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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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마법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설정 때문에 마법사가 날아다니는 판타지 세계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은 내 상상을 벗어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 번쯤 꿈꿨을 매혹적인 세계관과 변하지 않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갈아 만든 천국>.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소설은 혈통에 따라 소수에게 마력이 대물림되고 힘의 세기가 운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척추뼈 속에 보랏빛 '역장'을 품고 있다. 이 역장은 삶의 근간이자 존엄 자체이다. 그러나 이러한 존엄은 빈부격차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도 여지없이 부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부유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역장을 판다. 역장은 한번 빼내면 다시 회복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다.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은 뭔가 특별할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그려낸 세계는 지금의 세계와 너무나도 닮았다. 여전히 현격한 빈부 격차가 존재했고 그에 따른 불평등은 삶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만들며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현실보다 더 리얼한 판타지 세계는 씁쓸함을 남긴다.

총 5부로 구성된 소설은 허무한에서 시작하여 각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이어간 후 다시 허무한으로 돌아온다. 도시 외곽의 바닷가 촌구석에서 보랏빛 안개를 뿜어내며 태어난 허무한은 A-급의 타고난 '역장' 때문에 주목을 받으며 S대 응용마법학과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대학에서 서지현과 이주영을 만나면서 마력보다 상류 문화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고 그로 인한 열등감으로 인해 역장 팔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날의 선택은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능력이 있어도 미친 듯이 노력했어도 금수저가 이기는 세상은 슬프다. 재능과 노력이 무시되는 세상에서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열려있는 천국은 평범한 사람들의 재능과 능력을 갈아만든 곳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허무한에게 돌아온 역정은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설정부터 인물까지 현실을 비추는 날카로운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 봐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날 때부터 마력이 없는 게 더 나았을 거예요. 그럼 괜히 아빠가 기대하지도 않았을 테고. 별 의미도 없는 사교육에 그렇게 올인할 이유도 없었고요. 저는 날개를 달고 태어난 우물 안의 개구리였어요. 날개가 없었으면 행복했을 텐데.
p.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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