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꿈들 - 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양미래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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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어떤 장소를 알아간다는 건 단지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장소에 담긴 역사를 배우고 인연을 만들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진다.

리베카 솔닛은 이 책을 통해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 솔닛은 네바다 핵실험장으로 걸어가 그곳에서 글 쓰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희망을 품는 법을 이야기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연'이라는 관념이 구축되면서 보호받아야 할 자연 공간이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와 그곳에서 맺어진 관계를 성찰하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단 한 번도 내가 있는 장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라 여기며 소유의 개념으로만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있는 장소는 한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곳이며 지켜야 하는 곳이라는 확신이 생겨났다.

솔닛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라는 장소를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고

기후 위기의 시대를 각자의 방식으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어느 가을 날 솔닛은 요세미티 원주민을 만났다. 오랜 시간 이곳에 살아온 원주민들은 그들의 역사와 터전을 지키고 연방정부로부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도심 박물관 디오라마의 설명에는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 앞에서 원주민들이 느꼈을 감정이 솔닛의 글을 통해 내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다.

저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이 땅이 제 땅이라고 말해요.

사람들이 저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바로 제가 느끼는 감정이에요.

p. 386

그녀의 글에 따르면 이미 전 세계 수많은 원주민들이 국립공원 조성을 이유로 생활 터전을 잃고 쫓겨났으며 이러한 행위를 야생을 수호하는 것이라 여긴다.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는 것이 최선의 보호라 여기는 시각은 원주민들의 행동을 자연 파괴라 규정한다. 원주민들이 주기적으로 숲에 불을 내는 행위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들을 자연에서 몰아냈지만 숲은 오히려 불에 더 취약해져만 갔다.

이런 행위가 반복될수록 오랜 시간 이어져온 정복과 약탈의 역사를 이제는 공존의 역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이제 장소는 평범한 사람들부터 수많은 활동가와 연구자들에 이르기까지

행동하며 실천하는 이들의 노력 덕분에 변화의 발판이 되고 있다.

솔닛의 글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지속 가능한 새로운 공생관계를 만들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장소라는 공간을 역사적 정치적으로 풀어쓴 이 책을 읽으며 '저항'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장소가 가르쳐 준 희망을 떠올리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품어본다.

어떤 장소를 알아간다는 것은 친구나 연인을 알아가듯 그 장소와 친밀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장소를 더 잘 알아간다는 것은 그 장소가 다시 낯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낯설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방식으로 참신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사그라들지 않는 심오하고도 심란한 방식으로 낯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p.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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