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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ㅣ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명의 에세이스트가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뽕커리, 비, 커피,
그리고 그 쓸데없는 것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느 '언젠가' 각자가 풀어낸 이야기는 늦은 밤 친구와 술 한잔하며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누군가의 기억 속 한순간이 내 경험과 비슷했을 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전혀 다른 언젠가 이야기는 낯선 설렘을 느끼게 해준다.
7명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글은 읽는 재미를 안겨 준다.
아기자기한 일상 이야기가 내 일상과 겹쳐지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응원가처럼 들린다.
어느 장소, 어느 향기, 어느 바람을 느꼈을 때 그 순간 문득 생각나는 과거의 한 조각은
행복하고 미화된 기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잠시나마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게 해준다. 그런 착각 덕분에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는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다정하게 위로하며 달래주는 주는 좋은 글 덕분에 지친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기분이다.
나의 '언젠가'는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길 소박한 이야기가
만들어가는 언젠가를 그려본다.
친구란, 나이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내가 살아가는 속도, 그리고 내가 있게 된 세계, 내 마음을 깊이 두고 있는 것과 관련된 어느 존재들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어느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그곳은 막연한 행복, 아직 그 형태를 알 수 없는 기쁨,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랑 같은 것들이 내 삶에 녹아있는 어떤 양지바른 곳이 될 거라고 나는 믿고 있을 것이다.
가지지 못했던 예쁜 아침을 보았고 아직 오지 않은 여유로운 저녁을 만난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내가 쥐고 태어난 명줄의 절반쯤 살았다고 가정했을 때, 절반씩이나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날을 쓸데없음과 함께했을까 곰곰 곱씹어 보았다. 곱씹은 기억들을 하나하나 나열했다가 서둘러 지워 버렸다. 살면서 내가 저지른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은…, (실제로는 넘치고 넘쳐서 취합하기도 힘들지만)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은 순간은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모든 멍청했던 나도, 모든 아팠던 나도, 이제는 소중한 나만의 역사가 되었다.
p. 357 <내 인생은 점심시간> - 이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