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 비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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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 쓸모를 다하는 것 같아 뭐라도 하게 된다. 회사를 다닐 때는 쉰다는 핑계가 당연했지만 프리랜서로 일하고부터는 쉰다는 개념을 상실했다. 정말 죽을 것 같이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은 하던 일을 멈추었던 기억이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진짜 휴식'을 갖기로 해다. 과중한 업무와 생산성의 강박에 시달리다 번아웃을 겪은 이후 정말로 힐링이 되는 진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조용히 쉴 때 떠오르는 단상을 기록한다. 그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간단한 아이디어와 짧은 그림 등으로 기록된 기억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습관을 깨닫고 중요한 것을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내 생각과 비교하기도 하면서 지금의 내 삶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책에는 다양한 계란 요리가 등장한다. 익숙한 스크램블부터 처음 들은 차예단까지 요리 레시피와 여러 에피소드가 맛깔나게 보인다. 최근 내가 빠진 계란 요리는 반숙 계란이다. 다이어트라는 핑계로 식단을 하면서 매일 계란 2개를 먹고 있다. 나 역시 다양한 계란 요리를 시도했지만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건 역시나 익힌 계란이었다. 


하지만 반숙 계란은 결코 쉽지 않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만족할 만한 익힘 정도에 도달하지 못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맛있는 반숙 계란을 판매하는 곳을 찾아냈다. 계란 익힘 정도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맛있는 반숙 계란을 사서 먹는 것. 내가 선택한 최고의 레시피다.


저자는 다양한 식물을 키운다. '식물 살해자'인 나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다육식물, 염자, 에어플랜트, 마란타 등 낯선 이름의 식물을 정성껏 키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천재 N잡러가 식물까지 잘 키우다니, 그의 능력에 살짝 질투가 나기도 한다. 과로와 번아웃 언저리에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쉬어도 좋다는 격려와 다시 시작할 기운을 건넨다.


8월은 유독 힘겨웠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일은 많이 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밑돌았다. 오랜만에 힘에 부친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8월의 마지막 주는 나에게 조금 시간을 주기로 했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운동하는 시간을 늘렸다. 책 읽는 시간도 일부러 조금 더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8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완전히 일에서 벗어났다. 9월이 되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 주어진 15분 동안 가만히 누워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오늘 하루 잘 버텼다고 나를 칭찬하고 내일도 잘 버텨보자고 다독이면서 말이다.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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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왈츠는 우리 없이도 계속되고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손수연 옮김 / 저녁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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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 살에 열다섯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고 이혼한 지는 7년이 지났으며 전 남편과는 아직 친구로 지내는 엘사. 소설은 첫 장부터 엘사에 대해 사소한 것을 알려준다. 그녀의 입을 통해..


뱅상과의 첫 만남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아내가 떠났고 두 딸과는 격주로 만나고 있으며 짜증이 난다는 이 남자. 소설가인 뱅상은 매주 수요일이면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오고 가며 쇼메 박사의 진료실을 찾아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대기실에서 마주치게 된다.


프랑스 소설의 느낌은 한껏 품고 있는 이 책은 상실의 아픔을 안고 있는 두 사람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진행된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일상이 무너진 엘사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뱅상의 만남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눈치챌 수 있다.


우울함과 슬픔에 잠겨 있던 엘사는 뱅상을 마주하면서 어느샌가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곧 자책감에 빠져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는데 이렇게 웃고 있어도 될까. 그 마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불쾌했지만 만남이 이어질수록 뱅상의 마음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엘사를 통해 마음속의 슬픔과 마주할 용기를 낸다.


작가는 두 사람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이다. 다소 슬프고 어두울 수 있는 아픔을 밝은 분위기로 풀어낸다. 엘사와 뱅상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웃음이 난다. 


상처를 어루만지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는 작가의 방식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그 만족감은 에필로그에 이르러서 절정에 달한다. 이 귀여운 커플의 결말에 안도감과 감동을 느낀다. 어쩌면 내게도 이런 만남이 찾아오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려 본다.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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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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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0회를 맞이한 한겨레문학상의 2025년 수상작은 김홍 작가의 <말뚝들>이다.

각자의 억울함을 고하듯 도시로 다가오는 말뚝들.

죽은 자들이 바다에 나가 거꾸로 박혀 있다는 전설로 전해지는 이 말뚝들이 나타나면서

도시는 혼란에 빠져든다.

얼마나 억울하고 슬프고 쓸쓸하고 서글프면 말뚝으로 나타나는 걸까.

이 말뚝을 본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

말뚝들의 눈물 어린 이야기는 몇 개월 전 실제 상황과 겹쳐지며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소설은 은행에서 대출심사를 하는 '장'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평소와 같이 출근하던 어느 날 아침, 장은 트렁크에 감금되어 납치된다.

납치된 이유도 모르고 풀려난 이유도 모른다. 그리고 말뚝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심사위원 전원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재미도 있고 씁쓸함과 속 시원하다는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슬픈 현실을 기발한 상황으로 풀어낸다.

갑자기 등장한 말뚝들에 총을 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순간에는 지난겨울이 떠올랐다.

말뚝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타인을 향한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각자의 불행 앞에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무심코 내민 작은 선의는 연대라는 틀을 완성하는 작은 밑거름이 된다.

누군가에게 빚진 마음은 힘들고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

작가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겨울날 목격한 연대의 힘을 잊지 말자.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P. 280 


#도서제공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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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수호하는 악마의 변호사 - 국선전담변호사, 조용한 감시자
손영현.박유영.이경민 지음 / 인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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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통해 마주한 국선전담 변호사는 추레한 겉모습에 무성의한 말투와 태도로 희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헌법 제12조에는 형사 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사를 붙인다고 명시되어 있다. 현실에서 실제 국선전담 변호사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헌법을 수호하는 악마의 변호사>는 세 명의 국선 변호사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머릿속에 있던 국선 변호사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지울 수 있었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기대기 어려운 약자들의 유일한 조력자다. 절박한 이들에게는 최후의 안정망일 수밖에 없다.


세 명의 변호사가 보여준 현실 이야기에 마음이 무겁다. 억울하게 피해자가 되고 원치 않게 범죄에 노출되며 한순간에 전 재산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 와중에 우리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들에게 더 아량을 베푼다. 오래 시간 쌓여온 법에 대한 불신은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국선변호인들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권리를 대신 실현해 준다. 하지만 이들 역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들이 보여준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럼에도 국선 변호사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쌓여 정의를 이뤄낸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법과 정의, 사회적 약자들과 열악한 국선 변호사들의 현실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방어권과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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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종
이재찬 지음 / 9월의햇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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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자살로 처리된 사건들의 현장 사진을 하과장에게 보낸다. 죽은 이들은 모두 욕조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했다. 하과장은 정직 중인 복형사에게 사진을 전해주며 비공식적인 수사를 지시한다. 누가 왜 이 사진들을 보내는 걸까. 


진실의 끝은 20년 전 그날로 돌아간다.  

그날, 그 곳에 있던 건 짐승만도 못한 악마들이었다.

이들의 죽음은 자신들이 자초한 일이었다.

다소 파격적인 소재는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살된 위장된 진실은 인간의 악마성, 잔혹함, 짐승성을 서서히 드러낸다.

악인들의 결말이 유쾌하지 않은 건 그들의 원죄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하과장이라는 캐릭터는 내 기대를 철저하게 짓밟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선택이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달갑지 않았다.

작가는 무거운 소재를 건조하면서도 강렬하게 보여준다.

감정을 자제한 장면들은 오히려 사건에 대해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다소 묵직한 정통 범죄 장르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소설에는 

정의와 복수, 선과 악이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

제목 <살인종>의 의미를 이제서야 할 것 같다.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일까. 

자살로 위장된 그들의 죽음은 진정한 애도를 받을 수 있을까.

20년 전 그날의 진실은 이렇게 묻히는 걸까.

풀리지 않은 이 의문의 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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