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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정신의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동시에 가장 충격적인 실험이 계획된다. 스탠퍼드 교수 데이비드 로젠한은 주부, 학자, 화가, 학생 등 여덟 명의 참가자와 함께 정실질환자로 위장해 정신병원 잠입을 시도한다. 이들은 모두 정신질환자로 오진되었고,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강제 치료받았다. 로젠한은 실험을 바탕으로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고 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과연 로젠한의 실험은 위대한 사건일까, 추악한 사기일까.
이 책의 저자는 촉망받는 기자였지만 20대에 정신질환 오진을 경험한다. 실제 병명은 '자가면역 뇌염'이지만 차트에는 '조현병'이라고 적혀 있다. 신체 질환을 정신질환으로 오진한 탓에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고 정신병원에 강제 수감될 뻔했지만 다행히 제대로 된 진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저자는 과거 로젠한의 실험을 파헤치며 진실을 보여준다.
저자의 추적을 따라가다 보면 로젠한 실험의 치명적인 문제를 알게 된다. 자신의 의도와 다른 사례는 삭제하고 참가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채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를 받게 한 것이다. 이러한 사기극이 어떻게 학계를 뒤흔들었을까. 로젠한의 논문이 실린 학술자가 저명한 <사이언스>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신의학은 모두 틀렸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논문은 정신의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뿐 여전히 객관적인 진단 기준은 부족한 현실이 씁쓸하다.
과거에 비해 정신의학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20년 전 처음 들었을 땐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들었을 땐 의사에게 화를 냈다.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 것만 같아 무조건 부정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같은 병명에 익숙해지면서 내 문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지금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을 달래는 나만의 방법도 터득했다.
점점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정신의학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누는 건 무엇일까. 로젠한의 논문은 객관성을 잃었다는 점에서 분명 잘못된 실험이다. 하지만 정신질환 진단 신뢰성이라는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정신질환이 만연한 시대에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정신의학의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