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를 소재로 상처입은 영혼이 치유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따스한 소설이다.
주인공 아오야마 소스케는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법학부 대학생이다.
어느 날 전시회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소스케는 수묵화의 거장 시노다 고잔을
만나게 되고 그날 이후로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게 된다.
평생 그림이라고는 그려본 적 없던 소스케는 뜻하게 않게 고잔 선생님의 애제자가 되고
고잔의 손녀이자 수묵화가인 지아키와 선의의 승부를 펼치게 된다.
주인공이 난생 처음 잡은 붓을 잡고 선을 그려내며 수묵화에 점차 빠지게 되는 과정이
참 좋았다. 먹을 갈고 먹의 농담만으로 그려낸 그림에서 주인공은 색을 읽어낸다.
놀라운 건 내 머릿속에서도 소스케가 말한 색이 뚜렷하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이루어진 그림에서 색을 읽어내는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마음속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
평소 그림에는 관심이 있지만 수묵화는 낯선 단어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단 한번도 수묵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소스케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수묵화의 매력이 무엇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 덕분에 조금이나마 구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이는 현직 수묵화가라는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소스케는 선을 떠올리며 미래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살아감을 느낀다.
그가 그린 선을 따라가며 삭막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말랑말랑한 봄날의 기분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