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엄마와 얼굴도 모르는 아빠. 혼자가 된 앨리스는 열여덟 살이 되자 위스콘신을 떠나
뉴욕에 온다. 소녀에겐 600 달러와 라이카 카메라가 전 재산이었다. 그녀는 뉴욕에서 머물게 된
집주인 노아의 도움으로 사진학교에 필요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위해 뉴욕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어느 날, 허드슨 강가에서 강간당한 끝에 살해당한다.
비를 맞으며 리버사이드 파크에서 조깅을 하던 루비는 허드슨 강가에서 살해된 한 소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소녀는 '제인'이라는 가명으로 불리게 되고 시체를 발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루비는 소녀의 이름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두 여자의 시점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앨리스와 루비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사진작가라는 미래를 꿈꾸고 약혼녀가 있는 그와의 만남을 끝내려는 두 여자의 목표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너지게 된다.
작가는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기보다는 피해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피해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이 신선했다.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이지만 피해자와 목격자라는 관계 속에서 깊은 연대감을 느끼는 점도
공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루비는 목격자로서의 죄의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빨리 그곳을 지나갔다면 어린 소녀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와 자책감에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루비는 그렇게 앨리스의 삶에 다가가게 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앨리스가 죽게 된 어처구니없는 이유에 분노가 치민다.
단지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망하게 목숨을 빼앗긴 앨리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왜 이렇게 세상이 폭력적이고 비극적으로 변하게 되었을까.
여성뿐만 아니라 누구나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권리가 있다.
분노와 증오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 당연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개인과 국가가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만약 앨리스가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열여덟 살의 소녀와 서른여섯 살의 여자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부분의 두 사람의 대화가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에 공감하며 더 이상 이런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