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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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새 가족이 생겼다.

p. 13


엄마를 잃은 '이경'은 외갓집에서 삶을 시작하게 된다. 밥상을 차려 놓고 식구들을 기다리지만 이경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어두운 방에 남겨진다. 외로움에 둘러싸인 이경은 낯선 혈연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꿈꾼다.

이야기 전체에 깔려 있는 우울함과 외로움에 몸서리를 친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각각의 처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협소한 다락방이 딸린 단칸방에는 외할아버지, 외삼촌, 이모, 그리고 이경이 살고 있다.

이모는 은행에서 근무하고 퇴근 후에는 외국어 공부를 한다. 어느 날 검정고시용 학습지를 건넨 이모는 점심 식사를 함께한 후 사라졌다. 할아버지와 함께 무허가 블록 벽돌을 만드는 외삼촌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엄마의 죽음 이후 학교조차 다니지 않는 이경은 식구들의 도시락을 챙기고 잡초를 뽑으며 하루를 버틴다.

이들의 모습에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럼에도 사라져버린 이모를 탓할 수 없었고 살아가기 위해 벽돌을 찍어내는 할아버지를 원망할 수 없었다. 이 가족의 모습은 시멘트보다 모래가 많이 섞여 있는 벽돌 같았다. 언제든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관계가 아슬아슬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이경에게 말을 거는 건 삼촌의 여자였다. 가족들이 반기지 않은 그녀만이 이경에게 말을 걸고 반찬을 해들고 온다. 낯선 이는 그렇게 서서히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서게 된다. 위태롭던 혈연관계는 떠남과 부재를 겪은 후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간다. 새 생명과 함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경은 단단한 가족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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