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를 넘기면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가
실려있다. 바람 부는 넓은 들판에 홀로 앉아 저 멀리에 있는 집을 향한 한 여인의 뒷모습.
그녀가 어떤 표정으로 그곳에 앉아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 그림은 화가에게 영감을 준 실존 인물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의 작가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아름다운 여성의 삶을 그녀의 시선으로 그려나간다.
이야기는 주인공 크리스티나의 과거와 앤드루와 만나게 된 현재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어린 시절 열병으로 다리가 불편한 크리스티나는 그녀와 비슷한 아픔이 있는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를 만나게 된다.
닮은 점이 많은 두 사람은 서로의 세상을 알아본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독립적이고 호기심이 많으면서도 고독을 즐겼던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저 세상이 자신을 남들과 같이 알아봐 주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평생을 보낸 언덕 위에 있는 집과 들판, 그 위를 덮고 있는 하늘과 지평선은
세상의 작은 조각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다.
앤드루는 그런 그녀의 세상을 화폭에 담아낸다.
크리스티나가 앤드루의 그림을 봤을 때 그림 속 아가씨는 다른 사람 같았다.
젊어 보이면서도 늙어 보이는 여인. 그 여인의 모습에서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지나간 삶을
떠올린다. 신체적 아픔 때문에 사랑, 꿈 등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 했지만
동정 어린 세상의 시선에 당당하게 맞서며 결코 지지 않으려 하는 그녀의 인생에서
연민과 강인함을 동시에 느낀다. 포기해야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들,
희망과 체념 사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한 여성의 삶.
그리고 그녀의 삶을 온전히 그리고 담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준 화가.
앤드루는 크리스티나가 오랫동안 세상에 보낸 편지에 답장을 보내 준다.
그녀 역시 남들과 같다고...
한 여인의 고단한 삶과 지지 않으려는 강인한 의지에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평생토록 자유를 그리워하던 그녀에게 그림으로 그려 줌으로써 세상의 중심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준 예술가의 마음에 감동받았다. 따스한 우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