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황인숙 지음 / 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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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밑 언덕에 형성된 마을, 해방촌.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이 동네에서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황인숙 시인은

해방촌에 있는 옥탑방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 책은 그녀의 평범하지만 재미있는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개인이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내가 만난 그녀의 일상은 긍정의 기운이 가득해 보였다.

길고양이 밥을 챙기고 시를 쓰는 삶에서 다정함을 엿볼 수 있었다.

예전에 가끔씩 찾아갔던 해방촌의 풍경을 떠올리며 다정한 이웃과 고양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녀가 전해주는 해방촌은 삭막한 도시 풍경과는 대비되는 따스함이 자리하고 있다.

그녀의 주변에는 무심코 삶은 계란 한 알을 불쑥 내밀거나 남루한 옷차림이

기분 나쁘다고 말하는 이상한 이웃이 있다. 열린 문틈으로 아줌마라 부르며 중국집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술 취한 노인도 있다. 이제는 드라마에서조차 보기 힘든

다양한 사람들이 해방촌에는 살고 있다. 나는 왜 이런 모습들이 좋을까.

세련된 아파트보다는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이 점점 더 좋아지는 건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까. 해방촌의 풍경에서 어릴 적 살던 동네가 겹쳐 보인다.

얼마 전 우연히 졸업한 초등학교 앞을 지나갔다.

비록 주변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학교만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니던 중학교도 내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바쳤던 집과 골목도 그곳에 있었다.

그땐 엄청 넓어 보였던 골목길이 왜 이리도 작아 보이는 건지.

친구들과 뛰놀던 동네 공터에는 상가가 들어섰고 낯선 가게들이 생겨났지만

아카시아 향이 진했던 동네 초입의 큰 대문 집은 그대로였다.

낡은 정서가 남아있는 어릴 적 동네는 해방촌과 무척이나 닮았다.

담담하게 현실을 담고 있지만 밝고 명랑한 기운이 가득한 책이다.

p. 236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삶을 무르익힌다는 것이다. 삶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깊은 삶은 기품 있는 삶이다. 삶이 깊어지면 남을 생각할 줄 알게 된다. 남을 생각할 줄 안다는 건 기품의 기본이다. 세월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인 그 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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