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평점 :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일 년 동안 동면에 들어가기로 한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누구나 해보고 싶지 않을까.
지금처럼 힘든 현실 속에서 동면 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동면에 들어가기 위해 약물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찾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 불면증이라는 거짓 핑계를 대고
끊임없이 약물 처방을 받기 시작했다.
스물여섯 살의 그녀는 동면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공과금은 자동납부로 설정하고 재산세도 미리 지불하고
기나긴 동면을 위해 단기 동면부터 서서히 시작했다.
처음엔 하루에 두세 시간만 깨어 있었고 점차 사나흘에 한 번씩 깨어났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절친 리바 때문에 이 계획이 쉽지만은 않았다.
사망한 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았기에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젊은 뉴요커 여성은 왜 그토록 삶을 리셋하고 싶었을까.
자신의 존재를 찾고자 선택한 방법은 엉뚱하고 두렵게만 느껴진다.
타임머신 같은 기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약물을 먹고 오랜 시간 후에 깨어나는 일이
과연 옳은 걸까?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었을까?
영영 깨어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보다 현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끝없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다닌다.
한심스럽고 공감할 수 없던 그녀였지만 마지막을 향해갈수록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니깐...
염세와 절망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는 그녀만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짹짹거리는 새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조금씩 세상을 향해 걸어나갔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삶이 힘들지라도 휴식과 이완을 통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처럼 말이다.
고통만이 성장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야, 나는 속으로 말했다.
잠이 효과가 있었다. 부드럽고 차분한 기분이 들었고 감정도 살아났다.
좋은 일이다. 이제 이건 내 삶이다.
p. 350