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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세상에는 가장 비밀스러운 선거가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다.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문은 굳게 닫히고, 결과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때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바티칸 특파원인 저자는 이 폐쇄적인 선거 과정을 비교적 차분한 시선으로 기록한다. 책을 읽는 동안 2025년, 바티칸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던 날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의 재임 기간과 그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 왔는지를 돌아본다. 개혁과 포용의 상징으로 언급되던 프란치스코의 죽음 이후, 교회는 그 노선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전통으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당면하게 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교황 선출을 종교적 신비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콘클라베는 엄격한 의식인 동시에 현실적인 선택의 과정이다. 저자는 바티칸 내부의 분위기와 교회가 처한 외부 환경과 함께 교황 선출이 어떤 시대적 요구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교회 역시 분열과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세상은 점점 더 갈라지고 있다. 정치적 극단화, 사회적 갈등, 서로에 대한 불신은 종교의 영역 밖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저자는 이런 흐름 속에서 교회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레오 14세는 교황 즉위 미사에서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사랑은 감정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인간의 감정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사회적 혼란으로 얼룩진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종종 상징적인 인물을 기다린다. 이 책을 읽으며 레오 14세에게 쏠린 기대감을 느끼게 된다. 그의 선택과 행보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책 역시 그 이후를 예측하지 않는다. 다만 분열의 시대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게 된 이유를 조용히 보여준다. 그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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