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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 살인사건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박진범 북디자이너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월
평점 :
어느 일요일, 긴자 거리에 나비떼가 날아든다. 경시청에서 근무하는 가메이 형사는 모처럼 가족과의 나들이에서 작고 하얀 배추흰나비떼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비들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하러 와코 빌딩을 향해 가던 중 바닥에 드러누운 미소 짓는 얼굴의 젊은 남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시신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채 일주일이 지나고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는 화려한 색의 고무풍선이 단지 위 하늘을 덮고 있다. 떨어진 풍선을 주우며 안지 안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오래된 건물에 미소 지으며 죽은 채 누워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게 된다. 시신은 모두 성경 구절을 새긴 팔찌를 차고 있었고 이후 예고 자살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수사본부는 혼란에 빠져든다.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클래식 미스터리 레전드인 니시무라 교타로는 방황하는 젊은이들과 이들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비열한 인간의 모습을 소재로 사이비 종교 단체와 경찰의 대결을 그렸다. 이 소설은 1980년 처음 발표되었지만 2024년 현재에도 비슷한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질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이 젊은이들을 맹목적인 종교에 빠져들게 했을까. 불안정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간사한 세치 혀에 속게 만들었을까. 삶이 아닌 죽음에서 가치를 찾으라는 그 주장을 왜 반박하지 못했을까. 죽어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에 자꾸만 화가 난다. 도쓰가와 경부가 이들의 근거치를 추적하고 마주했을 때 느꼈을 기분은 지금이 내 기분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벽을 보고 말을 하는 것 같은 답답함과 막막함을 소설을 읽는 내내 느껴야만 했다.
과연 젊은이들은 진심으로 죽음을 바랐던 것일까. 죽음 뒤에 바뀐 세상이 이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살아서 직접 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텐데 말이다. 사이비 지도자는 젊은이들의 죽음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낙원을 만드는 계획을 진행시켜 나간다. 소설의 후반부에 그곳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현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의 체념과 분노, 슬픔과 고통이 느껴진다. 40년 전 과거의 소설에서 현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는 것 또한 안타깝다.
현대의 광기를 사실감 있게 담아낸 사회파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전개를 담고 있는 소설로 종교적 색채를 짙게 풍기며 간절한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랄하고 추악한 인간 본성을 잘 드러낸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희망을 찾기 힘든 젊은이들의 현실이 씁쓸하다. 죽음이 아닌 삶에서 가치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와 개인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겨준 소설이다.
'죽음의 가치?'
도쓰가와는 벽에 기대어 노미야마를 바라봤다.
'이곳에서는 삶의 가치가 아닌 죽음의 가치를 가르치는 건가?'
P. 322
소녀가 이곳에서 뭘 기다리고 있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실현될 수 없는 기적을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은 소녀에게는 아직 이번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번 사건이 소녀에게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광경이었다.
P. 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