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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1 ㅣ 유정천 가족 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평점 :
한때 명문이었던 시모가모가에는 너구리 사형제가 있다. 고지식하고 의지가 굳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약해지는 첫째, 은둔형 외톨이로 우물 안 개구리로 둔갑해 다시 너구리로 돌아오는 방법을 잊어버린 둘째, 재미만을 쫓는 셋째, 그리고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둔갑 능력이 한심한 막내. 이 소설은 역경을 헤쳐가는 너구리 사형제의 이야기이다.
덴구는 인간을 잡아가고 인간은 너구리를 전골로 만들어 먹고 너구리는 덴구를 함정에 빠뜨리는 개미지옥 같은 기묘한 소설 속 세계관부터 참신하다. 아버지가 '금요클럽' 모임의 송년회 냄비에서 죽고난 후 숙적 너구리 가문이 끊임없이 시모가모가를 못살게 군다. 결국 바보 같은 사형제는 힘을 합쳐 이들을 물리치고 가족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부터 심상치 않다. 일단 주인공은 너구리 사형제의 삼남 '야사부로'다. 야사부로의 시점에서 자신을 포함한 형제들은 바보 같다. 꽃미남으로 둔갑하는 엄마 또한 그다지 평범하지 않다. 개성 강한 주인공들만큼이나 소설 또한 유쾌하다. 여기에 나이가 든 탓에 신통치 않은 덴구와 덴구보다 더 덴구 같은 악녀 '벤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사촌 형제 금각과 은각까지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들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이에 더해 인간들 모임인 '금요클럽'에서 너구리 전골이 되어 죽게 된 아버지와 아버지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된 너구리 형제의 가족사는 슬프과 웃음을 동시에 전해주며 판타지 세계로 잡아당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신기한 캐릭터는 둘째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우물 안 개구리로 둔갑하여 은둔해 있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는 법을 잊어버린 너구리의 삶이라니. 한 편의 대환장 애니메이션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너구리 가족,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모리미 도미히코는 너구리 주연, 인간 조연의 이 소설을 통해 '쿄토 원더랜드'에 살고 있는 너구리 가족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보며주며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형제들 간의 우정과 애정을 이야기한다. 또 어떤 사건이 이들 앞에 벌어질지 기대가 된다.
이 세상과 작별하는 데 있어 우리 아버지는 위대한 그 피를 정확하게 넷으로 나누었다. 큰형은 책임감만 이어받았고, 작은형은 느긋한 성격만 물려받았으며, 동생은 순진함만 물려받았다. 그리고 나는 바보스러움만. 완전히 제각각인 형제를 이어주는 것은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사랑과 위대한 아버지와의 작별이다. 위대한 이별 하나가 남은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도 있다.
P.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