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라디오
남효민 지음 / 인디고(글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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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이 다 좋았다. 한 장 한 장 아껴 읽고 싶은 책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옛 추억에 빠져들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옛날 라디오를 머리맡에 두고 엽서에 사연을 끄적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럴듯한 사연 하나 없는 인생이 답답하기도 했고 타인의 사연을 들으며 웃고 울던

시절이 있었다. 늦은 밤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에 잠들고 잠 못 드는 새벽이 오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아침을 기다렸다.

잊고 있던 오래전 소중한 추억들을 문득문득 떠오르게 만든 마법 같은 책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일을 준비했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내게 기회가 온다면

심야 라디오 방송 디제이를 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간직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일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잔잔한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는 오늘 하루 수고했다며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 주는 달콤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도 잔잔한 위로를 전하며 행복한 추억을 남겨주기를 희망했었다.

그 좋았던 시절에도, 지금도 라디오 작가는 어떻게 매일 다른 오프닝 멘트를 쓸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해소할 수 있었다.

20년 차 라디오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에는 평범한 우리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가 전해주는 이야기에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추억이 흐르고 있다. 그녀가 만난 디제이들,

청취자들의 다양한 사연, 예측불가한 생방송의 아찔한 순간, 라디오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까지 가득 담겨 있다. 소리를 통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던 라디오.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사라질 거라 생각했던 라디오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함께 하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p. 85

다시 생각해 보니 '디제이가 바뀔 때마다 내 생각이 달라진다'는 말은 틀렸다. 내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 생각을 전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때로는 정직하게, 가끔은 장난스럽게, 어느 날은 고집스럽게 청취자들이 디제이에게 바라는 딱 그만큼의 표현으로 얘기를 건넨다.


p. 183

'라디오가 참 좋았다'는 고백을 쓰다가, 울컥 눈물이 나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라디오가 좋았다'라고만 쓰려다 그것 가지고는 모자란 것 같아 한 문장을 덧붙인 것뿐인데. '라디오가, 참 좋았다'고. 그 문장이 왜 나를 울컥하게 했는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p. 205

사람들이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하는 얘기는 그냥 이렇게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담론이 아닌, 사소하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가장 소중했던 오늘의 일상. 그 얘기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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