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일본에서 일어난 수도권 연쇄 의문사 사건, 일명 꽃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로,
범인인 30대 여성은 결혼을 미끼로 만난 남자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그중 세 명은
교묘히 살해하였다. 이후 언론에 보도된 범인의 사진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꽃뱀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화장기 없는 얼굴,
다 풀어진 파마머리, 100 kg이 넘는 체구는 과연 그녀가 남자들을 유혹해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작가 유즈키 아사코는 그녀를 모델로 하여
주간지 기자 '마치다 리카'가 도쿄 구치소에 수감 중인 '가지이 마나코'와 인터뷰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려내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전개에 당황했지만 여성 캐릭터와 음식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가 특유의 특징이 잘 드러난 소설이다.
리카는 가지이를 인터뷰할수록 감화되어 그녀의 생각과 미각에 휘둘리게 된다.
가지이의 블로그에 소개된 음식을 직접 만들게 되고 그녀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녀의 비틀린 욕망의 근원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게 지게 된다.
유즈키 아사코의 <버터>는 미스터리 소설보다는 미식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가지이는 정말 남자들을 살해했을까.
외로운 남자들이 그녀에게 느끼려 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외로운 삶에 동반자가 되어 준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가지이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지 이해하려 끊임없는 의문을 던지지만 답을 찾지는 못했다.
리카는 가지이의 요리를 만들면서 과거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마음속에 깊숙하게 남아있던 죄책감을 조금씩 떨쳐버리고 요리를
매개로 하여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음식이 인생의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 위로를 주고 치유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그동안 외적인 모습으로만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내 안에 있는 편견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버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을 하나씩 지울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다이어트의 큰 적이라 여겼던 버터가 때로는 삶의 풍미를 더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새로운 맛의 세계에 녹아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