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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
웨인 케스텐바움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평점 :

제목을 보자마자 읽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왜일까. 굴욕이라는 단어에는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끝내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부터 당황했다. 단편적인 짧은 글들이 이어지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마구잡이로 등장했다. 굴욕은 개인적이고 신체적이며 외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어쩌면 이런 형식이 굴욕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건 아닐까.
살면서 굴욕적인 순간이 있었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 봤다. 도통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면 아직 나는 굴욕을 느껴본 순간이 없다는 걸까. 아니면 너무나도 굴욕적이기에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린 것일까. 개인적인 경험일 테니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물어봐도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순간이 굴욕적인 순간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타인의 굴욕을 알게 되는 건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굴욕이 주로 성적인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불편하다.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취향을 알게 되는 순간에는 거북함을 느꼈고 엉덩이의 뾰루지 이야기에서는 그만 읽고 싶었다.
그럼에도 손을 놓을 수 없었던 건 굴욕이라는 감정이 보편적인 인간적 연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저자는 굴욕이 끔찍함과 좌절을 안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손 내밀게 하는 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다짐한다. 앞으로의 삶에서 남에게 일부러 굴욕을 주는 일은 나 역시 삼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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