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하이드어웨이
후루우치 가즈에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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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면 가끔은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는 순간이면 오롯이 나만 알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매일이 행복하면 좋을 테지만 인생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도쿄 하이드어웨이>는 이런 현실적인 마음을 잘 담아낸 소설이다.


작가는 도쿄의 IT 기업 '파라다이스 게이트웨이'를 무대로 하여 팬데믹 이후 도쿄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은신처를 찾아가는 과정을 따스하게 그려내며 잠시나마 특별한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삭막한 도시에서의 삶이지만 어딘가에 소소한 은신처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만 같다. 어제와는 다른 길에 발을 내딛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낀다. 


이들이 찾아낸 은신처는 특별하지 않다. 점심시간에 인공 별빛 아래에서 낮잠을 청하기도 하고 출근길에 충동적으로 종점역까지 가서 열대 식물관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을 단련하기도 하고 수족관의 해파리를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회복해 나간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캐릭터지만 모두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관계 속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따돌림, 가족 문제, 무기력증과 우울증 등 실재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나만의 은신처를 떠올려 보았다. 분명 나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은신처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서울로 무대를 바꾼다 해도 이질감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현실이 버거운 이들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나는 무언가에 겁을 먹고 무언가에 화를 내고 있었을까.

짊어지고 있다는 건 의존이나 마찬가지.

자의식 과잉도, 인정욕구도 자신과 세계의 무관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생긴다.

p. 347


#도쿄하이드어웨이 #후루우치가즈에 #인플루엔셜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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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2의 건축가’들
김광현 지음 / 뜨인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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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걷다 보면 멋들어진 건축물을 만날 때가 있다. 자그마한 집일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큰 건물일 수도 있다. 눈으로 마주한 결과물을 보면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아마 대부분은 건물을 설계한 이들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멋진 결과물의 건축주에서 시작된다. 설계를 의뢰하고 실제로 살았던 건축주들은 그들의 공간에서 행복했을까. 이 책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650여 페이지의 두꺼운 책에는 제2의 건축가라고도 하는 건축주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36개의 건축물과 다양한 건축주들을 소개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2의 건축가를 불러낸다. 아무리 멋진 집이라 해도 끊임없이 하자가 발생하거나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으면 평온한 삶을 살아가기 힘들다. 걸작이라는 건축물이라고 해도 그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건축물로서의 쓸모를 다하지 못한다. 저자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건축주의 상상력과 열정이 중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읽어 본 건축 관련한 책들은 건축가나 건물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에 건축주의 관심으로 접근한다는 시도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가 만든 건축물의 사진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지만 실제 그 건물에 살았던 건축주의 삶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주선을 연상케하는 다소 독특한 형태의 사보아 주택은 주말주택을 원한 건축주의 의뢰로 설계된 건물이다. 건축주는 온수와 냉수, 전기와 중앙난방, 그리고 추후 증축이 가능하기를 원한다는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면 지하실은 침수됐고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건축주는 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반해 핀란드의 거장 알바 알토는 땅에 뿌리를 내린 건축을 강조하며 숲을 닮은 집을 완성했다. 땅의 모양, 햇빛, 주변을 바라보는 시건들을 종합하여 예술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주택을 구상한 것이다. 평소 미술품을 수집하는 건축주 부부의 니즈에도 딱 맞는 건축 작품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 가능하다면 건축주의 입장에서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을 떠올려 본다. 모든 인간이 본디 건축가였으며 '짓는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를 통해 건축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순히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건물 하나쯤은 쉽게 올릴 수 있을 거라는 편협한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건축주가 원하는 방향과 기준이 뚜렷해야만 행복한 집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의집은이렇게시작되었다 #김광현 #뜨인돌 #서평단 #도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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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나 괜찮다 - 흔들리는 시간을 넘어 단단히 나를 세우는 법
이현수 지음 / 북파머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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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을 불혹이라고 하는데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된다는 마흔. 하지만 버거운 삶은 마흔 살이 된다고 편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일도 관계도 가족도 점점 더 힘겨워질 수 있다. 이 시기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면 마음의 병이 깊어만 간다. 인생의 중반기에 찾아오는 우울증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심리학 박사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 중반기에 찾아온 심리적 신체적 소동을 파악하고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중년의 마음에 소동일 일어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호르몬의 변덕 때문일 수도 있고 외부 스트레스가 압박하여 그럴 수도 있다. 이때 나만의 문제로 여기고 참고 넘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울고 싶으면 울고 화내고 싶으면 화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 역시도 스스로를 다그치며 '빨리 정신 차리라'라고 윽박을 지를 뿐 제대로 내 감정을 살펴본 적이 없었다.


저자는 각자의 삶은 오롯이 자신이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버티는 것에서 벗어나 회복하고 돌보는 법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자신을 돌보고 외로움을 안고 가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자신을 다정하게 안아주고 믿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마음의 안정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삶을 최대한 단순화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단순화는 선택과 집중이다. 건강염려증과 같은 불안과 우울을 유발하는 생각을 단순화하고 꼭 해야 할 일과 시금하게 해야 할 일 등을 선정해 일을 단순화한다. 일정한 루틴을 정해두고 일상을 단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40대는 시작부터 정신없었다. 갑작스럽게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을 챙기고 아픈 엄마의 병수발을 들며 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 간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최선이었다. 언제 어떻게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몇 번이고 엄마 옆을 지켜야 했던 시간들이 길어지다 보니 몸도 마음도 서서히 고장 나기 시작했다. 내가 아프면 안 된다는 강박에 건강염려증도 심해졌다. 


지난 시간 중에 내 안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혼자 아등바등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나를 돌보지 못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내 삶의 속도와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일에 대한 집착도 조금씩 내려놓으려 한다. 욕심과 허세를 덜어내고 외로움에 익숙해지며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오늘만 사는 삶에서 벗어나 내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보자.


삶의 기대치를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맞추면 복잡하고 어지럽고 속이 더부룩하다. 자신만의 기대치를 설정하여 전념하면 단순하고 깔끔하며 개운하다. 남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자기 목표’에 맞춰 열심히 달리고, 어떤 결과가 오든 감사하고 자족할 때 오히려 삶이 충만해진다. 남에 비교되는 것 자체야 ‘인식’ 차원이라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지만 상대적 열등감을 느끼는 ‘태도’로 확장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p. 157


#당신은언제나괜찮다 #이현수 #북파머스 #서평단 #도서리뷰 #심리학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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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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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을 날짜를 미리 알고 있다면...?

19살 넬은 점쟁이에게 자신이 38세에 죽을 거라는 예언을 듣는다. 믿을 수 없는 예언이지만 함께 있던 친구가 예언 날짜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남은 시간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가족과 친구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휴대폰을 해지하고 SNS 계정을 삭제하고 값비싼 드레스를 빌려 입고 호화로운 호텔 스위트룸에서 마지막을 보내기로 한다. 이 밤이 지나면 자신의 삶도 끝이 날 거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천국은 예상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그리고 잠시 후 객실 청소원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빛이 나야 할 시기에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넬.

친구의 죽음이라는 우연이 겹쳤기 때문에 점쟁이의 예언을 믿어야 했을 테지만

이 어리석고 가여운 주인공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기대가 됐다.

끝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늘 새로움을 찾아 떠났다. 

작가는 유쾌하고 재치 있는 설정으로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다소 엉뚱한 넬의 모습은 귀여운 말괄량이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에는 그녀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죽음을 준비하며 침대를 팔기 위해 만난 톰, 천국이라 여긴 호텔에서 만난 옛사랑,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노부인과 넬의 가족들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다.

38세에 빈털터리로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 넬은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만나 

행복의 기운을 전해준다. 읽는 동안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뭘 하고 싶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나만 꼽기는 힘들 것 같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어떤 선택을 해야 죽어서도 후회하지 않을까. 

재미와 진지함을 동시에 선사한 소설은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고민이 되는 순간,

각자에게 이정표를 제시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이정표는 다음과 같다.

고민은 시간만 늦출 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자. 


#힐링소설 #영미소설 #휴먼드라마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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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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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읽기를 통해 얻고 싶은 건 무엇일까. 

하루 종일 활자와 씨름하는 직업이다 보니 읽기를 통해 머릿속의 글자를 정리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읽기를 통해 머릿속과 마음속을 환기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작가가 제안한 '고요한 읽기'는 내가 읽는 방식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활자 중독자처럼 닥치는 대로 읽던 시절이 있었고 

종이책 예찬자이지만 몇 날 며칠 작은 스마트폰 화면의 이북만 읽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읽기를 멈출 수 없는 건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내가 자처한 고립된 상황에서 그래도 세상을 알 수 있는 건 읽기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책을 통해 나를 읽을 때 나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같이 읽는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단순한 문학 에세이를 넘어 철학적 분위기를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며 들여다본 작가의 세계는 그의 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소설은 어떤 분위기로 나를 이끌어갈지 기대된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잃어버릴 두려움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P. 90 


인간은 악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비범함에 이끌린다. 악을 행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악의 어떤 속성인 비범함을 소유하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내세우기를, 그렇게 보이기를 원한다. 모든 유혹의 핵심에 이 욕망이 깃들어 있거니와 특히 이런 유혹에 취약한 시기가 있다. 

p.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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