 신기하다. 조사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책에 질투를 느낀다. 작가의 필력에 질투를 느낀다. 솔직하게 부럽다. 누군가에게 큰 공감이 되고 힘이 되는 글은 멋진 선물이다.


내가 이 책을 만난건 때마침 지쳐있던 순간이었다. 더위에 지치고 일에 지치고 삶에 지치고. 하루에 열두번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때였다. 당장 눈앞에 쌓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책이다. 읽는 내내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향기를 맡고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지간히 힘들었나보다. 책에 이렇게 깊게 공감하다니..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이제는 직접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도 생겨났다.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돌아보고 진정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다고 싶다. 한정된 공간에 갇혀 불안한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던 나를 버리고 싶어졌다. 이렇게 다시 한번 책이 가진 긍정의 힘을 느꼈다.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듯이 현실적으로 여행이 힘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잠시나마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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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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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평화로운 작은 마을 앤더베리에 살고 있는 12살의 다섯 친구들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한 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새로운 스릴러 소설이라 하겠다. 어느 날 숲속에서 머리가 없는 여자 시신이 발견된다. 이 작은 마을에 일어난 끔찍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소꿉친구들의 관계는 조금씩 틀어진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조금씩 균열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30년이 지난 현재와 과거의 사건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선의로 했던 작은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큰 파장을 몰고 오고, 잘못된 신념으로 엉뚱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누구에게도 말 못 하는 비밀을 감춰두고 있다. 과연 숲속에서 발견된 소녀의 진법은 누구일까. 30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오랜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뜻하지 않은 죽음은 결말로 다가갈수록 책에 점점 더 빠져들게 만든다. 

모든 일을 예단하지 말 것, 때로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때가 있다. 단지 선생님에게 사랑하는 그녀의 반지를 전해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나'는 그에게 평생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줬다. 모든 이들이 얽히고설킨 관계와 결말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주인공의 심리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의 집 바닥에 숨겨져 있던 그녀,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는 행동 등. 의문이 가득한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과연 초크맨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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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
스즈키 다이스케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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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요즘 날씨에 보기만 해도 시원한 기분이 느껴지는 하늘색 표지. 얼음이 가득 든 유리컵 위에 앉아 있는 한 남자. 그저 기분 좋게 시원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갑자기 닥친 끔찍한 상황을 처절하게 이겨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것도 투철한 기자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손가락조차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저자의 의지에 감탄할 뿐이다.


인생의 이제 막 2 막을 시작하려는 나이 마흔. 젊은 나이에 뇌경색이 발병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생긴 고차뇌기능장애. 다행히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경증 고차뇌기능장애 환자로서 저자는 그의 감정과 변화를 하나씩 기록했다. 스스로 취재원이 된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고통을 이토록 유쾌하게 풀어내다니.. 이 사람 정체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이 책에는 그 이전에 뇌에 문제가 생긴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의 아내 치나쓰. 이 부부.. 참 파란만장하다.


이른 나이에 시작된 결혼 생활도 평범하지 않았지만 그  생활 중에도 끊임없는 자해하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그녀. 그런 그녀가 강한 두통을 호소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62mm의 큰 교아종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5년 생존율 8%의 예후가 가장 나쁜 뇌종양이었지만 잘 견뎌냈고 5년 후 생존 판정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고통을 계기로 저자는 스스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모든 걸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아내를 의지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옥죄고 있던 것들에서 벗어나게 됐다. 매일이 100미터를 전력으로 질주하였었다며 이제는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로 오래도록 달리게 된 것이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족 중에 오래도록 치료를 받고 있는 이가 있기에 마지막 그의 아내의 글에 더 공감이 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가. 집에서든 가족에게든 일어나는 일은 전부 알아야 하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완벽하게 끝마쳐야 하고..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삶을 스스로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가족들에게 의존하고 덜 완벽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내 어깨에 놓여 있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 한다. 나를 위해서도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비록 한번 파괴된 뇌세포는 다시 재생될 수 없지만, 저자에게는 이전보다 훨씬 여유롭고 행복한 세상이 기다릴 것이다. 사랑하는 그의 아내와 함께라면. 이 부부의 건강하고 웃음 가득한 삶을 응원한다.


질병에 걸리면 인생이 불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행복은 다시 찾아온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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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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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살기 위해 나라를 만든다. 살고 있는 나라가 싫어서도 아니요, 미워서도 아니다. 그동안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라도 재미있게 살기 위해 나라를 만드는 거다. 이런 터무니없는 '김강현'은 점점 빠져든다. 그리고 그는 아로니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한국, 일본, 중국이 맞닿아 있는 바다 한가운데 만들어진 인공섬. 그곳이 아로니아 공화국이다. 국민의 존엄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이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이 나라.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끝까지 다 읽은 후에는 정말 이런 나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어린 시절, 동네 만화방에 둘 컬러텔레비전을 사려 동네 아이들에게 '삥'을 뜯던 김강현. 아버지에게 걸려 제대로 맞은 후에 조금 정신을 차렸고 강제도 정신 수양을 위해 끌려간 태권도장에서 수영 누나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외가 대대로 내려오는 불교도 마다한 채 수영 누나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천주교 신자가 된다. 평소 외우는 것에는 천재적인 능력이 있어서인지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전교 꼴찌 근처에 있던 그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대학 입시에 합격한다. 

법대에 진학한 김강현은 악마라도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싫고 법조문만 읽어대며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판사라는 직업도 싫어서 검사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조직도 깡패들과 다를 바 없었다. 과거 억울하게 고문으로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재심에서 김강현은 유족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며 무죄를 선고한다. 썩어빠진 조직에 제대로 크게 한방 먹이고 그곳을 탈출한다. 그때부터 그에게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허무맹랑한 나라 세우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 한 권에 우리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군부독재, 그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시위대, IMF 등..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시절 이야기가 책 속에 잘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겪었던 분노와 아픔을 유쾌하게 마주할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빠져들었다. 

한 나라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준비,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아로니아 시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소외 말하는 강대국일지라도 정면으로 맞서며 지켜낸다. 힘들여 만든 이 영토가 사라질지라도 내 나라 사람은 꼭 지키는 작지만 강한 아로니아. 이곳에서라면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로니아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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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을 걷는다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울역사산책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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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토요일 오전.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작은 미술관으로간다. 

이른 시간에는 관람객이 적어 한적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짧은 미술관 관람이 끝나면 일명 '서촌'이라 부르는 동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작고 정겨우면서도 운치 있던 서촌도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 작은 동네가 가진 매력이 무엇이길래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어서일까? 내가 이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다양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이 책을 펼쳤다.



내 기준에서 이 책은 역사서다. 

늘 가는 곳이지만 잘 알지 못했던 서촌을 중심으로 

광화문과 통인동 일대, 세종로로 이어지는 그 곳에 담긴 역사를 이야기한다. 

아기자기한 서촌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 

묵직한 이야기가 한 가득 들어있다. 


정동으로 직장을 옮긴 지 어느새 6개월이 훌쩍 넘었다. 

강남보다는 광화문을 좋아했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무척 만족한다. 매일 다니며 보는 광화문과 세종문화회관, 가끔씩 산책하는 청계천 길,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는 빌딩 용비어천가 등.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내가 알지 못했던 역사가 담겨 있었다. 

하루 시간의 절반을 보내는 이 곳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무척 즐거웠다.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 책에 가득 들어있다. 

흡사 보물창고 같기도 하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면 이 책을 손에 들고 

다시 한번 서촌으로 걸어가보려 한다. 

눈으로 보기만 했던, 책으로 읽기만 했던 그 곳을 

읽고 보며 다시 한번 느껴 보려 한다. 

서울의 작은 동네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이런 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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