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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잘못이 없다 - 어느 술고래 작가의 술(酒)기로운 금주 생활
마치다 고 지음, 이은정 옮김 / 팩토리나인 / 2020년 9월
평점 :
30년간 매일 술을 즐기던 저자는 술을 끊기로 결심했다.
과연 그 결심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호기심에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가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저 쓴 걸 무슨 맛으로 마실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젊은 시절에는 나도 음주를 했었고 술맛도 알고 있지만
술을 마신다고 괴로운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다음날 숙취에 고생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는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술과 함께 했던 사람에게는 금주를 결심하고 실천하는 힘겨운 여정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저자는 인생의 쓸쓸함을 받아들이고 정신적 여유를 갖게 되면서 술 없이
담백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새롭게 찾게 된다.
술이 줄 수 있는 잠깐의 단꿈에서 깨어나 꽃과 풀을 보고 비 냄새를 맡으며 그동안 지나쳤던
일상의 작은 것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삶의 낙을 포기하면서 행복과 멀어질 것만 같았지만
금주를 하면서 오히려 소소한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간직하게 된다.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행복이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명랑한 분위기의 글과 저자의 위트가 어우러진 문장을 읽으며 인생이란 무엇인지
잠시나마 생각해본다.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이란 쓴맛, 단맛, 짠맛, 신맛 등이 골고루 섞여 다양한 맛을 낸다고 생각한다.
그 맛에 술맛을 첨가해도 좋지만 짧은 인생사에 술맛보다 더 좋은 맛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과 끊고자 하는 의지가 충돌하는 한 사람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읽으며 처절한 금주 일기에 기분 좋게 취해본다.
p. 56
그니까 정리하자면 술의 즐거움은 인생의 자산이 아니며 즐거움이라고 부르던 것이 실은 부채라는 사실을 한 수 가르쳐 줬다, 이 말이지. 이 생각을 발전시키면 반드시 인생 자체의 균형이라는 지점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즐거움의 반대쪽에는 반드시 고통이 있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듯이.
p. 277
정신적 여유다. 다른 말로 하면 여백 정도라고나 할까. 놀이,라고 해도 좋겠다. 지금까지는 그런 여유, 여백이 없었기 때문에 강한 자극을 목적으로 빠른 속도로, 그리고 최단거리로 가고 있었지만 여유, 여백이 생기면서 천천히, 가끔 멈추기도 하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